146화
남궁세가의 정예대원이자 특이하게도 남궁세가에서 검이 아닌 권을 수련하고 있는 남궁지신은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남궁길을 불렀다.
“형님! 이것 좀 보세요!”
“왜? 뭐라도 발견한 것이냐?”
남궁길 역시 남궁세가의 정예대원으로, 이번 남궁민을 수색하는 임무를 맡은 여섯 명의 남궁세가 무인 중에서는 가장 나이와 무공수준이 높은 자였다.
남궁지신은 커다란 덩치를 절벽에 가까이 붙이며 말했다.
“이 절벽의 벽에 뚫려있는 이거요. 이것, 혹시 손가락 구멍 아닐까요?”
그는 남궁기현 못지않게 커다란 몸집을 가졌고
수세미처럼 뻣뻣한 수염을 정리하지 않아 녹림도라고 해도 믿을 외견이었다.
“맞구나. 잘 발견했다!”
반면에 남궁길은 그와 반대되는 외모였다.
여리하고 날씬한 몸에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덕분에 여인으로 종종 오해받기도 했으니까.
“이 구멍을 올라가려 뚫은 건지, 내려가려 뚫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확인을 해봐야겠네.”
남궁지신이 먼저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절벽을 탔고, 바로 그 뒤를 남궁길이 따랐다.
잠시 뒤 그들은 구멍이 끝난 위치에 바위틈이 있음을 발견했다.
“엇? 밑에서는 안 보였는데 여기 틈이 있습니다!”
그는 말하며 곧바로 절벽을 박차고 바위틈으로 뛰어내렸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형님! 빨리 와 보세요!”
“그래. 간다. 가.”
누군가 둘을 본다면 굉장히 어색해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나이도 훨씬 어려 보이고, 더 빈약해 보이는 남궁길이 덩치도 훨씬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궁지신을 하대하는 모습은.
하지만 남궁지신은 그 태도가 굉장히 익숙한 듯했다.
“핏자국이구나. 그런데 그리 크진 않아 보이는 것으로 보아 큰 상처는 아니었나 보다.”
“민이의 핏자국일까요?”
“그건 모르지. 그럴 수도 있고.”
남궁길은 말하며 바위의 핏자국을 문질러 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직 완전히 굳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러면 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겠군요.”
“그래. 빨리 움직이자.”
그들은 곧바로 절벽을 내려와 수색을 계속했다.
남궁민을 찾는 시간이 지체되면 될수록 위험한 상황에 크게 노출되리라는 것은 당연한 소리였다.
“상류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
“하류로 가지 않는 겁니까? 상류로 가면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건데요.”
“그러니까 민이는 상류로 갔을 거야.”
“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남궁지신을 보며 남궁길이 혀를 쯧쯧 차고는 말했다.
“민이가 봉환을 터뜨린 이유가 무엇이겠냐?”
“도망치기 힘든 상황이거나 위험한 상황이니까 도와달라고 한 거겠죠.”
“그래. 그러면 적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도망치면서 우리를 기다릴까, 아니면 적이 뻔히 알만한 길로 도망을 치겠냐? 우리와 엇갈릴 수도 있는데.”
“우리를 기다리겠죠?”
“그러니까 상류로 갔을 거란 말이다.”
남궁지신이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형님은 똑똑하십니다.”
“민이나 하현이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그들 앞에서는 나도 부끄러워지니까.”
“내가 볼 땐 형님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은데.”
“실없는 소리 그만해라.”
대화를 일단락 지은 그들은 상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정예대원인 만큼 천풍신법(天風身法)을 극성으로 익힌 그들은 바람을 가르며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계곡 줄기가 점점 작아지더니 곧 숲속에 숨어버리려 할 때였다.
“지신! 사람이다.”
“저도 봤어요. 흑색 무복…. 마교 놈들일까요?”
그들의 앞에는 마교도로 보이는 대 여섯의 무사가 신법을 펼쳐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쿵!
남궁민이 강하게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먼 거리를 도약했다.
그 소리에 위를 향하던 마교도들이 남궁길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장님! 옆에 무인입니다!”
“남궁세가의 무복이구나!”
조장이라는 자는 꽤 무공수준이 높은 편인지 올라가던 발걸음을 부드럽게 돌려 남궁길을 향하곤 양옆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저들은 홍괴 어르신에게 보내지 않는다. 저들을 막아라.”
“네!”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남궁길이 그 말을 듣고 놀란 눈으로 말했다.
“홍괴?! 내가 아는 그 홍괴가 이곳에 있다는 말인가?”
“닥쳐라!”
“그러면 청괴도 와 있겠군? 민이가 위험한 상황이긴 했구나.”
마교 조장은 남궁길의 말에 더는 대꾸하지 않고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꺼내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물어볼 게 많겠군.”
남궁길 역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그는 조금 전까지의 여유로운 얼굴이 아닌 차가운 얼음장 같은 얼굴이었다.
“말이 많은 놈이구나!”
“너희는 말이 없더군.”
“그게 무슨 말이냐?”
“스무 명 정도인가? 모두 죽을 때까지 아무 말을 안 하던데?”
“뭣이?!”
어느새 남궁길 옆으로 온 남궁지신이 말을 덧붙였다.
“형님. 대답하긴 하지 않았습니까? 모른다고.”
“그랬었지. 조장이라고? 너는 아는 게 많길 바라.”
남궁길은 무한보를 밟아가며 검을 휘둘렀다.
카앙!
검이 부딪혀 불꽃이 튀었다.
겨우 막아낸 조장이 자세를 고쳐잡고 소리쳤다.
“막아라! 절대 홍괴 어르신에게 이자들을 보내면 안 된다. 곧 처리하고 내려오실 테니, 그때까지 버텨라!”
“처리하고 내려와? 저 위에 홍괴와 함께 민이가 있다는 뜻이군. 좋아. 알고 싶은 건 다 알았다. 지신아. 수하들을 맡아라.”
“네. 형님!”
남궁지신이 두 손을 쿵쿵 부딪치며 감각을 일깨우고는 앞으로 퉁겨지듯 뛰쳐나갔다.
파지익-
그의 몸 주변으로도 옅게 전격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익힌 무공은 폭뢰신권(爆雷神拳).
남궁민이 익힌 것과 같은 천뢰제왕신공을 바탕으로 하는 권법이다.
콰릉-!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남궁지신의 주먹이 마교도 하나의 몸에 틀어박혔다.
뻐억-!
커다란 덩치가 무색하게 빠른 속도였다.
가슴이 움푹 팬 마교도는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한눈팔 때가 아닐 텐데?”
“칫!”
남궁길과 조장이 다시 검을 부딪쳤다.
카앙!
마교 조장은 남궁길과 검을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을.
* * *
그 무렵.
홍괴를 상대하고 있는 남궁민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쾅! 콰앙!
홍괴는 넘실거리는 기운이 가득 담긴 손을 쉴 새 없이 휘둘렀다.
나무고 바위고 할 것 없이 그의 손이 닿는 곳은 모조리 굉음을 내며 부서졌다.
‘엄청난 파괴력이다. 왼손 하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어.’
진심전력을 다하는 홍괴는 엄청난 기운을 뿜어냈다.
청홍쌍괴로 항상 둘이 묶이기는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무림에 이름을 알리던 고수다.
심지어 정마대전 당시엔 둘의 손에 유명을 달리한 정파 무인의 숫자가 백을 넘어가기도 했다.
스윽- 콰앙!
홍괴의 장이 남궁민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작은 나무를 부수었다.
오른손이 성치 못한 남궁민이 택한 방법은 오직 피하는 것이었다.
어설프게 공격을 막아내다가 왼손마저 쓰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정말 방법이 없으니.
“쥐새끼 같은 것!”
분노한 홍괴가 이번에는 위로 도약하여 남궁민을 끌어안듯 양팔을 벌리며 떨어졌다.
그리고 남궁민을 사이에 두고 마치 박수를 치는 것처럼 양손을 모아갔다.
쒜에엑-!
번개 같은 속도로 공기를 찢으며 다가오는 두 손을 보며 남궁민의 눈빛이 번뜩였다.
타다다다-
그는 뒤로 피해버리기보다는 도리어 앞으로 보법을 밟아 홍괴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래로 늘어뜨렸던 검을 치켜올렸다.
“이런!”
예상치도 못했던 남궁민의 검에 홍괴는 혼비백산하여 공중에서 몸을 틀어 겨우 검을 피해냈다.
검이 피해가자 남궁민은 아쉬움에 입술을 물었다.
‘같은 수는 두 번은 안 통할 거야. 오른손이기만 했어도 검 끝에 닿았을 것을.’
하지만 아쉬워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남궁민은 재빨리 기수식을 취했다.
홍괴는 이번에는 곧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조금 전의 그 수로 머리가 차가워진 것처럼 보였다.
“이…. 애송이가…….”
조금 전까지 손에서 불타오르듯 넘실거리던 기운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아니,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홍괴는 장기전도 불사하겠다는 듯 기운의 양을 절제하기 시작했다.
그가 내력을 조절하는 아주 작은 찰나.
남궁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릉-!
남궁민이 검을 든 왼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진각을 밟았다.
번개와도 같은 그의 검이 순식간에 홍괴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스팟!
놀란 홍괴가 몸을 피했지만, 검은 아주 얕게나마 어깨를 스쳐 갔다.
남궁민은 애초에 한 번에 찌르지 못할 것을 예상했는지 아주 자연스레 검을 회수하고, 다시 찔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숨 한 번 내쉴 시간에 여섯 번이나 검을 찔렀다.
그때마다 홍괴의 몸에 얕은 실선이 생겼다.
“이 망할 것이!!”
붉은 피를 봐서일까? 홍괴는 겨우 진정시켰던 분노가 다시금 폭발하였고, 그것을 증명하듯 그의 손에는 다시 기운이 일렁였다.
남궁민은 이마저도 예상했다는 듯, 이미 멀찌감치 몸을 빼버렸다.
하지만 이번에 웃음 짓는 것은 홍괴였다.
“걸려들었구나!”
홍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그는 팔을 휘두르는 척하며 휘두르지 않았다.
쾅!
대신 끌어다 쓸 수 있는 최대한의 내공을 다리에 주입해 발을 굴렀다.
그가 노린 것은 뒤로 몸을 빼는 남궁민의 신형이 바닥에 닿기 직전이었다.
운룡대팔식이라도 펼치지 않고서야 공중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무인은 흔치 않다.
구오오오-!
전력을 다해 이제는 아예 시뻘건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올 정도로 큰 기운이 넘실거리는 홍괴의 팔이 뻗어져 왔다.
‘이건 피하지 못한다.’
검을 바짝 든 남궁민 역시 검에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평소의 남궁민은 효율을 중요시한다.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고, 그를 죽일 만큼의 기운으로만 싸우는 것이다.
그래야 최대한 오래, 많은 자와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으니까.
화아악!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내공을 운용했다.
너무 급히 기운이 움직여 기혈이 다쳤는지 목구멍 끝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는 듯했지만, 그것을 신경 쓰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죽어라!!”
투과과과과!
홍괴의 손과 남궁민의 검이 만나자 기운이 폭발했다.
한순간의 폭발이 아닌, 지속적인 힘겨루기다.
둘은 자신이 가진 모든 기운을 쏟아냈다.
주륵-
이를 악문 남궁민의 입가에 피가 한 줄기 흘렀고, 홍괴의 입에는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천고의 기재라 하여도, 홍괴와는 지금껏 쌓아온 세월의 차이가 너무 컸다.
쩌억-
남궁민의 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검을 보호하던 남궁민의 기운이 점점 떨어져 간다는 방증이었다.
“내 승리다!!”
하지만 홍괴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서며 젖 먹던 힘까지 기운을 끌어냈다.
파장창!!
결국, 남궁민의 검이 깨지며 홍괴의 장력을 온몸으로 뒤집어썼다.
남궁민은 실 끊어진 연처럼 튕겨 나가 나무에 부딪혔다.
콰앙!
“쿨럭!”
남궁민이 울컥 피를 토했다.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손을 들어 피를 닦아내려 했건만, 이젠 왼팔에도 문제가 생겼는지 팔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흐흐. 드디어 잡았구나.”
홍괴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까보다는 많이 작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손의 기운을 거두지 않은 채였다.
‘이젠 끝인가…….’
남궁민이 천천히 다가오는 홍괴를 보며 고개를 떨구었다.
생각보다 공포심이 치민다던가, 감정이 격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죽기 직전에는 주마등이 떠오른다던데 그런 것도 없었다.
세가는 걱정되지 않는다.
그가 아니라도 뛰어난 인재들이 많으니까.
다만 가족들이 슬퍼할 것은 조금 걱정되었다.
남궁민은 고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세가 전체가 얼마나 침울했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와 같은 아픔을 드리겠다 싶은 것은 조금 안타깝다.
그리고 하현.
다른 누구도 아닌 하현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줬어야 했는데.’
그의 생각엔 하현이야말로 세가의 미래였다.
남궁민은 하현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저벅-
홍괴는 이미 지척에 다다랐다.
후우웅!
그의 손이 남궁민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남궁민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콰앙-!
“고개 떨구지 말아라.”
“……!!”
굉음이 지나가고, 그의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와 깜짝 놀란 남궁민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홍괴의 장을 막아내고서도 끄떡없는지 한 발자국도 밀리지 않았다.
너무나도 넓고 믿음직한 그 등에 대고 남궁민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버지!!”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남궁민의 아버지 태백검 남궁기현이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