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홍괴의 사망 이후, 뒤처리는 빠르게 끝났다.
청홍쌍괴만한 고수는 더는 없었기에 잔챙이들을 처리하는 데는 별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궁민의 상태도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비록 양손은 한동안 사용할 수도 없어 밥도 다른 사람이 먹여줘야 하고, 기혈이 뒤틀려 꽤 긴 시간 동안 요양을 해야만 다시 무공을 쓸 수 있긴 하지만, 생명에 지장이 가거나 큰 후유증을 남길만한 부상은 아니었다.
개방도들이 모두 열심히 뛰어다니며 소식을 전해준 덕분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결국 신가장에 모일 수 있었다.
남궁민이 봉환을 피운 것처럼 신호탄을 쏘면 안 되냐는 하현의 질문에 남궁기현은 친절하게 상대가 몇 명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우리 위치만 알려주는 꼴이기에 지양한다고 답해 주었다.
“민아. 다행이다. 살아 있었구나!”
“청룡신검 체면이 말이 아닌걸? 널 좋아하는 소저들이 보면 눈물을 흘릴 게다. 하하.”
남궁세가의 정예대원들은 신가장에 들어서며 남궁민을 만날 때 저마다의 방식으로 안도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마교의 잔당들과 수차례 전투를 치렀는지, 의복 곳곳에는 혈흔이 낭자했다.
전부 다 그들의 피가 아니긴 했지만.
“세가에서 여섯이 출발했으니, 모두 다 모였구나.”
하현과 남궁기현, 남궁민을 모두 합쳐 아홉 명이었다.
하현은 여태껏 세가 밖에서 이렇게 많은 세가 무인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모여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서로가 알아낸 정보를 교류하는 것이었다.
하현으로서는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함께 임무를 하러 나온 것이 처음이기에 몰랐지만, 이것은 남궁세가에서 오래전부터 행해오던 것이라 했다.
서로가 가진 정보를 조합해 하나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일단은 청괴, 홍괴가 도대체 여기에 왜 나타났냐는 것인데. 그 이유를 아는 사람?”
남궁기현이 가볍게 운을 띄었다.
이 자리는 오직 정예대원들끼리만 만나는 자리.
하현도 당당히 정예대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곳에 앉아 있었다.
“그건 제가 대강은 알고 있어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남궁민이 손을 슬쩍 들며 말했다.
부상 때문인지 조금은 어눌한 말투였다.
“사실 저 둘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명이 더 있었죠.”
“누구냐.”
“유지혁입니다.”
“……!!”
이곳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현은 유지혁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하현을 향했다.
“아…! 죄송합니다.”
하현은 서둘러 앉았고, 나머지는 다시 남궁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물건을 찾으러 여기 신가장에 다시 돌아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건이라니? 무슨 물건 말인가?”
“그것이…….”
남궁민은 겪은 일들을 간략하게나마 모두에게 말했다.
신가장에서 찾아낸 장난감과 청홍쌍괴의 등장.
그리고 바위 틈새에 숨어있던 그를 유지혁이 찾아내어 도와준 것까지.
“아! 우리가 찾아낸 그곳에 민이가 있던 게 맞았구나.”
남궁길이 절벽 사이의 바위틈을 떠올리며 말했다.
남궁민이 그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고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 장난감이 어떤 물건이라 찾으러 온 것인지, 그들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현아. 신가장에 너 말고 다른 아이도 있었니?”
남궁기현이 하현에게 물었고, 하현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제일 어렸어요. 제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게 사촌 형인데, 형은 그때 이미 약관을 넘었었어요.”
“그러면 그 장난감은 네 것일 가능성이 큰데, 혹시 짐작 가는 거라도 있니?”
하현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도무지 유지혁이 그의 장난감을 왜 챙겨갔는지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괜찮다. 언제라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말해 줘.”
“알겠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두 번째로 이야기할 것은 홍괴의 신위에 대한 것이다. 이번에 맞붙어본 홍괴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상회 하는 무력을 가졌었다.”
“흐음…….”
잠시 홍괴를 떠올린 남궁길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만약 일대일의 싸움이었다면 반드시 죽고 말았을 것이다.
“먼저 이번에도 민이의 이야기부터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청괴는 민이 손에 죽었으니 말이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조금은 혼란스럽습니다. 결코, 청괴가 쉬운 상대였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어떻게든 상대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청괴가 방심한 이유도 있겠지만요.”
남궁민은 잠시 홍괴가 보였던 신위를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홍괴는 달랐습니다. 청홍쌍괴라고 둘을 묶어서 부르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강했습니다. 게다가 마기를 다뤘습니다.”
남궁지신이 홍괴의 공격을 막아냈던 팔을 주물렀다.
마기가 완전히 침투하여 기운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저릿저릿한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청괴와 홍괴가 익힌 무공의 이름에는 마공이 붙긴 하지만, 실상은 마공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남궁민의 질문에 가장 나이가 많은 정예대원이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오히려 정종무공에 가깝다고 들었네.”
“아! 청괴와 싸울 때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기는, 마교가 사라진 지도 벌써 삼십 년이 지났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더래도 이상할 게 없는 시간이지.”
“…….”
다들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하현이 입을 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알 것도 같습니다.”
“알 것 같다니?”
모두 하현을 주목했다.
다들 하현의 나이가 어리다 하여 깔보거나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단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 역시 가주님이 결정한 정예대원.
그것만으로도 존중받을 가치는 충분했다.
“마교에는 아마도 대량의 마기를 심어두는 무언가의 수법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목숨과 맞바꾸어 순식간에 엄청난 힘을 내게 하는 수법이요.”
“목숨과 맞바꾸어 힘을 낸다면 그것이 선천지기를 끌어다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
“선천지기와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예전 가주님과 혈랑 채형석의 싸움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세가에 다녀오던 도중 혈검대와의 싸움이 있었고, 거기서 남궁무룡도 큰 부상을 입었었다.
“그때 혈랑은 선천지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느낌은…. 말 그대로 자신의 생명을 불사른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까와 말이 비슷하지 않은가? 목숨과 맞바꾸어 순식간에 엄청난 힘을 내는 것이니.”
“아니요. 그런데 확연히 달랐습니다. 이번에 홍괴가 한 것은 생명을 불사르는 것이 아닌, 생명을 제물로 바쳐 큰 힘을 받아낸 것 같다고 할까요?”
하현이 잠시 고개를 돌려 모두의 표정을 보았다.
다들 지금 하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현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해줄 뿐이었다.
코끼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백날 코끼리를 설명해봐야 절대 알 수가 없듯이.
“흠. 쉽게 이렇게 말씀드릴게요. 선천지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죽지는 않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번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인즉, 훗날 다시 채우는 방법이 요원할지라도 내가 사용할 만큼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보전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다만, 내가 원래 가진 기운의 곱절…. 크게는 세 곱절 정도의 힘만을 낼 수 있죠.”
다들 하현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점차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하현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홍괴가 사용한 수법은 그것과는 다릅니다. 이 수법은 발동하면 무조건 죽게 되어 있습니다. 폭주한 마기는 계속 생명력을 잡아먹으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현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그래서 겨우 두, 세 곱절이 아니라 다섯 곱절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요.”
남궁민이 그때를 떠올리며 하현에게 말했다.
“그러면 청괴가 민이와 싸울 때 그 수법을 쓰지 않았던 이유도 설명이 되는구나. 그는 민이를 상대로 죽음을 불사를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맞습니다. 그는 마치…. 저와의 싸움을 놀이로 생각하는 듯한 태도였습니다. 저에게 죽임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으니까요.”
남궁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문득 한 가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아. 이런 것까지 물어봐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수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냐? 선천지기는 사실 끌어다 쓰는 것도 어느 정도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 할 수 있는 것인데…….”
“제 생각에는 마기를 심어두고, 그 마기를 폭주시키는 방법만 알고 있으면…. 누구에게나 그리 어렵진 않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모두의 눈이 커졌다.
다들 직감적으로 이 수법이 어디에 쓰이면 가장 위험할지가 떠올랐다.
남궁지신이 소리쳤다.
“전쟁! 전쟁을 준비하는 것 아닙니까? 무공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일반 교도들이 모두 저 수법을 쓰고 달려든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요.”
모두 남궁지신과 같은 심정이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남궁기현이 입을 열었다.
“그래. 지신의 말대로 이건 전쟁을 대비해서 만들어낸 수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삼십 년 전 정마대전에서 마교가 진 이유가 바로 일반 교도의 숫자와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였으니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정사대전과 정마대전 모두 겪어보진 않았지만, 정마대전에 비하면 정사대전에 더 많은 사람이 죽었고, 전쟁도 길었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마교가 절대 고수의 숫자는 매우 많았지만, 전쟁은 고수들로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아무리 고수라 해도 그들이 이 넓은 중원을 모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전쟁에는 땅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소수정예로 모든 지역을 점거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만약 이 수법으로 일반 교도들이 정파 무사들을 모조리 도륙 낸다면….”
“그들이 가진 약점마저 사라지는 것이지.”
그들은 마교인들의 맹목적인 믿음이라면 본인이 반드시 죽는 수법이라고 할지라도 순교라고 생각하며 거침없이 행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사항이로군요.”
“일단 저희는 큰 부상이 없으니, 곧바로 세가로 돌아가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남궁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시오. 아버님과 형님이 아셔야 할 것 같으니. 하현이 너도 먼저 돌아가겠느냐?”
“저는 민 형님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하하. 그래. 우리가 모두 부상자밖에 없어서 그렇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잘 되었구나.”
남궁기현의 너스레에 모두 잠시나마 웃음 지었다.
몸이 성한 네 명의 정예대원은 출발할 채비랄 것도 없이 홀연히 다시 세가를 향해 돌아가 버렸다.
“우리는 하루만 더 요양하고 내일 출발하는 것으로 하자.”
“알겠습니다.”
그들은 신가장의 나름 멀쩡한 방들 안으로 각자 들어갔고, 남궁기현은 지금까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계속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꽤 불편했는지 방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남궁민에게도 세가에서 가져온 금창약을 발라준 하현은 남궁길과 남궁지신 역시 각자 쉬러 간 것을 확인한 후에 발걸음을 옮겼다.
신가장은 규모가 작고 실력은 없었지만, 엄연히 무가(武家)였다.
그렇기에 가장 안채 앞에는 작은 연무장이 있다.
하현은 연무장에 도착하여 그곳 바닥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버지.”
무가의 가주이면서도 무공수련은 거의 하지도 않던 아버지였다.
만약 아버지가 무공수련을 열심히 했다면 혈겁을 피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금방 결론 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무공에 있어서는 정말로 둔재였기에.
어떻게 아버지 같은 무인에게서 하현 같은 무인이 나왔을지 불가사의다.
아마 어머니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우웅-
옛 생각을 하며 연무장 중앙에 올라선 하현은 조용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가 한 번 본 무공을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은 세가 내에서도 직계 몇 명만이 알고 있는 극비 중의 극비.
그렇기에 남궁길과 남궁지신에게도 몰래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후욱!
하현의 주위로 뜨거운 진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떠올린 것은 홍괴였다.
정확히는 홍괴의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강기와도 같은 그 기운.
하현은 그 무공에 욕심이 났다.
‘구현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무공을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번쩍!
번쩍 뜬 하현의 두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