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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51화 (151/304)

151화

섬서에서 한바탕 일이 있었던 하현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홍괴와의 싸움에서 내상을 입었던 무인들은 대부분 내상을 모두 회복했고, 가장 상태가 심각했던 남궁민도 제법 건강을 되찾았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남궁민을 구출하는 이 임무 덕분에 하현은 세가 내에서도 온전히 정예대원으로 인정받았다.

물론 이전에도 남궁세가의 모든 이들이 하현을 정예대원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하현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귀엽고 예의 바른 모습을 떠올렸다면 이제는 절로 검을 쥐고 있는 모습을 떠오르게 된 것이 달라진 점이었다.

남궁무룡의 방 안.

저번 임무에 다녀왔던 정예대원들이 오랜만에 그곳에 모였다.

아직도 몸 곳곳에 붕대를 감고 있는 남궁민과 수련 중이었는지 이마엔 두건을 질끈 맨 하현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또 한 명.

며칠 전 신가장의 총관을 데리고 오랜만에 남궁세가에 나타난 취월걸개도 함께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아무런 회동도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다! 사천성의 모든 표국을 이 잡듯이 뒤졌고, 심지어는 청해와 운남에까지 전갈을 보내어 곤륜, 점창에서도 주변을 다 돌아보았으나, 마교의 흔적은 없었다고 하더구나.”

남궁무룡의 질문에 취월걸개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사천 지역에 있는 모든 표국을 조사한 결과는 정말 깨끗했다.

마치 염강표국, 진선표국만이 문제였다는 듯이.

“총관에게서는 나온 정보가 더 없습니까?”

하현의 질문에 취월걸개는 고개를 저었다.

“있긴 하나,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정보였다. 그가 살아서 도망친 게 기적이지.”

“마교의 추적자나 간자는 없었습니까?”

“그래. 그건 깨끗하다. 내가 보증하지.”

취월걸개가 보증한다는 말은 꽤 큰 무게감을 가는지 그에게 대꾸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기현아. 신가장에서도 이제는 더는 나온 게 없고?”

“네. 없습니다. 제 판단에 신가장에 청홍쌍괴가 나타난 것은 무엇을 꾸미려는 것이 아니라, 단발성의 용무가 있어 잠시 들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궁기현은 이번에 내상을 당하고 겨우 돌아온 창피를 면하려는 듯, 몸이 회복되자마자 무사들을 이끌고 신가장과 그 주변을 철저히 조사했다.

그 결과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지만, 그 자체가 커다란 수확이었다.

중원의 정중앙에 있는 섬서성이 마교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니까.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네. 가주님!”

남궁무룡의 말에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모두 일어나 흩어졌다.

방문을 막 나선 하현에게 그 뒤에 있던 남궁지신이 말을 걸었다.

“하현아. 요즘 무슨 수련을 하고 있었냐?”

“저요? 지금은 그냥 기초 수련을 하고 있었죠.”

“기초 수련?”

조금 더 자세한 것을 말해달라는 듯한 얼굴에 하현이 입을 열었다.

“우리 청룡각에 입관하면 하는 것들 있잖아요. 같은 곳 베기, 찌르기…. 뭐 이런 거요.”

“그걸 아직도 한단 말이냐?”

“그럼요. 무조건 하루에 한 시진은 무조건해야 해요. 기본기가 게일 중요하다는 거 아저씨가 수련생일 때는 안 배웠어요?”

“으응? 배웠지……?”

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안 해요?”

“그건 이미 완벽히 끝마쳤으니까?”

“흐음. 기본기에 끝이란 게 있어요? 저는 잘 모르겠던데.”

어느새 옆에 나타난 남궁길이 하현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남궁지신의 팔뚝을 퍽치고는 말했다.

“어린 애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아라.”

“형님. 이게 뭐가 부끄러운 거예요?”

“지금 네가 저는 기본기 훈련을 안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잖아.”

“제가 언제요?”

남궁길은 한숨을 푹 쉬더니 남궁지신에게 대꾸도 하지 않고 하현을 바라보았다.

“현아. 네가 이해해라. 기본기 수련을 아직도 빼먹지 않고 하다니 훌륭하구나. 네가 어찌 그리 강한지 조금은 이해가 가는듯하다.”

“아니에요. 저는 배운 대로 할 뿐이죠.”

남궁길이 호기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와 대등한 무인에게 묻는 어투였다.

“그러면 잠시 시간 좀 괜찮으냐? 오랜만에 같이 대련이나 하면서…….”

“죄송해요. 오늘은 이미 같이 수련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하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남궁길은 그런 하현이 귀여운지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다음을 기약해야겠구나.”

“네! 다음에는 꼭 같이해요.”

“그래. 그래.”

하현은 대화하는 데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을 뺏긴 것이 아까운지 재빨리 전각을 빠져나갔다.

남궁길이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아직도 그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남궁지신 역시 같은 곳을 바라보다 말했다.

“참.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아이인데 말이에요.”

“그렇지. 저렇게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가 또 없지.”

“하하. 옛 생각이 나는군요. 제가 저맘때 딱 저랬는데.”

“뭐……?”

남궁길이 인상을 팍 쓰고는 말을 이었다.

“앞으로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런 말 하지 말아라. 특히 현이가 듣는 자리에서는.”

“왜 그러십니까? 제가 어릴 때 신동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으면서 컸는데.”

“어릴 때 천재였느니, 신동이었느니 소리 못 들은 사람이 우리 세가에 몇 명이나 있겠느냐? 그리고 어릴 때 너랑 비슷하다는 소리는 크면 너처럼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않으냐. 아직 앞길 창창한 아이한테 악담은 무슨…….”

남궁길은 그대로 홱 몸을 틀어 전각을 빠져나갔다.

“악담이라고 했습니까? 형님. 거기 좀 서보십시오!”

남궁지신이 열심히 따라갔지만, 남궁길은 신법을 사용했는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이. 참. 형님!”

남궁길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전각에 울려 퍼졌다.

* * *

전각을 빠져나온 하현이 곧장 향한 곳은 바로 숙소 옆 연무장.

조금 전 소집회의 전까지도 여기에서 수련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여기에서 자주 수련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운후 아저씨. 잘하고 계셨어요?”

“하하. 네. 다른 방파의 무공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다를 줄은 몰랐습니다.”

“개방과 우리 세가의 무공은 완전히 다른 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죠.”

이제 조금 있으면 청룡각 정식대원 시험을 볼 예정인 운후였다.

그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질을 보인 덕에 이번 기수에서 제법 뛰어난 인재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취월걸개는 무림맹에서 남궁세가로 오기 전에 개봉 총타에 들려 몇몇과 함께 이곳으로 왔다.

“사숙조를 뵙습니다!”

“사숙조를 뵙니다!!”

허리를 완전히 접어 하현에게 극진한 예를 표하는 그들.

그들은 곽규를 포함한 다섯 명이 교룡문도…. 아니, 이제는 개방의 일결 거지들이었다.

“아이고, 얼굴 볼 때마다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하셔도 그러시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저도 항상 그렇게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는 걸요. 저희에게 도련님은 생명의 은인이자, 정파에 몸담을 수 있도록 해주신 은인 아닙니까?”

“우연의 결과입니다. 모두 제 덕이라고 할 수 없죠.”

“그 우연을 만들어주신 게 도련님입니다.”

그들은 이 대화 주제에서는 하현에게 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는지,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결국, 하현이 피식 웃어 버렸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감사합니다.”

개방도 중에 가장 성취가 뛰어나 보이는 곽규가 대표로 나와 하현을 맞이했다.

“곽규 아저씨도 제가 가르쳐준 것 잘하고 있었어요?”

“네. 사숙조께서 해주신 말씀 잘 새기며 익히고 있었습니다.”

하현은 이미 이들이 익히고 있는 타구십팔초에 대한 이해를 모두 끝마친 지 오래여서 그들에게 자신이 생각한 무리(武理)를 아낌없이 풀었다.

하현은 타구십팔초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열 살, 그 어린 나이에 가문이 멸문하고 도망쳐 오다 처음 만난 무림인이 개방의 마윤철이었다.

그리고 그의 무공을 보고 태어나 처음 따라 한 무공도 타구십팔초.

이러니 하현에게 이 무공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그는 예전에 취월걸개와 함께 소림으로 갈 때 취월걸개를 졸라서 이미 타구십팔초의 초식을 모두 배워놓은 참이었다.

“좋아요. 제가 말해준 것들만 열심히 기억하고 연습하신다면 금방 이결 제자가 되실 수 있을 거예요.”

하현의 말에 곽규가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나이가 서른 중반을 넘어가는 그이지만,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찾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였다.

하현이 말해준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기본기에 충실할 것, 기운을 끌어올릴 때는 항상 머릿속으로 몸에 물이 흐르는 것을 생각하며 구현하라는 것.

하지만 애초에 개방이라는 문파가 모든 무공을 구전으로 전하기도 하여 체계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문파다.

그런 그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것을 짚어줄 기회는 아주 소중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 뭐 대단한 거라고요. 그러면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무엇입니까?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마윤철이라는 개방도를 아세요?”

곽규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하현이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 사숙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하하. 어쩌다가 알게 된 친우…. 라고 해야 할까요?”

“인연이 있으셨군요? 지금 마 사숙은 육 장로이신 지흑광개(地黑狂丐) 장로님의 직전제자가 되셨습니다. 좋은 자질을 가진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엔 하현이 살짝 놀랐다.

이전에도 꽤나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마윤철이었다.

그런데 개방 장로의 제자가 되었을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그래요? 장로의 제자라면 후에 상황을 보아 후개로도 선출될 수 있는 자리 아닌가요?”

“맞습니다. 후개의 후보는 현재까진 다섯. 아! 도련님도 일장로님의 제자로 알고 있는데, 그 자격이 있으신 것 아닙니까?”

하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저는 속가제자잖아요. 저한테는 자격이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곽규는 그에 납득하면서도 내심 아쉬운 눈치였다.

그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무인들 보다도 하현의 재능이 뛰어났기에 생긴 아쉬움이다.

하지만 그는 불가능한 것을 계속 마음에 품을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현이 흘긋 하늘을 보았다.

이제 막 해가 넘어가려 붉은 노을이 비추기 시작했다.

“사부님 말씀에 내일 곧바로 개방으로 돌아가신다고 하던데, 회포를 푸실 시간이 너무 부족하신 거 아니에요?”

하현의 말에 운후가 이제는 개방도가 된 그의 옛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하현을 보며 말했다.

“아까 자리를 비우셨을 때, 저희끼리 한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이요?”

“일 년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곳 청룡관의 정식대원이 되고, 아우들은 이결 제자가 되어 그때는 제대로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말입니다.”

이야기하는 운후의 표정은 일견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현은 그들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정식대원, 이결제자가 되면 그래도 중원에서 무림인으로 대우를 해주기 시작하는 단계다.

평생을 왈패, 사파문도로 살아왔던 그들에게는 정파 무림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리라.

“멋지네요. 자주 보지는 못해도 멀리서나마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하현의 응원한다는 말이 아무것도 아니건만, 그들은 감동한 표정이었다.

한창 그들이 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정말로 경쾌하고 가벼운 발걸음.

이런 신법을 전개할 수 있는 자는 중원 천지에 이 사람 하나밖에 없다.

“사부님!”

“그래. 욘석아 나다.”

취월걸개는 거의 절을 올리다시피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는 개방도들에게 손을 휘휘 저어 일어나라고 한 다음 그들에게 말했다.

“내 잠시 하현이와 이야기 할 것이 있으니, 자리를 좀 피해라.”

“알겠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개방도들과 운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현은 그의 태도에 의아한 눈을 보냈다.

“사부님.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러세요?”

하지만 취월걸개는 대답 대신 하현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볼 뿐이었다.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항룡십팔장.”

“네?”

“너. 항룡십팔장을 쓸 줄 안다면서?”

“……!”

하현은 순간 깜짝 놀랐다.

취월걸개가 한 말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누가 그래요?”

“누구긴. 네 외삼촌이지. 홍괴 그 반쪽짜리 놈이랑 싸울 때 네가 쓰는 걸 봤다던데? 나보고 너를 잘 지도해준 덕분에 살았다면서 말이다.”

“아……!”

하현은 홍괴의 장을 막아 냈을 때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때의 그 깨달음도 함께.

“내 무공을 훔친 것이냐?”

“그, 그게…….”

“똑바로 말하지 못해!”

취월걸개가 은은한 노기를 흘렸다.

하현은 두 눈을 꼭 감고 재빨리 말했다.

“네. 전에 검마와 싸우시는 걸 보고, 제가 깨달음을 채워 넣어 구현하였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네. 사부님.”

“…….”

취월걸개는 말이 없었다.

하현이 한참 말을 기다리다가 못단 슬쩍 눈을 뜨자…….

씨익-

취월걸개는 입이 귓가에 걸릴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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