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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54화 (154/304)

154화

파악!- 파악-! 후욱-!

깔끔하게 잘 정리된 연무장.

그곳에서는 연신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퍼버벅-! 파앗!

무서운 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주먹을 주고받는 것은 두 여인이었다.

그녀 중 하나는 이제 막 만개한 장미같이 화려하지만 앳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앵앵! 마지막이야!”

“오세요. 아가씨!”

그녀들은 진주언가의 언영과 앵앵이었다.

시간은 언영을 많이 변화시켜 주었다.

원래 무공을 익히는 것에 큰 관심이 없던 언영은 겨우 이 년의 시간 만에 앵앵과도 손속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언영은 한참 전부터 앵앵과 대련을 했는지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건만, 두 눈만은 반짝였다.

“하아압!”

그녀가 기합을 내지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활시위처럼 뒤로 당긴 두 주먹에 강맹한 기운이 깃들었다.

다다다- 후욱!

그리곤 발걸음을 맞추어 앵앵이 주먹을 가장 멀리 뻗을 수 있는 곳에 있을 때를 맞추어 정확히 주먹을 내질렀다.

내지르는 모든 힘을 끝에서 한 번에 폭발시키는 언가권의 마지막 초식.

망설임 따위는 없는 호쾌한 주먹이었다.

빠악!

“크읍!”

그녀의 주먹을 양팔로 막아낸 앵앵이 작은 신음성을 터뜨리며 뒤로 주르륵 밀렸다.

그 모습을 보는 언영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돼, 됐다!”

“드디어 성공하셨네요. 아가씨!”

앵앵은 언제 맞았냐는 듯, 몹시도 기쁜 얼굴로 앵앵에게 신법을 펼쳐 다가왔다.

“앵앵. 팔은 괜찮아?”

언영이 급히 앵앵의 팔을 들어 살폈다.

그런데 양팔에는 이미 시퍼렇게 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떡해! 내가 너무 세게 때렸나 봐!”

“제 탓입니다. 제가 아가씨를 얕보고 전력을 다해 막지 않았습니다. 반탄력으로 아가씨가 다칠까 봐서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제 팔이 중요한 게 아닙니까요.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언가권을 십 성까지 익히셨군요!”

언영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소 지었다.

“내가 둔해서 너무 오래 걸렸지? 그동안 고마웠어.”

“둔하다니요! 언가권을 겨우 이 년 만에 모두 익힌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언가권은 수많은 권법 중에서도 깨달음에 크게 의지하는 권법이다.

그렇기에 십 년, 십오 년을 수련해도 전부 익히지 못하는 무사가 발에 챌 정도로 많다.

하지만 역시 진주언가의 가주인 철권 언형철의 핏줄이라는 것일까? 언영은 상당한 무재(武才)였고, 이 년 만에 언가권을 모두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시면 안 된다는 것 잘 아시죠? 이제 겨우 초식의 형태만 익히신 겁니다. 이제부터 끝없이 단련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아가씨 본인이에요. 여기서부터는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응. 나도 곧바로 쉴 생각은 없어.”

앵앵은 언영을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년에 나가시려는 용봉지회 때문인가요?”

“아니, 그것만은 아니야.”

“그러면요? 다른 이유가 또 있으세요?”

언영이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지난 이 년간 약혼자를 한 번도 못 봤잖아.”

“남궁세가의 남궁하현 공자 말씀이시군요.”

“맞아. 하현이.”

하현의 이름을 말하는 그녀의 입꼬리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앵앵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약혼자인데…. 저는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 년간 연락을 한 번도 하지 않다니요.”

“그건 어쩔 수 없어. 내 잘못이거든.”

“네? 아가씨께서 무슨 잘못을 하셨다고 그러세요.”

“내가 하현이에게 다음에 가르쳐줄 게 생기면 연락한다고 했던 거 기억나?”

앵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혹시…. 그래서 이렇게 무공 수련을 열심히……?”

“응! 나도 제법 깨달은 바가 있으니 하현이에게도 가르쳐줄 게 있을 거야.”

“지금 우리 언가의 무공을 외부인에게 가르쳐주시겠다는 말입니까?”

앵앵이 아연실색했으나, 언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하현이가 외부인이야? 나와 약혼했으니, 우리 사람이지.”

“그래도 아직 정식으로 혼인도 하지 않았고…….”

“하하. 걱정하지 마. 언가권의 초식과 구결을 그대로 알려주지는 않을 거야. 내가 권법을 수련하면서 느낀 것과 깨우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거거든.”

앵앵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 말씀, 사실이시죠?”

“그럼! 앵앵은 나를 그렇게 못 믿어?”

“…믿을게요.”

“그리고, 우리 언가권을 제대로 익히려면 강시공(疆屍功)을 익혀야 하잖아. 그 구결은 절대, 절대, 절대 말하지 않을게.”

“정말이죠?”

언영이 대답 대신 쉴 새 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어휴…. 어쩔 수 없죠.”

결국, 앵앵은 한숨을 쉬는 것으로 백기를 들었다.

그리곤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제 제가 무공 말고 다른 것을 가르쳐 드릴 때로군요.”

“다른 거?”

“네. 사내를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우선 먼저 서신을 보내세요. 공자에게 이쪽으로 오면 좋겠다고요. 절대 아가씨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언영은 대답하지 않고, 앵앵을 빤히 바라보았다.

앵앵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서신을 보낼 때는 보고 싶다거나, 가르쳐주고 싶은 게 있다거나 그런 말은 절대로 쓰시면 안 돼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별일은 없는지. 이런 것부터 물어보세요.”

“왜 그래야 하는데?”

“무릇 여자라면 남자의 마음을 애태울 수 있어야 한답니다. 그런 서신을 보냄으로써 하현 공자의 머릿속에 아가씨를 새기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예요.”

언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보고 싶다는 말은 언제 해?”

“그렇게 몇 번 서신을 주고받으며 서로 마음을 쌓고, 그때야 더 보고 싶은 쪽이 보고 싶다고 말하겠죠.”

앵앵은 옛 생각을 하는지 살짝 상기된듯한 얼굴이었다.

언영은 지금까지 봐왔던 앵앵의 얼굴이 아닌, 처음 보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앵앵.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그렇게 안 할래.”

“어째서요?”

“난 그냥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할래. 끝까지 말 안 하다가 내 맘을 못 알아채면 어떡해.”

“그래도 그건…….”

“그리고…. 앵앵한테는 말 안 했는데, 사실은 이미 서신을 보냈어.”

“네?! 뭐라고요? 언제요?”

무슨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앵앵과는 달리, 언영은 차분히 대답했다.

“한 보름 정도 됐나? 지금쯤 남궁세가에 서신이 도착했을 거야.”

“보름이나 전에…. 뭐라고 보내셨어요?”

“사실 나 아까 앵앵이 말할 때 진짜 놀랐지 뭐야. 오랜만에 보고 싶다고, 가르쳐 주고 싶은 게 있다고 서신을 보냈거든.”

“저도 모르게 왜 그러셨어요?”

언영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이년 전에 결심했거든. 하고 싶은 걸 하고,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하면서 살기로.”

앵앵은 담담하게 말하는 언영이 훌쩍 커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있어! 아버지께도 이제 말씀드려야 하니까!”

“가주님께도 아직 말씀 안 드린 겁니까?”

“응. 그래서 지금 드리려고. 일단 씻으러 가야겠다. 앵앵이 연무장 정리 좀 하고 와줘!”

언영은 앵앵에게 살풋 웃어주고는 연무장을 나가버렸다.

앵앵은 한참을 언영이 열고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연무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그래서. 진주언가에 다녀오겠다는 말이냐?”

“네. 할아버지. 그동안 저도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서요. 이렇게 서신까지 보내왔는데, 무시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 네 뜻은 알겠다. 그런데 정말로 그게 다인 것이야?”

“그게 다라뇨?”

하현이 남궁무룡의 얼굴을 올려보니, 그는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다.

애초에 하현이 언영에게서 온 서신을 보여주며 말을 하고 있었기에, 그는 들고 있는 서신을 보고는 한 번 더 웃음 지었다.

“여기 보면, 깨달음을 나누고 싶다고 쓰여 있는데…. 굳이 그 먼 곳까지 갔다 오는 이유가 사실은 이것이 아니더냐?”

“역시 할아버지는 못 속이겠네요. 맞아요. 최근 권과 장에 한창 관심이 생기고 있어서요.”

남궁무룡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은 날로 강해지고 있건만, 아직도 무(武)에 관한 관심과 노력은 여전했다.

보통 저 나이대의 소년이라면 잠시 무공에 흥미를 잃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하현은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 마음 가는 대로 하려무나. 이제는 정예대원이니 무슨 일이든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책임지면 되느니라.”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하현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면 진주에 가는 길에 다른 부탁도 하나 더 해도 되겠느냐?”

“그럼요. 어떤 일이든지 괜찮습니다.”

“헌홍이를 데리고 팽가에도 한 번 들렀다 오려무나.”

“팽가에요? 그쪽에 무슨 일이 있나요?”

남궁무룡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특별한 일은 없다. 그런데 헌홍이가 집에 못 간지도 벌써 사 년이나 되지 않았느냐? 길산이가 그렇게는 안 보여도 사실은 속정이 매우 깊거든. 아마 막내아들을 못 본 지 오래되어 보고 싶을 것이다.”

“아…. 그렇군요.”

남궁무룡이 친우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도 남궁세가의 가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아버지이다.

아버지로서의 팽길산을 이해하는 것이다.

“말이 좋아 유학이지, 생이별과 다름없는 사 년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 주겠느냐?”

하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진주언가와 하북팽가는 거리도 가까워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도 팽 형과 함께라면 가는 길이 덜 심심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남궁무룡은 이전부터 팽헌홍을 하북팽가에 다녀오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식대원은 아직 홀로 무림을 횡횡할 수 없는 것이 규칙.

멀고 먼 하북까지 가려면 정예대원이 함께 가야 하는데, 바쁜 정예대원과 함께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팽헌홍을 정예대원으로 승급시켜 줄 수도 없으니 곤란했던 터였다.

“그러면 저도 창천각에 들러 제 행선지를 말해주고, 팽 형에게도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리고 청룡표국에도 혹시 모르니 들러볼게요. 그 주변에 전달해야 하는 물건이 있는지.”

“그래. 그리하도록 해라. 표국 일까지 신경 써줘서 고맙구나.”

“뭘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요.”

하현은 남궁무룡에게 인사하고 그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청룡표국이었다.

지금 팽헌홍은 수련이 한창일 시간.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가 밖을 나와 청룡표국에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휘연 형은 다 나으셨을까?’

청룡표국에서 처음 만났던 남궁휘연.

마교 탐사대에 합류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청룡표국을 담당했던 것은 남궁휘연이었으니까.

사천에 갔다 온 이후로 특별한 소식은 없었지만, 하현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현 도련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표국에서 한 무인이 하현을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하현은 그가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반갑게 대답했다.

“하북성에 갈 일이 있어서요. 혹시 그쪽에 전달해야 할 표물이 있나 해서 왔습니다.”

“하북이요? 어디 보자…….”

그는 서류와 표물을 확인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 하북에는 가야 할 물건이 없지만, 산동성에 가야 할 게 하나 있네요.”

“산동성이라면 가면서 들를 수 있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느 분께 부탁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잘 됐습니다.”

“무슨 물건인가요? 부피가 크지 않다면 아예 지금 주셔도 됩니다.”

“그럴까요?”

그가 서류를 넘겨보며 물건을 확인하더니, 표국 안으로 들어갔다가 금방 다시 나타났다.

그가 가져온 것은 낡은 종이 뭉치 하나였다.

“이게 뭐죠?”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의뢰한 쪽에서도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에요.”

얼핏 보기엔 책으로 보이기도 한 물건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하현이 말했다.

“비급 같은 건 아니겠죠?”

“물건을 검수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내용을 열어보았는데, 아무것도 쓰인 게 없습니다. 위험한 물건은 아니라고 판단되어 물건을 맡기로 했죠.”

“의뢰인은요? 목적지는 어디고요.”

“의뢰인은 회남(淮南)의 정후라는 상인입니다. 그리고 목적지는 황보세가입니다.”

“황보세가요?”

하현은 종이 뭉치를 다시 한번 내려보았다.

황보세가라면 꽤나 이름 높은 가문.

이 종이는 예사 것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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