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59화 (159/304)

159화

“그, 그곳이 대협의 방이었습니까?”

“이 층 네 번째 방이 두 개는 아닐 테니까요. 그리고 훔쳐 오라고 한 종이뭉치가 뭔지도 알 것 같고요.”

“그, 그렇습니까?”

투귀는 순간 목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만약 이곳에서 미리 만나지 않고, 방에 몰래 침입하다 걸렸더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불귀의 객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현이 태연하게 물었다.

“종이뭉치를 찾아오라고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그게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데요?”

“저희는 그런 것까진 묻지 않습니다. 훔쳐달라고 하는 물건이 있으면 그대로 가져다줄 뿐입니다.”

하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의뢰를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수락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무언가 그 기준이 있을 건데.”

“현령 이상 고관대작의 물건을 훔쳐달라는 의뢰는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절정 이상 무인에 대한 의뢰도 받지 않습니다.”

“확실히 할 수 있는 것만 의뢰를 받는 거군요.”

“저희도 살아야 하니까요.”

복면인은 하현의 말에 성실히 대답했다.

그도 알고 있다.

이 상황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목숨이라는 것을.

“그러면 종이뭉치를 훔쳐 오라고 한 것은 누구입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다니요?”

“그 의뢰인은 복면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었기에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현이 시선을 그의 수하들에게로 천천히 옮겼다.

그러자 그들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네. 하늘에 맹세코 진실만을 말씀드렸습니다.”

하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복면인의 얼굴이 환해지려는 찰나, 하현이 그를 보며 말했다.

“좋아요. 모두 믿어드리겠습니다.”

“감, 감사합니다. 대협!”

“그러면 저도 의뢰를 하나 맡기겠습니다.”

“의뢰 말입니까?”

하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의뢰는 받으시면서, 지금 제 의뢰는 받지 못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아닙니다!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 의뢰인. 이 물건을 훔치라고 의뢰한 의뢰인이 누구인지 알아오세요.”

“의뢰인을 말입니까?!”

그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는지 황망한 얼굴이었다.

“저희는 도둑이지 정보 조직이 아닙니다…….”

“그래서 못 하겠다는 거예요?”

“그, 그건 아닌데…….”

하현이 씨익 웃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 누구이고, 이름이 무엇인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에요. 분명 의뢰를 맡겼다면 이 근처에 머물고 있을 것인데, 그곳이 어디인지. 무림인인 것 같으니 그들의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그런 것을 알고 싶은 거니까요.”

“그 정도라면 최선을 다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드디어 듣고 싶은 말을 들은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맡은 일을 빨리 끝내야 하여 시일은 내일 저녁까지입니다. 무엇을 알게 되든, 혹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든 내일 술시 말까지는 이곳으로 와야 합니다.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대협!”

“혹시나 이대로 도망치시려거든…. 평생 제 눈에 띄지 마셔야 할 겁니다.”

촤악-

하현이 겉에 입은 옷을 하나 벗어냈다.

그러자 안에 입고 있던 무복이 드러났다.

무복 어깨에는 하늘 천(天) 자가 새겨져 있었다.

“남, 남궁세가!”

하현은 다시 겉옷을 걸치고는 말했다.

“그리고 제 가문인 남궁세가 역시 마찬가지. 남궁세가의 정보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아보고 싶다면 도망치셔도 좋습니다.”

“절대, 절대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그는 하현에게 맹세하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자. 뭐 하세요. 빨리 출발 안 하시고.”

“넵!”

하현의 축객령에 그는 이곳을 벗어나려 꼬리에 불붙은 듯 달려 곧 하현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남궁세가인 줄 알았더라면 의뢰를 받지 않았을 것을!’

그는 달리며 생각했지만,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정체도 모르는 원래의 의뢰인보다 남궁세가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공포였다.

* * *

다음 날이 밝았다.

어젯밤 하현이 느지막이 방에 돌아왔을 때도 팽헌홍은 여전히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아침이 다 되어서였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맞은편 침상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하현이였다.

“팽형 축하드립니다.”

“축하…. 축하라. 내 너에게 어떻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보답이라뇨. 제가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팽헌홍의 눈은 정순하고 올곧았다.

하현은 어젯밤에 그가 했던 고민이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현과의 격차를 자극 삼아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

하현이라는 편한 길을 찾아서 안주하는 모습은 추호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혼원벽력신공이라 부르기로 했다.”

“좋습니다. 오로지 혼원벽력도를 위한 심공이니까요. 이렇게 되면 이 무공의 조사가 팽형이 되는 것이겠네요?”

“아니.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지. 이 무공의 창시자는 하현. 너니까.”

하현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만들어낸 무공은 지금 팽형의 무공과 많은 부분 다릅니다. 제가 말해드린 구결을 응용해서 혼원벽력신공을 창안한 것은 팽형이에요.”

“하하…….”

그의 단호한 말에 팽헌홍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겠다. 대신 이 은혜를 내가 잊지 않는 것은 나의 자유다. 내가 너를 은인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겠지?”

“그럼요. 그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북경에 가서 은인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사주는 것도 환영이고요.”

“그래. 음식뿐이겠냐. 내가 북경에서 해본 좋은 것, 맛난 것들은 모두 이번에 제대로 경험하게 해주마.”

팽헌홍은 밝게 웃었다.

하현은 이태까지 팽헌홍이 이렇게 해맑은 웃음을 보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환한 웃음이었다.

“그러면 다시 황보세가로 출발해봐야겠구나.”

“아. 여기서 하루 정도 더 묵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어젯밤에 일이 있었거든요.”

“일이라니?”

하현은 어젯밤에 투귀들을 만난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그들을 다시 만나기로 한 것 역시도.

“그 표물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군.”

“네. 할아버지께서도 비급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종이뭉치가 비급이라는 것을 아는 자의 소행일 것이 분명한데…….”

팽헌홍의 머리에 황보세가라는 네 글자가 스쳐 갔지만, 확실한 것은 없기에 굳이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눈을 돌려 하현을 보니,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자의 소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죠?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까지 기다려 볼 생각이냐?”

하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러면?”

“이제부터 슬슬 움직여야죠.”

“어떻게 하려고?”

“미끼를 던졌으니, 고기가 물렸나 확인하러 가려고 합니다.”

팽헌홍이 고개를 갸웃했다.

“미끼? 고기?”

하현이 대답 대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딘가 취월걸개를 닮아 있었다.

* * *

하오문 투문에서도 일급 투귀로 인정받는 진선문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부터 지금까지 마치 꿈을 꾸는 듯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그는 평소와 똑같이 물건을 훔쳐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저 물건을 훔치러 갔을 뿐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몇 번 물건을 훔치다가 발각된 일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의 자랑인 신법은 항상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런데. 어제 그 아이…. 아니, 그자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도 않았지.’

마치 허깨비에 홀린 듯한 표홀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무림 밥을 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진짜 고수들은 만나 본 적도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 내가 하는 짓도 미친 짓이지.’

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진선문이 현재 있는 곳은 추성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객잔이었다.

그에게 의뢰를 맡긴 회색 무복의 사내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하오문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객잔에 머물고 있다고 했었지?’

무림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보 단체 중에 가장 정보력이 뛰어난 곳을 꼽는다면 단연 개방을 꼽는다.

세상 어느 곳에나 거지가 없는 곳은 없고, 거지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렇기에 무림 전역에 눈과 귀가 달린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엄청난 정보력을 가진 단체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하오문이다.

하오문은 흔히들 천한 자들의 모임이라 한다.

기녀, 마부, 점소이, 도둑, 도박꾼, 소매치기, 대장장이, 목수 등등…….

이들을 천하다고 멸시하는 자들이 많을지라도, 이들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렇기에 개방처럼 중원 모든 곳에 눈과 귀가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보를 더 어떻게 캐오라는 것이야.’

이곳에서 일하는 점소이도 하오문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생각보다는 소재를 빨리 파악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여기까지 오기는 했으나, 그는 애초에 정보를 다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렇게 해야겠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그의 특기를 살리는 방법을 말이다.

‘무엇이라도 훔쳐내면 거기서 정체를 특정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겠지.’

분명히 그가 묵는 방에는 그의 물건이 있을 것이고, 일단은 무엇이든 훔쳐내기만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노력을 보이면 어제 만났던 남궁세가의 고수가 목숨을 살려줄지도 모를 일이니까.

스슥-

진선문은 최대한 숨을 죽이며 객잔에 다가갔다.

번화한 위치에 있지 않은 곳이었기에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가만히 기척을 느껴보았을 때 객잔에도 사람이 몇 명 없는 것은 마찬가지.

아무리 대낮이라고 해도 투귀라 불리는 그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두 번째 방이라고 했었지.’

그는 객잔의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창문을 헤아려보았다.

그리고 두 번째 방의 창문을 확인한 그는 신법을 전개해 창문에 매달렸다.

드륵-

창문을 살짝 열고 안을 살핀 그는 방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안으로 진입했다.

‘옳지. 이곳이 확실하구나.’

그는 벽에 걸린 회색 무복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 무복은 그때 의뢰인이 입고 있던 옷이 확실해 보였다.

‘이제 이 자의 신원을 알만한 것만 찾으면…….’

그는 방 안을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방을 뒤지는 것은 그의 가장 큰 특기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방 곳곳을 뒤져도 쓸만한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사람이라면 응당 봇짐이라도 하나 가지고 있을법한데,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낭패인데…. 하는 수 없이 저 무복이라도 가져가야 하나.’

그가 벽에 걸린 무복을 보며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샤아아-

그는 목덜미쯤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물건을 훔쳐오랬더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헙…! 언제……!”

어느새 나타난 누군가가 그의 목에 칼을 데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짓거린지 나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그, 그게, 그러니까…….”

진선문은 말을 더듬으며 뒤를 돌았다.

뒤에는 다른 색깔의 무복을 입고는 있지만, 얼굴에는 벽에 걸린 것과 같은 색의 복면을 착용하고 있는 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 천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쉐엑!

“으아악! 사람 살려!”

진선문이 말을 잇지 않자 복면인은 곧장 검을 휘둘렀고, 진선문은 바닥을 우당탕 굴러 그 검을 겨우 피해낼 수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

“대협! 제가 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파악!

진선문은 그의 장기인 신법을 최고조로 발휘하여 몸을 내빼 창문을 슬쩍 바라보았다.

복면인은 그 시선을 느꼈는지 창문을 등지고 서서 퇴로를 차단했다.

‘도망칠 곳은…….’

창문이 아니라면 문밖에 남지 않았다.

다만, 그가 닫혀있는 문을 열고 몸을 내빼는 것이 저 복면인의 칼보다 빠를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갑자기 문이라도 열어주었으면……!’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너무나도 적다.

저벅- 저벅-

복면인은 천천히 그가 도망갈 방위를 좁혀가며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그리고는 검을 든 팔을 올렸다.

진선문이 죽음의 냄새가 지척에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했을 때.

벌컥-!

그의 소망대로 갑자기 문이 열렸다.

“어떤 놈이냐!”

복면인도 조금은 놀랐는지 뒤로 한 발자국을 물러나며 외쳤다.

진선문은 혹시나 어제의 남궁대협이 그를 구하러 왔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미끼로 두고,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려 자신을 풀어준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생전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무량수불. 옆 방의 투숙객인데, 도무지 시끄러워 잘 수가 없습니다.”

“도인……?”

그는 도인이었다.

지금은 한낮이건만 방금 일어났는지 머리는 부스스했고, 심지어는 술 냄새도 조금씩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이 살려달라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고.”

“웬 놈이냐?!”

그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무당의 현무라고 하는 도인이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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