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무당?”
“무당의 도인이라고?”
회색 복면인은 무당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몹시도 놀란 듯 보였다.
현무는 그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두 분의 행색이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소만……?”
진선문과 회색 복면인은 고개를 숙여 자신들의 복장을 보았다.
진선문은 누가 봐도 잠행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있고, 회색 복면인 역시 복면을 차고 있다.
“두 분 다 정체를 밝히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래야 내가 누구를 도와줄지 결정할 테니까?”
회색 복면인은 현무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는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돕는다? 저 쓰레기를 도우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무량수불. 사람이 듣는 앞에서 그런 심한 말을 하시다니. 악인이 분명해 보이는구려.”
“도인을 죽이는 것은 꺼림칙하지만, 어쩔 수 없지!”
회색 복면인은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현무에게 찔러 들어갔다.
“이크!”
예고도 없이 들어온 검이기에 현무는 겨우 옆으로 굴러 피해냈다.
“도사가 땅을 잘도 구르는구나!”
“잠깐, 잠깐! 무기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공격하는 것이오?”
그의 말대로 양손에는 물론 허리에도 무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복면인은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현무가 그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애송이가!”
부웅- 콰직!
복면인이 날린 검을 현무가 다시 한번 피해냈고, 그의 검은 그대로 문에 박혔다.
그가 힘을 주어 검을 빼내는 그 찰나, 진선문과 현무는 눈이 마주쳤다.
파앗-!
그들은 동시에 최대한의 신법을 전개했다.
그런데 방향은 완전 반대였다.
진선문은 창문을 향해, 현무는 방 밖의 자신의 방을 향해서였다.
“치잇-!”
회색 복면인은 검을 뽑고서 어디를 쫓아가야 할지를 몰라 잠시 멈춰섰다.
그사이 진선문은 창문으로 몸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복면인은 하는 수 없이 현무의 방으로 따라갔다.
처억-
그가 현무의 방에 들어섰을 때, 그를 반기는 것은 검이었다.
현무가 검을 침상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것이 오히려 득이 되었다.
구석에 고이 세워두었다면 찾아서 검을 뽑는데 시간을 더 할애했겠지만, 그저 손만 뻗으면 되었으니까.
“아까 옆에 있던 자가 도망간 것 같은데, 우리가 계속 싸울 이유는 없는 것 같소만?”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죽는다고 억울해하지 말아라. 끼어들었으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했어야지.”
“아니, 죽는다는 사람 도와주는 것을 목숨까지 내놓고 해야 한단 말이오?”
“닥쳐라!”
채앵-!
복면인의 최선을 다한 검을 현무는 막아내었다.
“그리고 자꾸 누가 죽는다 그러시오? 당신의 실력으로는 날 죽이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
“미친 도사가!”
카가가각!
복면인과 현무의 검이 갈리며 불꽃이 튀었다.
* * *
한편, 창문 밖으로 도망친 진선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십 여장을 달리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살피며 따라오는 자가 없음을 확인한 그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죽을 뻔했네. 그런데 그 도사는 누구지?”
“어떤 도사 말입니까?”
“으악! 깜짝이야!”
갑자기 바로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대, 대협!”
“조금 전에 하신 말씀에 대해 더 듣고 싶은데요.”
그는 하현이었다.
소리도 없이 나타난 하현이 그에게 말을 건 것이다.
“어떻게 여기에 계십니까?”
“하오문에 물어봤더니, 여기에 계실 거라고 하시더군요.”
“하오문에 말입니까? 문도들이 제 위치를 말했다는 겁니까?”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보비를 드리니까 바로 말해 주던데요? 여기 묵는 남자의 행방을 찾았다고.”
“이것들이…….”
그는 욕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겨우 참았다.
하오문은 원래가 이런 곳이었다.
애초에 소속감이 작다 보니 돈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문도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빨리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주셔야죠.”
“아, 알겠습니다.”
그는 하현의 다그침에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었다.
“그 의뢰자. 의뢰자가 여기 이 층에 머물고 있습니다. 제가 그 방에서 물건을 훔치려다가 들켜서 죽을 뻔했는데, 옆 방의 도사가 저를 도와주려고 하다 지금 대신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도와주려던 사람을 저기 객잔에 두고, 여기까지 도망쳐 오셨다는 거죠?”
“맞, 맞습니다…….”
“좋아요. 일단 그 의뢰인이 여기 있다는 건 확실하죠?”
“그렇습니다!”
진선문이 곧장 대답하자, 하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가 하는 것으로 하죠. 일단은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하현은 신법을 전개해 객잔 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분명히 가볍게 발을 구르는 것 같은데, 진선문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를 잡아낼 수가 없었다.
벌컥!
순식간에 객잔 앞에 당도한 하현이 걸음을 멈추었을 때, 객잔 입구가 갑자기 열리더니 두 명의 사람이 튀어나왔다.
복장으로 미루어보건대 한 명은 이 가게의 점소이였고, 또 다른 하나는 주방장으로 보였다.
점소이는 하현이 검을 차고 있다는 것을 보자마자 그의 앞으로 튀어와서 급히 말했다.
“대협, 대협! 도와주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안에서 싸움이 났습니다. 이 층에서 싸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일 층 식당에서 싸우고 있는데, 집기며 탁자며 남아나는 물건이 없습니다. 두 분을 중재시켜 주시면 제가 꼭 사례 하겠습니다.”
와장창-
그때 객잔 안에서는 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현은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진선문을 바라보았다.
“여기 맞습니다. 아까 그 도사와 제게 물건을 훔쳐 오라고 시킨 자가 싸우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단 말이죠? 아저씨는 어디 도망갈 생각 마시고 여기 계세요. 제가 나왔는데 여기 없으면…. 말 안 해도 아시죠?”
“그럼요. 망부석처럼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겠습니다!”
하현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진선문을 보며 피식 웃고는 객잔 문을 열었다.
휘익- 쾅! 우지끈!
둘은 요란하게도 싸우고 있었다.
주변 물건이 부서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듯 그들은 검을 휘두르고 피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어?”
하현은 싸우고 있는 둘 중의 하나를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바로 어제 만난 현무도장이었기 때문이다.
“현무도장?”
“하현 소형제? 이크!”
그는 싸우는 도중에 하현에게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복면인의 검에 맞을뻔한 것을 겨우 피해냈다.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거예요?”
“보면 모르시오? 지금, 후우- 살기 위해서, 하압! 애쓰고 있는 것을!”
그는 하현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복면인의 검을 모조리 피해냈다.
‘멋진 신법이다. 저것이 무당의 제운종(梯雲縱)이겠지?’
하현은 그 와중에도 현무가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신법을 펼칠 때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뜨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수법이 인상적이었다.
저렇게 몸을 띄울 수 있다면 도약하는 거리도, 움직일 수 있는 거리도 굉장히 커지기 마련이니까.
“보고만 있을 거요? 나 좀 도와주시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 했습니다.”
하현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회색 복면인에게 뛰어들었다.
어느새 검을 뽑아 든 체였다.
카앙-!
하현은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무도장에게 또다시 검을 찔러넣으려고 하는 복면인의 검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복면인이 빠지는 순간, 하현은 검을 그대로 횡으로 휘둘렀다.
서걱-!
하현의 마음의 검으로 펼쳐낸 검은 복면인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
그런데 하현은 몹시도 놀라고 말았다.
분명히 베어내기는 했으나, 복면인의 가슴은 가르지 못하고 앞섬만을 베어냈다.
복면인의 실력이 생각보다는 더 뛰어나다는 방증이었다.
“……!”
그런데 놀란 것은 하현뿐만이 아니었다.
부지불식간에 겨우 피해낸 듯, 복면인도 언제 잘렸는지도 알 수 없는 옷을 매만지고 있었다.
“우리 표국의 표물을 훔쳐오라 의뢰한 것이 당신입니까?”
“다 알고 왔군.”
“역시 당신이 맞나 보군요. 청룡표국의 표물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런 짓을 하신 겁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지.”
복면인은 일부러 말을 짧게 하려는 듯했다.
“우리 둘을 모두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이오?”
현무가 어느새 하현의 옆에 서서 말했다.
“애송이 둘이 합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당신의 눈을 보니 지금 초조해 보이는데?”
현무가 보폭을 크게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는데, 지금처럼 그냥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당파의 전승검법 중 하나인 칠성검의 묘리를 담은 검이었다.
휘리릭!
그의 검이 처음에는 상단을 향하는가 싶더니, 별안간 꺾여져 내려가며 복면인의 허리를 향해 나아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검법이었다.
까앙!
하지만 복면인은 예상했다는 듯 너무나도 쉽게 그 검을 막아내었다.
“아직 수련이 낮군. 칠성검이 극에 이르면 발목까지 꺾이게 되는 것을.”
“……!”
쒜에엑-!
이번엔 복면인의 차례였다.
그는 팔을 높이 들고,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마치 하늘에서 검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고각으로 찍어 내리는 검법이었다.
기운이 잔뜩 서린 그의 검은 태산처럼 현무를 눌러갔다.
쩌엉-!
그 검을 막아낸 것은 하현이었다.
복면인은 자신의 검이 이토록 맥없이 가로막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신형을 뒤로 물렸다.
그런데 그를 보는 하현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상한데요?”
하현은 자세히 보려는 듯 두 눈을 부릅뜨며 복면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익힌 무공은…. 정종무공이로군요. 굉장히 정순한 내공이 느껴집니다.”
“뭐라……?!”
하현의 말에 복면인의 두 눈에 당혹이 깃들었다.
“그리고 기본기가 무척이나 탄탄하신걸로 보아…. 꽤 이름 높은 문파나 가문의 사람이신 것 같은데.”
“……!!”
그는 몹시도 놀랐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현의 눈이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는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째서 이 종이 뭉치를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시는 거죠?”
하현은 품 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그 앞에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것이 뭐 대단한 비급이라도 되는 겁니까?”
“이익……!”
복면인은 자신을 놀리는듯한 하현의 말투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툭-
그때 하현이 갑자기 종이뭉치를 복면인에게 던졌다.
반사적으로 그가 종이뭉치를 받아내려고 팔을 뻗어낸 그 순간.
월광검법의 묘리가 담긴 검이 복면인을 향해 날아갔다.
쒜엑- 촤자자자-
검은 그대로 종이뭉치를 찢어내며 앞으로 더 나아갔다.
엄청난 변화 덕분인지 찢긴 종이는 주변으로 흩날렸다.
“크윽!”
복면인은 검이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몸을 틀어 피해내려 했으나, 하현의 검은 그의 팔뚝을 꿰뚫고 지나갔다.
“치잇-.”
하현은 크게 혀를 찼다.
어째서 비급을 훔치려 한 것인지 알아내야 하기에 죽일 생각으로 찌른 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운신을 제약하고자 치명상을 입히려 마음먹은 검이다.
하지만, 팔을 꿰뚫린 복면인은 신형을 아주 뒤로 물려버렸다.
이번 한 수로 하현의 실력을 깨달아버린 그는 하현과 싸울 맘이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스윽- 퍼엉!
그는 품에서 주먹만 한 흰 구슬을 꺼내더니 지체 없이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러자 구슬은 작은 소리를 내며 터지더니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도망갈 생각 마시오!”
현무가 복면인에게 달려들었을 때, 복면인은 흰 연기를 내뿜고 있는 구슬을 현무를 향해 강하게 차올렸다.
퍼억!
현무가 날아오는 구슬을 팔로 막아내는 사이, 복면인은 연기 사이로 몸을 숨겼다.
하현은 기척으로 그가 창문을 향해 도망간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 그를 쫓다가 부지불식간에 검에 스치기라도 하면 큰 낭패였기 때문이다.
“소형제! 이러다가 저놈을 놓치겠소.”
“괜찮아요. 천천히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일단 밖으로 나가야겠습니다.”
“괜찮다니…. 일단 알겠소.”
하현은 이미 머릿속에 외워둔 객잔의 모양과 입구의 위치를 다시 떠올리며 손쉽게 출구로 나갔다.
막상 밖으로 나오자, 현무가 오히려 하현을 재촉했다.
“왜 이렇게 느긋한 것이오. 이렇게 되면 저자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질 텐데.”
“길목에 사람을 두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사람? 누구 말인가?”
하현이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말했다.
그는 애초에 혼자 오지 않았으니까.
“저번에도 보셨잖아요? 도룡 팽헌홍입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