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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63화 (163/304)

163화

달칵-

문을 닫은 하현은 황보미견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입술 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쉿.”

잠시 그대로 시간이 흐르고.

“하! 그래.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지 보자!”

한동안 밖에서 소란을 피우던 숙부라는 사람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바깥의 기척을 감지하던 하현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숙부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대협……!”

감명받은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하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시기 전에 제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다시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저와 소저는 조금 전에 처음 만났을 뿐이니까요.”

하현의 말에 황보미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 확신의 눈을 하고 하현을 보았다.

“믿고 싶습니다.”

“어째서죠?”

“아버지의 서신을 가져와 주신 분이니까요.”

“저 숙부라는 사람이 꾸민 흉계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에게 더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도 이곳에 갇혀서 천천히 죽어가는 중이니까요.”

황보미견은 씁쓸한 미소를 희미하게 보였다.

“아버지의 서신을 가져오신 분을 믿고서 조금 일찍 죽으나, 아니면 이대로 방에 갇혀서 천천히 죽으나…. 어차피 죽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하현은 살짝 눈을 감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까지 타인의 인생에 관여해도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협(俠).

어느새 하현의 가슴속에 깊숙이 박힌 한 글자 덕분이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말씀해 주세요.”

하현은 아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쳤다.

황보미견은 하현을 보며 말을 꺼냈다.

“지금 저희 세가의 가주님은 제 할아버님이십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님이 그분의 큰아들이셔요…….”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졌고, 하현은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 * *

황보세가와 가까운 한산한 객잔.

하현은 팽헌홍과 마주 앉아 조금 전 황보미견에게 들은 이야기를 팽헌홍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니까, 현재 황보세가의 가주는 수년째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최소한 십 년은 된 듯하다고 했어요. 팽형은 들은 게 없으신가요?”

“나는 전혀 몰랐다. 평소 황보세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아서.”

하현은 고개를 끄덕인 이후에 이어서 이야기했다.

“황보세가 가주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황보정철과 황보정환. 황보세가의 가주는 둘 중의 형인 황보정철을 차기 가주로 점 찍어 놓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황보정철께서 십 년 전에 행방불명 되어버린 것이군.”

“그렇습니다.”

다음 하현의 말에 팽헌홍의 눈에 이채가 들었다.

“황보세가의 가주는 차기 가주를 정하면 수미천왕신공(須彌天王神功)이라는 심법부터 전수한다고 합니다.”

수미천왕신공이라는 이름을 일전에 들어본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예전에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요?”

“엄청난 초 상승의 심법이라고 하셨었지. 황보세가가 발전하려면 그 심법을 일인 전승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도 하셨다.”

팽길산이 도제가 되기 전엔 아직 오대세가…. 아니, 팔대세가에도 끼질 못하던 하북팽가를 오대세가의 차석에 들 수 있게 한 것은 팽길산의 과감한 결정 덕분이었다.

팽길산은 원래 가주의 직계만 익힐 수 있었던 오호단문도를 자질이 보이는 세가 사람에게 아낌없이 가르쳤고, 그 덕에 세가의 수준이 몇 단계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잘 아시겠네요. 그 심법은 가주에게만 내려져 오는 것이지 않습니까?”

“아…! 이제 알겠구나. 이미 현재의 황보세가주는 큰아들에게 미리 수미천왕신공을 전수해준 것이었어.”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팽헌홍은 하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추측을 이었다.

“그런 상황에 황보정철은 행방불명되었고, 황보세가주는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으니, 마지막 남은 황보정환은 차기 가주가 되고 싶어도 수미천왕신공을 배우지 못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겠구나.”

“정확합니다. 그래서 황보미견에게 혹여나 무슨 소식이 없는지를 항상 감시하고 있는 것이고요.”

팽헌홍은 이제야 모든 것을 알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만약 어제의 그 복면인이 동생인 황보정환이라면…….”

“심증만 있고, 확실한 증거가 없긴 하지만요.”

“그래. 우리의 표물을 탈취하려 했던 이유도 명확해지는구나.”

“그렇죠.”

“혹시나 그렇게 되면 십 년 전에 황보정철이 행방불명된 것과 가주가 병상에 든 이유도 혹시……?”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주의 일은 그가 꾸민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황보정철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황보정환이 흉계를 꾸몄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황보정철이 사라진다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이 그 일테니까요. 허나, 가주가 쓰러지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렇구나. 가주가 되려면 수미천왕신공을 배워야 할 테니.”

하현은 고개를 주억거리는 팽헌홍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팽형. 그래서 이쯤에서 여쭐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야? 뭐든 물어봐라.”

“이번 일에 끼어들게 되면 어쨌든 꽤 많은 시간을 지체하게 될 것입니다. 팽 형께서는 집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만약 형님이 거절하신다면 저는 세가에 이 일을 알리고 그냥 지나치겠습니다.”

진지하게 말하는 하현을 보며 팽헌홍이 빙긋 웃었다.

“하현아. 내가 뭐라고 할 것 같으냐.”

하현도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일을 해결하고 가자고 하시겠죠.”

“하하하. 그걸 알고도 그렇게 물어본 것이야?”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팽헌홍이 큭큭 웃었다.

“그래. 어차피 사 년 만에 돌아가는 집이다. 조금 더 걸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겠지.”

그는 자세를 바로잡고서 말을 이었다.

“네가 정예대원이니, 하자는 대로 따르겠다.”

“좋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께 서신부터 보내죠.”

“좋아.”

하현은 거침없이 이런 일을 맡겠다고 할아버지께 서신을 보냈다.

임무를 임의대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정예대원의 특권이니까.

“그러면 다음 계획은 생각해둔 게 있는 것이야?”

“네. 먹힐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렇군. 내가 무엇을 하면 될까?”

팽헌홍은 점잖은 듯 보여도 은근히 이런 모험을 즐겼다.

그는 하현이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며 하현을 바라보았다.

“일단 팽형은 이 방에서 나가지 않으시면 됩니다.”

“나가지 말라고?”

“네. 꼼짝도 하지 말고요.”

하현이 씨익 웃음 지었다.

* * *

“그자들은 아직도 그 객잔에 있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아직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밤이 깊었으니, 오늘 밤은 그곳에서 머물 것으로 보입니다.”

“교대로 계속해서 감시하도록 해라.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것들이니.”

“존명!”

황보세가의 전각 중 하나.

현 황보세가주의 둘째 아들이자, 황보미견의 숙부인 황보정환은 수하들에게 모든 지시를 내린 후에 그들을 물렸다.

“제길!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으니. 그 멍청한 도둑 같으니라고.”

그의 눈앞에서 찢어져 버린 종이만 제대로 훔쳐냈다면 이렇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의 형인 황보정철의 오른팔인 정후가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상인으로 위장해 있다가 황보미견에게 보냈다면 분명히 수미천왕신공의 비급이 분명할 것이다.

“분명히 눈앞에서 찢어지긴 했는데…….”

황보미견의 방을 청소하는 시종을 꼬드겨 오늘 남궁세가의 그자들이 왜 왔는지를 물었을 때, 분명히 표물이 손상되어 그 사과와 배상을 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욱신-

남궁세가에서 왔다는 그자를 생각하자 그의 왼팔이 욱신거려 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어려 보이는 얼굴 탓에 그를 얕봤지만, 그 검법만은 진짜였다.

그때는 방심하다 다친 것이 아니라, 그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피하려다 피하지 못해 검에 스친 것이니까.

“제대로 싸웠다면 죽일 수 있었을 것을……!”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주 혹여나 황보세가의 검법을 보고 알아챌 수도 있기에 세가의 검법은 사용하지도 못한 싸움이었다.

만약 그가 가진 능력을 모두 선보일 수만 있다면 싸움을 더욱 빨리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똑똑-

그때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혹시 그들이 움직인 것이냐?”

그는 자기의 수하일 것으로 생각하고 별 의심 없이 방문을 두드린 자를 안으로 들였다.

“그들이 누구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왜인지 저를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너는……!”

황보정환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히 객잔에서 나오지 않았을 하현이 그의 앞에 와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누구신데, 이 늦은 시간에 제 방을 찾은 것이오? 혹여 양상군자라면 한 번 눈감아 줄 터이니, 돌아가시오.”

“양상군자는 도둑까지 고용해서 제 표물을 훔치려 한 그쪽이 더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요? 다 알고 왔으니, 그렇게 모른척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현은 태연하게 들어와 주위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수하 몇 명 정도는 주변에 숨겨두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군요.”

“…이곳은 황보세가다. 너처럼 겁 없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도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하현에게 반말로 대답해왔다.

“어떻게 객잔에서 빠져나온 거지?”

“창문을 통해서 지붕으로 올라갔고, 지붕에서 나무 위로 뛰었습니다. 수하들 교육을 다시 하셔야겠는데요? 객잔 입구만 그렇게 지키고 있으면 안 지키느니만 못하죠.”

하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황보정환은 알고 있다.

그의 부하들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입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분명 주변 전체에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현은 그들의 이목을 속일 정도로 뛰어난 신법을 가졌을 것이다.

“왜 나를 찾아온 것이지?”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시려고요?”

“다른 잡담이 더 필요한가?”

하현이 훗 하고 가볍게 웃고는 대답했다.

“그래요. 잡담은 필요 없죠. 제가 그 쪽에게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도움이 된다고?”

“수미천왕신공.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

그는 줄곧 짓고 있던 여유로운 표정을 잃어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 무공을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하하. 제가 그 종이뭉치를 왜 찢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내용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우연이었습니다. 글자가 갑자기 떠오를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그러면 그 내용은…. 그 안에 적혀 있는 것은 다른 곳에 옮겨 적어 놓은 것이냐?”

하현이 고개를 젓자 황보정환이 발끈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주시죠.”

하현이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이 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좋은 편이어서.”

“모두 외웠다는 것이냐?”

“그렇죠.”

황보정환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가 네놈을 어떻게 믿지?”

“하하. 믿기 싫으시다면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저는 제 갈 길을 가는 것이고, 당신은 수미천왕신공을 얻을 기회를 잃어버리신 것이죠.”

“어린 것이…….”

그가 으르렁거리듯 무언가를 말하려는데, 하현이 그의 말을 가로막고 말했다.

“수미천왕신공은 황보세가의 가주들에게만 내려오는 신공으로 이 무공을 익혀야만 가주로서 인정받으며, 이 무공을 익히지 못했다면 진정한 황보세가의 가주라 할 수 없다.”

“아니……?!”

“그 종이에 쓰여 있던 가장 첫 구절입니다.”

“…원하는 게 무엇이지?”

“이제서야 말이 통하는군요.”

하현이 씨익 웃었다.

왜인지 그 미소는 취월걸개를 닮아 있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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