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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65화 (165/304)

165화

객잔에 돌아온 하현은 곧장 침상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조금 전 외운 수미천왕신공이 하현의 영감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마리를 얻을 줄이야.’

하현의 몸 안 곳곳에 녹아 있는 월룡의 기운.

지금도 조금씩 그 기운이 녹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전부를 녹이지 못하고 있었다.

뛰어난 하현의 오성과 재능으로도 그 기운만은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수미천왕신공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신공은 다른 심공들이랑은 또 다른 유형이구나.’

하현은 지금껏 수많은 심공들을 익히고 이해했다.

창궁대연신공, 혼천강룡신공, 또 최근의 팽가의 건곤미허신공을 개량한 심공까지.

그런데 수미천왕신공은 또 다른 개념의 심공이었다.

‘애초의 타고난 신력보다는 웅혼한 내력으로 신력을 살려주는 심공이야.’

황보세가는 하북팽가와 같이 신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가문이다.

그런데 두 가문이 가려는 길은 매우 다르다.

하북팽가는 타고난 신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내공은 육체의 보조 역할로 접근하는 반면, 황보세가는 웅혼한 내력을 바탕으로 타고난 신력을 통해 내력을 발산하려 한다.

그리고 이 지점이 하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점이었다.

‘나에겐 이들 같은 타고난 신력은 없어.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까지 쌓아 온 내력이 있다.’

그는 내력으로 수미천왕신공을 보조하며 천천히 내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구결을 외움과 동시에 이미 완벽하게 이해까지 끝낸 하현이기에 그 구결대로 기운을 움직이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물 흐르듯 흘렀던 내공이 수미천왕신공을 만나자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공으로 공성추를 만들어낸 것 같이 보였다.

하현은 그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기운을 천천히 움직여 단단하게 뭉쳐있는 월룡의 기운 하나에 그대로 세게 충돌시켰다.

쿵-

“크윽!”

두 가지의 다른 진기가 부딪히는 충격에 하현이 신음성을 흘렸다.

억지로 뭉친 기운을 깨부수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고통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말라고 몸이 보내는 신호다.

하현은 그 신호를 무시해도 되는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

쿵-

하지만 의문과는 달리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기운을 통제하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기운은 다시 한번 부딪혀 극심한 통증을 가져왔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멈출 수 없다.’

하현은 의문을 가지는 대신에 최대한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하현이 하는 행동을 보았다면 미쳤다고 하기 십상이었지만, 하현은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쿵-!

기운을 때리는 힘이 오히려 더 강해진다.

하현은 몸이 거부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래. 이 기운이 깨져서 온몸에 퍼졌을 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는 거야.’

하현은 자신의 몸이건만, 또 다른 자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확신을 주면 될 일이지.’

화악!

하현의 단전에서 또 다른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창궁대연신공이다.

창궁대연신공의 기운은 수미천왕신공의 기운을 돕지 않고,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온몸의 혈맥과 기맥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쿵-!!

그리고서 또 한 번의 부딪힘.

분명히 조금 전보다 훨씬 강하게 몰아붙였건만, 오히려 통증은 줄어들었다.

하현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드디어 정답을 찾은 것에 대한 만족의 미소였다.

‘그래. 이 기운이 깨지더라도, 내가…. 우리가 다칠 일은 없어. 창궁대연신공이 이렇게 보호하고 있잖아?’

하현은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자신의 몸을 달랬다.

그리고 그가 기운을 끌어올리면 끌어올릴수록 월룡의 기운을 향해 돌진하는 수미천왕신공은 더욱 거세어졌고, 창궁대연신공은 더 해보라는 듯 더 큰 기운으로 하현의 몸을 보호해갔다.

쿵…. 쿵…. 쿵……!

하현의 몸 안에서 몇 차례의 울림이 이어지던 순간.

쾅-!! 쩌어억-!

이윽고 구슬처럼 뭉쳐있던 월룡의 기운에 커다랗게 금이 갔다.

그리고 그 틈에서 무지막지한 내력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크흡!”

하현은 내력으로 인한 무지막지한 고통을 버텨내려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이빨에 입술이 뜯어져 피가 주룩 흘러내릴 정도였다.

쏴아아-

월룡의 기운이 하현의 몸을 가득 채웠고.

그 순간 하현은 의식을 잃었다.

* * *

하현은 번쩍 눈을 떴다.

“이, 이곳은……?”

사방이 캄캄한 동굴 같은 곳이었다.

주변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보려 했건만, 하현은 이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분명히 나는 객잔에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런 곳에 있는지를 생각하려는 찰나.

쿠구구구-

갑자기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지……?”

그 소리는 동굴의 끝 쪽에서부터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콰과과과-

그때야 하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물소리?”

그것도 그냥 물소리가 아니라, 거대한 폭포에서나 날 법한 무서운 소리라는 것을.

그리고 잠시 후.

이윽고 반대쪽 끝부터 물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놀란 하현은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법을 발휘하여 도망쳤건만, 쏟아지는 물은 하현보다도 훨씬 빠른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휩쓸리겠어.’

더는 도망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하현은 별안간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았다.

그리곤 양손을 앞으로 뻗어내려는데….

‘어…? 검이 있어?’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그의 허리춤에는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았건만, 지금 그의 허리에는 검집의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스악!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검을 뽑은 하현은 쏟아지는 물을 향해서 절초를 쏘아냈다.

평소에 그가 가장 즐겨 쓰는 월광검법의 초식은 아니었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하현 그 자신도 이 순간 왜 이 검법이 생각났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는 그중에서도 한 가지의 초식이 생각났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절기(絶技)

창궁무한(蒼穹無限)

파아앗-!

하현의 검이 물에 닿는 순간, 기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 무섭게 다가오던 물이 마치 없던 것처럼 공중에 흩어진 것이다.

검을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검에 닿으면 닿는 대로 물은 점점 흩어졌다.

‘흩어진 게 아니야.’

하현은 쉴새 없이 검을 놀리면서도 생각했다.

검을 내지르면 내지를수록, 물이 흩어지면 흩어질수록 점점 하현의 기운은 충만해져 갔으니까.

‘이곳은…. 내 몸 안이구나.’

그 덕에 하현은 비로소 이곳이 어디인지를 깨달았다.

그가 눈뜬 곳은 하현의 내면.

지금 그가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는 저 거대한 물줄기는 통제하지 못한 월룡의 기운이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검이 없었는데 생기고, 기운을 흩트릴수록 점점 더 힘이 나는 이유가.

‘이곳은 내 심상 안. 그렇기에 내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는 거야. 그리고 월룡의 기운을 흩트리면 결국은 내가 흡수하는 것이고.’

상황을 파악하자 하현의 검에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확신이 들자 하현의 옆에는 누군지 모를 신형이 하나 생겨났다.

흘긋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그는 하현의 머릿속에서 수천, 수만 번의 대련을 펼쳤던 가상의 무인.

또렷한 얼굴도 없는 그가 하현의 옆에서 함께 기운을 막아내고 있었다.

‘네가 날 이곳으로 부른 것이구나.’

촤자자자자-

둘의 검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하현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초식을 선보였다.

창궁검법이나 대연검법, 창궁무애검법 같은 남궁세가의 무공과 더불어 개방의 규지검법과 소림의 무공들, 팽가의 도법과 당가에서 배운 비검술의 응용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창안한 월광검법이 빛을 발하자 지금까지 막기만 급급하던 하현은 처음으로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나아갈 수 있었다.

쿵-

작은 한 발자국이건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했다.

한 발자국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쉽다.

게다가 가상의 무사는 하현이 할 수 있다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듯 하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쿠웅-

다음 발자국을 내디디고 나서부터 하현과 무사는 월룡의 기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걷는 속도는 조금씩, 조금씩 더 빨라지더니, 이내 그들은 앞으로 달리기까지 했으니까.

파앗!

얼마나 그 기운을 밀고 올라갔을까?

물줄기는 점점 약해지더니, 이윽고 졸졸 흐르는 정도에 그치게 되었다.

심상 안에서의 일이기 때문인지 그토록 많이 움직이고, 많이 달렸건만 숨도 하나 차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없어도 되겠지?”

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월룡의 기운을 깨부수는 것은 조금 더 그릇을 키운 다음에 할게. 지금도 넘칠 정도이니.”

무사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은 그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조만간 한 번 더 붙자.”

그리곤 눈을 감았다.

화악-

하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예의 그 객잔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미 날이 밝았는지, 조금 열어둔 창문 틈새로 햇볕이 쏟아져 내렸다.

“후우-.”

그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경험이었다.

그는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어젯밤보다도 훨씬 큰 기운이 느껴진다.

그는 새삼 월룡이 얼마나 큰 기운을 그에게 넘겨주었는지를 실감했다.

“이 옷은…. 더 못 입겠네.”

하현이 입고 있던 옷은 그의 몸에서 나온 불순물들로 얼룩덜룩했다.

원래도 정순한 기운이었건만, 이번 일 덕분에 한층 더 정순한 내공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침상에서 윗옷을 벗었을 때, 하현은 팽헌홍이 침상에서 도를 꺼내어 쥐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팽형. 저를 호법 서주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 큰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구나.”

“깨달음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언제부터 그러고 계셨던 거예요?”

팽헌홍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대략 한 시진쯤? 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는데…. 네가 공중에 떠 있더군.”

“공중에요?”

“그래. 가부좌를 튼 상태 그대로였다. 그리고 몸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왔지.”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던 하현은 팽헌홍의 말을 신기하게 들었다.

“제가 그랬어요?”

“그래. 도대체 어떤 경지에 올라있는 것이냐?”

그는 좌절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대신에 그는 묘하게 흥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현은 그를 보며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언젠가 따라올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는 하현과의 격차에 좌절하기는커녕 오히려 하현이 앞선 길을 따라갈 수 있다는 자신으로 가득해 보였다.

“저는 그저 먼저 가고 있을 뿐입니다. 빨리 뒤따라 오세요.”

“좋다. 곧 따라가마.”

팽헌홍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하현과 팽헌홍이 나갈 준비를 마쳤을 때쯤.

누군가 그들이 머무는 방문을 조심스레 두들겼다.

하현이 슬쩍 문을 열어보니,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였다.

“무슨 일입니까?”

“마차가 와 있습니다. 대협들을 모시러 왔다고 합니다.”

“마차요?”

“네. 황보세가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하현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점소이를 다시 내려보냈다.

“팽형. 아무래도 황보세가에서 저희를 손님으로 맞이해주려 하나 봅니다. 같이 가실 거죠?”

“그래. 가보자. 그렇지 않아도 황보세가에 갈 것이었으니.”

그들이 일 층으로 내려가자, 척 보기에도 거대하고 화려한 사두마차가 객잔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저것 봐. 황보세가에서 귀빈을 모시는 모양이야.”

“저 둘이 누구길래 저런 대접을 받는 거지?”

주변 주민들은 그 마차를 보고 수군거렸다.

가세가 많이 꺾였다고는 해도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황보세가였으니까.

하현과 팽헌홍은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마차에 올라탔다.

“공자님들 황보세가로 모시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그들을 태운 마차는 황보세가로 향했다.

어제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건만, 오늘은 귀빈 대접을 받는 그들이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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