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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66화 (166/304)

166화

“공자님들. 도착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현은 문을 열어준 마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마차에서 내렸다.

“이건 무슨…….”

뒤이어 내린 팽헌홍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말을 잃었다.

그들이 마차에 내린 곳부터 황보세가의 대문 입구까지는 여러 명의 무사가 나와 도열하며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지?”

팽헌홍의 질문에 하현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일종의 기선제압인 것 같네요. 지금 황보세가에서 자신이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현의 말대로 지금 입구에는 현재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이 나와 있는 듯했다.

이미 황보세가의 실권을 지배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입구에서 황보정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정말로 좋은 사람인 것 마냥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하현을 맞이했다.

“허허. 소영웅들 어서들 오시오. 여봐라! 어서 우리 황보세가의 큰 은인들을 정성을 다해 맞으라!”

“알겠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황보세가의 무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드디어, 내가 가주에 올라서는 날이 오는구나.’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토록 요란하게 하현을 맞은 것은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로는 하현의 추측대로 그의 위세를 선보이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혹여라도 하현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모든 황보세가의 무인들에게 그의 얼굴을 익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우리 세가의 은인에게 이 정도도 약소하오.”

“대인 덕분에 영웅이라 불려 보는군요. 저에게도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하오. 이쪽으로 드시오.”

“네. 기꺼이.”

그런데 하현은 도리어 황보정환의 맞장구를 쳐주었다.

누가 본다면 정말 영웅이라도 된 듯 여유롭게 무사들에게 손까지 흔들어 주며 그는 황보세가에 들어섰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야. 가슴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는 품고 있는 놈이다.’

황보정환은 하현이 보통내기가 아님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간도 커다랄 줄은 몰랐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현은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그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아침 식사는 하셨소? 제가 너무 이른 아침부터 모신 건 아닐는지. 식사부터 하시겠소?”

“괜찮습니다. 황보세가에서 대접해주시는 식사는 점심으로 하죠. 그 전에 제가 먼저 드릴 게 있을 것 같은데.”

황보정환의 눈에 놀람이 깃들었다.

하현이 먼저 이렇게 나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하하! 이렇게 셈도 정확하실 줄은 몰랐소. 나를 따라오시오.”

“좋습니다. 여기 제 일행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일행분께서만 괜찮으시다면 잠시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떨까 싶소. 우리끼리는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오.”

팽헌홍이 하현을 슬쩍 바라보자,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따라 팽헌홍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까지 신경 써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별말씀을. 여봐라! 우리 세가에서 가장 좋은 방을 내어드리고, 좋은 차를 대접하라!”

“네!”

시녀 한 명의 안내에 따라 팽헌홍이 사라지고, 하현과 황보정환은 곧 작은 연무장에 다다랐다.

그곳에 들어서자 하현은 몇몇 꽤 큰 기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원로원에서 나온 원로들이겠군.’

하현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는지, 그들은 꽤 먼 곳에서 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게 말한다면 말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

황보정환이 수하들을 모두 연무장 밖으로 물러나게 했을 때, 하현이 입을 열었다.

“가문에는 뭐라고 했기에 이렇게 요란하게 맞아주신 거죠?”

“클클. 놀란 척도 안 하더군.”

“사실은 조금 놀랐어요. 내색을 안 했을 뿐.”

“이런 애늙은이 같은 놈.”

그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분명히 원로원 그 늙은이들은 이쪽을 보고 있을 것이다.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겠지만, 행동거지를 조심히 해라.”

“제 말에 아직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만.”

그가 큭큭 웃더니 대답했다.

“사실대로 말했지. 실전된 가문의 무공을 전달해 주러 남궁세가에서 왔다고.”

“하하. 그게 사실인가요?”

“그러면 그 말에 거짓이 있나?”

그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하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그에게 말했다.

“오늘은 모든 구결의 일 할만을 말씀드릴 거에요.”

“뭣이…? 겨우 일 할?”

“매일 일 할씩. 총 열흘 동안 모든 구결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열흘이나? 어째서지?”

하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 정도 시간은 있어야 황보미견 소저가 저에게 정을 붙일 것 아닙니까?”

“정을 붙인 다라.”

“그 후에도 가능하면 며칠은 더 이곳에 머물면 좋겠는데요.”

“흐음…….”

황보정환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았다.

‘영특하고 맹랑하다. 하지만 아직은 어려. 심계가 깊지 못하다. 속내를 숨기지도 못하고.’

지금 하현이 보이는 표정에서 그를 판단한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현은 누가 봐도 영락없이 황보미견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가 보이는 표정은 상사병에 빠진 젊은이의 그것이었으니까.

“좋다. 열흘. 조금씩 나누어서 듣도록 하지.”

“좋습니다.”

하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서 만족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황보정환은 그런 하현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미견이를 데리고 떠나줘라. 눈엣가시 같은 계집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도 좋겠지. 남궁세가와 연도 쌓고 말이야.’

그는 속으로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어서 구결부터 일러주어라. 네 구결이 진짜라면 내 너를 진짜 귀빈으로 대접해주마.”

“황보미견 소저와 둘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주시는 거죠?”

“좋다! 어차피 순서의 차이이다. 내 조카의 마음을 재주껏 얻어 보아라.”

“하하. 알겠어요. 구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하현의 입에서 수미천왕신공의 구결이 흘러나왔다.

그 구결을 듣는 황보정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 했는데 진짜다! 진짜 수미천왕신공이었어!’

그가 이토록 확신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현재 그가 익히고 있는 벽력천왕신공은 수미천왕신공에 그 시초를 두고 있는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초반부의 구결이 흡사하다는 것은 어렸을 적 그의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하현이 벽력천왕신공을 알고 있을 리는 없으니, 그와 비슷한 것이 진짜 수미천왕신공이 구결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넘어갔군.’

하현은 구결을 외면서도 황보정환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하현은 황보정환이 진짜로 자신을 믿기 시작했음을 알아챘다.

그도 그럴 것이, 하현은 진짜로 수미천왕신공의 첫 부분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입니다.”

“아……!”

하현의 말이 끝나자 황보정환은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을 흘렸다.

구결을 들으며 그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오려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조금만 더 들으면 한 단계…. 아니, 몇 단계를 깨우칠 것 같은 그 아쉬운 선에서 하현의 말이 끝나버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말해주면 안 되겠느냐?!”

“안 됩니다. 그다음 부분은 내일. 약조하셨지 않습니까?”

하현의 단호한 말에 그는 곧 마음을 추슬렀다.

‘그래. 어차피 아흐레 후면 모두 내 것이 된다. 그나저나 이놈이 진짜 수미천왕신공을 알고 있다니…….’

그는 혹여나 하현이 이상한 구결을 읊으면 당장이라도 죽이려 일급 무사들을 곳곳에 숨겨 두었다.

모두 그의 수족과도 같은 자들이었기에 그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숨어 있는 중이었다.

“자. 그러면 저를 황보미견 소저에게 안내해 주시겠어요?”

“좋다. 가지.”

황보정환은 하현은 데리고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탁탁-

그는 걸어가며 하현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발끝으로 바닥을 두 번 쳤고.

스슥-

숨어 있던 수하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하현이 곁눈질로 그들이 숨어 있던 곳들을 스쳐보며 살풋 미소를 지은 것은.

* * *

잠시 후.

하현은 황보미견의 방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있었다.

“후훗. 이번에는 정말 손님으로 오셨네요.”

“제가 그런다고 말했죠? 이 정도로 반겨줄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요.”

“저도 숙부께서 그리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쉬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는 게 가장 안전하죠. 거짓이 묻은 진실은 진실 속에 숨겨야 아무도 못 찾는 법입니다.”

“그러면…. 이제 제가 뭘 해야 하죠?”

황보미견이 하현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하현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해야 할 것이 있죠. 그런데 그 전에…….”

스팟! 팍!!

황보미견과 대화를 나누던 하현이 별안간 천장을 향해 비검을 날렸다.

비검은 천장을 반쯤 뚫고 지나가더니 손잡이만 남기고 박혀버렸다.

“이번에는 경고의 의미로 이만큼 한 겁니다. 천장을 못 뚫어서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에요.”

“…….”

아무런 대답도 없었건만, 하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위로 훌쩍 뛰어올라 천장에 박힌 비검을 회수했다.

“지금 무엇 하신 건가요?”

“쥐가 있어서요.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를 한 거죠.”

“아…! 숙부께서 사람을 붙이신 거군요.”

“네. 지금은 갔지만요.”

하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리곤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소저. 일단 제일 중요한 것 하나를 물어볼게요. 지금 소저가 이 세가 내에서 믿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 질문에 황보미견의 눈이 흔들렸다.

믿을만한 사람.

지금 그녀에게는 정말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뇌리에 단 한 명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임주수…. 제 호위 임주수만은 믿을 수 있어요.”

“그래요?”

“네. 주수는 사실 저희 아버지의 제자였어요. 황보의 성을 받으려 할 때 아버지께서 행방불명 되셨고, 그녀는 아버지를 찾고 나서 성을 받겠다고 했는데…….”

“아버님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시간이 흘러버렸군요.”

“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지켜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하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믿을만한 사람이 그렇게 가깝고 강한 사람이라면 더욱 힘이 될 겁니다. 어제 말했죠? 앞으로는 괴로운 일들도 잔뜩 있을 거라고요.”

“네. 각오하고 있어요.”

“그러면 잠시 손 좀 주실래요?”

하현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 손을 마주 잡지 못하고 되물었다.

“손, 손은 왜……?”

“시간이 없어요. 빨리요.”

“꺄악!”

하현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생전 처음 남자에게 손을 잡혀본 황보미견은 깜짝 놀라 작게 소리를 질렀다.

쿵-

그때 누군가 방문을 거칠게 두드리더니 소리쳤다.

“아가씨.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문 앞에서 호위를 서고 있던 임주수였다.

황보미견은 그 목소리에 한 번 더 놀라더니 급히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알겠습니다.”

임주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지 않게 되고, 하현은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믿을만한 분인데요?”

“하하. 그렇죠?”

말하는 동안에도 하현은 황보미견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저, 저기 손 좀…. 엇?”

스으윽-

그때 하현의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그녀에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따스한 기운에 그녀는 어째서인지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잠시 시간이 흐르고.

하현은 그녀의 손을 놓았다.

“아…. 앗!”

황보미견은 일순간 아쉽다는 생각이 든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현이 빙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네?”

“역시 소저도 황보세가의 피를 진하게 타고 난 모양이에요. 근골과 기혈이 정말 훌륭하시네요. 타고난 무골(武骨)입니다.”

“뭐라고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무공 하나 익히지 못한 그녀다.

물론 무가의 여식으로 기본적인 심공 정도는 익히고 있지만…….

“아주 좋아요. 이 정도라면 간신히 시간 안에 맞출 수 있을 거 같아요.”

“무엇을 맞춘다는 거예요?”

하현이 계속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하현이 어제보다 조금 더 얼굴색이 좋아진 것 같다고 느꼈다.

“조금 전 기운을 느끼셨죠?”

“네…. 그 따스한……?”

“맞아요. 그게 바로 수미천왕신공의 기운이었어요.”

그녀가 하현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할 때 하현이 말했다.

“앞으로 열흘. 소저께서는 수미천왕신공을 익히실 겁니다.”

“제가 어떻게 그걸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하현이 씨익 웃고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충분히 가능하실 겁니다. 수미천왕신공에 한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스승이 여기 있으니까요. 제가 장담하건대, 지금 쓰러져 계신 황보가주님을 제외하면 저보다 수미천왕신공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겁니다.”

그녀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하는 하현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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