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으아아악!”
정말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나, 하현의 입에서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기운의 급류에 몸을 내맡긴 결과였다.
감당하기 힘든 기운들은 하현의 온몸을 통해 파고들었다.
눈, 코, 입, 귀는 물론이고 그의 피부까지 파고들려 했을 정도였다.
“우웁. 읍!”
하현은 어떻게든 이 기운들을 통제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째서지? 점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져. 내 마음대로 조종하기도 힘들고.’
당황한 하현은 몸을 허우적거리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쿠쿠과과과-
급류에 쓸린 하현은 계속해서 하류로 밀려 내려갔다.
계속해서 내려간 하현은 결국, 조금 전 황보세가주를 업고 내려간 곳까지 떠밀려 내려가고 있었다.
‘황보세가주!’
하현의 눈에 그가 들어왔다.
그는 아직도 호흡하기가 힘이 드는지 가슴을 붙잡고 벽에 기대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현과 함께 그가 급류에 휘말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이대로는 잡아먹힌다.’
하현은 순간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빠르게 머리를 굴려 생각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힘이 빠진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점 황보세가주가와 가까워지며 그가 다시 한번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순간, 하현은 머리에 빛이 스치는 느낌이었다.
‘아…! 그래. 이곳은 나의 몸이 아니야. 황보세가주의 몸. 이런 상황에 그가 기운을 통제하지 못하니…. 내 힘을 전부 발휘할 수 없는 거야.’
판단을 마친 하현은 다시 한번 침착하게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 주변으로 청색의 빛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지금까지는 수미천왕신공으로만 이 기운을 제압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창궁대연신공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파악-!
익힌지 얼마 되지 않은 수미천왕신공에 비해 창궁대연신공의 기운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호흡을 찾으려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황보세가주에게도 하현의 모습은 찬란했다.
“저, 저 모습은……!”
황보세가주는 저렇게 몸 주위로 푸른 빛을 내뿜으며 적진을 휩쓸던 무인이 있음을 기억했다.
같은 세가의 가주이지만, 그가 형님이자 고수로 인정하고 마음속 깊이 탄복했던 인물.
검존이었다.
슈아아아악-!!
하현의 주위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바람은 황보세가주의 기운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넓게 감싸는 바람은 기운들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후우욱-
황보세가주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끝도 없을 것 같던 그 기운들이 하현이 불러일으킨 바람에 하현과 함께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공중 한가운데에서 바람을 조종하듯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하현이 소리쳤다.
“모두 나에게 넘어와라!!”
파앗-!!!
공중에 비산하던 기운들이 돌연 하현의 몸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하현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 기운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끝없는 무저갱으로 빨아들이듯, 급류가 하현에게 쏟아지며 황보세가주는 점점 호흡이 편해짐을 느꼈다.
‘저 기운들을 모두 자신의 몸으로 옮겨 담는 것인가?’
그는 어째서 그의 호흡이 편해졌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그가 감당할 수 없던 기운들이 하현의 몸으로 옮겨지며 이제는 점점 감당할 수 있는 수준만큼만 남게 되기 때문이리라.
쏴아아아-
하현은 한참 동안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황보세가주가 허벅다리까지는 오던 물이 이제 바닥을 보인다고 생각을 할 때.
스팟-
하현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하현에게 쏟아지고 있던 그 기운들도 함께였다.
황보세가주는 오히려 기운이 너무나 충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현은 황보세가주가 제어할 수 있는 기운의 최대치만큼만 남겨두고는 사라진 것이다.
어느새 그의 모습은 처음에 보았던 깡마른 노인이 아닌, 현실에서 누워있는 혈색 좋고 건장한 노인처럼 변모해 있었다.
“으윽.”
황보세가주는 갑자기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핑 도는 느낌과 함께 그는 도무지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눕고 싶었다.
당장 눕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웠다.
털썩-
그리곤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어지러운 느낌이 줄어들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제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의식도 하지 못하고 있던 귀가, 코가, 피부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스윽
그는 눈을 떴다.
그러자 낯익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곳이 어디인지, 그는 누구인지 아주 잠시 멍하게 있던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틀었다.
“……!”
한 사내가 그와 아주 가깝게 붙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조금 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니 조금 전 그의 심상 안에서 만났던 남궁하현이다.
“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드디어 깨달았다.
현실.
그토록 갈망하고 그리워하던 현실로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가주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몸을 일으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철……!”
“가주님!”
황보영철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물에 화답하듯 가주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 노인의 눈물이건만, 결코 흉하게 보이지 않았다.
“많이…. 많이 늙었구나.”
가주는 십 년의 세월을 실감했다.
황보영철은 십 년 전에도 노인이었으나, 한눈에 보기에도 그때보다 확연히 늙어 보였으니까.
“강산이 변할 시간입니다. 가주님…. 깨어나셔서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모두 이 아이 덕분이네.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는 말끝을 흐리며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현은 아직도 눈을 꼭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일단…. 해후는 조금 이따가 나누도록 하지. 지금은 이 아이를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가주님.”
황보영철은 다시 날카로운 눈으로 하현의 호법을 서기 시작했다.
움찔- 움찔-
하현의 몸이 이따금 꿈틀대는 것으로 보아 안에서 무언가 격렬한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제발 무사해 주시게…. 제발…….”
황보세가주는 하현을 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충분히 기뻐해도 되는 그였건만, 그는 그 기쁨을 감추었다.
그 기쁨은 조금 후에.
하현이 돌아온 후에 함께 내보여도 충분하기에 하현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 * *
한편, 황보세가주의 기운을 모두 빨아들인 하현이 감았던 눈을 뜨자, 그는 어느새 그의 심상 안에 들어와 있었다.
“성공이야! 다행히 생각한 대로 됐구나.”
쿠오오오-
하현이 빨아들인 기운은 성난 소 떼처럼 하현에게 밀고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도 하현은 다른 생각 중이었다.
“그러면 황보세가주님은 깨어나셨을까?”
그가 생각에 잠긴 동안에도 기운은 빠르게 하현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현은 문득 느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헤헤. 놀랐지? 미안해. 그런데 이 방법밖에는 생각 나는 게 없어서.”
하현이 만들어낸 가상의 무사.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기에 분명히 표정을 알 수는 없으나…….
절레절레-
하현은 어째서인지 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스르릉-
그는 하현의 말에 대답할 생각도 없는지 검을 뽑아 들고는 몰아치는 기운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하현도 그를 보며 웃음 짓고서는 검을 뽑고 그의 뒤를 따랐다.
파앗!
그들은 동시에 땅을 박차고 기운을 향해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푸하학!!
검에 닿은 기운은 다행히 이전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 가자!”
하현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이곳은 그의 심상.
이곳의 주인은 그다.
지금 이곳에서 황보세가주의 기운이 힘을 쓸 도리는 없었다.
* * *
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
그 시간 내내 황보영철과 황보세가주는 그 자리에서 하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황보영철은 그가 신호를 주기 전까지는 원로 중 그 누구도 자리를 이동하지 말라고 이야기해두었기에 지금까지 방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더 지체되면 안 될 터인데.’
황보영철은 어제 하현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황보정환에게 구결을 일러주고 있기에 늦으면 안 된다고 했었다.
혹여나 그가 의심하고 하현을 찾게 되면 이곳에 있는 것이 들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초조함을 겉으로 내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하현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그의 마음을 표현했다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주마저 불안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츠츠츠-
“……!”
바로 그때, 하현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황보영철은 깜짝 놀라 가주를 바라보았으나, 가주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후우욱! 고오오-
조금씩 흘러나오던 기운들은 점점 더 덩치를 불려 나가더니 어느 순간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황보영철은 그의 눈을 의심했다.
파아앗-
하현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랫배에서 시작한 빛이 점점 몸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피부에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쩌어억-
하현의 피부가 그 빛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갑자기 가뭄의 논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헛!”
“가만히 있게!”
“네, 넵!”
그 모습에 놀란 황보영철이 순간 하현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가주의 제지로 멈춰섰다.
황보세가주는 황보영철에게 조용히,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광경은…. 아마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광경일 수도 있네……!”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황보세가주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현에게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툭- 툭툭-
그때 갈라졌던 하현의 피부가 갑자기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어져 내린 피부는 땅에 닿는 순간 먼지가 되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우웅-
지금껏 거칠게 몰아치던 하현의 기운이 점점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도 점점 사라져갔다.
이윽고 모든 빛과 기운이 하현의 몸속으로 갈무리 되었을 때.
하현이 눈을 떴다.
번쩍-
그 눈을 바라본 황보영철은 하현의 두 눈에서 푸른 안광이 번쩍여 깜짝 놀랐다.
하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니, 빛 같은 것은 원래 없었다는 듯 하현이 온화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새 저의 호법을 서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깨어났는가!”
하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황보세가주에게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입을 열었다.
“가주님께서도 깨어나셨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니네. 정말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는 하현의 두 손을 꼭 잡고 한참 감사의 인사를 전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군! 진심으로 축하하네!”
“하하…. 부끄럽습니다. 가주님과 만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기연입니다. 저도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겠군요.”
“아니라네…! 이 모든 것이 결국 자네의 은복이라네. 나를 도우려 한 것도 자네의 업이니 복으로 돌려받은 것이지!”
가주는 진심으로 하현을 축하했다.
하현을 가만히 보던 황보영철이 하현을 보고서 떠오른 네 글자가 있었다.
“혹시…. 그게 환골탈태(換骨奪胎)인가?”
“하하. 설마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면?”
하현이 제 몸을 둘러보고는 대답했다.
“제 몸 안에 들어왔던 탁한 기운들을 뱉어낸 겁니다.”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사실 황보세가주로부터 가져온 기운에 섞여 있던 불순물들이었다.
그 기운은 황보세가주와 원로원들의 기였기에 온전히 정순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주 조금이지만 하현이 노력해도 끄집어내지 못하고 있던 혼탁함이 함께 딸려 나왔다.
지금 하현의 몸은 정순함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한 상태였다.
“일단 가주님께서는 며칠은 더 이곳에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네. 세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파악하고서 일어나야 할 것 같으니.”
황보영철도 그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지금과 같은 혼란의 시기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하현이 창밖을 흘긋 보더니 말했다.
“저는 황보정환에게 갔다 오겠습니다.”
“정환이에게는 어째서……?”
의문에 찬 얼굴로 묻는 가주를 보며 황보영철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가주님 사실은…….”
현재 세가의 상황과 그가 수미천왕신공의 구결을 황보정환에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설명 들은 그에게 하현이 입을 열었다.
“오늘 그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해 볼 생각입니다.”
“마지막이라니…?, 혹시 그 말은……?!”
불안한 눈빛의 가주를 보며 하현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직접 죽이거나, 그를 벌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하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의 그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씀드릴 테니 가주님과 원로원주님께서 판단하세요. 그는…. 어쨌거나 황보세가의 사람이니까요.”
하현은 이 말을 남기고는 방에서 나갔다.
방에 남은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영철…….”
“네. 가주님.”
그 침묵을 깨어낸 것은 가주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황보영철에게 말했다.
“지금 세가의 상황과…. 정철이와 정환이의 상황까지 자네가 아는 대로 모두 이야기해주게나. 날 생각할 필요 없이 사실만을 말해주기를 원하네.”
“알겠습니다. 가주님.”
결심한 듯 곧은 눈빛을 보내오는 가주를 보며 황보영철이 말을 시작했다.
“처음 이야기는 십 년 전, 정철이와 정환이가 함께 세가를 떠난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말이 황보세가주로서는 듣기 괴로운 이야기일 수도 있건만, 그는 한 자도 빼놓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그 후로도 그의 이야기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