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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72화 (172/304)

172화

며칠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벌써 황보정환에게 모든 구결을 전해주기까지 마지막 하루만이 남았다.

그동안 황보세가주는 빠르게 회복해 갔다.

애초에 하현 덕에 폭주하던 기운을 흡수하기까지 한 그다.

십 년이나 누워 있었기에 모두 사라져버린 근육과 몸만 회복한다면 이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휘익-

야심한 밤.

하현은 오늘도 황보세가를 제집처럼 활보했다.

지붕과 지붕을 건너며 그가 당도한 곳은 황보미견의 방이었다.

그는 아주 익숙하게 창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살짝 창문을 연 그녀의 얼굴은 몹시도 놀라 있었다.

“누, 누구…….”

“저 말고 창문 두드릴 사람이 또 있겠어요?”

“하현 공자? 그것도 그렇네요?”

그녀는 하현의 말에 놀란 것도 잊고 풉 하고 웃어버렸다.

“이 밤에는 무슨 일이세요? 며칠간 밤에는 정말로 오지 않으셔서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그래요? 저는 주무시고 계시지는 않을까 걱정했어요.”

“공자께서 부단히 노력하라 하셨는데, 이렇게 일찍 잠자리에 들 수는 없죠.”

하현은 그녀를 보며 대견하다는 듯 씨익 웃어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수련의 점검이라면 낮에 하면 되는데…….”

“오늘은 같이 갈 곳이 있어서 모시러 왔어요?”

“갈 곳이라뇨?”

“만날 사람도 있고요.”

하현이 말할수록 그녀의 눈에는 점점 의문이 쌓여갔다.

“만날 사람이라니요?”

“따라와 보시면 알 텐데, 함께 가실래요?”

아직도 창문 밖에 매달려 있는 하현이 안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 손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왜요. 이상한 데라도 데려갈까 봐요?”

“아. 아뇨.”

“그러면 왜 망설여요?”

“그…. 창문으로 나가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그녀의 말에 하현이 큭큭 웃었다.

“저도 문으로 나가면 좋겠지만, 다른 무사들한테는 아직 들키면 안 되는 일이라서요.”

“아…. 알겠어요.”

그녀는 큰 결심을 한 듯 하현의 손을 잡았다.

하현은 천천히 손을 잡아당겨 그녀가 창문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는 천천히 지붕 위로 올라가며 그녀를 끌어 올렸다.

“잘했어요.”

“아……!”

지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황보미견은 그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껏 살면서 이런 늦은 시간에 방 밖을 나와 본 적도, 이렇게 지붕 위에까지 올라와 본 적도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밤의 세가는…. 이렇군요.”

“조용하고, 아름답죠?”

“네. 낮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그녀는 천천히 황보세가를 둘러보았다.

지금껏 태어나고 자란 곳이건만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앞으로는 이렇게 밤에도 나와보시고, 세가 어디든 가보고 싶은 곳도 다 가보세요.”

“네?”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것보다 슬픈 게 뭔지 아세요?”

그녀는 뜬금없는 하현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하현은 어차피 대답을 들을 생각이 아니었는지,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 게 제일 슬픈 거예요.”

“아……!”

황보미견의 눈이 흔들렸다.

평생을 숙부의 억압 속에서 갇혀 지냈던 그녀에게 하현이 보내는 위로였다.

하현이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빙긋 웃었다.

그녀는 달빛이 비치는 하현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앞으로는 제일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잘 찾아보시고, 하고 싶은 게 생겼다면 그건 꼭 할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고마워요. 꼭 노력할게요.”

그녀는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부지게 주먹까지 쥐어 보이려다가 조금 놀라고 말았다.

아직도 하현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깜짝 놀라 손을 뺀 그녀의 얼굴이 아주 미미하게 붉어졌다.

하현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소저. 여기서 저쪽 전각까지 뛸 수 있겠어요?”

“저 전각이요?”

하현이 가리킨 방향에는 약 열 장(약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전각이 하나 있었다.

“저기까지는 못 뛸 것 같은데요……?”

“맞네요. 소저는 신법도 안 배웠죠?”

“네…….”

“그러면 잠시 실례할게요. 방법이 이것밖에는 없을 것 같아서.”

“꺄악!”

하현이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녀는 너무 놀라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쉿! 들키면 안 된다니까요?”

하현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네요. 소저. 꽉 잡으세요.”

“네…. 네?”

“수미천왕신공을 천천히 끌어올려서 팔에 힘을 주세요. 저를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잠, 잠깐…. 꺅!”

파앗!

하현이 발을 굴러 조금 전 그가 가리킨 전각 지붕까지 날 듯이 뛰어올랐다.

“잘하셨어요. 몇 번을 더 해야 할 테니 지금처럼 잘 잡고 계세요.”

파앗!

하현은 그녀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또다시 뛰어올랐다.

덕분에 황보미견은 하현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했고, 하현은 그렇게 한참을 달려 겨우 멈춰섰다.

“여기에요. 괜찮아요?”

“…괜, 괜찮아요.”

그녀는 다 왔다고 말하는 하현에게서 급히 떨어져 정신을 차리며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이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여기는 원로원 아니에요?”

“맞아요. 원로원.”

“여기는 왜……?”

하현이 씨익 웃었다.

“만날 사람이 여기 계시니까요. 내려갈까요? 여기서는 창문으로 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다시 한번 하현의 도움을 받아 바닥으로 내려온 황보미견은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현은 그녀를 이끌고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이 방은?”

“네. 소저의 조부님이시자 황보세가의 가주님께서 계신 곳이죠.”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온 거예요?”

끼이익-

“가주님이 오늘 소저가 만날 분입니다.”

하현은 말하며 문을 열었다.

이미 하현이 오늘 황보미견을 데리고 올 것이라는 언질을 받은 황보세가주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문을 열자마자 바로 그 앞에 서 있었다.

“할, 할아버지……?”

그녀의 입에서 가주님 대신 할아버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황보미견이 일곱 살이던 시절은 가주님보다는 할아버지라는 말이 더 익숙했을 시기다.

그녀는 그때의 호칭 그대로 황보세가주를 불렀다.

“미견아……!”

“이게 무슨……?”

그녀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가주를 한 번, 하현을 한 번 돌아보고는 다시 황보세가주를 돌아보았다.

“너무…. 너무 오랜만이구나. 정말 몰라보겠어.”

“할아버지!”

그녀는 눈물을 흩뿌리며 황보세가주에게 와락 안겼다.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항상 자리에 누워만 있던 황보세가주다.

그녀는 환상을 보는 것은 아닌지 싶어 껴안은 그의 등을 더듬었다.

“정말로 할아버지가 맞는 거예요? 이게 꿈은 아니죠?”

“그래! 하현 소협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공자님께서요?”

뜻밖의 이름에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현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릴 테니, 일단은 할아버님과 더 대화를 나누세요.”

“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하현은 슬그머니 방문을 닫았다.

그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날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역시 남궁세가에 있을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휘익-

하현은 지붕 위로 뛰어올라 걸터앉고는 달을 바라보았다.

‘저 잘 하고 있는 거 맞죠? 빨리 세가로 돌아갈게요.’

들리지 않을 말이건만, 하현은 남궁무룡에게 마음을 전했다.

맑은 빛이 내리는 보름달은 어느새 할아버지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 * *

오랫동안 이어진 두 조손의 대화를 기다려 황보미견을 다시 방에까지 데려다준 다음 날.

드디어 오늘은 황보정환에게 구결을 전달해주는 마지막 날이었다.

“왔는가? 드디어 마지막 날이군.”

아직 수미천왕신공을 온전히 전달한 것도 아니건만, 황보정환의 기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하현이 단계적으로 이해하며 무공을 익힐 수 있도록 잘 나누어 놓은 것도 있지만, 애초에 황보정환의 자질도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재능과 자질을 겨우 이런 데에 쓰다니.’

하현은 무공은 양날의 검이라는 말을 다시 상기했다.

더불어 무림인에게 의와 협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 두 가지가 무너지면 황보정환 같은 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뭐 하고 있는가? 빨리 마지막 구결을 말하지 않고.”

“…시작하겠습니다.”

이제는 하현에게 맡겨놓은 듯 구결을 요구하는 그에게 하현이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마지막 구결을 말해주었다.

모든 구결을 들은 황보정환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라면 하현은 이대로 조용히 연무장을 빠져나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가만히 그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슈우우욱-

그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기운을 끌어 올렸고, 그 영향으로 주변에는 바람이 일었다.

수미천왕신공은 그에게 놀라운 힘을 가져다주었다.

화악!

한순간에 기운을 정리한 그는 자신의 몸을 훑어보며 웃음을 흘렸다.

“후…. 후후. 이것이…. 수미천왕신공인가.”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단지 심공 하나를 배웠을 뿐인데, 이토록 달라질 줄은 생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형은 어렸을 적부터 이런 심공을 익혔었으면서도 겨우 그 정도 성취밖에 보이지 못했었다니…….”

그는 하현이 뒤에서 듣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고서 말을 내뱉었다.

하현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건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구결을 듣자마자 익히시다니. 깨달음이 빠르시군요.”

“내가 기존에 익혔던 벽력천왕신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이토록 큰 결과를 가져오다니.”

자신의 힘에 자아도취 한 것 같은 그를 보며 하현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수미천왕신공을 빠르게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하현이 그에게 구결을 전해 줄 때 최대한 이해하고 익히기 쉽도록 변형해서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그런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원로원에는 언제 가실 생각입니까?”

“곧바로. 오늘 오후에 갈 것이다.”

“그렇게 바로요?”

황보정환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루라도, 한시라도 빨리 가주가 되어야 하니까.”

그는 하현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러면 너도 며칠 안에 미견이와 세가를 떠날 수 있도록 하겠다. 가주로서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가주로서…. 말이군요.”

“그래. 가주. 드디어 나는 황보세가의 가주가 된다.”

하현은 기분 좋게 큰 소리로 웃은 그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후에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연무장에서 나온 그가 향한 곳은 원로원.

조금 전에 들은 소식을 곧바로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 * *

잠시 후.

너무나도 큰 기대감에 점심 식사도 거른 황보정환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고지식한 늙은이들.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게 하다니.’

그는 속으로 상소리를 지껄이며 계속해서 발을 놀렸다.

원로들에게 수미천왕신공을 익혔노라 말하러 가는 것이다.

‘이깟 내공심법이 뭐라고…. 아니, 사실 대단하긴 하지. 하지만 이런 것도 오늘로써 끝이다.’

그는 고작 열흘 만에 크게 달라진 자신의 능력을 생각하며 원로들의 반응을 상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는 원로원에 도착했다.

수십 개의 낮은 전각으로 만들어진 원로원은 올 때마다 낯설었다.

‘늙은이들. 이제는 내가 이곳에 오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나에게 와야 할 것이다.’

그는 속으로 웃으며 원로원에 진입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이곳이 너무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그가 이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황보근주나 황보관학 같은 원로원주와 가까운 원로들이 튀어나와 이곳에는 웬일이냐고 물을 텐데.

오늘은 그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들 어디로 갔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죽이고 원로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무슨……?”

그런데 원로원에 들어선 그는 입구에서 멈칫하고 말았다.

평소에는 각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원로들이 하나 같이 가주의 방 앞에 모여 있던 까닭이었다.

그는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정환아! 안 그래도 너를 부르려 했다.”

원로는 정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 반응에 황보정환은 도리어 불안감을 느꼈다.

지금껏 원로들이 그를 이렇게 반겨준 적이 있던가?

“아버지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깨어나셨네!”

“뭐라고요?!”

“깨어나셨다니까? 가주님께서 드디어 눈을 뜨셨단 말이네!”

황보정환의 눈이 흔들렸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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