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팽헌홍이 그의 형, 팽무홍의 도를 받아내면서 느낀 인상은 ‘묵직하다’ 였다.
그 역시 팽길산의 자식이고,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무공광이다.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십칠 년이나 더 수련한 그가 팽헌홍을 이기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하지만 팽헌홍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형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형들은 오호단문도와 건곤미허신공을 익혔다.
하지만, 그에게는 혼원벽력도와 혼원벽력신공이 있다.
오호단문도가 약하거나 떨어지는 무공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하북팽가가 현재 오대세가에 들 정도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원벽력도는 그 결이 다르다.
스윽-
팽헌홍은 그를 향해 날아오는 도를 가볍게 흘려냈다.
아무리 무겁고 강력한 도라고 해도, 그 힘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방향만 바꾸는 방식.
이런 것은 오호단문도에는 없는 기술이다.
기우뚱-
급작스럽게 힘이 흘러나가는 바람에 팽무홍이 몸의 중심을 잃어버린 틈을 타서 팽헌홍이 그의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퍼억-!
도가 아닌 몸통박치기에 가슴을 가격당한 팽무홍이 가슴에 손을 얹고 다급히 몇 발자국을 뒤로 물렸다.
“큭,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남궁세가에서는 그런 것을 가르치나 보지?”
“이런 어릴 적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겁니다. 도를 내리칠 수 없을 때는 어떻게든 상대에게 타격을 주어라. 이런 것 배운 적 없으십니까?”
“이, 이 자식이.”
팽무홍의 턱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동생에게 훈계를 당하는 것도 싫지만, 팽길산에게 저 말을 들은 것이 생각 나버렸기 때문이다.
“손속에 사정을 봐 주려 했거늘. 네가 그렇게 시건방진 동생인지 몰랐구나. 정신이 번쩍 들도록 혼쭐을 내주마.”
팽무홍이 양손으로 도를 꽉 잡고서 오른쪽 어깨 위쪽으로 치켜들었다.
두 사람의 싸움을 관망하고 있던 팽길산의 눈이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갔다.
‘저 기수식은….’
그는 팽무홍이 펼쳐내고자 하는 초식을 정확히 알아보았다.
팽무홍은 오호단문도의 정초 중 하나인 맹호하산(猛虎下山)이라는 초식을 사용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맹호하산은 한 호흡에 여러 번 도를 내리치는 초식으로, 성취가 낮다면 서너 번밖에 휘두르지 못하나, 높은 성취를 보았다면 수십 번도 휘두를 수 있는 초식이다.
척-
그를 상대하는 팽헌홍은 도을 아래로 척 내려뜨린다.
팟!
팽무홍이 미허신보(彌虛神步)를 극성으로 밟아 팽헌홍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번개처럼 도를 내리쳤다.
쒜엑!!
공간을 가를듯한 기세로 팽헌홍의 머리로 떨어졌다.
팽무홍은 이제 그의 동생이 도를 들어 자신의 도를 막아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 번 도를 막기 시작하면 그때부터가 이제 시작이다.
맹호하산은 그저 휘두르는 것이 아닌, 도가 막히고 튕겨나간 그 반탄력을 이용하는 무공이다.
그렇기에 한 번 막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막기만 하다가 모든 내공과 체력을 소모시키는 무서운 무공.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슈우욱!
“허업!!!”
그런데 그는 몸통 아래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헛숨을 들이키고 말았다.
그의 도를 막아야 할 팽헌홍의 도가 그에게 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친놈이!”
그는 재빨리 몸을 틀며 팽헌홍의 도를 피해냈다.
그 바람에 내리치던 도 역시 궤적이 틀어져 팽헌홍에게 닿을 수 없었다.
“동귀어진이라니. 네가 미친 것이냐! 대련에 왜 죽을 생각까지 하냔 말이다.”
“저는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뭐?”
“막아내면 안 되는 무공이기에 형님께서 펼치지 못하도록 한 것뿐입니다.”
“그, 그게 말이나 되는…!”
팽무홍이 놀란 만큼이나, 옆에서 보고 있던 팽길산은 몹시도 동요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헌홍이가 오호단문도의 초식을 알고 있을 리는 없는데, 어떻게 맹호하산을 정확히 파훼할 수 있지?’
맹호하산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약점을 팽헌홍이 정확히 노린 것이기에 그는 더욱 놀랐다.
“형님이 도를 움켜쥐신 자세를 보는 순간, 그저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이 났을 뿐입니다.”
팽헌홍의 이 말에 팽길산은 눈을 부릅떴다.
이미 그가 거쳐 간 길이기에 팽헌홍이 지금 어떤 단계에 들어섰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벌써 도신일체(刀身一體)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도를 다루는 데 있어 제 몸 다루듯 할 수 있는 경지라 하여 이름 붙여진 도신일체.
하직 셋째인 팽무홍은 그 수준에 닿지 못하였고, 저들의 큰형인 팽지홍이나 들어선 수준이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는 팽헌홍은 저 나이에 스물두 살이나 많은 큰형과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이것도 받을 수 있나 보자!”
그 후로도 팽무홍은 팽헌홍에게 몇 개의 초식을 날렸다.
모두 고절한 오호단문도의 초식들.
하지만, 팽헌홍은 그를 가볍게 흘려내거나 막아내었다.
절대적인 내공의 양은 팽무홍이 훨씬 많을 것이나, 그것을 활용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맥이 탁탁 끊기는 대련이었다.
‘정말로 도신일체의 경지다. 자질이 특별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토록 뛰어났을 줄이야.’
팽길산은 속으로 감탄을 쏟아냈다.
그의 막내아들이 가진 재능을 확인하고 나자, 묘한 흥분감까지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이냐. 어디서 이상한 것을……!”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디에 있든 간에 도법을 연구하고, 익힌 것밖에 없습니다.”
시종일관 무표정이던 팽헌홍이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팽무홍은 그 얼굴에서 왠지 모를 무서움마저 느꼈다.
“형님. 이번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하지만 나이 차가 이리도 많이 나는 동생 앞에서 꼬리를 말 수는 없는 일.
그는 호기롭게 외쳤다.
“……와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팽헌홍이 보법을 밟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보법은 팽가에서 주로 쓰는 미허신보나 혼원보가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무한보가 아주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스슥-
그 때문인지, 팽무홍은 순간적으로 팽헌홍의 신형을 놓치고 말았다.
급히 고개를 돌리려는 그에게 서늘한 예기가 느껴졌다.
사악!
그는 급히 머리를 숙여 팽헌홍의 도를 피했다.
지나간 도가 그의 머리카락을 몇 가닥 끊어냈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이, 이런! 형을 진짜 죽일 셈이냐!”
“형님을 믿은 것입니다. 피해내실 것이라고요.”
팽헌홍은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팽무홍을 밀어붙였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도법이었다.
왼쪽에서 오는가 하면 위에서 떨어지고, 위에서 떨어지는가 하면 횡으로 그어오는 이상한 도법.
‘혼원벽력도는 일도에 만 가지 변화를 담는다고 한다.’
팽헌홍은 혼원벽력도의 유실된 구결을 처음 들었을 때, 아버지께서 그에게 해주셨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길 수 있다.’
승기를 잡은 팽헌홍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생각대로 그의 형은 오호단문도를 막아내는 것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이대로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
그런데 팽헌홍은 이상함을 눈치챘다.
처음에는 겨우겨우 막아내기만 하던 팽무홍의 도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조금씩 도를 막아내는데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당황이 깃들었던 팽무홍의 얼굴도 점점 평온해져 가고 있었다.
카가가각!
그러다 어느 순간, 팽무홍이 팽헌홍의 도를 긁어 멈춰 세웠다.
“잡았다. 흐읍!”
쾅!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직선으로 도를 베어 들어갔다.
팽헌홍이 도면으로 겨우 막아냈건만, 굉음과 함께 손가락에 얼얼한 충격이 전해졌다.
쑤욱!
팽헌홍이 예상치 못한 힘과 속도로 도가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오고, 그를 막아내면 또다시 도가 날아온다.
‘이걸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는 양손으로 도를 잡고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팽무홍의 도가 날아오든 말든, 막아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쒜엑!
그 강맹한 기운에 팽무공은 결국 도를 들어 팽헌홍의 도를 막아낼 수밖에 없었고, 팽헌홍은 그 충격을 이용하여 뒤로 훌쩍 튀어나왔다.
“제법이구나.”
“역시, 형님을 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군요.”
“건방진 것.”
잠시 소강상태를 가졌든 둘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팽헌홍은 혼원벽력신공을, 팽무홍은 건곤미허시공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쏴아아아-
바람이 불어올 곳도 없건만, 강력한 두 기운이 부딪히자 바람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풀나풀 머리카락도 휘날리는 가운데, 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무공을 떠올렸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발걸음을 떼려는 그 순간.
“그만!!”
“헉.”
“으윽.”
엄청난 목소리가 연무장을 뒤엎었다.
팽길산이 내공을 가득 담아 소리 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팽헌홍과 팽무홍은 모두 자신들이 싸우던 와중이라는 것도 잊고, 두 귀를 막아야 했을 정도였다.
“정말로 둘이서 생사결이라도 할 셈이냐. 이제 그쯤 해라.”
팽길산이 둘을 막아낸 것은 적절했다.
만약 최선을 다한 수법으로 둘이 부딪혔다면 둘 중의 하나는 크게 다쳤으리라.
“아, 아버님……!”
“아버지!”
서로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둘이 동시에 팽길산을 불렀지만, 그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대련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잊었느냐?”
“아…….”
팽무홍은 열일곱 살이나 어린 동생과의 승부에 너무나도 과몰입한 자신이 부끄러워져 얼굴을 붉혔다.
애초에 이 대련은 팽헌홍이 하북팽가가 아닌 남궁세가에서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리고 팽헌홍은 훌륭하게 그 증명을 해내었다.
“흠. 맞습니다. 제가 너무 과했습니다.”
팽무홍은 팽헌홍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생아. 이건 내가 진 것이나 다름없다. 너와 이토록 동등하게 싸웠다는 것 자체가 내 패배지.”
“아뇨. 제가 진 겁니다. 저는 형님이 저를 베지 못할 것을 이용하여 승부를 유리하게 가져왔습니다. 형님이 살심을 품으셨다면 저는 진작에 죽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둘의 모습을 팽길산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북팽가의 사람들은 엄청난 다혈질이지만, 그만큼 뒤끝도 없고 깔끔한 성격이다.
게다가 상대가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만큼 인정해줄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하북팽가가 오대세가에 위치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세가의 구성원들이 순수하게 무공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무홍이는 이 정도면 헌홍이를 무시하지 않겠지.”
“그렇습니다. 헌홍이가 지난 사 년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느껴졌으니까요.”
“헌홍이도?”
“네. 저도 형님을 다시 한번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팽길산은 껄껄 웃었다.
자식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큼 부모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도 흔치 않다.
“언젠가 큰형님, 둘째 형님과도 대련해보고 싶습니다.”
“하루 이틀만 있다가 다시 남궁세가로 넘어갈 것은 아니지 않으냐?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꾸나.”
그들은 연무장에서 나와 처소로 향했다.
팽헌홍은 함께 걸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셋째 형님을 넘어서지도 못하는 수준이라니.’
이 속마음을 들었다면 십칠 년이라는 시간을 무엇으로 보느냐고 팽무홍이 길길이 화를 낼 수도 있었건만, 다행히 그에게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하현과 셋째 형이 붙었다면 누가 이겼을까?’
그 대답은 너무나도 쉽게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현이 너무나도 여유롭게 이길 것만 같았다.
‘현이는 언제쯤 오려나.’
그는 하현과 헤어진 지 며칠이 되지도 않았건만, 어서 하현과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다그닥 다그닥
거대한 말 한 마리가 하북팽가의 대문 앞에 섰다.
“워워. 고생했다. 선풍.”
하현이 말하며 말머리를 쓸어주자 선풍이 화답하듯 소리를 냈다.
말에서 가볍게 뛰어내린 하현이 대문을 두드렸다.
“누구……. 오! 하현이 아니냐?”
“아! 용소 삼촌이시군요.”
“그래. 네가 온다는 얘기는 들었다. 어서 들어와라. 이 말은……. 와. 굉장한 말이구나. 멋지구나.”
공교롭게도 하현은 이번에도 팽용소가 대문을 지키는 순번에 도착했다.
그는 여전히 우락부락하고 건장한 몸을 자랑했다.
그를 보자 하현은 비로소 하북팽가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