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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83화 (183/304)

183화

팽용소는 반가운 얼굴로 대문을 활짝 열어주며 말했다.

“어서 들어와라.”

“감사합니다.”

하현은 선풍을 이끌고 대문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변한 게 하나도 없군요.”

“그래? 네가 오고 간 이후로 별일은 없었으니까.”

“무탈하셨다니 다행입니다.”

“하하.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하긴, 무슨 일이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지.”

팽용소가 호탕하게 웃었다.

“가주님께 먼저 인사를 드릴까 하는데요.”

“조금만 기다려라. 사람을 불렀으니, 너를 데리러 올 것이다. 말은 마구간에 맡겨 놓으마. 이놈. 밥을 얼마나 먹여야 할지를 모르겠군. 이렇게 덩치가 커서 말이야.”

“객잔에서 밥을 한 번 줘 본 적이 있는데, 건초를 많이 가져다 놓으면 알아서 먹다 말더군요.”

“호오. 그래? 굉장히 똑똑한 말이로구나.”

잠시 기다리니 하인 하나가 하현을 데리러 왔다.

팽용소는 마구간으로, 하현은 하인을 따라 팽길산에게로 갔다.

오랜만에 만난 팽길산은 여전히 엄청난 근육과 박력을 과시했다.

구순이나 먹은 노인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현아. 이게 얼마 만이냐!”

그는 하현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나 하현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삼 년은 된 것 같……. 흡!”

“하하! 내가 놀러 가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팽길산을 하현을 품에 와락 안고는 등을 팡팡 때려주었다.

곧바로 팽길산이 하현을 풀어주기 전까지, 숨도 못 쉴 정도로 세게 안겨있던 하현은 숨을 몰아쉬었다.

“여전하시군요. 어떻게 그런 근육을 유지하시는 겁니까?”

팽길산이 자랑스럽게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팔 근육을 보여주며 대답했다.

“하하. 너도 이런 멋진 몸에 관심이 있느냐? 우리만의 수련법이 있는데, 전수해줄까?”

“아, 아닙니다.”

“거절할 것 없다. 내가 어떤 수련을 하면 어떤 근육이 커지는지 모조리 가르쳐주마.”

“다음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은 헌홍 형부터 만나보고서…….”

하현의 거듭된 거절에 팽길산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냐? 제대로 수련만 한다면 충분히 이런 남자다운 몸을 만들 수 있을 것이거늘. 내가 헌홍이한테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이거다. 몸이 너무나 비리비리해.”

물론 팽헌홍이 팽길산이나 다른 팽가의 무사들에 비해 근육이 적다고는 하나, 결코 비리비리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거듭된 수련으로 팽헌홍도 남부럽지 않은 근육질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헌홍이는 지금 내 연무장에서 수련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도 수련이군요.”

“그래. 남궁세가에서 그것 하나만은 아주 잘 배워왔어. 무공에 대한 끝 없는 욕심과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는 성실함.”

팽길산이 하현을 스윽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건 자네의 영향이 아주 큰 것 같더군.”

“음…….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이래서 내가 좋아한다니까. 따라오거라.”

팽길산은 자신이 직접 하현을 데리고 나섰다.

“예전에 제가 혼원벽력도를 보여드린 그 연무장입니까?”

“그래. 현이 니가 내 오호단문도를 보았던 그 연무장이지.”

팽길산은 아이처럼 하현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듯 말했고, 하현은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나저나, 주은이도 보고 싶군요.”

“아쉽지만 이번에는 보지 못할 것 같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하하. 그런 건 아니다. 주은이는 내년에 있을 용봉지회에 참가하기 위해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네.”

“폐관 수련이요?”

하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가 기억하는 팽주은과 폐관 수련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 개월의 기한을 잡고 폐관에 들어가 지금 이 개월 정도가 흘렀으니, 넉 달은 보지 못할 것이네. 주은이도 누구 덕에 독해져서 말이야.”

“하…하하. 그렇군요.”

그 누구인 하현은 속으로 뜨끔 하는 것을 느꼈으나,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도착한 연무장.

하현은 그곳에서 웃통을 벗고 구슬땀을 흘리며 수련하고 있는 팽헌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 팽형!”

하현은 그를 보고서 감탄을 흘렸다.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건만, 팽헌홍의 기세가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현이 왔구나.”

“도대체 며칠 만에 무슨 일이 있던 거에요?”

하현의 호들갑에 팽헌홍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깨달음을 몸으로 체득하는 데는 역시 대련이 최고더구나.”

“맞는 말이에요. 대련을 얼마나 했길래요?”

“열 번 이후로는 세지 않았다. 아마 스무 번은 안 될 거야.”

하현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렸다.

계산상 하루에 대여섯 번씩은 대련해야만 채울 수 있는 숫자였으니까.

“왜 그렇게 많이 하신 거예요?”

“오랜만에 세가에 돌아왔더니, 내 실력을 보고 싶다고 하는 세가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야. 거절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

“팽형도 참. 대단하세요.”

“맞다.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현과 팽헌홍은 서로를 마주 보고 크게 웃었고, 팽길산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웃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굴더니.’

세가에 돌아와서 내내 차가운 태도로 팽가 사람들을 대하던 팽헌홍이었는데, 하현을 보자마자 저렇게 기분 좋은 얼굴을 하는 것을 보며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격이 과묵하고 조용하여 무림에서 친우는 하나도 사귀지 못할 줄로 알았는데, 지금 보니 이미 좋은 친우를 하나 사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도 빨리 이쪽으로 올라와라. 내가 깨달은 것을 너한테 제대로 보여줄 테니.”

“좋습니다. 기대되는군요.”

팽길산과 함께 온 것은 잊어버린 듯, 하현은 짐을 한쪽 구석에 내려놓고 눈을 반짝이며 연무장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아직도 입구 근처에 서 있는 팽길산을 보고 아차 싶었는지 팽헌홍이 하현에게 말했다.

“현아. 생각해보니, 너 아버님과 함께 오지 않았냐. 짐도 풀고 천천히 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 그렇네요. 그러면 이따가…….”

실망한 얼굴로 뒤를 돌며 다가오는 하현을 보며 팽길산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나도 집무실로 돌아가려 했었네. 지금 자네한테는 숙소보다도 무공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하인에게 자네의 방을 준비해두라 할 테니, 하고 싶은 만큼 하고 나서 아무 하인에게나 말하면 데려다줄걸세.”

“아! 정말 감사합니다. 가주님.”

하현의 얼굴은 언제 실망했었냐는 듯 밝아져 있었고, 그 변화에 한 번 더 웃어버린 팽길산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팽형. 제가 언가에서 무엇을 배워왔는지 아세요?”

“무엇을 배워왔는데?”

“권입니다. 이번에는 권으로 한 번 상대 해드리죠.”

“다쳐도 모른다.”

“하하. 제가 할 말이에요.”

팽길산은 등 뒤로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에 빙긋 웃음 지었다.

둘의 대화는 수십 년 전, 그의 친우들을 생각나게 했다.

남궁무룡, 취월걸개, 유엽진인, 주원대사 등등….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인 게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군.’

그는 속으로 조만간 한 번 자리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시간은 이제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적었기에.

***

그날 밤.

팽길산은 팽헌홍과 하현을 위해 연회를 열어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무장에서 무공을 익히던 두 주인공이 조금 늦게 오기는 했으나, 연회는 별 차질 없이 열리게 되었다.

“오늘은 매우 기분이 좋구나. 취하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다.”

팽길산은 호탕한 성격답게 술을 매우 좋아했다.

무공을 익힌, 그것도 무림에서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무공을 익힌 그였기에 마음만 먹으면 술기운을 배출시킬 수도 있고, 취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너무 과음하시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나이를 생각하셔야지요.”

“하하! 네가 내 걱정을 해주다니. 별일이구나.”

팽길산의 바로 오른쪽에 앉은 사내가 팽길산을 만류했다.

그는 예사 기운을 가진 게 아니었기에, 하현은 그도 모르게 그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후후. 역시 너도 한눈에 알아보는구나. 굉장한 강자지?”

옆에 있던 팽헌홍이 그것을 눈치채고, 하현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네요. 누구죠?”

“저 사람이 바로 내 큰 형. 팽사홍이야.”

“아, 큰형님이시군요. 연세로만 따지면 아버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 나이로만 따지면 그렇지. 큰 형님은 나와 스물다섯 살 터울이거든.”

“와……. 그랬군요.”

팽헌홍은 하현과 꽤 긴 시간을 보냈건만, 아직 그의 형제들에 대한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 왼쪽 탁자 가운데 앉은 사람이 보이지?”

“네. 회색 무복을 입으신 분 말씀이시죠?”

“그래. 저기가 내 둘째 형인 팽건홍, 저쪽 끝에 앉은 게 셋째 형 팽무홍이야.”

“팽사홍, 팽건홍, 팽무홍, 팽헌홍……. 이거 한두 번 들어서는 헷갈리겠는데요?”

“하하. 그러냐.”

하현이 그들을 둘러보니, 하나같이 상당한 고수들이었다.

특히나 첫째 형이라는 팽사홍은 남궁세가의 남궁기철이나, 남궁기현과도 비등해 보일만큼의 엄청난 강자였다.

“남궁세가에 가기 전에도 큰 형이 얼마나 강한지 어렴풋이는 알았지만, 돌아와서 보니 나와의 차이가 더욱 실감 나더구나. 내가 형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현은 대답 없이 팽헌홍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에게 이십오 년의 차이가 있다는 말은 전혀 위로되지 않는다.

도제 팽길산은 나이로만 따진다면 몇 년 안에 소천하여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

팽헌홍은 그 전에 큰 형을 따라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팽길산의 지금 모습으로 보았을 때, 그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가지 않지만.

“가끔 팽 형이 조급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큰 형님 때문이었군요.”

“부끄럽지만… 맞다.”

팽길산이 대답하는 순간, 하현은 팽사홍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굉장히 박력 있는 눈빛이었으나, 하현은 그에게 압도되지 않고 그 눈빛을 여유롭게 받아냈다.

그러자 팽사홍의 입가에 살짝 호선이 그려지더니 그가 먼저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팽길산을 바라보았다.

하현도 다시 팽헌홍을 보고는 말했다.

“충분히 따라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지치지만 않으신다면.”

“지치지만 말라는 말이 굉장히 어렵게 들리는구나.”

“어려운 일이죠.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더 꾸준히 달려야 하니…….”

하현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해내셔야 합니다. 그래야 원하시는 바를 이루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하하. 알았다. 네가 보기에도 큰 형님께서 대단한 무공을 가지셨나 보구나.”

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마따나 남들보다 더 빠르게, 더 꾸준히 해야지.”

팽헌홍이 의지를 다지고 있을 때, 술에 취했는지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팽길산이 팽헌홍을 불렀다.

“헌홍아.”

“네. 아버지.”

“내일은 하현이와 함께 선화(宣化)에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

“선화라면……. 분가(分家)에 말입니까?”

“그래. 맞다.”

선화는 북경의 북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로, 지금은 따로 살림을 차리고 나간 하북팽가의 방계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자주 왕래가 있었으니, 네가 오랜만에 하북에 온 김에 한번 인사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고 보고 오거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하현이는 어째서…….”

“하하. 친우와 함께라면 먼 길도 가깝지 않겠느냐. 하현아. 괜찮지?”

하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좋습니다. 저도 기왕 나온 것,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다니고 싶었거든요.”

“그래. 아마 헌홍이와 함께 가면 너에게 잘해줄 것이다.”

팽가주는 하현이 승낙한 것이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렸다.

“아버님. 그곳은…….”

그의 옆에 있던 팽사홍이 조금 놀라며 팽길산에게 귀엣말로 뭐라고 했지만, 팽길산은 그저 껄껄 웃을 뿐이었다.

하현은 그가 팽길산에게 뭐라 했는지 들어보려 했지만, 주변의 소음 때문에 듣질 못했다.

그 뒤로 둘은 별 얘기가 없었기에, 하현은 그냥 함께 연회를 즐겼다.

그렇게 밤이 무르익어 갔다.

***

모두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하현은 혼자서 팽길산이 내어준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팽헌홍은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방향이 완전히 반대였기에 하현은 혼자 가겠다고 했다.

달을 올려다보며 걷고 있는데, 하현은 누군가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누구지?’

이곳은 하북의 패자 하북팽가의 장원 안.

누군가 외부에서 침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가 내의 사람이라는 것인데…….’

하현은 태연하게 걷는 척하며 기감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익숙한 기운이었다.

최근에 만난 이 박력 있는 기운. 팽사홍의 기운이었다.

우뚝

하현은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말했다.

“무슨 용무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군요.”

그러자 허공을 찢듯 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보통 아이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눈치가 굉장히 빠르구나.”

하현의 생각대로 그는 팽사홍이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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