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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84화 (184/304)

184화

“역시 큰형님이셨군요.”

“큰형님……? 아. 그렇군.”

그는 생각지도 못한 큰형님이라는 호칭에 큭큭 웃었다.

하현과 나이 차가 너무나도 많이 나서 생각도 못했건만, 하현은 그의 동생인 팽헌홍의 친우였던 것이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딱히 볼 일은 없다.”

“그러면요?”

“그냥 네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서 따라왔을 뿐.”

그는 정말로 하현에게 흥미가 있는 얼굴이었다.

하현이 흠칫하자, 그가 급히 양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오해하지 말아라. 내 딸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네 이야기를 해서 말이다.”

“딸이라면……?”

“주은이가 내 딸이다.”

“아……! 그랬군요. 하하. 주은이가 평소에도 제 이야기를 많이 하나 보죠?”

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많이 하는 정도가 아니다. 헌홍이가 보내온 서신을 읽으며 네가 하는 수련의 양을 따라잡으려고 할 정도니까.”

“하…하하…….”

하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왜인지 그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뭐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네 덕분에 주은이가 무공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거든.”

“저를 따라오신 이유는 그게 다입니까?”

팽사홍이 씨익 웃었다.

비단 이 이유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한 미소였다.

“아니, 너에게서 조금은 특별한 기운을 느껴서 말이야. 괜찮으면 무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을까 해서.”

“대화라……. 그 대화가 혹시 몸의 대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팽사홍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그는 하현에게 대련을 하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무림에서는 윗배분의 사람이 아래 배분의 사람에게 먼저 대련을 하자고 하는 것이 도의에 벗어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팽사홍도 그런 사람이기에 하현에게 대놓고 대련하자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리라.

“좋습니다.”

하현도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지 않아도 팽사홍의 이 박력 있는 기운에 흥미가 가던 하현이다.

강자와 붙어볼 기회를 마다할 그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으나,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구나. 우리가 대련을 한다면 온 장원의 사람들을 깨울 수도 있을 터. 내일 분가에 다녀오고 나서 시간을 맞춰보자.”

“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기대라니. 맹랑한 구석도 있구나.”

팽사홍이 웃음을 흘렸다.

그는 하현이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럼 편히 쉬어라. 선화에 가면 고생 좀 할 수도 있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가보면 안다.”

그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듯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발을 옮겼다.

“그곳에 뭐가 있는 거지?”

하현은 혼잣말을 내뱉고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알게 될 것이니까.

***

다음 날 하현과 팽헌홍은 말에 올라 선화로 향했다.

감정표현이 크지 않은 팽헌홍이지만, 선풍을 처음 보는 순간 그 역시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언가주님께서 주셨다는 선물이 이 말이구나.”

“네.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하현이 말 등을 쓸며 대답했다.

팽헌홍은 하현이 무공 이외의 것을 받고서 저렇게 기분 좋아하는 것을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그가 남궁세가에서 끌고 온 말도 꽤 건장한 준마였건만, 선풍 옆에 서니 굉장히 빈약해 보였다.

“하하. 나를 두고 먼저 달리지만 말아라. 넌 길도 모르잖냐.”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출발하시죠.”

“그래. 가자.”

하북팽가에서 분가가 있는 선화까지는 말을 타고 반나절만 가면 되는 거리.

팽헌홍은 가는 동안 하현에게 분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원래 분가는 내 작은 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의 동생께서 따로 살림을 차려 나간 곳이란다.”

“어제 연회 때 보니까, 세가 내에서 살고 있는 다른 친척분들도 계시는 것 같던데요?”

“맞다. 우리 하북팽가는 분가로 나가는 것에 자유롭거든. 세가에 남고 싶으면 남고, 다른 문파를 차리고 싶으면 차릴 수 있지.”

“무공은 같은 무공을 공유하나요?”

팽헌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분가의 무인들도 어릴 때는 우리 본가에서 무공을 익혀서 나가기 때문에 같은 무공을 배우고 있지.”

“그러면 분가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현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지 팽헌홍에게 물었다.

무공도 공유하고, 수련도 본가에서 한다면 분가의 의의가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들은 팽헌홍은 역시 하현이라는 듯 감탄이 조금 섞인 얼굴을 했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 해주었을 때,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너는 이 허점을 파고드는구나. 역시 대단하다.”

“하하,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냥 궁금증이 생긴 것뿐인데요.”

팽헌홍은 겸양을 떠는 하현을 보고 웃어준 뒤에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하북팽가의 분가는 선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요?”

“승덕(承德), 옥전(玉田), 하간(河間) 등등 하북성에만 대여섯 개는 될 것이다.”

“상당히 많군요. 왜 그렇게 많은 것이죠?”

“하북성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지배……?”

하현은 부연설명을 빨리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팽헌홍은 그게 응해주었다.

“네가 아는지는 모르지만, 하북성은 원래 사파 소속의 문파가 매우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사파 측의 문파들로부터 민초들을 지키고, 그들에게 우리의 이권을 뺏기지 않으려 그렇게 분가를 많이 세운 것이다.”

“아하……. 일종의 전초기지 같은 것이로군요.”

“그렇지.”

“하북성에는 왜 이렇게 사파가 많은 건가요?”

팽헌홍이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대답했다.

“우리가 하북의 패자가 되기 이전에는 이 지역을 온전히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성들은 각자 몇몇의 문파나 세가의 영향력이 온전히 미친다. 하남에 소림, 개방이 있고 호북에는 무당과 제갈세가, 안휘에는 남궁세가가 있듯이.”

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각 성을 대표하는 문파나 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북은 하북팽가가 대표하지 않나요? 진주언가도 있고요.”

“지금이야 그렇긴 한데, 백년전만 해도 우리 세가가 이토록 강하지는 않았거든. 아버님이 성장하시면서 세가도 급격히 성장한 세가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아……. 그래서 이전부터 계속 이 주변에서 힘 싸움을 하던 사파 측의 문파들이 남아있던 것이군요.”

“그렇지. 오십사 년 전 정사대전에서 대부분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암암리에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사파문도가 아주 많아.”

하현은 비로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년 전 환현문의 경우만 해도 그랬다. 평생 봉문하기로 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지기로 했던 환현문이 수면 아래에서는 버젓이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하북팽가가 어째서 이리도 힘을 키우려 하고, 강함을 갈구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정파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했던 것이군요.”

“하하. 멋지게 포장하자면 그렇지.”

팽헌홍은 하현의 말에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활짝 웃었다.

“아! 팽형. 물어볼 게 있는데요.”

“무엇이냐.”

“선화에 무슨 특별한 게 있습니까? 어제 큰형님을 잠깐 만났었는데, 그곳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더군요.”

“사홍 형님을 만나 뵈었다고?”

하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갑자기 팽헌홍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 형님께 그런 면이 있었다니.”

“왜 그러십니까?”

“형님이 뭐라 시더냐?”

“그곳에 가면 고생을 좀 할 수도 있다고…….”

팽헌홍은 그 말에 더 크게 웃더니 하현에게 말했다.

“우리 팽가 사람들이 폐관 수련을 하러 간다고 하면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어디로 가는데요?”

“보통 분가에 가서 수련하곤 한다. 본가처럼 사람이 많아서 번잡하지도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폐관 수련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지.”

“아, 그러면 설마……?”

“그래. 주은이가 폐관을 하고 있는 곳이 지금 우리가 가는 선화 분가다.”

하현은 팽길산이 굳이 자신을 분가에 데리고 가라고 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하현과 팽주은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주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그랬군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주은이가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

그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하현을 보다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내 조카사위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주은이랑 어릴 적 내가 허락해주는 사람과 혼인하기로 약속했거든.”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항상 평상심을 유지하는 하현이건만, 이번만은 화들짝 놀라며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선풍이 히히힝 울며 균형을 잡아 주었기에 하현은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당황한 얼굴을 숨기지는 못했다.

“절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하. 농담이었다. 하긴. 황보세가에서 너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

“팽형!”

하현이 소리를 빼액 지르자, 팽헌홍이 지금껏 하현이 봤던 것 중에 가장 크게 웃어젖혔다.

그런 팽헌홍에게 하현은 눈을 흘기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제 매형이 되는 건 더 힘들 텐데요.”

“뭐, 뭣?”

“형도 잘 아시겠지만, 소화 누나가 은근히 제 얘기라면 다 믿는 것 아시죠?”

“아……!”

“제가 남궁세가로 돌아가면 누나한테 뭐라고 말해 줄까요?”

“뭐라고 말해 준다니…….”

하현이 한쪽 입꼬리만 씨익 올리며 말했다.

“하북에 어여쁜 소저와 즐겁게 이야기하시더라고 말할까요?”

“그, 그런 거짓말을?”

“하하하! 제가 그러지 않도록 저한테 잘하시면 됩니다. 이랴!”

하현은 말을 내뱉고는 선풍을 몰아 저 앞으로 나가버렸고, 괜히 하현을 놀리려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팽헌홍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선풍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그는 점점 멀어지는 하현의 등을 허망하게 바라만 보았다.

***

하현과 팽헌홍은 선화에 도착하여 분가로 향했다.

한참을 앞서가던 하현은 쩔쩔매며 따라오는 팽헌홍이 불쌍했는지 그를 기다려 주었고, 팽헌홍은 슬쩍 눈치를 보며 하현과 함께 이곳에 함께 왔다.

“이 주변은……. 정말 조용하군요.”

“어째서 이곳으로 폐관 수련을 오는지 알겠지?”

“네. 정말 수련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겠군요.”

저 멀리 하북팽가의 분가로 보이는 장원이 보였고, 그 주위에는 몇몇 민가가 있었을 뿐 다른 큰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분가에 가까이 다가간 하현은 장원 내부가 유난히 조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원 안에 사람이 얼마 없나 봅니다?”

“내가 알기로 선화 분가에는 하인까지 포함하여 대략 쉰 정도가 살고 있을 거야. 그런데 지금 같은 낮에는 무인들이 대부분 자리를 비울 거야. 이 주변을 순찰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거든.”

“그래서 이토록 조용한 것이었군요.”

하현은 그래도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팽헌홍이 말에서 내려 대문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기에 그 말을 전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없습니까? 저 팽헌홍입니다.”

그러나 안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팽헌홍이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현은 선풍과 팽헌홍의 말을 조용히 한 쪽에 묶어두고 나서 문 앞으로 갔다.

“이상해. 하인들이 아무도 없을 리가 없는데.”

“들어가 볼까요?”

“그러자.”

팽헌홍이 담을 넘으려 고개를 두리번거릴 때, 하현이 대문을 손으로 밀자 문이 살짝 열렸다.

“잠겨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그들은 장원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런데도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 분위기가……. 원래이런가요?”

팽헌홍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원래 이런 곳은 아닌데……. 본가만큼이나 활기가 넘치는 곳이야.”

그 말인즉슨 이곳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하현은 은밀하게 신법을 밟으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꽤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하현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의 예민한 후각에 무언가 걸린 것이다.

“팽형. 잠깐만요.”

팽헌홍은 하현이 제지하자 그대로 자리에 멈춰서 하현을 기다렸고, 하현은 코에 기운을 집중해 후각을 극대화했다.

“이건……!”

“왜? 뭐라도 있는 것이야?”

하현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말했다.

“피 냄새입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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