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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185화 (185/304)

185화

피 냄새라는 하현의 말에 팽헌홍의 가슴이 철렁했다.

“피 냄새라니?”

“그리 진하지는 않습니다. 서둘러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가자.”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며 하현은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을 상기했다.

남궁민과 함께 정 대인의 장원에 갔을 때였다.

하지만, 그때와 큰 차이점은 있다.

‘정 대인은 상인이었지. 환현문도 실제로 돈을 노린 것이었고. 하지만, 이곳은 분가라고는 하나 엄연히 무가(武家)다. 무슨 목적이 있기에……?’

어차피 혼자서 고민해봐야 아무 답도 없을 수 없는 일이다.

장원 안쪽으로 다가갔을 때, 팽헌홍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피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허나 아직도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나 큰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팽형. 제가 먼저 갈 터이니, 빨리 따라오세요.”

“뭐라…고?”

팽헌홍은 대답하던 도중 순간 하현의 신형을 놓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하현은 저 멀리 나아가 등만 보일 뿐이었다.

다리에 더욱 힘을 주어 하현을 쫓아가 보려 했지만, 하현은 점점 더 멀어지기만 했다.

‘격차가…….’

팽헌홍은 지금 하현과 점점 멀어지는 그 격차가, 비단 신법만의 격차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현의 등을 보며 한 발자국이라고 묵묵히 따라가는 것.

그가 수년 전부터 자신을 발전시킨 방법이었다.

커다란 전각 뒤쪽으로 건너간 하현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여기저기에 수많은 사람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많아.’

하현은 급하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한쪽 무릎을 꿇고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던 회색 무복의 무인이 하현에게 도를 내밀며 말했다.

“한패가……. 더 있었냐……?”

그는 당장 죽을 만큼의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손으로 틀어막고 있는 옆구리에서 계속해서 피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당장에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하북팽가 분가의 분이십니까?”

“그걸 모르고 왔다고 하지는 않겠지?”

그는 잔뜩 날이 선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만도 하다.

하현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쓰러져 있는 무인들은 두 종류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사내가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한 회색 무복을 입고 있는 자들과 붉은 무복을 입고 있는 자들.

아마 회색 무복은 하북팽가의 분가이고, 붉은 무복은 이곳을 침입한 자들이리라.

“남궁세가에서 왔습니다.”

“남궁세가에서는 여기에 왜?”

하현이 가슴에 새겨진 천자를 내보이며 말했지만, 그는 아직도 경계를 풀지 않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분들이 남아 있습니다. 빨리 응급처치를 해야 해요.”

하현이 다급한 말에 분가 무인은 이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건만, 하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간간이 신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스슥-

하현이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하듯 그의 눈 앞에 나타났다.

무인이 하현에게 반응할 새도 없이, 하현은 그의 다친 옆구리를 손가락을 모아 몇 번 두드렸다.

“큭, 으윽!”

그가 고통에 몸부림쳤으나, 하현은 그의 팔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몇 번 더 그의 상처 부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나서야 그는 무인을 눕혀주었다.

“이, 이건?”

“상처 부위를 점혈했습니다. 내장까지 상하셨군요. 지금 제가 한 건 말 그대로 피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임시방편을 해 놓은 것뿐이니, 움직이지 마세요.”

하현의 말대로 그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물이 흐르는 것처럼 콸콸 쏟아지던 피가 멈춘 것을 느꼈다.

그도 점혈법을 알고 있지만, 이토록 섬세한 수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하현은 누워있는 그를 그대로 둔 채로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리 움직이며 살아있는 사람들을 응급처치하기 시작했다.

무인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하현이였다.

“상철 형님!!”

그때 뒤늦게 나타난 팽헌홍이 쓰러져 있는 그를 보고서 크게 소리쳤다.

“헌홍이……?”

상철이라 불린 자는 하현을 볼 때보다 더욱 놀란 눈으로 팽헌홍을 보았다.

이곳에 있을 리 없는 아는 얼굴이 나타난 까닭이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혈사파 놈들이다. 우리 무인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려 쳐 들어왔다.”

헌홍이 쓰러져 있는 팽가 무인들을 헤아려 보니, 대략 열 명 정도가 되어 보였다.

그가 알기로 선화분가에 기거하는 무인은 대략 서른.

스무 명이 자리를 비운 새에 습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무인들은 모두 어딨습니까?”

“그게…….”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팽헌홍이 그의 말을 기다리자, 그는 말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한다는 듯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혈사파의 흔적을 찾았기에, 그들을 멸문시키러 갔다.”

“혈사파요? 지금 이곳에 쳐들어온 자들이 혈사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나도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겠다.”

그때 옆에서 하현이 말했다.

그는 어찌나 급하게 움직였는지, 이마의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을 정도였다.

“양동작전이로군요. 일부러 흔적을 두어 무인들을 유인하고, 실상은 이곳을 치려는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양동작전이라니……!”

하현은 좋지 못한 표정으로 그가 응급처치해 둔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팽상철을 제외하고 쓰러져 있던 팽가 무인은 모두 열 명.

그 중의 여섯이나 유명을 달리하고 살아있는 사람은 넷에 불과했다.

그자들도 중상을 입고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의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단은 의원이 필요합니다. 제가 모두를 지혈하고 응급처치를 해 놓긴 했지만, 제 능력은 거기까지입니다. 하인들은 모두 어디 있습니까?”

“하인들은 이 사달이 나자마자 몸을 피하라 전했네.”

“그게 어디입니까?”

팽상철이 겨우 손을 들어 전각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 전각 지하에 무공을 모르는 자들을 대피할 공간이 있네. 다들 무사히 들어갔는지 모르겠군.”

“제가 가보겠습니다.”

하현이 몸을 일으킨 순간, 그 방향에서 챙- 하는 병장기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깜짝 놀라 팽상철과 팽헌홍을 바라보았으나, 소리가 너무나도 작기에 그들은 듣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쾅-!

하현은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고, 전각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그가 밟은 땅이 출렁이는 착각마저 일더니, 하현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팽헌홍과 팽상철 모두 하현의 신형을 눈에서 완전히 놓쳐버렸다.

충분히 고수라 불릴만한 그들이 하현의 움직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현은 빨리 움직였다.

콰직!

순식간에 전각으로 향한 하현은 전각의 문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버렸다.

하현의 몸은 버티지 못한 문은 파스스 무너져 내렸다.

‘지하!’

하현이 눈동자를 돌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았다.

그는 바닥에 깔린 가죽 모포 한쪽이 들려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쪽으로 다가가 거칠게 모포를 들어 올리자, 아니나 다를까 마룻바닥에 네모반듯한 입구가 보인다.

까앙!

그리고 이곳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주듯 그 아래에서 다시 한번 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확신한 하현은 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지하로 내려가는 구멍이 보였고, 아래로 꽤 깊이 파놓은 듯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휘익!

하현은 주저 없이 구멍으로 다리부터 몸을 던졌다.

사다리를 하나하나 타고 내려가며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현의 생각보다 더 깊은 곳이었다.

대략 일곱 장(약 21m) 정도를 내려왔을 때, 땅을 느낀 하현은 다리에 기운을 담아 그대로 바닥에 찍어버렸다.

콰앙!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내공으로 발을 보호한 덕분에 하현은 전혀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웬 놈……!”

어둠에 눈이 적응되지 않아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건만, 하현은 기감으로 그가 떨어진 바로 앞에 두 명의 무인이, 그리고 더 깊숙한 쪽으로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 앞에는 누군가 그들을 지키려는 듯 혼자서 둘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 역시도.

“혈사파?”

“뭣……?”

하현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 둘에게 쇄도했다.

그들이 보인 반응만으로도 그와 가까운 두 명이 혈사파의 무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쉬익- 쾅!

하현은 지금까지 움직였던 속도 그대로 왼쪽에 있는 혈사파 무인에게 달려들었다.

발검도, 검술도 아닌 순수한 몸통박치기.

그 엄청난 속도에 대응할 수 없던 무인은 가슴팍에 그대로 하현의 어깨를 얻어맞고는 퉁겨나갔다.

지하의 벽까지 무자비한 속도로 날아간 그는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히더니 피를 한 움큼 뱉어내고는 그대로 혼절했다.

“이런 고수가……!”

나머지 한 명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당황한 듯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칠 하현이 아니었다.

그는 허리를 바짝 숙여 그에게 쇄도하며, 손날로 무인의 발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빠각!

“으아아아악!”

순식간에 발목이 두 동강이 나 부러져 버린 그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지하에서 울리며 더욱 끔찍하게 들렸다.

시끄러운 비명에 하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투둑- 빡!

그는 하현의 주먹에 기절하는 것으로 비명을 멈출 수 있었다.

“혹시 다친 분은 안 계십니까?”

하현이 몸을 일으키며 하인들에게 말했다.

“다, 다행히 저희 중에는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습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하인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뒤로 돌더니 저 둘을 막아서고 있던 무인에게 말했다.

“아가씨 덕분에 저희가 모두 살았습니다. 이 은혜는 제가 죽어서라도 꼭 갚겠습니다.”

“아가씨?”

하현이 그 말에 무인을 바라보았다.

그, 아니 그녀는 머리에 묶고 있던 두건을 풀어버렸다.

두건 안에 돌돌 말려있던 머리카락이 뒤로 풀어지며 긴 생머리가 드리워졌다.

“어……!”

하현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현의 기억에는 저렇게 큰 키가 아니었건만, 하현과 비슷할 정도로 키가 자랐고, 얼굴의 볼살이 빠져 동그랗던 얼굴이 갸름해졌다.

저 동그란 눈이 아니었다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팽주은?”

“하현……?”

그녀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하현에게 다가왔다.

“아니, 하현아. 네가 여기는 어떻게……?”

“일단 나가자. 위에서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팽주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인들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갔고, 하현도 쓰러진 두 혈사파 무인을 한 어깨에 한 명씩 둘러매고는 위로 올라왔다.

“삼촌!”

그가 올라왔을 때, 팽주은이 팽헌홍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은아. 조금만 이따가 얘기하자. 일단 의원부터 불러와야 할 것 같으니.”

팽헌홍은 조금 전 앞으로 나선 나이가 가장 많은 하인을 데리고 금방 사라져 버렸다.

주변에 누가 있을지 모르니 하인만 보낼 수 없었기에 함께 간 것이다.

“주은아……! 살아있었구나.”

“숙부! 많이 다친 거야?”

“그럴 뻔했는데, 저기 대협께서 구해 주셨다. 너와 연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팽주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은 밝은 곳에서 그녀를 다시 보았다.

삼 년이라는 세월은 팽주은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였다.

하현은 천천히,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오랜만이야.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는 않는 말이지만……. 많이 달라졌네.”

하현의 말대로 이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녀는 하현의 말에 기분이 좋아지려 했다.

삼 년 만의 재회.

그녀는 그동안 여러 의미로 하현을 잊어 본 날이 단 한 날도 없었다.

하지만, 하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말이었다.

“무공 수련을 정말 열심히 했나 봐. 정말 몰라보겠어.”

팽주은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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