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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05화 (205/304)

205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대기에 흐르는 기운이 온통 그의 존재감으로 넘실거렸다.

숨 쉬는 한 호흡마다, 공기에 섞인 남궁무룡의 힘이 느껴지는 듯했다.

“내 손자를 데려가겠다고?”

그가 내뱉는 단어 하나, 하나에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무룡!”

강대한 진기가 담긴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진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마륜대주 양진과 한바탕 손속을 겨루고 있던 팽길산의 목소리였다.

생각지도 못한 친우의 등장에 그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와아아! 검존 어르신이다.”

“됐다. 살았다!”

그리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던 하북팽가의 일반 무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마륜대원들에 비해 숫자도 부족하고, 실력도 밀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던 그들이다.

단 한 명이건만, 절대 고수의 등장은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다.

“죽지도…… 않고 살아 있었군. 남궁무룡.”

마통검 양효성은 분노한 남궁무룡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입을 열었다.

다만, 한껏 긴장한 내색은 지울 수 없었다.

저벅-

남궁무룡이 아주 가볍게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허나, 그 조금의 거리가 가까워 짐에 따라오는 결과는 엄청났다.

그것만으로도 마통검은 온몸이 옥죄이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하하. 죽는다니…… 내가?”

별것 없이 평범한 대답이건만, 마통검은 불가해한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번 강호행을 하기 전,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남궁무룡의 소재와 그의 현재 상태였다.

관망하기만 했던 정사대전도, 그가 직접 나섰던 정마대전도…… 두 전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남궁무룡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검이, 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혈검대주 채형석과 양패구상을 할 뻔했다더니……!’

신교 내에서는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다.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중원으로 뛰쳐나간 채형석이 죽었고, 그 와중에 남궁무룡도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는 것.

그가 알기로 혈검대주 채형석은 이제 극마의 중위에 올라 있다.

그렇기에 나이를 많이 먹은 남궁무룡의 기량이 그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기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일대가 얼어붙은 것 같다.

고수가 될수록 기감은 고도로 발달한다.

본능적으로 강자를 깨닫기에 더욱 수월하다는 말이다.

마통검의 본능은 쉴 새 없이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으득-

하지만, 그 경고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무인으로서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도 천마신교 내에서 손꼽히는 강자 중 하나다.

남궁무룡의 등장만으로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그는 태연하게 발걸음을 옮겨 바닥에 떨어진 검을 쥐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와는 꼭 붙어보고 싶었다. 지난번 전쟁에서도 만나지 못했지 않은가?”

그는 평정심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초고수의 면모였다. 비록 적이라고는 하나 검존이라는 이름은 모든 검수에게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그는 남궁무룡이 이런 기운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남궁무룡의 목을 떨어뜨리면 그 명성은 고스란히 나에게 넘어오게 된다.’

그런데, 약간의 기대마저 가지고 있는 마통검과는 다르게 남궁무룡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무관심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는 마통검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

이곳에 온 이후로 마통검의 마음이 가장 요동쳤다.

남궁무룡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농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던가?”

무심한 눈빛.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다.

그가 누구든, 전에 만난 적이 있든 간에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건 하현을 데려가려는 놈이었다는 것뿐.

저벅-!

남궁무룡이 또 한 발자국을 나갔다.

더 이상의 대화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슈욱!

갑자기 남궁무룡의 신형이 퉁겨지듯 쏘아졌다.

몇 발자국을 걸은 것 같지도 않은데, 그의 몸은 이미 마통검의 앞에 당도해 있었다.

땅을 접어 달린다는 축지법이 현현한다면 딱 저런 모습일 것 같은 신법이었다.

우웅-

남궁무룡의 검이 일렁인가 싶더니, 그는 이미 팔을 앞으로 뻗어 검을 출수하고 있었다.

파싯!

부지불식간에 겨우 막아낸 마통검의 검과 부딪히자 시퍼런 불꽃이 튀었다.

그 사이에 남궁무룡은 검을 두 손으로 옮겨 잡는다.

그리고, 그 검에 물이 차오르듯 순식간에 차오른 푸른색의 검강(黔罡)-

마통검은 그 눈이 멀 것만 같은 눈부신 빛무리가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기운을 끌어올려 검에 불어넣었다.

쩌어어엉-!

남궁무룡과 마통검의 검이 부딪히자 대기가 요동치는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으윽!”

비교적 무공의 수준이 낮은 몇몇 하북팽가의 무인과 마교의 평교도는 전투 중이라는 것도 잊고 두 귀를 막아야 할 만큼 거대한 기의 폭풍이었다.

‘어……?’

그런데 하현은 지금 기운을 끌어올릴 수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남궁무룡의 등으로 갔다.

“아!”

그의 등 뒤로는 기파가 전혀 흐르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남궁무룡은 이 와중에도 이 엄청난 기운으로부터 하현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콰아앙- 카카캉-

그리고 이어지는 빛살 같은 남궁무룡의 초식.

마통검은 그의 검을 겨우 막아내었다. 그는 속으로 몹시도 경악하고 있다.

남궁무룡이 휘두른 첫 번째 검을 막아내었을 때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와 상대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천외천(天外天)……!’

겨우 막아낼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검이 한철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보통의 철검이었다면 첫수에 깨져 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아무 초식도 보이지 않아.’

경악은 뒤에서 보고 있던 하현에게도 찾아왔다.

아무리 내공을 끌어올리지 못해 안력을 돋을 수 없다고 해도 그랬다.

분명히 그와 함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 창궁무애검법이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검이 어떻게 흘러서 마통검에 닿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나이에 기연이라도 얻은 것이냐? 어, 어떻게?”

마통검의 행색이 형편없다.

그의 의복 곳곳이 크게 갈라져 그 사이로 맨살이 다 보였다.

심지어 가느다란 자상이 그어진 덕에 피를 흘리기까지 하였다.

“기연?”

“네, 네놈은 분명 채형석과 동수를 이루었다고 들었거늘!”

“채형석…… 혈랑을 말하는 것이냐?”

검존의 검이 우뚝 멈추었다.

마치 옛 친우를 그리워하며 말하는듯한 어투였다.

남궁무룡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도 강한 힘을 가졌지만…… 혈랑에 비할 수는 없어 보이네.”

“뭐, 뭐라고?”

“수년 전 그와의 싸움에 나는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지. 지금은 아니고.”

“혈랑이 신마의 경지에 올랐었다는 말이냐?!”

“신마……? 하하. 그래. 기억나는군. 너희는 강함의 척도를 유치한 단어로 표현하긴 했지.”

부우웅-

남궁무룡의 주위로 엄청난 기운과 함께 바람이 몰려들었다.

그는 마통검에게 더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래. 채형석은 삼십 년 전 너희 교주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 방식대로 말하자면 신마의 경지에 오른 것이지.”

“어떻게 그가……?!”

그런데 그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눈 깜빡일 사이 남궁무룡의 신형이 사라진 것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그의 기운까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남궁무룡이 없었던 것처럼.

휙-!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보지만, 그 어느 곳에도 남궁무룡은 찾을 수 없다.

당황한 그는 걸음을 옮기려다 문득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는 하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하현의 시선이 그의 머리 위를 향해 있음을 깨달았다.

화아아악-!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늘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듯 엄청난 경력이 그를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는 발을 떼는 것도 불가능함을 느꼈다.

땅을 등에 이고 있다는 마고 거인의 심정이 이러할까?

그는 그 거력에 대항하여 가까스로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고오오오오-

마통검도 절세고수 중의 하나다.

그는 땅에 다리를 박아 고정하고서는 전체 세맥에 기운을 끌어올려 하늘로 밀어 올렸다.

“흐아아아압-!”

평생 이렇게 크게 기합을 질러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끌어올렸다.

뿌득 뿌득-

그의 팔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마통검은 순간 인간이 하늘을 지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힘에 잠시 이성을 놓아 버린 것이다.

빠지직-

“끄아아악!”

그의 묵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기합은 어느새 고통에 찬 비명으로 변해 있었다.

온몸의 모든 뼈와 근육이 이제 그만하라며 아우성치는 듯하다.

차라리 이대로 힘을 빼버리면 이 고통이 멈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의 묵검이 쩌억 하고 갈리지는 느낌이 생생하다.

“허허…….”

검이 쪼개지는 순간, 그는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너무나도 큰 차이에 지금껏 지내 온 세월이 무상하다고 느껴졌다.

겨우 이 순간을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수련에 매진해왔나 하는 허무함마저 깃든다.

‘내가 무슨 생각을……!’

그 순간,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눈에 힘을 주고 마지막 힘까지 모두 짜내어 남궁무룡에 대항했다.

푸하학!

그 순간, 그의 어깨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마통검은 비명까지 속으로 삭여내며, 얼마 남지도 않은 진기를 용천혈에 집중하여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이번의 진각은 대항을 위함이 아니라 구명을 위함이었는지, 그의 신형이 횡으로 크게 벗어났다.

하늘에서 내려온 남궁무룡의 검은 그대로 그의 몸을 지나 대지에 작렬하였다.

콰아아앙!

검이 바닥에 닿으며 굉음과 함께 지축을 흔들었다.

정말로 지진이 난 것 같은 위력이었다.

이 일대의 모든 이가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혈투를 벌이던 도제 팽길산과 마륜대주 양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온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인 그들마저도 경악의 표정으로 검존의 신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쩌어어억!

남궁무룡의 검에 닿은 땅이 갈라졌다.

깊게 패인 정도가 아니라, 갈라졌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일 정도였다.

사람의 힘으로 일 장여 깊이의 절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허억, 허억!”

한쪽 팔을 내주고 땅을 굴러 도망친 마통검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숨이 턱에 찰 정도로 육신의 체력마저 모두 소모한 것도 맞지만, 지금의 가쁜 숨은 말도 안 되는 일을 목도한 이의 공포심에서 우러나는 숨결이다.

그의 팔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그는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잇-”

그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양진이었다.

그는 팽길산이 남궁무룡의 신위에 한 눈이 팔린 틈을 타 마통검을 향해 보법을 밟았다.

순식간에 그의 옆에 당도한 그는 혈도를 짚어 지혈부터 하고는 소리쳤다.

“정신 차리시오!”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는지, 마통검이 양진을 돌아보았다.

“도망쳐야 하오. 이대로 죽을 셈이오?”

“…….”

그가 서둘러 마통검의 몸을 일으킬 때까지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양진이 거칠게 마통검의 몸을 끌어내고는 소리쳤다.

“마륜대! 장로님을 엄호하라. 이곳에서 허무하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시다!”

각지에 흩어져 하북팽가의 무인들과 전투를 벌이던 마륜대가 속속들이 한자리로 모였다.

하북팽가 무인들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싸움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더라면 많은 수의 무인들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희의 희생은 우리 천마신교가 무림을 일통하는 데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다들 목숨을 아끼지 말고 시간을 벌어라!”

“네. 대주님!”

양진이 우렁찬 대답을 뒤로하고 마통검을 업고서 숲으로 뛰었다.

하현은 자신들의 죽음을 도외시하며 할아버지에게 달려드는 마륜대를 보며 꼭 광신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신도…… 맞구나…….’

생각해보니 광신도가 맞다는 생각과 함께 하현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심각한 내상으로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하현은 여기서 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콰앙-!

할아버지가 한 번 검을 휘두르자 굉음과 함께 마륜대 두 명의 몸뚱어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런데 하현의 눈은 계속 감긴다. 검존의 신위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지만, 이미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하현은 어둠에 잡아먹히는 듯한 기분이 일었다.

깊은 늪에 빠지듯, 하현의 정신은 아득한 어둠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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