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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08화 (208/304)

208화

시종일관 쾌활한 얼굴을 하고 있던 소학산이 조금은 진중해졌다.

그는 비검을 들었다 놓았다가도 해보고, 던졌다가 받아보기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비검을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네.”

“아! 그래요? 다행이군요.”

“그런데 그게 다행히 아니란 말이지.”

눈을 끔뻑이는 하현을 보며 소학산이 입을 열었다.

“자네 입으로 조금 전에 사천당문의 비검이라고 하지 않았나?”

“네. 그랬었죠.”

“당문의 암기는 함부로 복제할 수 없네. 당가의 무인들은 자신들의 암기를 목숨과도 같이 생각하곤 하지. 그렇기에 그들의 허락 없이 함부로 암기를 따라 만들었다가는 치도곤을 치를 수도 있네.”

하현은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소학산이 그보다 살아온 세월도 훨씬 길고, 경험도 많을 것이기에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당문의 허락을 받는 경우에는 괜찮은 겁니까?”

“그렇지.”

“그러면 일단 만들어 주세요.”

“응?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하현이 쿡쿡 웃었다.

“아니요. 똑바로 들으신 게 맞아요. 일단 만들어 주시면 쓰는 건 제가 허락을 받고 나서부터 쓰겠습니다.”

“어허. 이 사람이.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라니까?”

“제가 사용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으면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 아니에요? 문주님만 말씀을 안 하시면요. 맞아. 주은아 너 혹시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할 거야?”

“절대 안 하지.”

곧바로 돌아온 대답에 하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들으셨죠? 그리고 팽가로 돌아가자마자 당가에 파발을 보낼 테니까 허락을 받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예요.”

소학산은 자신만만한 하현의 얼굴을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척 보기에도 굉장히 귀한 물건인 것 같은데, 당가와 중한 인연이 있으니 그것도 받았겠지. 알겠네. 일단 만들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하현과 팽주은은 소학산에게 인사하고는 철무문을 나섰다.

이제 다시 팽가로 돌아가려는데, 팽주은이 하현에게 물었다.

“현아. 너 새로운 검을 받게 되면 지금 차고 있는 그 검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적룡검 말하는 거야?”

“응.”

하현은 적룡검을 검집째로 허리에서 풀러 들어 보였다.

“음…… 아직은 생각해둔 건 없는데. 아마도 안 쓰게 되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까 잘 모셔두기는 하겠지만.”

“역시 그렇겠지?”

“그런데 왜?”

“아니, 갑자기 다른 생각을 하나 떠올려서 그랬지.”

“무슨 생각인데 그래? 궁금하게.”

팽주은이 피식 웃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조금은 어이없다고 느낀 듯했다.

“아니, 사실 나는 왠지 네가 검을 두 자루 들고 다닐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응. 너는 여러 가지에 다재다능하니까. 검도 두 자루를 들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마다 쓰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팽주은의 말에 하현이 그런 상황을 떠올려 봤다.

정말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현은 검법 이외에도 장법도 즐겨 사용한다.

그런데 검을 검집에 다시 넣을 시간이 부족할 때는 땅에다 검을 꽂아두고 장법을 전개한다.

그런데 싸움이 길어져 다시 검법을 사용하려 할 때는 검을 꽂아두었던 곳으로 가서 검을 회수해야 했기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로 검을 두 자루를 가지고 다니면 괜찮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하현은 문득 한 가지 약점을 깨닫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검을 패용하고 다니는 게 문제야. 양쪽에 검집을 달고 다닐 수도 없고, 한쪽에 두 개를 모두 매달고 다니자니, 움직일 때 걸리적거릴 것 같고. 좋은 방법이 없으려나?”

하현의 말이 끝나자, 팽주은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하현을 붙잡았다.

“하현아. 여기 잠깐만 있어 봐. 좋은 수가 있어.”

그녀는 하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조금 전 철무문이 있었던 그 거리다.

잠깐 기다리고 있으려니 팽주은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서 다시 나타났다.

“이게 뭐야?”

“아까 공방이 많았잖아. 가죽 공방에 가서 가죽을 좀 사 왔지. 잠깐 저쪽에 가서 앉아봐봐.”

그녀는 한산한 공터로 하현을 데리고 가 앉히더니 가죽과 함께 사 온 작은 공예도와 두꺼운 실 따위로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별 계획 없이 손이 대강 가는 것 같았건만, 금세 그녀는 가죽으로 모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

잠자코 그녀를 지켜보던 하현은 팽주은이 무엇을 만들려는 지 알아챘다.

등 뒤로 검집을 고정할 수 있는 가죽띠였다.

검이 뒤로 가 있으면 움직임의 제약도 적고, 가죽띠는 어깨와 옆구리를 지나도록 사선으로 차는 것이기에 거치적거릴 일도 없다.

“자. 대충 만들었다. 한 번 해봐.”

그녀는 순식간에 만들어 낸 가죽띠를 하현에게 건넸다.

바로 착용해본 하현은 이미 끌러져 있는 적룡검의 검집을 등에 매달았다.

“검을 뽑아볼래? 혹시 걸리지는 않으려나.”

스릉-

그녀의 우려와는 달리, 적룡검은 스산한 소리를 내며 아주 부드럽게 뽑혔다.

“잘 된다. 다행이야. 일단은 대강 이런 느낌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내가 집에 돌아가서 더 꼼꼼하게 마무리해 줄게. 어차피 네 검이 완성될 때까지는 계속 우리 팽가에 있을 거잖아?”

“아마도 그렇겠지?”

팽주은은 하현이 차고 있던 가죽띠를 다시 넘겨받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현아. 빨리 가자. 이러다가 해 떨어지겠어.”

“응. 너 먼저 앞장서.”

그녀는 하현을 앞서 나갔다.

어째서인지 그 발걸음이 무척이나 경쾌해 보였다.

* * *

중원 어딘가에 위치한 신강양가의 장원.

마륜대주 양진은 한 사내와 독대하고 있었다.

그는 키가 다섯 척 밖에 되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노인이었는데, 그가 흘리는 기도는 무시무시했다.

그는 굳이 그의 기운을 숨기거나 하지 않았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남궁무룡은 건재하다는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가주님. 삼 장로를 살리기 위해 마륜대 전원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주님께는 보고를 올렸고?”

“네. 그런데 아직 대답은 없었습니다.”

양진은 마주한 사내를 보고 가주라 불렀다.

신강양가 가주 양귀진.

그는 남궁무룡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엄청난 분노를 나타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면서, 자신은 유유자적 강호를 즐기는 것인가?”

자세히 보니, 그의 상반신은 일반적인 성인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키가 이렇게 작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양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한다.

신강양가주는 양쪽 무릎 아래에 정강이 대신 의족이 달려 있었다.

예전 정마대전 때 남궁무룡과 싸웠던 결과가 이것이었다.

우르릉-

그가 분노를 내뿜자 그와 양진이 함께 있던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거렸다.

마교의 삼가중의 하나라는 양가의 가주가 내뿜을만한 절대자의 기도였다.

“가, 가주님. 고정을…….”

양진이 그를 달래려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가주를 불렀다.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이곳 마교에서 그가 아직도 가주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가 아직도 마교에서 손꼽힐 만큼의 강자이기 때문이다.

“유가에서도 아직 답변은 없는가?”

“네. 아마도 이번 일에서 발을 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여우 같은 것들. 이래서 유가 놈들은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같은 마교 내의 가문이기는 하지만, 천마유가와 신강양가는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다.

천마신교의 힘의 논리를 앞세워, 항상 패도적이고 진취적인 가풍의 신강양가와는 달리 천마 유가는 언제나 의뭉스럽고 술수를 사용하는 것을 즐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의 차이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 골은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다.

“어차피 교주님께서 우리 천마신교가 다시 중원에 진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셨다. 남궁무룡에게 복수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남궁무룡에 대해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그의 손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손자……?”

양귀진은 양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현재 남궁무룡에 대한 생각으로도 머리가 가득한데, 여기서 왜 손자를 꺼내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표정을 확인한 양진이 급히 입을 열었다.

“남궁무룡의 손자는 제가 얼핏 보기에도 뛰어난 자질이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 보였으나, 수년만 지나도 분명 우리 신교의 큰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뛰어난 자질을 지닌 후기지수는 언제나 있었다. 허나 다들 그 기대치만큼 성장한 자는 몇 없지. 그리 호들갑 떨 일이더냐?”

양진이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삼 장로께서 그랬습니다. 그와 검을 부딪치는 순간, 소교주가 떠올랐다고.”

“뭐……?”

양귀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는 대수롭지 않아 하던 표정에 놀람과 흥미가 깃든다.

“삼 장로의 말이니 능히 믿을만한 말일 터. 지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누가 있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삼장로와 저, 가주님 뿐입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이 말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 남궁무룡의 손자에게 사람을 붙여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오거라.”

“네. 알겠습니다. 가주님.”

양진은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즉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양귀진은 오묘한 눈빛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소교주와 같은 자질이라... 그래서 삼 장로가 탐을 냈던 것인가? 지금 삼장로에게 가봐야겠다.”

“알겠습니다. 지금 삼장로는 의무전에 있습니다.”

양귀진은 곧장 몸을 움직였다.

짧은 의족이건만, 마치 제 몸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마륜대주 양진은 불안한 표정으로 쥐 죽은 듯 숨을 죽이고 그의 뒤를 쫓았다.

‘아니, 이제는 마륜대주가 아니지.’

그는 속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번의 강호행에서 마륜대 서른 명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번 강호행이 성지를 다시 탈환하라는 교주님의 직접적인 명령 때문에 나온 것이기도 했고, 부하들을 모두 희생한 것도 마통검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책임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불안하게도 교주님에게서는 아직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제길, 한동안은 세가 안에서 두문불출 해야겠군.’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 그들은 마통검이 누워있는 의무전에 도착했다.

양귀진은 익숙하게 올라가더니 한 침상에 누워있는 마통검을 찾아갔다.

그의 그는 몸통에 온통 붕대를 둘둘 말고 있었는데, 남궁무룡의 검에 의해 깨끗하게 잘린 오른 어깨 아래부터가 허전해 보였다.

“삼 장로는 지금 잠들어 있습니다.”

“상태는 좀 어떤가?”

양귀진이 옆에 기립해 있는 의원에게 물었다.

그는 곧바로 머리를 조아리며 그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 많이 좋지 않습니다. 일단은 보시다시피 원래 검을 잡던 오른팔을 잃어버리셨기에, 평생 검술 공부를 잃어버리신 것이나 다름없을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온몸의 기혈이 모두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기경팔맥, 임독양맥이 모두 상하여 앞으로 기운을 끌어올리시기에 매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의원을 말은 마통검이 앞으로 다시는 무공을 쓰지 못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손꼽히던 강자인 그이기에, 양귀진을 비롯한 모든 무인들은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남궁무룡…….”

양귀진이 나직이 그의 이름을 내뱉었다.

그 목소리에는 남궁무룡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경탄마저도 섞여 있었다.

“모두 나가거라. 삼 장로와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다.”

“알겠습니다.”

썰물 빠지듯, 모든 무인이 나가고 나서 양귀진은 마통검의 머리에 살포시 손을 얹고 기운을 흘려보냈다.

“으음…….”

그러자 마통검이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다.

느껴지는 고통이 보통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눈을 뜨자 눈에 들어오는 가주의 모습에 그는 흠칫 놀랐다.

기절한 게 아니라, 잠을 자고 있었음에도 그는 양귀진이 온 지 알아채지도 못했었다.

내공을 쓸 수 없어 기감이 보통 사람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가주…님! 죄송합니다…….”

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목소리를 낼 힘도 없어 보였다.

중년인의 외모를 하고 있는 그이건만, 며칠 만에 순식간에 늙어버린 듯했다.

“일어나지 말아라. 일단 몸부터 회복할 생각을 해라.”

“알겠습니다…….”

“물어볼 것이 있어 찾아왔다.”

“네. 말씀하시지요.”

“남궁무룡의 손자에게서 소교주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물어보러 왔다.”

마통검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 이유가 남궁무룡이라는 이름을 들어섰는지, 소교주라는 호칭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남궁무룡의 손자는…….”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상단전이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상단전이라고 했느냐? 더 설명해보아라.”

“네. 가주님.”

마통검은 천천히 자신이 느낀 하현에 대해서 전부 이야기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양귀진은 점점 하현에 대한 흥미가 커져갔다.

‘이거 잘만 하면…….’

천마신교의 삼대마가라고 하지만, 셋 중에서 가장 약한 위세의 신강양가다.

양귀진은 이 정보를 잘만 이용하면 가문의 권세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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