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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09화 (209/304)

209화

벌써 칠주야가 흘러 하현이 검을 받기로 한 날.

하현은 오늘도 팽주은에게 부탁해 철무문에 가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새벽 일찍부터 소학산이 하북팽가에 찾아와 대문을 두드린 까닭이었다.

소학산은 하인들에게 지금 당장 하현을 불러 달라고 떼를 썼고, 하현은 자다가 깨어 눈을 비비며 그를 맞이했다.

“문주님. 그렇지 않아도 오늘 갈 생각이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오늘 새벽에 이 검이 완성되었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네.”

그는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상태였다.

이런 사람이 검을 때리고 식히는 과정은 어떻게 견뎌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것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런데 지금 시간이 너무 일러서 팽가주님도, 저희 할아버지도 아직 기침하지 않으셨을 텐데요.”

“그 두 분이 무슨 상관인가? 검의 주인은 자네인데.”

“그건 그렇지만…….”

“잔말 말고, 이것이나 봐주게나.”

소학산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천에 쌓인 기다란 것을 하현 앞에 내놓았다.

길이나 폭으로 보아, 의뢰했던 검으로 보였다.

“이것이?”

“그래. 한 번 펼쳐 보게나. 분명히 마음에 들 터이니.”

검집을 감싸고 있는 천마저도 굉장히 고급의 것으로 보였다.

하현은 조심스럽게 천을 풀어헤쳤다.

그러자 흑색 바탕에 붉은색과 금색으로 고급스럽게 장식된 검집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그냥 흑색이 아니다.

흑룡이 검집을 따라 승천하고 있는 듯한 장식이 수놓아져 있고, 눈이 붉은색에 황금색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었다.

“와…….”

하현은 이 순간 감탄 말고는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 표정을 본 소학산은 입꼬리가 귀에 닿을 정도로 웃었다.

“하하하! 검집에만 감탄하고 있으면 쓰나. 어서 검을 뽑아보게.”

“알겠습니다.”

검 손잡이는 적룡검과 매우 흡사했다.

검병의 길이가 아주 조금 더 길고, 두께도 조금 더 나갔는데 앞으로 하현이 성장하며 손가락이 자랄 것을 염두에 둔 듯했다.

스르릉-

검을 뽑아내자 서늘한 소리와 함께 묵빛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통검이 사용했던 흑색 검은 거무튀튀하게 빛을 빨아들이는 듯했는데, 이 검은 반짝이는 것이 빛을 반사하는 것 같았다.

같은 현철로 만들었다는 것이 쉬이 믿기지 않았다.

“검신의 뼈대는 현철로 만들었고, 겉을 흑요석과 금강석을 섞어서 제련했네. 내공이 충분치 않다면 검날을 유지하기가 힘들겠지만…… 자네 정도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또 있었다.

혈조가 마치 용의 비늘을 형상화한 구불구불하기까지 했다.

“혈조가 굉장히 특이해 보이네요.”

“그렇지? 그건 우리 철무문에서도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네. 혈조를 파낸 검은 찌르기에는 유리하지만, 벨 때의 강성은 크게 줄어들지. 하지만, 그런 모양으로 파내면 검의 무게는 더더욱 줄이면서도 강성은 떨어지지 않는다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장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쳤다.

하현은 감상하듯 검을 몇 번 더 바라보고는 다시 검집에 조심히 넣었다.

그리곤 소학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이름 말고는 어울리는 이름이 없겠군요. 흑룡검.”

“하하! 맞네. 내가 생각한 이름도 그것이었지. 청룡, 적룡에 이은 흑룡. 하지만 흑룡검은 앞선 두 형에 비할 바 없는 명검이네. 내가 보증하지.”

하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룡검.”

그는 나직이 새롭게 맞이한 검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앞으로 이 검이 손에 익게 하려면 또다시 손이 부르트도록 검을 휘둘러야 할 것이다.

아무리 혈조를 잘 파내었다고 해도, 애초에 현철은 무거운 금속이라 적룡검보다도 훨씬 무겁다.

길이, 두께, 무게가 모두 다른 이 검을 처음부터 길들일 생각을 하니 하현은 조금은…… 기대되었다.

분명히 앞으로 고생길이 훤히 열려 있건만, 그는 흑룡검을 잡는 순간 깨달았다.

‘이 검을 완벽하게 다루게 되면 나는 또 진일보하겠구나.’

이번 하북행에서 현재 자신의 수준을 확실히 깨달았다.

아무리 주변에서 천고의 기재라고 치켜세워 준다고 하더라도, 아직 무림의 최고수들과 만나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께서 구해주신 덕분에 겨우 살았지.’

하현은 당장 그의 눈앞에 마주한 지상 과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최대한 빠르게 소위 말하는 고수의 반열에 올라서는 것.

“정말 감사합니다. 문주님.”

“대장장이로서의 최고의 기쁨이 무엇인 줄 아는가?”

“음…… 세상에 신병이기라고 이름을 떨칠 때 아닙니까?”

“그럴 때도 굉장히 기분이 좋지. 하지만, 그것은 두 번째의 기쁨이네.”

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보다 더한 기쁨이 있으시다고요?”

“그래. 병기를 만든 자의 이름을 잃어버릴 때지.”

그는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의 하현을 보고는 허허 웃고 나서는 말을 이었다.

“훗날 온 무림에 이름을 떨치는 날이 오게 되면 사람들은 병기를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그 고수의 성명병기가 되어 버리지. 먼 고대의 관운장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청룡언월도를 만든 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지. 다만, 그 병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상징이 될 뿐.”

“아…….”

“난 자네와 흑룡이 그리되면 좋겠네. 자네의 이름을 들으면 흑룡검이 떠오르고, 흑룡검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레 자네의 이름이 떠오르는 그런 것 있지 않은가?”

하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마음에 꼭 드는 병기를 가지게 되어 기쁜 마음뿐이었지만, 괜스레 책임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알겠습니다. 제가 꼭 그리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역시 젊음이 좋군. 열정이 느껴져.”

그는 가지고 온 또 다른 상자를 하나 하현에게 건넸다.

“이건 자네가 나에게 따로 부탁한 비검의 복제품이네.”

“이것도 있었죠. 정말 감사합니다.”

“뭐, 정성 들여 만들기는 했지만, 만들면서 이렇게 찜찜한 건 오랜만이었네.”

“찜찜하실 것 없습니다. 이미 당가에 파발을 보냈고, 이르면 오늘이나 내일 중에는 답변이 돌아올 겁니다.”

“그래. 자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알겠네.”

“만들어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양손을 내젓고서는 하현에게 말했다.

“이제 곧 하북을 떠난다고 들었는데. 조심히 돌아가게나. 나중에 이 근처에 올 일이 있다면 언제든 들러도 좋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언젠간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은혜는 무슨. 현철이랑 제작 대금은 팽가주님께서 다 치르셨으니 인사는 그분께 하게나. 그러면 이제 돌아가 봐야겠군. 자네랑 얘기하다 보니 쇠를 두드리고 싶어졌어.”

“도제 어르신이나 저희 할아버지한테 인사도 안 하고 가시는 겁니까?”

“오늘은 자네를 만나러 온 거래도? 이제 돌아가야지.”

그는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하현에게 또다시 인사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무림인이 아닌 것을 차치하더라도, 정말 자유분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소학산만큼이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진 남궁휘연이었다.

‘휘연 형도 귀주성으로 갔다는 거 같던데.’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소식이었다.

마교의 본거지가 귀주성에 있을지도 몰라 각 문파에서 증원을 보내기로 했다고.

당가에서 몸을 회복하고 있던 남궁휘연도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지만, 귀주성으로 향했다고 들었다.

당가주 당규호에게 비검의 복제를 허락받는 서신에 휘연의 안부도 물어본 참이었다.

“하현아.”

그때 방 밖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하현은 재빨리 일어나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일찍 일어나셨네요.”

“그래. 너도 일어나 있었구나.”

남궁무룡은 탁자 위에 꺼내어져 있는 흑룡검을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오호. 이 검이로구나. 이른 아침부터 철무문주가 다녀왔던 것이냐?”

“네. 조금 전에 막 돌아갔어요.”

“하하. 그는 여전하구나. 나와도 오랜 연이 있는 친구란다. 실력으로는 의심할 수 없는 장인 중의 장인이지. 역시 대단한 검이구나. 나도 탐이 날 만큼.”

그는 한참 동안 검을 살펴보다가 하현에게 건네주었다.

하현은 문득 할아버지의 행색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의복도 벌써 다 챙겨 입으시고…….”

지금 당장이라도 외출을 할 것처럼 단단히 옷을 껴입은 모습이다.

조금은 헐렁해 보이는 녹색의 장포 안에는 하현이 즐겨 입는 남궁세가의 무복이 엿보였다.

“할 말이 있어서 말이다. 조금 급작스럽겠지만, 같이 세가로 돌아가기는 조금 힘들 것 같구나.”

하현의 머릿속에 조금 전까지 생각했던 귀주성이 스쳤다.

“아……! 혹시 귀주성으로 곧바로 가시려는 건가요?”

남궁무룡이 살짝 놀란 눈으로 하현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한 번에 맞출 줄은 몰랐던 것처럼 보였다.

“그래. 어쩌면 오랜 악연을 끝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으니.”

그런데 하현의 미간이 조금 좁혀졌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해요. 할아버지.”

“무엇이 이상해?”

“아무래도 함정일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어째서?”

하현은 자세를 고쳐 앉고서 똑 부러지는 얼굴로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하북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혈마와 싸우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곧바로 신강양가의 고수들이 들이닥쳤죠.”

“그랬지?”

“만약 귀주성이 본진이라면 전각에 불을 놓고 도망친 자들이 귀주까지 가지도 못했을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요.”

하현의 의심은 타당해 보였다.

검존 남궁무룡이 안휘에서 하북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도 거의 이틀이 꼬박 걸렸다.

그런데 하북에서 귀주성까지는 안휘성까지의 거리의 세 배는 더 멀다.

며칠 만에 양진과 마통검이 나타난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 하현이 네 말이 맞다.”

남궁무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자가 날카롭게 짚어낸 것에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왜 굳이 귀주로 가시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 이야기를 들은 남궁무룡은 빙긋 웃었다.

그가 듣기에도 하현의 말이 상식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마교의 본거지가 귀주에 없어도 상관이 없단다.”

“네?”

“그리고 함정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지.”

하현의 얼굴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 더더욱 가지 않으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남궁무룡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는 손가락 두 개를 하현의 앞으로 펴보았다.

“그래도 내가 가려고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단다. 먼저 첫 번째. 이미 나 말고도 수많은 무인이 이미 귀주성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같이 그쪽으로 가지 아니하면 몰라도, 이미 많은 무인이 목숨을 걸고 귀주성에 모일 것이야.”

“남들이 다 간다고 해도…… 아! 할아버지가 가시면 귀주성으로 향하는 정파 무림에…… 엄청난 전력이 되겠군요.”

“바로 그것이다.”

하현이 쉽게 엄청난 전력이라 했건만, 남궁무룡의 무력은 전황을 완전히 뒤집을 수도 있는 힘이다.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을 수도 있는 전투도, 남궁무룡이 합류함으로써 수많은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남궁무룡은 가볍게 하현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바로 검존 남궁무룡이기 때문이다.”

“네?”

“그곳이 마교의 본거지여도 좋고, 함정이어도 좋다. 허나, 그게 함정이라고 한들……. 그들이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아, 그건…….”

“이토록 큰 함정을 파려면 그만큼 수많은 인원이 필요할 터. 그것을 부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말하는 검존의 얼굴은 매우 평온했다.

그저 어제 차를 한 잔 마셨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한 얼굴로 내뱉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엿보였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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