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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17화 (217/304)

217화

호북성 의성지역의 뒷골목을 주름잡고 있는 맹호파의 주인인 비장호.

그는 거나하게 취해서는 그의 처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그가 거느리고 있는 대여섯의 파락호가 그를 모시고 있었다.

“하하! 달이 참 좋구나. 얘들아. 우리 집에서 한 잔씩들 더 하지 않겠느냐.”

“형님. 너무 과음하신 것 아니오? 내일 시장에 파고든 서서파 놈들을 처단하러 간다고 하시지 않았소?”

“그깟 놈들. 내가 나설 것까지 있겠느냐? 아래 애들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들은 한밤중임에도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민가를 지나갔다.

이 목소리에 깬 양민들도 여럿 있었을 것이나, 아무도 그들에게 항의하지 못했다.

먼 법보다는 가까운 주먹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들은 변변찮은 무공도 익히지 못했거늘, 이곳 의성지역에서는 신처럼 군림했다.

“자. 모두 나를 따르거라!”

비장호가 의기양양하게 그의 부하들에게 말하고, 다시 골목길을 걸어가려는데 반대쪽 끝에 사람의 인영이 서 있었다.

“형님. 웬 놈이 저기 골목 끝에 서 있습니다요.”

“어떤 겁대가리 없는 놈이 우리 앞길을 막느냐?”

비장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골목 끝을 바라보았다.

“비장호. 오랜만이군.”

“어디서 빌어먹던 게 우리 형님 존함을 그렇게 함부로 부르는 것이냐.”

“웬 놈이냐!”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운후였다.

그는 파락호 무리에게 거침없이 걸어갔다.

“무림인? 형님 아는 사람입니까?”

“내가 무림인을 어떻게 알겠느냐. 너희들 뭐 선을 넘는 짓이라도 한 것이야?”

“아닙니다. 저희가 형님이 시킨 일 말고 또 뭐를 했겠습니까. 아무것도 한 것 없습니다.”

그들이 설전을 벌인 와중에도 운후는 그들에게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 네놈은?”

그러다 운후가 꽤 가까이 다가왔을 때, 비장호가 운후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희미한 달빛 덕분에 꽤 가까이 오고 나서야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나를 기억하는가?”

“네놈은 흑석파 두목이 아니더냐! 양양에 있어야 할 네놈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비장호는 운후의 얼굴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가 어떻게 운후를 잊겠는가? 양양에서 운후가 이끌던 흑석파에게 패배하여 그곳에 비하면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이곳까지 쫓겨난 그다.

평생 그를 잊어본 적도 없었다.

“흑석파라…….”

그런데 운후는 그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 흑석파라는 이름에 조소를 지었다.

어쩐지 철없던 날의 과거를 들킨 듯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흑석파가 양양에서 사라졌다는 얘기는 들었다. 어떤 고수에게 모두 전멸당했다고 하던데, 이곳으로 영역을 옮기려 하는 것이냐?”

운후는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듯 인상을 찌푸렸다.

죽은 교룡문주에 의해 동료들이 살해당하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니, 이제 그것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을 뿐이다.”

“물어볼 것이라니?”

“제갈세가에서…….”

“또 제갈세가야?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몰라!”

비장호는 아직 운후의 말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화들짝 놀라며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너무나도 수상한 태도에 운후가 눈을 번뜩였다.

“무언가 아는 것이 있구나.”

“없, 없다니까?!”

“아는 것을 모두 말해!”

운후가 신법을 전개해 비장호에게 접근했다.

그가 무공을 익혔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비장호가 혼비백산하여 소리쳤다.

“저, 저놈을 잡아라! 별 것 없던 놈이다. 우리 숫자가 훨씬 많아!”

“예! 형님!”

팍!

그의 외침에 파락호들이 운후에게 달려들었다.

비장호에 대한 충성심인지, 아니면 술에 의한 취기인지, 그들은 운후가 신법을 펼치는 것을 보았음에도 거침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겨우 이 정도의 주먹을 믿고 사람들을 핍박했던 건가?’

운후에게 날아오는 여섯 개의 주먹.

하지만, 그는 이 주먹들이 너무나도 느리다고 생각했다.

주먹을 뻗는 자세도 엉성하고, 힘의 분배도 적절치 않다.

운후는 그들에게서 무공을 배우기 전의 그를 겹쳐 보았다.

휘익- 퍼버벅- 빠악!

하지만, 감상은 그리 길지 않았다.

파락호들의 주먹을 피해낸 운후는 주먹 몇 번으로 그들 모두를 때려눕혔다.

검은 뽑을 필요조차 없었다.

충만한 내공이 깃든 그의 주먹은 한 방에 한 명씩 기절시키기에 충분했으니까.

“어어?! 너 어디서……!”

“살고 싶으면 아는 걸 모두 말해라.”

스릉-

운후가 검을 뽑아들며 그에게 다가가자, 비장호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대도!”

“그래? 그러면 죽어라.”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우리, 말로 하자. 말로.”

“정파의 무인으로서 양민들의 고혈을 빠는 파락호를 베는 것뿐이다.”

저벅!

검을 빼 들고 비장호에게 한 걸음 크게 걸어가자, 비장호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운후가 그를 따라가 치켜든 순간.

“제, 제가 아는 것은 얼마 없지만,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살려주십쇼, 대협!”

비장호가 별안간 운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운후는 김이 빠지는지 헛숨을 내뱉고는 검을 다시 검집에 갈무리했다.

“또 제갈세가라는 게 무슨 소리냐?”

“얼마 전에 한 고수가 찾아와 제갈세가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하라며 저희를 협박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는 것을 모두 말하지 않으면 저희를 모두 죽이겠다면서요.”

“그자가 누구지?”

“저도 모릅니다. 복면으로 얼굴을 꽁꽁 감싸고 있었습니다.”

운후는 비장호를 내려보았다.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생에 집착하는 모습.’

그는 비장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그가 이토록 열심히 수련하는 것도 이 강호라는 세계에서 살아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믿어주지.”

“정, 정말이십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내 주인께 해라.”

“주인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운후는 비장호를 일으켜 세웠다.

“따라와라. 이쪽이다.”

“제 동생들은 어떻게…….”

“이대로 내버려 두면 몇 시진 뒤면 깨어날 것이다. 지금 네가 이 자들을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따, 따르겠습니다.”

운후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비장호가 고개를 조아렸다.

운후는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말없이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하현이 머무는 객잔을 향해서였다.

* * *

“그러니까, 양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그 주위 방파와 세가에 대해 조사를 했고, 그중에 제갈세가가 있었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것 말고는 제갈세가와 연관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현이 머무는 객잔.

운후가 데려온 비장호는 하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현에게 직접적인 잘못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하현은 양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파락호나 사파문도를 몹시도 싫어했다.

그래서 그 태도가 곱지는 못했다.

“제갈세가에 무슨 특별한 소식이라도 있었나 보죠?”

“저희가 알기로 별것은 없었습니다. 항상 정파는 비슷하지 않습니까? 호북 양번에 생겨난 살수문파를 멸문시키러 간다던가, 하남성 경계에 비적 떼가 출몰하여 해결하러 간다던가…….”

“그게 다예요?”

“네. 저희가 유심히 보는 것은 그런 거대 방파가 우리가 차지하려 하는 야시장이나 뒷골목에 관심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니까요.”

하현이 턱을 괴며 곰곰이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러면 당신들을 찾아왔다는 그 고수는 누군지 짐작도 안 갑니까?”

“사실 의심이 가는 것이 한 가지…….”

쿵!

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며 운후가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아까는 술에 취해 있었어서 잘 기억이…….”

“지금이라도 괜찮아요. 말해보세요.”

그는 운후의 눈치를 살살 보며 하현에게 말했다.

“저희가 제갈세가의 소식을 얻은 방법은 하인 하나를 포섭해서였습니다.”

“하인?”

“네. 보통 세가의 소식을 얻으려면 그 세가에서 오래 일한 하인을 데려다 술도 먹이고, 고기도 먹이고, 기루도 데려가고 하면 그 입에서 정보가 술술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요?”

“그런데, 그 하인이 손버릇이 좋지 않은 놈이라 물건을 훔치다 들켜 관아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자, 하현이 운후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를 깨달은 운후가 비장호를 다시 윽박질렀다.

“짧게 말해라. 우리가 한가해 보이는가?”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그 하인이 문책을 받던 도중에 제갈세가에 대한 정보를 제 부하에게 일러줬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때 제 부하가 제갈세가에 찍혀서 치도곤을 치렀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양양으로 세력 확장하기를 포기했습니다.”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제갈세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군요.”

“네. 그게 아니면 저희는 제갈세가와 아무련 관련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관군일 수도 있다는 소리군요.”

“그래서 제가 이상하고 했던 겁니다. 관군이 굳이 복면을 쓰고 저희에게 제갈세가의 정보를 물어볼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자 하현이 곧장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갈세가의 사람일 수도 있겠죠.”

“자작극이란 말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죠.”

하현은 얼마 전 황보세가에서의 일을 상기했다.

가주가 된다는 것은 그 일대 소국의 왕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직책을 위해 부모, 형제도 나 몰라라 하는 파렴치한도 많을 터였다.

“일단은 알겠어요. 아저씨는 그때 제갈세가에 대해서 조사했던 모든 것들은 여기 종이에 적어 두시고 이만 돌아가세요.”

“살려주시는 겁니까?”

“네. 이번에는요.”

비장호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번이라는 말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이, 이번에는……?”

“네. 아무리 파락호라고 하실지라도 적당히 하세요. 여기서 당신들을 다 죽여봤자, 다른 세력이 다시 이곳을 파고들 것은 당연지사니까요.”

비장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하현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에게 양심껏 기생하시고 조용히 지내세요. 만약 제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릴 정도로 과도하게 양민들을 착취하신다면…… 제가 이곳에 다시 올 겁니다. 아시겠어요?”

“알, 알겠습니다.”

“그럼 어서 적으세요.”

“네. 대협!”

비장호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정성껏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적었다.

하현은 그를 잠시 내려다보다 운후를 바라보았다.

“얻은 게 전혀 없지는 않네요. 밤새 고생하셨어요. 잠도 못 주무셔서 어떡해요?”

“하루쯤은 끄떡없습니다. 도련님이야말로 너무 피곤하신 것 아닙니까?”

“저도 잠을 잘 안 자서요. 괜찮아요.”

비장호가 글을 모두 썼을 때는 어느덧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꽤 커다란 종이가 두 장이나 필요했다.

하현은 그 종이를 고이 접어 품에 넣고는 비장호에게 말했다.

“그럼 가세요. 제 눈에 띄지 마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대협!”

축객령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부리나케 도망갔다.

하현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하암! 여기서 무엇 하고 계시오? 안 주무신 것이오? 아니면 일찍 일어난 것이오?”

잠에서 막 깬 듯한 진유강이 객실에서 나오다 탁자에 앉아 있는 하현을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간밤에 일이 있었어. 모두가 내려오면 설명해주지.”

“운 형도 안 주무신 것 같은데. 급한 일이면 깨우지 그러셨소.”

“별로 안 급한 일이니까 안 깨웠겠지? 배고프면 밥이나 먹어.”

“하핫. 배가 고파서 깬 줄 어떻게 알고.”

그는 넉살 좋게 앉아 이제 막 나온 점소이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시켰다.

운후와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도, 하현은 계속해서 제갈세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 * *

“으아아아-”

어두운 동굴 안.

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진다.

그곳엔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있는 자가 쇠사슬에 묶여있었다.

“흐흐. 엄살떨지 마라.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왜 그리도 난리인 것이냐.”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민머리에, 붉은색의 무복을 입고 있는 험상궂은 자가 묶여있는 자를 향해 말했다.

자세히 보니, 쇠사슬에 묶인 남자는 온몸에 기다란 장침을 수백 개는 꽂아 넣고 있었다.

“움직이니까 그렇게 아프지. 가만히 있으면 하나도 안 아프다니까? 대법을 받아들여라. 어쭈? 또 반항해?”

“끄아아악!”

민머리가 침 하나를 더욱 깊게 찔러넣자, 또다시 사내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했다.

“요황! 겨우 가져온 실험체로 장난치지 말아라. 네가 그토록 원하던 정파 명문가의 몸이다. 이 그릇을 또 망치면 다시 구하기도 힘들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정의 옷을 입은 사내가 민머리를 나무랐다.

“흐흐. 걱정도 많다. 이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모를까 봐 그러는가? 나 요황이다. 그런 초보적인 실수는 하지 않아.”

“쯧.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가져서 배화문이 이놈 하나 때문에 박살이 났나?”

“옛날얘기는 그만해라. 그때는 신교의 지원을 받기 전이었으니.”

요황은 재미있다는 듯 묶여있는 사내. 제갈정규의 몸을 다시 살폈다.

복면인은 기분나쁘다는 듯,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하고는 동굴을 나가버렸다.

“끄아악-!”

다시 한번 비명이 울려 퍼져 왔으나, 이곳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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