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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18화 (218/304)

218화

의성의 객잔에서 비장호를 추궁한 그다음 날.

하현과 그 일행은 드디어 제갈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도 남궁세가 못지않군. 제갈세가는 뭔가 문사(文士)가 떠오르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오.”

진유강의 말 대로였다.

제갈세가의 장원은 남궁세가 못지않게 넓었는데, 벽이 굉장히 높고 튼튼해 보였다.

그 벽은 자신들이 무가(武家)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진유강은 벽을 만져보기도 하고, 쿵쿵 쳐보기도 하며 신기한 듯 얼쩡거렸고, 그를 나무라며 하현이 말했다.

“진유강.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리가 왔다고 말해 줘.”

“나 참. 내가 또 언제 경거망동했다고. 왜 이런 건 맨날 나한테 시키는 것이오?”

“그럼 너 말고 또 할 사람이 누가 있어?”

그 말에 진유강이 스윽 일행을 돌아보았다.

아주 잠깐 운후에서 시선이 멈춘 듯했지만, 그는 한숨을 푹 쉬고 제갈세가의 대문을 지키고 있던 무인에게 다가가 뭐라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백색 장포를 입은 무인 하나가 신법을 전개해 그들에게 달려왔다.

“하현아!”

“정현 형님.”

그는 일전에 동행했던 제갈정현이었다.

“네가 올 것이라는 전갈은 미리 받았다. 이게 얼마 만이냐. 넌 정말 많이 컸구나. 내 턱 언저리밖에 안 왔었는데, 이젠 나와 비슷하다니.”

“성장기라 그런가 봅니다. 그나저나 정현 형.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성취가 있으셨나 보군요.”

“그래. 너와 환이에게 큰 깨달음을 얻어 노력을 조금 했다.”

그 노력이 조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전에는 별로 티도 나지 않던 태양혈이 불룩했다.

“가문에 변고가 생겨 염려 많으시겠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지만, 조부님과 아버님이 걱정이 많으시지.”

“제갈정규 소협이라면 저도 예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 들었다. 우연히 만났었다고.”

애써 쾌활한 척하지만, 제갈정현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아. 이쪽이 남궁소화 소저시겠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네. 처음 뵈어요. 남궁소화입니다.”

제갈정현의 인사에 남궁소화가 세상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나머지와도 통성명한 제갈정현은 하인 하나를 부르더니 하현에게 말했다.

“하현아. 너만 나를 따라오고, 나머지는 먼저 숙소에 가 있는 게 어떻겠느냐?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네. 가주님을 뵈러 가는 겁니까?”

“그래. 할아버님께 인사부터 드리고 상세한 상황은 내가 따로 설명해주마.”

“알겠습니다.”

일행들이 하인들을 따라가고, 가주에게로 가며 제갈정현이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흉수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계시는 건가요?”

“그래. 그게 제일 문제다.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있다면 거기서부터 어떻게든 범위를 줄여나가겠지만,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든.”

하현은 굳이 내부인의 소행이거나, 자의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냐는 말을 묻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조그마한 이유라도 있었더라면 하현에게 말해 주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별 소득이 없는 대화를 하는 동안 하현과 제갈정현은 커다란 전각에 도착했다.

가주의 거처로는 보이지 않았다.

남궁세가로 따지자면 창천각 역할을 하는 곳이려니 생각했다.

“이곳엔 다른 무인들도 있다. 여력이 있는 문파가 몇 없기에 많지는 않지만.”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선 호북에 있는 중소방파에서 몇 오기는 했다. 죽산파, 조양문, 홍안파에서는 문주들이 직접 왔고, 구파일방에서는 소림과 무당에서 사람을 보내왔지.”

“소림과 무당이요?”

하현이 반가운 마음이 들어 되물었다.

구파일방과 특별한 연이 없는 하현이지만, 두 방파와는 그래도 인연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영약을 얻은 적이 있던 인연이었다.

“다른 구파에서는 거리도 멀뿐더러, 대부분의 전력을 귀주성으로 보냈기에 도와줄 여력이 없다고 하더구나.”

전각에 들어서자 별다른 문 없이 개방된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은 커다란 회의실이었다.

중앙에 수십 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탁자가 있고, 거기에 꽤 많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중에서 단연 눈에 들어온 사람은 탁자의 가장 끝에 앉아있는 백발과 흰 수염의 사내였다.

제갈정현이 하현을 그의 앞으로 데려가더니 예를 갖추어 말했다.

“가주님. 남궁세가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제갈세가주가 스윽 고개를 돌려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현은 그에게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워 보이는 인상이지만, 그는 이내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반갑네. 제갈과라고 하네. 이렇게 우리 가문의 일에까지 신경을 써 주어 정말로 고맙네.”

“남궁세가의 남궁하현입니다. 미력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사실 하현은 제갈세가주가 하현을 보고 실망하거나, 혹은 화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가문에 중대한 일이 생겼는데, 하현처럼 어린 무인을 대표로 보낸 것이 제갈세가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갈세가주는 전혀 그런 내색이 없다.

오히려 하현이 온 것이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하. 자네가 무룡 형님의 막내 손자로군. 이야기는 몇 번 들었네. 무림맹에서 종종 형님을 뵈었었거든. 남궁세가에서 이렇게 직계까지 보내주다니,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갚겠네.”

“그리 말씀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하현과 제갈세가주의 인사가 끝나고, 하현은 하석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무인들을 보고는 빙긋 웃었다.

그들은 각각 무당과 소림에서 보내온 무인들이었는데, 제갈정현이 하현을 그들에게도 소개하려 입을 열었다.

“하현아. 이쪽은…….”

“정현 형. 두 분 모두 아는 분이에요.”

“그래?”

하현은 제갈정현의 말을 가로막고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며 포권했다.

“현암도장. 원진스님. 오랜만입니다.”

“하현 시주.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곳에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 했군요.”

“우리는 그리 오랜만은 아니지. 한…… 두어 달 되었나?”

소림의 대표로 온 자는 하현도 익히 아는 소림의 원자 배 무승 원진이었고, 무당에서는 검룡 현암을 보내왔다.

“두 분은 어떻게 오신 겁니까?”

“사정은 다 비슷하지 않겠는가? 각 사문의 어른들은 모두 귀주성으로 향하셨고, 그나마 사문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모으다 보니, 우리가 오게 되었겠지. 안 그렇소? 원진 화상?”

원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무당이나 소림이나 사정은 비슷해 보였다.

“맞습니다. 저 원자 배의 무공 수준이 아직 낮기에 제갈세가의 청을 거절할까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부족한 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현은 지금 원진이 하는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년 전에 원자 항렬의 제자들이 펼치는 십팔나한진과 싸울 때의 원진과, 지금의 원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흘러나오는 기운의 차이가 컸다.

그때보다 단순히 무공만 증진된 것이 아니라, 법력까지 한층 더 고고해져 고아한 기파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혜원대사께서는 안녕하시죠?”

“네. 지금은 평안을 찾으시러 숭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계십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십니다.”

“건강하시다니 다행이군요.”

하현은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혜원대사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몇몇 눈에 익은 분들도 계시네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소림에서 잠시나마 지냈던 시간 덕분에 원진과 나란히 앉아있는 몇몇 승려들은 알아볼 수 있었다.

무당에서는 아쉽게도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현무도장이 이 자리에 없기 때문이었다.

“현무 그 자식은 최근 깨달음을 얻어 폐관에 들어갔네. 그래서 데려올 수 없었지.”

누군가를 찾는듯한 하현의 동작에 현암이 눈치 빠르게 먼저 말해 주었다.

“오실만한 분들께서는 대부분 오신 것 같습니다. 모두 우리 세가의 일에 이렇게 와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때 상석에 누군가 나서며 말했다.

옆에 서 있던 제갈정현을 바라보니 ‘첫째 형. 제갈정완이네.’라고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제갈정완은 관모를 반듯하게 쓰고, 섭선까지 든 모습이 제갈세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현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과연 제갈세가의 대공자라는 느낌이었다.

“겨우 저희 식솔 하나가 사라진 일에 이토록 많은 분을 모신 까닭이 궁금하셨을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이번 일에 마교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마교라니! 아미타불…….”

“무량수불!”

제갈정완의 말에 몇몇 도사와 스님이 탄성을 내뱉었다.

현재 귀주성에 그토록 많은 무인을 집결해 놓은 마교인데, 그 덩치를 얼마나 불렸는지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였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연유를 여쭤도 되겠소?”

검룡이 큰 소리로 물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그 이유가 궁금했기에 잠자코 대답을 기다렸다.

제갈정완은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지, 곧바로 대답했다.

“실종된 제 아우이자 본가의 둘째 공자인 제갈정규는 과거 배화문이라는 사파 문파를 처단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력이 있습니다. 모두 그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장내의 모두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배화문 소동은 무림에서도 꽤 유명했던 일이다.

강시라는 것은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 무림인들에게, 그냥 강시도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을 이용한 생강시를 만들려 했던 일.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납치당했고, 고문을 당했으며 생체실험을 당했다.

“갑자기 배화문 사건은 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정규가 실종한 그 직전까지 조사하고 있던 것이 배화문이기 때문입니다.”

“배화문은 멸문한 것 아니었습니까?”

“멸문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잔당이 남아있는 것이 저희의 정보망에 포착되었습니다.”

“잔당이라니…….”

“그런데 저희가 알게 된 경로가 문제입니다.”

제갈정완은 다소 심각한 얼굴로 설명을 계속했다.

“호북 전역에 있는 약재상에서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특정 약재가 소리소문없이 모두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제갈세가가 호북에 있는 대부분의 약재상을 관리하고 있기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남궁세가가 청룡표국을 운영하여 실리를 얻듯, 다른 세가들 역시 영리 행위를 위한 행위들을 여럿하곤 한다.

제갈세가는 약재상을 관리하고, 그 유통경로를 보호해주며 이득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약재가 배화문에서 생강시를 만들려 했을 때 모아두었던 그 약재들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사람들은 배화문이 다시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도, 조금씩 의문이 들었다.

제갈정완은 배화문이 아닌 마교를 흉수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배화문에서 사 간 약재들의 가격은 매우 비싼 약재들입니다. 그들이 황금 덩이를 수십 관이나 따로 숨겨 놓지 않았던 이상 멸문한 문파가 쉬이 구매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배후에 마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대표적으로 환현문 사건 때만 해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몇몇 멸문한 사파가 갑자기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조용히 있던 하현이 조심히 물었다.

제갈세가에서 그들을 부른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관리하는 약재상에 인원을 나누어 잠복하면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원을 요청한 겁니다.”

그 대답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세가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합친다면 충분히 백 명은 넘을 테지만, 이런 일에 무공을 모르거나 그 수준이 낮은 자를 쓸 수는 없다.

혹여 진짜 적이라도 나타났다가는 손도 쓰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일단 제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 계시면 제가 사업장을 분배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현은 제갈정현의 안내를 따라 숙소로 돌아왔다.

그를 따라오는 동안 하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제갈 형. 그러면 제가 투입되는 건 언제쯤이 될까요?”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모레일 수도 있지.”

“그러면 저희에게 사흘만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왜?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느냐?”

“확실한 건 아닌데,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제갈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뜻대로 하거라. 할아버님께는 내가 얘기해 놓을 테니.”

이윽고 그들은 숙소에 도착하여 인사를 나누곤 헤어졌다.

제갈세가는 남궁세가를 위해 작은 전각 하나를 통째로 내어줬고, 하인도 충분히 딸려 주었다.

하현은 함께 온 모두에게 현재 제갈세가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진유강이 의문이 드는지 하현에게 물었다.

“다 알겠는데, 왜 며칠 시간을 달라고 한 것이오?”

“너랑 운후 아저씨랑 다녀올 곳이 있어서.”

“어디를 다녀올 생각인데 그러시오?”

“의성에.”

“의성이라면 며칠 전에 들렀던 곳 아니오?”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운후를 보며 말했다.

“일어나세요. 지금 당장 출발할 거예요.”

“아니, 이제 막 들어왔는데 나가자는 말이오?”

운후는 하현의 말에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현이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따를 생각으로 보였다.

진유강도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참. 그런데 의성에는 또 왜 간다는 말이오?”

“비장호에게 갈 겁니다. 그자에게 빨리 확인할 것이 있어요.”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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