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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26화 (226/304)

226화

“정규야!”

“형님!”

쓰러진 제갈정규에게 제갈정완과 정현이 달려왔다.

제갈정규와 가장 가까이 있던 하현이 제갈정규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쿵- 쿵-

다행히 맥박은 느리지만, 세차게 뛰고 있었다.

큰 고통으로 혼절은 했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제갈정완이 제갈정규의 몸에 기운을 넣어 그의 몸을 점검했다.

그런데 그가 와락 인상을 썼다.

“뒤죽박죽……!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그의 말에 하현도 다가가 제갈정규의 명문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하현은 제갈정완이 어째서 저런 말을 했는지 곧바로 이해했다.

제갈정규의 기의 흐름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어떤 시술을 당한 것인지, 혹은 어떤 약물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임독양맥을 통해 한 방향으로 흘러야 하는 기운이 어느 곳에서는 반대로 흐르고, 어느 곳에서는 엉뚱한 혈맥으로 흐르고 하며 제갈정완의 말대로 뒤죽박죽 흐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든 기혈이 끊기지 않고 있다는 거야. 아니. 이것이 배화문에서 의도했던 바일 수도 있어.’

그런데, 하현은 제갈정규의 몸을 살피다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내공을 충분히 실은 장법이었건만, 어디 내상 하나 입지 않았다.

고통 때문에 혼절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멀쩡한 몸이었다.

조금 더 몸을 살피던 하현은 제갈정규가 어떻게 이런 신체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어렴풋이나마 이해했다.

‘신체의 탄성이 엄청나다. 보통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근육과는 전혀 달라.’

하지만, 별다른 의학지식이 없는 하현이 알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빨리 묶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또 깨어나면 어떻게 하려고?”

“우리가 가진 건 겨우 저런 오랏줄밖에 없는데, 조금 전에 힘이 얼마나 센지 못 보셨어요?”

“그건 또 그렇군.”

검룡은 아직도 팔이 아픈지 연신 그의 팔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현은 구석에 내팽개쳐졌던 요황에게 다가가 거칠게 재갈을 벗겨냈다.

“아아악! 아파! 어깨! 어깨 좀 다시 끼워 주시오!”

그러자 그는 요란하게 하현에게 소리쳤다.

하현의 미간이 절로 모였다.

그는 요황의 말은 무시하고 그가 묻고 싶은 말을 했다.

“제갈 소협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어깨부터 끼워 달란 말이오!”

“아니. 네 대답부터 들어야겠어. 내 질문에 모두 답하면 어깨를 끼워주지.”

“으아악!”

요황은 신경질적으로 소리 지르더니, 하현을 보며 말했다.

“돌아갈 수 있소이다. 내가 다시 돌려놓을 수 있소!”

“어떻게?”

“약물과 시술이오. 내가 해놓은 짓을 반대로 하면 될 일이오. 정말이오!”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은 하현은 발로 그의 몸을 몇 번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요황의 어깨뼈는 제자리를 되찾았고, 그는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고, 죽을 뻔했네.”

고통이 가시자 요황은 슬슬 하현의 눈치를 보았다.

하현뿐만 아니라, 이미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무인들이 모두 동그랗게 요황을 둘러쌌다.

소화가 포박을 어찌나 강하게 해두었는지, 그는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릴 뿐이었다.

저벅-

하현의 옆으로, 제갈정완이 다가왔다.

그는 야차와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오만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을 구했다는 안도감, 동생을 이렇게 만든 요황에 대한 분노. 그리고, 기괴한 색으로 물들어 기절해 있는 동생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래대로 돌릴 수 있다는 요황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비친 아주 약간의 기쁨이다.

뻐억!

“커억! 쿨럭, 쿨럭.”

그는 있는 힘껏 발을 휘둘러 요황의 복부를 걷어찼다.

내공을 일으키지 않았기에 일격에 그를 죽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요황에게 고통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급작스럽게 한 방을 먹은 요황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연신 쿨럭거렸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찢어 죽이고 싶지만, 정규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너의 말이 네 목숨을 살린 것이다. 만약 네가 한 말이 거짓이라면 너를 산 채로 채를 썰 것이다.”

서생처럼 보이는 그의 말에서 험한 말이 나왔지만, 그가 뿜어내는 분위기 덕에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요황은 그 말에 실감이 났는지 두 눈에 지진이 일어난 듯 떨렸다.

하현은 쓰러진 제갈정규를 살피고는 요황에게 말했다.

“아까 제갈 소협의 머리에서 장침을 뽑아냈지? 그 장침을 뽑고 나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했고.”

“……!”

요황은 놀란 눈으로 하현을 보았다.

놀라운 관찰력이었다.

언뜻 지나갈 수도 있는 행동이었건만, 하현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머리에 다시 장침을 찔러 넣으면 그동안은 행동을 제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내 말이 맞나?”

요황은 쉽사리 대답하지 않고,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하현은 지체없이 그의 손가락 하나를 꺾어 버렸다.

우득-

“으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동굴을 울렸다.

하현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그 옆 손가락이야.”

“맞소. 맞소. 대협의 말대로 내가 특수 제작한 장침을 머리에 꽂으면 생기를 잃게 될 것이오!”

그 말을 들은 하현은 아까 요황이 장침을 뽑아 버렸던 곳에서 장침을 찾아서 왔다.

가져오는 동안 손에 기운을 집중해 삼매진화의 묘리로 침을 소독한 하현이 요황에게 말했다.

“얼마나 깊게, 어느 속도로 찔러야 하는지 말해.”

“그건 말로 할 수가 없소이다. 내가 손으로 느끼면서 해야 하는…….”

“수작 부릴 생각 하지 말고. 손가락 하나를 더 잃어야겠어?”

“아, 아닙니다! 검지손가락 다섯 마디쯤 들어가다 보면 무언가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 텐데 거기에 침 끝을 대여 놓으면 됩니다. 속도는 상관없습니다.”

하현은 그의 말이 끝나자 제갈정완에게 갔다.

“정규 소협의 머리에 이것을 꽂아야 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나는 지금 손이 떨려 자칫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

“나도 부탁하네. 하현…… 정말 고맙네.”

“뭘요. 정현 형.”

두 형제에게 말한 하현은 쓰러진 제갈정규의 머리맡으로 갔다.

숨소리가 점점 불규칙해 보이는 것이 곧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수하면 안 돼.’

하현은 침을 조심히 들어 제갈정규의 머리맡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눈에 최대한 모을 수 있는 내공을 집중하여 안력을 돋우었다.

‘아주 미세하지만, 보인다.’

하현은 제갈정규의 백회혈에 나 있는 아주 작은 붉은 점을 발견했다.

저 붉은 점은 분명 장침이 박혔다가 뽑혀 나온 흔적이리라.

쑤욱!

하현의 거침없이 침을 꽂아 넣었다.

요황의 말대로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나는 그 순간까지였다.

예민한 하현의 감각은 처음 해보는 일이건만, 능숙하게까지 보이게 해 주었다.

부르르-

그러자, 제갈정규가 부르르 떨더니, 이내 손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완전히 혼절한 것 같았다.

“후우-.”

하현은 성공했다는 생각이 일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주룩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아닌 침 하나를 꽂는 일이지만, 굉장히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이제 제갈세가로 돌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다들 너무나도 고생했네.”

제갈정완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동생을 찾은 것도 모자라, 흉수까지 생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하현을 한 번, 제갈정규를 한 번씩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정규와 저 자를 데리고, 우리가 세가로 돌아가는 것은 조금 위험하지 않겠나?”

“어째서입니까?”

“혹시 모를 이 자의 동료가 주변에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중간에 습격당할 수도 있지. 지켜야 할 사람이 둘이나 있네. 더 많은 고수를 세가에서 데려오면 더욱 수월하지 않겠나?”

하현이 고개를 저었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나, 제가 느끼기로는 이 주변 오십 장 안에는 무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 자의 동료가 아니라, 아까 도망 보낸 마교의 인물입니다.”

“어째서인가?”

“그는 분명히 우리가 이곳에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마교의 고수와 합류한 그가 이쪽으로 고수를 보내올 수도 있습니다.”

하현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정완도 군말 없이 하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하현이 없었더라면 동생을 찾기는커녕 흉수가 형문산에 있다는 것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알겠네. 자네의 말을 따르지. 곧바로 출발하는 게 낫겠네.”

“네. 그런데 제갈 형의 말도 분명히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죠. 우리가 곧바로 출발함과 동시에 한 명은 제갈세가에 가서 사람을 불러오는 것으로요.”

“알겠네. 그렇게 하지. 세가에 돌아가는 것은 내가 하겠네.”

“네. 오실 때 인원을 넉넉하게 데려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동굴을 보면 각종 약재와 이상한 도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모두 챙겨오는 것이 정규 소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 그 말에 따르도록 하지.”

그들은 곧바로 사람을 챙겨 일어났다.

제갈정현이 자청하여 그의 둘째 형을 둘러멨고, 요황은 원진이 들었다.

“세가로 돌아가겠습니다. 제가 앞장설 테니, 너무 빠르면 그때그때 곧바로 말씀 주세요.”

“알겠네.”

무인들은 하현이 대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들은 제갈세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하루하고도 한나절이 흘렀다.

다행히 그들이 제갈세가로 이동하는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요황의 말대로 제갈정규는 머리에 꽂은 침 덕분인지 이동하는 내내 정신을 차리지 않았고, 요황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생각 덕분이지 고분고분히 말을 잘 들었다.

하루 묵어가는 동안 제갈세가에서 보내온 무인들과 합류하고 나서는 더욱 별일이 없었다.

제갈세가주는 가문의 정예들을 충분히 보내왔기에 서른 명이 넘는 대규모의 일행이 되었다.

날이 선 칼처럼 주변을 철저히 감시하는 그들 덕분에, 하현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제갈세가 근처에 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저 멀리 커다란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제갈세가의 전각이었다.

하현은 아주 조금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어? 저거 다 사람들이야?”

그때 가장 앞장선 하현의 옆을 나란히 걷던 소화가 저 멀리를 보며 하현에게 말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하현이 다시 긴장하며 안력을 집중해 멀리 보았다.

소화의 말대로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응? 대문도 열려 있는데?”

하현은 저도 모르게 이미 세가에 갔다 온 제갈정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제갈정완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할아버님께서 자네들을 맞이하시느라 문을 열어둔 것 같군.”

“제갈 가주님께서요?”

“그렇네.”

그는 곤란한 듯 뒷머리를 긁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무인들을 이끌고 자네를 다시 만나러 올 때, 할아버님께서 유독 얼굴이 좋아 보이시더니…….”

제갈세가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저들은 누구입니까?”

“가 보면 알 것이네.”

제갈정완이 방긋 웃으며 하현에게 계속 걷기를 종용했고, 하현은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현은 세가의 주변에 다다르기도 전에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하현을 기다리고 있는 환영 인파였다.

하루 동안에 어떻게 소문이 돈 것인지 제갈세가의 식솔들뿐만 아니라, 제갈세가를 도와주기 위해 각지에서 모인 무인들.

심지어는 주변의 민초들까지 모두 모인 환영 인파였다.

“와아아! 영웅들께서 들어오신다.”

“저 앞에 저분이 남궁세가의 하현 공자인가 봐.”

“어쩜. 저렇게 잘 생기셨을까. 둘째 공자님을 구해내셨다며?”

세가의 가장 외곽에는 당연히 무공을 모르는 민초들의 수가 가장 많았다.

개중에는 남정네뿐만 아니라 아낙들도 많았고, 그녀들은 하현을 보며 가슴 설렜다.

하현과 일행은 겨우 그들을 헤치고 제갈세가의 대문에 도착했다.

“제갈세가에 큰 은인이 드셨다. 모두 마음을 다해 저들을 맞이하라!”

“네. 가주님!”

그들이 대문을 넘자, 제갈과가 크게 소리쳤다.

하현은 어리둥절하여 걸음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그러자 제갈과는 아주 밝게 웃으며 하현에게 다가왔다.

하현은 문득 저런 표정은 처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는데.

척-

제갈과는 하현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포권했다.

무림의 배분으로 따지자면 고개를 숙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는 거리낌 없었다.

“제갈세가의 은인을 뵙소.”

그가 말하자,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하현을 향해 포권했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그의 바로 옆에 있던 제갈정완과 제갈정현마저 하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갈세가의 은인을 뵙습니다!”

수백 명의 외침이 세가와 그 주변에 쩌렁쩌렁 울렸다.

어쩐지 하현은 그 장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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