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28화 (228/304)

228화

“현아. 오늘 저녁에 무슨 일 있어?”

연회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간 하현에게 소화가 물었다.

“아니, 왜?”

“너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 보여서 그러지. 네 표정 좀 봐.”

하현은 깜짝 놀라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손가락 끝에 귀에까지 닿아 있는 입술이 만져진다.

그는 너무 티를 냈나 싶어 머쓱했다.

“뭐. 아무 일도 아니야.”

“흐음…… 그래?”

소화가 의심쩍은 눈으로 보았지만, 하현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하현은 소화에게 부탁하여 남궁세가에서 함께 온 모든 이를 이 자리에 불렀다.

다들 멀쩡한 모습이었는데, 진유강만은 연회에서 술을 꽤 마셨는지 취기가 느껴졌다.

‘뭐, 저런 것도 괜찮지.’

하현은 그런 진유강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이야 시끄럽고 요란한 것 보다는 조용히 혼자서 명상을 하는 것이 더 좋지만, 진유강은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힘을 얻어가는 유형의 사람이다.

오늘 있었던 기억으로 앞으로의 수련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으면 그게 더 이득일 것이다.

“왜 모이자고 한거야?”

“앞으로 일정을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일정?”

“응. 이제 제갈세가에서 무슨 일을 할지, 남궁세가에는 언제 돌아갈지. 이런 거.”

“밝을 때 안 하고. 왜 하필 오늘이야?”

소화가 하현에게 물었다.

나머지는 자신들도 궁금했던 것을 그녀가 즉시 물어봐 주는 것이 고마운 눈치였다.

“내일 오전부터는 아마 제갈세가가 떠들썩할 거야. 이곳에 모인 많은 방파가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테니까.”

“아하. 그러니까. 우리가 집에 언제 갈지 지금 말해 줄 테니까. 남들이 바쁘게 움직일 때마다 우리는 왜 집에 안 가냐고 물어보지 말라는 소리지?”

“하하. 맞아 누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딱 그거였어.”

꾸밈없는 소화의 말에 하현은 큭큭 웃었다.

팽헌홍은 어째서 그가 부끄러운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일단 나는 여기서 며칠 더 머물 거야.”

“왜? 그리고, 너는 이라니. 우리는 아니야?”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정규 소협에 대해서 조금 의심쩍은 부분이 더 있거든. 상황이 좀 정리되면 따로 알아보고 싶은 것도 있기도 하고, 배화문의 요황에게 물어볼 것도 있고.”

요황에게 꼭 물어봐야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복면인. 그러니까 유지석과의 관계에 대해서였다.

어떻게 마교와 연결이 된 것인지. 그리고 유지석과 또 다른 경로의 관계가 있는지를 꼭 확인해야 했다.

유지석의 말에 따르면 천마유가가 있는 위치를 찾으면 유지혁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요황은 그의 시술은 물론 마교와의 관계까지 일절 입을 열고 있지 않다.

무림맹에서는 고문 기술자와 자백사를, 당문에서는 자백제를 보내오고 있으니 하현은 그 둘을 기다려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라고?”

“응. 그 얘기를 하려고 부른 거야.”

하현은 모두를 돌아보았다.

겨우 네 명밖에 안 되지만, 그들은 공통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화도 나머지의 표정을 확인하고서는 그들 모두가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난 안 갈래.”

“왜?”

“지금은 네가 우리 대장이잖아. 너만 두고 돌아가려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릴 것 같아.”

“빨리 돌아가서 임무도 하고 수련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소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지금도 임무 수행 중인 건데, 곧바로 돌아가서 또 임무를 하라고? 참 내. 그리고, 수련은 여기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뭐 제갈세가주님한테 연무장을 하나 내어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넓은데.”

나머지 셋도 소화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현이 운후를 슬쩍 바라보자, 운후가 입을 열었다.

“저는 도련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제가 하인을 자처했는데, 이제야 정말 하인 같은 일을 하게 되어 저는 만족합니다.”

“하인이라는 건 명분상…….”

하현은 명분상이라고 했지만, 운후는 정말로 하현을 주인으로 받들었다.

매일 아침에 씻을 물을 방으로 떠다 올리는 것은 물론, 먹는 것, 마실 것까지 하현을 위해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곤 했으니까.

“그 답답한 남궁세가에서 겨우 나왔는데, 또 돌아가라는 말이오? 난 못 해. 이 자유의 향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나도 대장이랑 함께 돌아갈 것이오!”

옆에 있던 진유강도 한마디 거들었다.

마지막 팽헌홍도 눈이 마주치다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 하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긴. 팽 형은 누나 옆이면 어딘들…….”

“야!”

“하현아!”

하현은 팽헌홍과 소화가 동시에 소리치는 바람에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이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농담. 누나. 농담이야.”

잠시간의 소란이 지나가고, 그들은 겨우 다시 처음과 같은 진중한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내일 세가에 보낼 보고서에도 우리는 모두 제갈세가에 더 있다 가겠다고 보낼게요. 다들 알겠죠?”

“알겠습니다.”

“그래.”

“응!”

모두가 흔쾌히 대답하고서야 하현은 모두를 돌려보냈다.

연회에 마신 술로 부족한 진유강은 식당에 술을 얻으러, 나머지는 이제 잠을 청하러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돌아가 조용해졌을 때, 하현은 조용히 자리를 나섰다.

이때의 시각은 묘시 중반이 되기 조금 전이었다.

* * *

제갈과가 서고라고 일러준 곳으로 하현은 신법을 전개해 달려왔다.

생각보다 더 큰 전각이 하나 있고, 그 주위를 열댓 명의 제갈세가 무인이 지키고 있었다.

정확하게 묘시 중반이 되자, 제갈과가 가주실이 있는 방향에서 걸어나와 하현에게 말했다.

“늦지 않았군.”

“네. 기회를 주시는데 제가 늦을 수는 없죠.”

“하하하! 이것 참. 아까부터 내가 잘하는 짓인지 영 불안하단 말이야.”

제갈과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신이 총애하던 둘째 손자의 은인이기도 하지만, 하현 자체로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그는 하현에게 무언가 좋은 것을 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것이다.

“자. 들어가게. 혹시 안내해줄 사람이 필요한가? 서고의 관리자를 깨워올까 싶어서.”

“아, 아닙니다. 직접 들어가서 제게 필요한 게 있나 찾아보겠습니다.”

“하하. 그래. 내가 안에 불은 모두 켜 놓으라 일렀으니, 등불을 가지고 들어갈 필요는 없네.”

“배려 감사합니다. 가주님.”

무사가 문을 열어 주었고, 하현이 서고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가주는 서고를 지키는 무사에게 시간이 되면 문을 열어 주라 지시한 뒤에 돌아갔다.

한편, 서고에 들어선 하현은 서고 내부를 죽 둘러보았다.

엄청나게 겉에서는 엄청나게 거대했던 것에 비해 내부는 생각보다 좁았다.

“벽 두께가 석 자(약 1미터)는 충분히 되어 보이는데?”

찬찬히 천장을 살펴보던 하현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이구나.”

예전 사천에서 당가주가 가르쳐준 기관의 기초를 계속해서 홀로 발전시켜온 하현이다.

남궁세가 역시 기관진식에 대한 서적이 많았고, 하현은 그 모두를 탐독해 그 실력을 증진시켰다. 그가 직접 나무와 철을 갈고 닦아 기관을 만들 수는 없지만, 꽤 많은 기관을 알아보고 무효화 할 수 있는 실력까지는 갖추고 있는 그였다.

“문을 억지로 열려 한다거나, 이 크고 무거운 책장들이 넘어지면 벽에서 폭발이 일어나게 만든 기관이겠어.”

아마도 하현이 들어와 있는 이 제갈세가의 서고에 침입자나 도둑이 들었을 때를 대비한 기관으로 보였다.

“폭발과 함께 불이 붙도록 하면 금상첨화겠지. 책들이 다 타버릴 테니까.”

하현은 무슨 기관이 있는지를 홀로 생각해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책을 집어 들며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와…… 많기는 정말 많다. 모두가 다 무공 비급은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하현이 지금 들고 있는 책만 해도, 무공 비급이 아닌 무림에서 자생하는 약초에 관한 책이었다. 약초의 생김새와 그 효능까지. 그림까지 꼼꼼히 그려 넣은 책이었다.

순식간에 책장을 끝까지 다 넘긴 하현은 책을 원래 있던 곳에 꽂아 두고, 다시 그 옆의 책을 집어들었다.

이번 책도 약초에 관한 책이었다.

“아하! 책장마다 대표하는 주제가 다른 건가?”

하현은 시험 삼아 지금 눈앞에 있는 책장의 책들을 모두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하나씩 확인했다.

“역시.”

하현의 생각대로였다.

이 책장은 전부 약초에 관한 책들만 꽂혀 있었다.

순간 하현은 고민했다.

바로 무공이 있는 책장을 찾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이런 책들이지만 끝까지 봐야 하는지.

“에잇. 모르겠다. 어차피 다 보려고 마음먹었잖아? 분명히 제갈세가에서도 이런 책들도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으니, 서고에 보관했을 거야.”

하현은 아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탐독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었다.

여기가 약초에 대한 책이라면 그 옆은 또 다른 주제, 그 옆은 또 다른 주제일 것이다.

하현은 오늘 많은 지식 역시 머리에 담고 나가리라 다짐했다.

* * *

사락- 사락- 사락-

어두컴컴한 서고에는 연신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누가 보면 하현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다.

하현은 촌각에 한두 장씩 넘기며 책 한 권을 읽는데, 일다경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제갈세가의 서고에는 비급을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책이 있었다.

약초, 동물, 자연현상, 천체, 심지어는 황제의 통치에 관한 것까지.

생각보다 무공에 대한 것은 적었지만, 그래도 부족하지 않은 양이었다.

“드디어 무공인가?”

하현은 남은 책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책장은 겨우 세 개.

그나마도 두 개의 책장은 빼곡하게 책이 꽂혀 있었지만, 마지막 책장에는 두 권의 책만이 꽂혀 있다.

“이제부터가 정말 제갈세가의 정수나 다름없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하현은 두 뺨을 짝! 하고 치며 책장에 다가갔다.

이제 제일 중요한 비급을 읽을 차례이기에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이 무공은 응혈신조라고 하는구나. 금나수의 일종이야.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무조건 곡지혈부터 짚으려 하지 말고, 상대의 팔의 혈맥이 지나가는 곳은 무조건 먼저 잡아버려도 된다는 거지? 좋아. 응용할 곳이 많겠어.”

그 후로도 한참을 더 책을 읽었다.

제갈세가는 일반적인 검법, 도법보다는 기병이기를 많이 사용하는 가문이다.

부채를 사용하는 선법, 판관필이라는 쇠로 만든 붓을 사용하는 필법 등이 하현에게 좋은 영감을 주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천기미리보(天機迷離步)라는 신법은 하현이 읽으며 놀랄 정도로 뛰어난 신법이었다.

대부분 문파의 신법이 용천혈의 기운을 터뜨리는 것과는 달리, 다리에 있는 중도혈(中都穴)로부터 기운을 뿜어내는 특이한 신법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현은 수많은 무공을 접하며 빨리 연습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잠시 또 시간이 흘렀다.

작게 나 있는 창문이 어렴풋이 밝아오는 것으로 보아, 약속된 시간이 모두 끝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수많은 책을 읽어간 하현이 마지막 남은 책장 앞에 섰다.

그 책장에는 단 두 권의 책만이 꽂혀 있었다.

현원전단신공(玄元展檀神功), 대천성신공(大天星神功).

둘은 내공심법이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제갈세가의 비전심법.

하현은 마지막으로 그 두 책을 펼쳤다.

* * *

서고에서 나온 하현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쓰는 처소로 돌아왔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부터 수련을 시작한 운후가 처소로 돌아오는 하현을 보았다.

“도련님. 이제 들어오시는 겁니까? 어제는 갑자기 급한 일이 있으시다고 하고 사라지셔서 놀랐습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네. 저야 뭐.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던 겁니까?”

“하하. 아무 일도 아니에요.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갈세가주가 하현에게 내건 조건은 단 하나였다.

무공서고에 출입했다는 사실도 모두에게 비밀로 할 것.

당연히 하현은 그 약속을 철석같이 지켰다.

지난밤에 얼마나 많은 무공을 그의 것으로 만들었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 저 저기 구석에서 운기조식 좀 해도 되죠?”

“물론입니다. 호법을 서 드릴까요?”

“호법까지는 괜찮아요. 제갈세가 안인데요, 뭐.”

운후가 머쓱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큰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곳도 오대세가 안이다.

여기서 안전을 걱정했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제갈세가에 큰 결례일 수도 있었다.

“그러면 하던 거 하세요. 저는 신경 쓰시지 말고.”

하현은 구석에 가부좌를 틀고 털썩 앉더니, 곧바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서고에서 외워 온 무공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간밤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생각지도 못한 운후는 역시 하현은 이런 자투리 시간도 헛되이 쓰지 않고, 수련에 몰두한다며 감탄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하현은 곧 내면에 집중해 들어갔다.

‘한 번에 두 가지 심법을 익힌 것은 처음인데.’

하지만, 하현은 거침이 없이 기운을 일으켰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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