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현재 하현은 익히고 있는 심법만 해도 세 가지나 되었다.
창궁대연신공, 수미천왕신공, 규지신공.
그 세 개의 신공은 서로의 구역을 침범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부족한 부분은 서로 보완하고, 부딪힐만한 부분은 서로 양보하면서.
츠츠츠-
천천히 그 기운들을 돌려보았다.
하지만, 하현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하현은 세 신공을 한 번에 움직이고 싶은데, 그 신공들은 서로 몸을 부딪치지 않으려 번갈아가며 하현의 말을 따랐다.
이럴 때는 꼭 자유의지를 가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하현이었다.
‘나보다 기감이 더 좋은…… 아니, 나만큼만 기감이 좋아도 이 신공들의 틈을 비집고 나올 수 있을 거야.’
하현은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가 가진 세 개의 신공은 하현에게 더 폭넓은 내공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 속도에 있어서는 아주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물론 하현이 생각하는 그 속도라는 것은 일반적인 무인들…… 아니, 무림에서 초절정 고수라고 일컫는 고수들도 알아채지 못하는 아주 미묘한 차이다.
실제로 하현은 전대의 고수인 마통검이나, 마교에서도 고수로 인정받는 유지석과도 대등하게 싸운 전력이 있다.
하지만, 하현이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나 하나리라는 법은 없어.’
물론 하현이 유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노릇.
하현은 그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차단하고 싶었다.
‘현원전단신공에 그 해답이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내공심법을 개선하는 것은 하현이 평소에도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간밤에 제갈세가의 서고에서 본 현원전단신공에서 하현은 그 실마리를 찾았다.
대부분의 문파나 세가는 그들을 대표하는 무기가 있다.
남궁세가는 검, 하북팽가는 도 같은 무기 말이다.
그런데, 제갈세가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병(奇兵)을 다룬다.
검과 도는 물론 장법, 권법, 지법, 조법.
심지어는 다른 문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선법이나 필법까지 아우르는 것이 바로 제갈세가의 무공이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에 걸맞은 심공을 따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원전단신공 하나만을 배운다.
‘보통의 심법이라면 그 효율이 엄청나게 떨어지게 되겠지.’
하지만 제갈세가는 보란 듯이 오대세가에 들어와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세가다.
효율이 떨어지는 내공심법으로 오대세가에 들어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현이 경험했을 때, 진주언가나 황보세가 역시 거력을 품고 있었는데 오대세가에는 들지도 못했다.
그러니, 제갈세가의 현원전단신공은 대단한 내공심법이라는 말이었다.
‘소림의 경우와는 또 다른 경우야.’
그러면 혹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소림사는 십팔반 병기를 모두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곳은 어찌 이 일을 해결하냐고.
그런데, 소림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곳에는 수백, 수천 가지 이상의 무공이 있고, 각 무기에 걸맞는 심공을 어렸을 때부터 익힌다 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맞춤이 있다는 것이다.
후우욱!
이번에 하현은 현원전단신공을 이용해 기운을 끌어 올렸다.
비급으로 익힌 지 아직 몇 시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는 오래전부터 익혀왔던 것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기운을 끌어 올렸다.
‘내가 느낀 현원전단신공은 포용의 무공이야.’
하현은 이렇게 생각했다.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각기 다른 병기를 사용함에도 이 심공 하나만 익히는 것은 이 무공원리에 특별한 것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스으윽-
그래서 하현은 기운을 끌어올리며 그 구결을 다시 역산하기 시작했다.
태초에 제갈세가의 사조께서 어떤 마음으로 이 무공을 창안했는지 알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조금씩 풀어내는 거야.’
하현은 그의 모든 오성과 감각을 최대로 풀어내었다.
기이이이잉-!
실제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하현은 이 순간 머릿속에서 바퀴 하나가 작열하며 돌아간다고 느꼈다.
그와 동시에 백회혈에 뜨거운 감각이 느껴진다.
하현은 이 상황에 누군가 손을 데면 데일 수도 있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한 가문의 무공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구결은 획 단위까지 해체된다.
휘이익!
하현의 몸 주위로 폭풍이 불 듯 바람이 불었다.
그는 점점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 여기서 멈춰야 하는지 고민이 될 정도의 뜨거움이었다.
“크윽…….”
뜨거움은 고통으로 바뀌고, 하현은 몰려드는 그 고통에 그만 신음성을 내고 말았다.
‘조금만 더.’
하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회혈을 더욱 가동했다.
어째서인지 오늘 현원전단신공을 정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계속 실패할 것 같다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퍼석-
그때 하현은 머리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게 무슨…….’
화아아악-!!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기운과 통증이 몰아치며 하현의 몸이 휘청했다.
하현이 들은 소리는 백회혈이 억지로 넓어지는 소리였다.
한 사람의 머리로 심공 하나를 풀어헤쳐 새로운 무공을 창안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한순간에 머릿속으로만 한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그렇기에 하현은 너무나도 과도하게 백회혈을 무리했고, 결국 댐이 무너지듯 구멍이 억지로 넓어진 것이다.
하현에게는 어찌 보면 기연의 순간일 수도 있었으나, 너무나도 큰 고통에 그는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스스윽
하현이 정신을 잃어가는 사이, 억지로라도 열렸던 백회혈이 다시 닫히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하현은 백회혈이 넓어지는 기연을 이대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우웅- 우우웅- 우우우웅-!
하현의 몸에서 진동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상쾌하고 맑은 기운이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기운이지만, 하현은 이 기운을 느끼는 순간 정신이 점차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계속해서 느껴지던 끔찍한 고통도 점점 가시고 있었다.
하현은 이 기운이 무슨 기운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창궁대연심공과 자연의 기운.’
그가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는 세 가지 심공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의 몸에는 심공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기운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상단전의 자연의 기운.
그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잃으려 하자, 제 스스로 일어난 창궁대연심공은 일주천하며 자연의 기운을 퍼 올린 것이다.
‘그래. 내가 왜 익숙하지도 않은 제갈세가의 무공을 주 심공으로 사용하려 했지?’
간단한 발상의 한계였다.
다른 심공을 한 번에 포용하려면 제갈세가의 무공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편견.
하지만, 방금의 일로 그는 깨달았다.
‘창궁대연심공이 다른 모든 심공을 휘어잡는 거야.’
포용이 아닌 지배.
하현은 노선을 바꾸었다.
그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오래 익혀온 심법이 바로 창궁대연신공이다.
쿵!
내부로부터 오는 충격에 하현의 몸이 들썩였다.
창궁대연심공은 다른 심공들이 일으킨 기운을 모두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쾅! 쾅!
하현의 몸이 들썩이는 그 순간, 코에서 얇은 핏줄기가 하나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내부에만 집중했다.
그 후로도 하현은 계속해서 몸을 들썩였다.
그런데, 그 빈도와 강도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멈춰 버렸다.
지금 이 순간 하현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츠츠츠-
하현이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의 기운만 따라온다.
바로 창궁대연신공.
결국, 창궁대연신공은 모든 기운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고, 하현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
우우웅!
그것도 각자 심법들이 가지고 있었던 장점만을 모두 추려낸 채였다.
‘성공이다.’
하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내공을 모두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모든 내공이 다시 단전에 갈무리되고, 하현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시야에는 몹시도 걱정스러운 표정의 운후가 들어왔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그럼요.”
하현이 멋쩍게 웃으며 코를 슥 닦았다.
손에 피가 묻어나오긴 하지만 이미 피는 멎은 것으로 보였다.
하현이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조금 전과 지금, 시간으로 따지면 아주 잠시의 시간이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정말로 큰 변화가 있었다.
사박-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하현은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전에는 내공을 사용하는 모든 순간 어떤 심법으로 어떻게 기운을 끌어올릴지 그의 총명한 머리로 계산하고 행동했었는데,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몸과 기운이 따른다.
“하하하…….”
하현은 순간 자조적으로 웃어 버렸다.
‘이거…… 마음의 검이랑 똑같은 거였잖아?’
사실 해답은 그의 안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해답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오늘따라 따사롭다.
“아저씨. 부탁이 있어요.”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도련님.”
“여기 제갈세가에는 현재 수많은 고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단체에 전달해주세요. 저와 비무할 생각이 있으신 분은 언제든 이곳으로 와 달라고.”
운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무슨 비무냐는 말이었지만, 그는 그걸 말로 표현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이 시키는 일이니, 무슨 뜻이라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운후가 종종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지고, 하현은 숙소로 올라가며 생각했다.
‘지금 이 감각과 새롭게 탈피한 창궁대연신공을 몸에 익히려면 실전이 최고야. 실전이 불가능하다면 비무를 많이 하면 돼.’
비무 상대를 구하는 것에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하현에게 비무를 청하는 무인들은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몇 명이 가지도 않았건만, 형문산에서 펼친 하현의 활약은 점점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장원 밖의 민초들에게도 하현에 관련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옥(玉)을 깎아 놓은 듯한 수려한 외모에, 용(龍)과 같은 능력을 가진 어린 무인이 있다고.
‘정 못 구하면 헌홍 형이랑 소화 누나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니까’
하현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침상에 털썩 누웠다.
격렬한 전투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피로감과 탈력감이었다.
평소 잠이 없는 하현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꼭 잠이 필요했다.
* * *
얼마나 오래 잠에 들었을까.
하현은 외부가 소란스러워 슬그머니 눈을 떴다.
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현은 몸을 일으켜 머리와 얼굴을 단장하고는 재빨리 앞마당으로 나갔다.
앞마당에는 꽤 많은 무인이 와 있었고, 운후와 진유강이 그들을 제지하고 있는 듯했다.
“나 참. 우리 도련님은 지금 주무시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깨면 다시 전갈을 드리리다.”
“깰 때까지 기다릴 수 있소이다. 조용히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소?”
“사람이 너무 많으니 내가 이러는 것 아니오? 자자. 돌아갑시다.”
하현이 곤란해 보이는 진유강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아잇! 깜짝이야. 이제 일어났습니까? 대장 때문에 이 사람들이 모인 것 아니오? 비무 한번 해보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이만큼이오. 무슨 생각으로 제갈세가에 있는 모든 방파에 소식을 전하라 하신 것이오?”
진유강이 눈을 흘기며 하현을 힐난했다.
하현은 자신이 잠에 들기 전 운후에게 시켜놓은 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충 헤아려 봐도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무인들이 그를 쫓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죽산파(竹山派)의 문주 허일영이오. 옥룡(玉龍)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던데, 이 허 모의 견문을 넓혀주실 수 있겠소이까?”
단정하게 묶어낸 머리에, 양 갈래로 수염이 난 중년인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와 함께 몇몇 사람이 같이 왔는데, 모두 죽산파의 제자로 보였다.
“가르침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선배님께 제가 어찌.”
“하하. 옥룡의 무공이 이미 일절이라는 소식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소. 형문산에 나도 함께 갔으면 신공을 견식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을.”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옥룡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옥룡? 설마 본인이 못 들은 것이오? 하하하! 이런 재미있는 경우가.”
“본인이라니…….”
“세가 주변의 민초들과,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공자를 옥룡이라 부른다오.”
“옥룡?!”
옥 옥자에 용 용자.
옥으로 깎아 놓은 용이라는 뜻의 이것이 하현이 제대로 강호 출도도 하기 전 민초들에게 받은 첫 번째 별호였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