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그들은 곧 제갈세가의 뇌옥으로 들어섰다.
요황은 일반적인 죄수가 아니기에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뇌옥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한참을 안으로 더 들어갔는데, 하현은 생각했던 것과는 내부의 경관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보통 뇌옥이라 하면 어두컴컴한 실내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을 생각하겠지만, 이곳은 밝고 상쾌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자. 이쪽이네.”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던 제갈과가 어느 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 문을 열자 그 안에는 또 통로가 나왔다.
“구조가 복잡하군요.”
“진짜는 이쪽이네.”
그 통로로 들어서자, 비로소 정말 뇌옥 같은 정경이 펼쳐졌다.
간간이 야명주가 박혀 있기는 하지만 어둠에 눈을 적응시키지 않으면 사람 형태만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웠고, 아주 미세하게나마 피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곳이…….’
하현은 눈에 내공을 담아 안력을 돋우면서 생각했다.
어느 가문, 어느 문파든지 이런 어두운 면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남궁세가에도 분명히 이런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갈과도 이곳에 들어서자 긴장이 되었는지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전에 그에게 듣기로는 뇌옥에 사람을 가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라 들었다.
정마대전 당시 포로를 가둬두고 난 이후로는 처음이라고.
덜컹-
긴 복도의 끝을 지나자 철문이 있었다.
제갈과가 가져온 커다란 열쇠로 자물쇠를 열자 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안에는 양팔과 다리가 매달린 남자 한 명이 보였다.
형문산에서 본 적이 있던 민머리의 무사 요황이었다.
“일어나라. 정신이 있는 것 다 안다.”
제갈과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는 말에 가시가 돋친 듯했는데, 제갈정규가 정신을 차렸다면 그를 진작에 죽이고도 남았을 것 같은 분노가 느껴졌다.
“하하…… 오늘도 오셨소 영감. 나는 정말 아는 게 없다니까?”
그러자 요황이 축 늘어졌던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하현은 그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요황이 지금까지 어떤 태도로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다리에는 피딱지가 엉겨 있었는데, 고문을 받고서도 저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어찌 보면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는 게 있는지 없는지는 이제 곧 알게 되겠지.”
요황은 고개를 돌려 제갈과와 함께 온 하현과 당규호를 바라보았다.
당규호는 당연히 알 리가 없지만, 하현의 얼굴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뜬금없이 분노를 터뜨렸다.
“너! 너 때문에 내 모든 계획이 망가졌다. 이 빌어 처먹을 놈!”
“당신의 계획을 망쳐서 다행이지. 만약 이번에 너를 놓쳤으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희생했을까.”
요황이 제갈정규의 몸을 가지고 실험하던 동굴에서는 자그마치 백 구가 넘는 시체가 나왔다.
시체의 상태가 엄청나게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요황이 납치하고 죽인 시체는 그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퉤이! 너는 내가 이대로 죽어서 귀신이 돼서라도 괴롭혀주마!”
닿지도 않을 침까지 뱉으며 하현을 저주하는 요황이었지만, 하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하현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귀신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무림에서 죽어간 원혼이 하나, 둘이 아닐 텐데 지금껏 그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으니까.
‘어머니, 아버지도.’
원한이라면 분명 그의 부모도 하늘에 닿을 정도로 컸을 텐데, 귀신의 형태라도 보고 싶은 부모님이건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것이 하현이 귀신을 믿지 않는 이유였다.
“너한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때 요황이 잠시 부모님의 생각을 하고 있던 하현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하현이 대답 대신 눈동자만 돌려 그를 다시 보자, 그가 재차 외쳤다.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안 것이지? 내가 쳐놓은 역천혼진(逆天魂陣)은 어떻게 깨어낸 것이지?”
하지만 하현이 그의 말대 순순히 대답해줄 리는 만무했다.
그는 요황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며 말했다.
“당신도 궁금한 게 있군? 그러면 우리 교환하도록 할까? 제갈소협이 제정신을 찾을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나도 네가 궁금한 것을 가르쳐 주도록 하지.”
“어디서 수작을! 정보를 얻어내고 나면 내 목숨은 거기서 끝이라는 것을 모를 것 같아 그러느냐!”
“잘 알고 있군.”
하현이 피식 웃었다.
평소에 그토록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하현이건만, 악인들에게는 자비 없는 모습이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제갈세가주가 당규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당가주. 수고해주시게.”
“네. 저도 시간이 얼마 없어서요.”
“뭐야. 이 자는 누구냐. 또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나는 정말 모른다니까?!”
당규호는 요황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의 그 호롱병을 꺼내 들고 요황에게 다가갔다.
그것을 먹이려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요황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쉬익- 팍!
당규호는 고절한 금나수의 수법으로 요황의 양 뺨을 잡아 입을 벌린 다음에 호롱병 안의 내용물을 천천히 들이붓기 시작했다.
“욱! 욱!”
요황은 고개를 돌리며 자백제를 먹지 않으려 했지만, 단전이 폐해져 내공 하나 끌어올릴 수 없는 그가 당규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입 안 한가득 약을 입에 물게 된 요황이 삼키지 않으려 목구멍을 닫고 버텼다.
턱-
허나,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았다.
당규호는 능숙하게 그의 목젖을 쳤고, 자연스럽게 열린 목구멍으로 약이 쏟아져 들어갔으니까.
요황이 끝까지 다 삼킨 것을 확인한 당규호가 양손에 기운을 끌어올리더니, 요황의 목과 가슴에 손을 대고 기운을 주입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하현은 조금 놀랐다.
지금까지 하현이 봐왔던 기운과는 완전히 다른 기운이었다.
그냥 내공이 아닌 독 기운이 섞여 있는 내공이었다.
그의 몸에 담긴 독을 섞어야만 자백제가 제 역할을 다하기에 그가 직접 여기까지 온 것이다.
우웅-
기운을 다 집어넣었는지, 어느새 요황의 몸에서 손을 뗀 그가 천으로 손을 닦아내며 말했다.
“휴. 다 했습니다. 약효가 다 퍼지기까지는 일 다경 정도가 걸릴 것입니다. 추궁과혈을 해주면 약효가 더 빨리 돌긴 할 텐데. 저놈 몸에 더 손을 데고 싶지는 않군요. 눈이 몽롱해지면 그때부터는 물어보는 것에 다 대답할 것입니다.”
당규호의 말을 듣고서 자신에게 먹인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요황이 큰일이라도 났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 안된다. 지금 나에게 무엇을 먹인 것이냐?!”
“자백제다. 내가 직접 제조한 것이니 특히 잘 될 것이다.”
“안돼! 나한테 그런 걸 먹이면 안 된다고!”
지금까지는 묘하게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지만, 지금 그는 두 눈까지 붉게 충혈될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해독제. 해독제는 없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할 테니 해독제를 줘라. 해독제를!”
“자백제에 해독제가 어딨겠냐? 급하게 만드느라 약효가 그리 길지 않다. 겨우 반 시진 정도 갈 것이야. 부작용은 전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당규호의 얼굴은 의기양양했다.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부작용이 없는 자백제.
제갈세가주는 요황에게 정보를 모두 듣고 나서도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끝까지 살려내어 제갈정규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와 연구한 내용들을 빼내려 생각 한 것이다.
“아니! 자백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금제가 걸려있다. 나한테 금제가 걸려있다고!”
“금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발설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했단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내 목숨은……!”
그는 필사적이었다.
수백…… 어쩌면 수천 명의 목숨을 가지고 놀았던 자가 자기 목숨을 저리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의 반응으로 보아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누가 그랬지? 너에게 금제를 건 것이 누구지?”
“그것은…… 그것은……!”
그는 슬슬 정신을 잃어가는지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당규호가 말했던 시간보다 훨씬 빨랐다.
흥분하여 피가 빠르게 돌았기에 약효도 빨리 돈 것으로 보였다.
“교……주!”
그는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고개를 털썩 떨구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적지 않은 무게감을 가진 말이었다.
그때 제갈과가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본 적이 있다. 마교의 교주가 직접 내릴 수 있는 금제가 있다고. 특정 단어에 금제를 걸어두고, 그것을 말하면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가지. 삼십사 년 전의 전쟁에서 우리 측으로 투항한 몇 안 되는 마교의 고수들에게 아무 정보를 얻어내지 못한 것이 바로 이 금제 때문이었다네.”
제갈과는 진작 이 금제를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마교와 연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낱 외부인인 그를 교주가 직접 금제할 줄은 몰랐기에.
“그러면 이대로 약효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우리는 결국 아무 정보도 알아낼 수 없다는 말이네.”
제갈과가 씁쓸하게 말했다.
당가주를 이곳까지 불렀건만, 결국 헛수고가 되어 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요황을 바라보고 있던 하현은 생각에 빠졌다.
‘혹시. 아주 혹시나 내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조금 전 벽일문주와의 비무였다.
벽일문주는 하현에게 자신의 움직임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하현은 비무에 집중할 때면 미래가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긴 했으니까.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상대의 의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터벅-
하현이 생각하며 발걸음을 놀려 요황의 앞에 섰다.
그것을 본 당규호가 화들짝 놀라며 경고했다.
“조심하시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내가 만든 자백제는 무척 잘 들어서 어떤 말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까.”
“네. 조심할게요.”
하지만 하현은 말과는 다르게 거침없이 손을 뻗어 요황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맨들맨들한 머리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하현은 자신의 능력이 미래를 보는 능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능력을 어렴풋이 쓸 때는 잘 몰랐지만, 점점 능숙해지며 알게 되는 것이다.
스으윽-
하현은 천천히 그의 백회혈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현과 요황의 진기가 서로 부딪히게 만들어 비무할 때와 비슷한 상황을 이끌어내려 하는 것이다.
“넌 앞으로 절대 내 질문에 입으로 대답하면 안 된다. 다만, 머리로 떠올려라.”
동공이 풀리고, 몽롱한 표정을 지은 요황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백제는 일종의 세뇌제로도 작용하는 모양이었다.
‘자, 네 생각을 떠올려 봐라.’
하현은 지금까지는 이 특별한 능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원할 때 발동되는 능력도 아니거니와, 어떻게 발현되는지 알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단전이 더 열리고 수많은 무공을 익히며 성장한 지금, 어느 정도는 상대의 다음 수가 읽혀왔다.
실력 있는 무인이라면 무의식적으로 출수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출수할지를 먼저 생각하고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하현은 그 생각을 읽어낸 것뿐.
상대가 미리 움직일 생각을 읽어내니, 미래가 보인다고 착각할 만도 했다.
‘그렇다면…… 생각을 읽어내는 것도 분명히 가능할 거야.’
하현은 계속해서 요황의 머리에 기운을 주입하며 물었다.
“제갈정규 소협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다는 너의 말은 사실인가?”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입 밖으로 내뱉지 말라는 하현의 말이 통했는지, 다행히 요황은 입으로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생각만으로는 금제가 발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이게 아닌가?’
하현은 그의 머리에 주입하던 기운을 거두려던 찰나.
- ……이다.
하현의 머리에 요황의 음성이 언뜻 스쳐 갔다.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로 들린다!’
그의 이론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현은 다시 한번 요황에게 물었다.
“네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 사실이다. 하지만…….
“하지만?”
- 돌릴 수 있는 것은 정신뿐. 한 번 변해버린 몸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아……!”
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뒤에서 그를 보고 있는 제갈과와 당규호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하현이 요황의 머리에 손을 얹더니 혼자서 뭐라 하는 것이 일견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현아. 지금 뭐 하는……?”
“당가주님.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어요? 혹시 종이와 붓, 먹이 있으면 좀 가져다주세요.”
“이런 곳에 종이랑 먹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 내가 평소에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가 반사적으로 물으며 제갈과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제갈과는 슬쩍 뇌옥의 문을 바라보았다.
나가서 가져오라는 소리인 것 같았다.
당규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켰다.
“내가 여기서 종이 심부름이나 하고 있을 짬은 아닌데.”
하지만 아무도 듣는 이는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뇌옥을 나섰다.
하현을 바라보고 있는 제갈과의 얼굴에는 신뢰와 더불어 너무나도 큰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기에, 뭐라고 더 말을 붙일 수도 없었다.
“그러면 정신이라도 돌리는 방법은 무엇이지?”
그는 하현이 묻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뇌옥을 빠져나왔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