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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33화 (233/304)

233화

당규호가 뇌옥 밖에서 종이와 먹을 가져왔을 때, 하현은 그전까지 요황의 머리에 손을 대고 있다가 떼더니 급히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라고 쓰는 거지……?’

당규호가 그 내용을 보았지만, 쉬이 그 내용이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 단어 하나하나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인데 그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하현이 너무나도 집중하고 있기에 무엇을 쓰고 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하아…… 이게 아닌 것 같은데.”

하현은 이따금 혼잣말하고, 한숨을 쉬며 머릿속으로 계속 무언가를 계산했다.

그러다가도 또 요황에게 달려가 머리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물어보고, 다시 돌아와서 무언가를 적으며 고민하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제갈과와 당규호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며 기다렸다.

- 가주님. 저 이렇게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조용히 숨까지 죽이며 기다리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 허허. 그렇다고 나보다 오래되었겠는가? 나는 오십 년이 넘네.

- 가주님한테는 못 당하겠네요.

그들은 육성으로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전음으로 대화했다.

중원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가졌다는 다섯 가문인 오대세가의 두 가주가 아직 약관에 이르지도 못한 소년 때문에 숨죽이는 모습이라니, 이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면 비현실적이라 했을 것이다.

“도저히 이 방법으로는 안 되겠네요.”

하현이 인상을 쓰며 지금까지 쓰던 종이를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제가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현은 둘이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던 듯,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요황에게 다가갔다.

- 무슨 방법이 안 된다는 건지 아십니까?

- 나도 모르네. 그러니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의 명문혈에 손을 대고는 기운을 흘려 넣었다.

천천히, 천천히 하현의 기운이 요황의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금제라는 것은 분명히 몸 안에 기운을 뭉쳐 놓은 걸 거야.’

하현이 생각해 낸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요황의 몸에 심겨 있는 금제 자체를 깨버리려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하현은 금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요황의 몸 안에 이질적인 기운, 예를 들어 마기 같은 것이 똬리를 틀고 있다면 그게 분명히 금제의 주체일 것이라고.

‘천마강림이라는 수법도 그렇지. 어느 한 점에 모였던 마기가 폭발하며 온몸을 잠식하는……. 이 금제라는 것도 비슷한 수법일 가능성이 커.’

하현의 기운은 단순히 요황의 겉만 훑는 것이 아닌 더욱더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이 사람이 제정신이라면 이렇게 깊게까지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그는 천천히 심공을 운용했다.

그가 운용한 것은 분명히 어머니가 가르쳐 준 창궁대연신공이다.

하지만, 그 기운은 마치 수미천왕신공처럼 움직였다.

제갈세가의 신공들을 익히며 하현이 가진 모든 심공을 흡수한 창궁대연신공은 이제 다른 신공의 효과까지 함께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분명히 무언가 있을 거야.’

하현은 확신을 가지고 기운을 운용했다.

아무리 찾기 힘든 곳에 깊숙하게 숨어 있더라도, 자신의 기감이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으으-

하현은 끊임없이 기운을 쏟아내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이질적인 기운을 찾아내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힘든 일이다.

기운이 중간에 끊겨서도 안 되고, 투입하는 기운이 너무 적어도 찾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일정 이상의 기운을 꾸준히 넣는 것이 핵심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네.’

하현은 불현듯 갈증을 느꼈다.

하지만 물을 마시려면 기운을 끊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모두 헛수고가 된다.

그는 조금 더 집중해서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제 하현도 명실상부 내가고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

그 덕분에 계속해서 탐색해낼 수 있었다.

‘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력이 바닥을 보이고, 너무나도 큰 갈증에 입이 바짝바짝 말라가던 하현은 신장 근처의 신수혈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가?’

그는 자신의 기운으로 조심히 그 기운을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압박해 가기 시작했다.

꿈틀-

그러자 그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하현은 직감적으로 제대로 찾았음을 깨달았다.

‘이러니까 찾기 힘들었지.’

신수혈은 임독양맥에 들어가지 않는 외혈 중의 하나다.

보통 무공을 익힐 때는 사용하지 않고, 보통 치료의 목적으로 자극을 가해주는 혈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다가 기운을 심어놓았으니, 하현이 샅샅이 훑지 않았다면 찾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으…… 으음?”

그때 요황이 신음성을 내며 고개를 쳐올렸다.

자백제의 약효가 떨어질 시간이 되며 정신을 차린 것이다.

“사, 살아 있나?”

그는 눈알을 뒤룩뒤룩 굴렀다.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이냐?”

그의 말투에는 일말의 고마움마저 깃들어 있었다.

자백제를 먹고 정신을 잃었던 그가 살아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하현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처럼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좀 아플 수도 있어요.”

“뭐라고?”

“참으셔야 해요. 힘든 작업이 될 겁니다.”

꾸우욱!

하현은 말을 마친 즉시 요황의 마기를 감싸고 있던 기운을 움직여 꽉 움켜쥐듯 잡았다.

외부에서 자극이 전달되자, 기운은 폭발하듯 팽창하기 시작했다.

“아, 아아악!!”

그 순간 요황은 허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눈을 까뒤집으며 소리를 질렀다.

몸이 팽팽하게 묶여 있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튕기는 탓에 그를 놓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현은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어차피 혼혈을 짚어도 고통 때문에 깨어날 거야.’

괜히 이 상태에서 손을 떼는 것은 기운의 흐름만 잠시 멈추게 할 뿐이라고 판단한 하현은 계속해서 마기를 공략해갔다.

화아악-!

하지만, 마기는 하현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현의 원래 목적은 그의 기운으로 마기를 떼어내서 바깥으로 분출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마기는 어떻게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 끝없이 팽창하며 요황의 몸을 잠식해나갔고, 심지어는 하현의 기운까지 잡아먹으며 하현에게까지 침범하려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하현의 얼굴에 낭패의 빛이 스쳐 간다.

순간 마기를 너무 쉽게 보았다는 자책의 마음도 피어올랐다.

사실 여기서 그냥 손을 뗀다면 하현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하현이 깨워버린 마기는 요황을 잠식해나갈 것이고, 요황이 죽고 나면 더 태울 것이 없어진 마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하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과신으로 인해 제갈정규를 깨울 수 있는 중요한 인물과 더불어, 마교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증인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쿠구구구-

요황의 몸에 흐르는 마기는 어느덧 흐름이 되어 요황의 몸을 돌기 시작했다.

계속 꿈틀거리던 요황의 몸이 축 늘어진 것으로 보아 너무나도 큰 고통으로 인해 혼절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

하현은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한 번 경험해본 적 같은 기분이.

재빨리 기억을 떠올린 하현은 곧 언제 이 상황을 겪었는지 기억해냈다.

‘황보세가주님이 쓰러져 있었을 때와 비슷해.’

물론 완전히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으로 인해 정신을 잃고 있다는 상황이 비슷했다.

그리고 하현은 그때 황보세가주를 어떻게 깨웠는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흐읍!”

슈우욱!

하현이 기합성을 터트림과 동시에, 요황의 몸에 흐르고 있는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하현이 애써 빨아들인 것도 아니다.

그의 손을 기운이 흐를 수 있는 통로로 만들자, 안착할 곳이 없어 끊임없이 몸을 돌고 있던 마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현은 거부하지 않고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마기의 기운이 얼마나 흉흉한지, 몇 촌각 지나지도 않았는데 모두 하현의 몸으로 건너오고 말았다.

털썩-

요황의 몸에 마기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한 하현이 급히 손을 떼고 가부좌를 틀어 앉았다.

“크윽……!”

온몸을 강타하는 고통에 하현은 당장이라도 정신줄을 놓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겨우 버텨냈다.

입가에서 주륵 흐른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려 옷깃을 적시는 게 느껴졌다.

“으윽!”

신음이 악문 이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하현은 고통 속에서도 내력을 운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당가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빨리 상황을 봐야 하지 않는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하현의 표정에 제갈과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런데 당규호가 침착하게 그를 제지했다.

“제갈가주님. 지금 하현이를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는 마기를 흡수하여 몸 안에서 싸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혹시라도 외부에서 충격이라도 가해진다면 백이면 백 주화입마에 빠질 것입니다.”

“마기를 흡수했다고……?!”

제갈과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마기를 흡수해서 몸으로 싸운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위험한 마기를 자신의 몸으로 끌고 들어간 그 판단 자체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까지……!”

마기란 것은 너무나도 지독하여 쉽사리 몰아낼 수 없다.

저렇게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많은 마기를 몸에 두었다간 당장 즉사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게…… 하현입니다. 제가 이 아이를 유독 아끼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현은…… 아니, 옥룡은 이미 협객입니다.”

“협객……!”

제갈과의 뇌리에 협객이라는 두 글자가 강렬하게 꽂혔다.

순간 아주 어릴 적이 떠올랐다.

이제는 백발노인이 된 그가 아주 어린 시절, 그가 되고 싶었던 것 역시 협객이었다.

“저 상황에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원통할 뿐입니다.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요.”

“허허…….”

제갈과는 하현을 뜨거운 눈으로 보았다.

그 눈은 결코 후기지수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이미 무림을 위해 제 몸을 내던지고 있는 한 영웅을 보는 선망의 눈빛이었다.

* * *

하현은 지금 그의 심상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 역시 수미천왕신공으로 황보세가주를 구할 때와 비슷했다.

“후. 마기도 내가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흩어 없애야 하는 건가?”

하현이 흑룡검을 떠올리자 어느새 허리춤에는 검이 묶여 있다.

검을 뽑아 든 하현은 긴장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황보세가주의 몸에는 넘칠 듯이 많은 기운이 몸을 흐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치 급류 같은 모양새로 하현의 심상에 나타났었다.

그런데 하현이 흡수한 마기는 그만큼의 양이 되지는 않았기에 그렇게 빠르게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디에 있지?”

그런데 아무리 발을 내디디며 달려가도, 마기는 찾을 수가 없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야 그곳으로 가서 마기와 싸우든 흡수하든 할 텐데, 어느 곳에서도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동굴의 크기도 훨씬 커졌네.”

그 와중에 하현은 새삼 지금 걷고 있는 동굴의 크기가 이전보다도 더욱 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경험상 이 동굴의 크기는 세맥의 넓이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있기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성장을 이렇게라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

한참을 달리던 하현은 저기 멀리 어두운 곳에서 사람의 인영을 발견했다.

그는 반가운 얼굴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왜 오늘은 마중 안 나오나 했어.”

하현의 심상 안에 있을 사람이란 그림자 무사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기를 흡수했어. 그런데 보통 마기가 아니래. 교주의 마기라고 하는데 아직 찾지는 못했거든. 같이 돌면서 마기를 좀 찾아보자.”

하현은 그림자 무사에게 말하며 그에게 걸어갔다.

턱-

그때 누군가 하현의 어깨를 잡았다.

깜짝 놀란 하현이 뒤로 홱 돌았다.

그런데 하현은 한층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그의 어깨를 잡은 것은 바로 그림자 무사였다.

하현은 순간 놀라 그가 그림자 무사인 줄 알고 다가가려 했던 사람을 유심히 보았다.

어둠 속에 몸을 가리고 있는 그는 하현이 다가오던 것을 멈추자 한 발자국씩 하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스으윽-

이윽고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나이에 검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자였는데, 완전히 처음 보는 복색이었다.

검정색과 붉은색이 섞인 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중원의 것은 분명 아니었다.

후욱-!

그 순간 불길하고 끈적한 기운이 하현에게 쏘아졌다.

하현은 긴장하며 그에게 소리쳤다.

“당신은 누구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지?”

여기는 하현의 심상 안.

그가 모르는 인물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중년인이 하현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다 어이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어떻게라니. 네가 본좌를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았느냐?”

“내가? 데려왔다고?”

하현은 그 순간 머리를 쿵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저 자의 정체가 짐작이 간 것이다.

“당신 혹시……?!”

“겨우 이런 의념의 조각이기는 하지만…….”

쿵-

그가 말을 하다 말고, 발을 세게 굴렀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부터 마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중년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본좌는 천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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