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호북에서 안휘로 돌아가는 길.
하현과 일행은 그 경계에 있는 악서(岳西)라는 지역에 있는 객잔에 쉬어가려 짐을 풀었다.
임무를 해결하고 돌아가는 길이기에 급할 일은 전혀 없었기에 하루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시장부터 해결하려 식당에 모였다.
점소이에게 시킨 음식이 이것저것 나오고, 개중에 진유강은 화주를 한 병 시켜 이빨로 마개를 뽑고서는 말했다.
“대장. 돌아가면 내 공적은 확실히 이야기해 주시기로 약속한 거요?”
“그러기로 했지. 그런데 너한테 무슨 공적?”
“무슨 공적이라니? 오고 가는 와중에 대장을 이렇게 잘 보필하고, 또 파락호들이랑도 싸우고 말이오. 눈먼 칼에라도 맞았으면 바로 골로 가는 건데 섭섭하게 공적이 없다고 말하기요?”
그는 답답하다는 듯 화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입 주위를 소매로 닦았다.
“솔직히 말해 공적이라면 여기 운후 아저씨가 크시지. 운후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제갈정규 소협을 찾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
“아닙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진유강은 공손한 얼굴로 하현에게 대답하는 운후가 기가 찬다는 듯 콧방귀를 흥! 하고 뀌고는 조용히 술과 음식을 먹었다.
하현은 그를 보며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진유강이 이렇게까지 공적에 집착하고 토라진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은 죄인 신분이나 다름없으니까.’
진유강이 하현의 하인이 되기로 하면서 뇌옥에서는 빠져나왔다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직은 산적의 수장이었던 전력이 있는 죄인이다.
그런데 공적을 많이 쌓아 정식으로 청룡각의 대원이 되면 지난 과오를 씻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저토록 공적에 목메는 것이다.
관아로 끌려가 사형당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소화 누나랑 팽 형한테도 미리 말하려 했는데, 세가에서 어떤 보상이 나오든, 어떤 공적을 셈해주든 공평하게 다섯으로 나누어 가질 거에요. 괜찮죠?”
하현의 말에 진유강이 토라짐을 거두고 눈을 반짝이는데, 소화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그건 좀 불공평한 거 같은데?”
“뭐가 불공평해 누나?”
“이번 일은 네가 다 해결한 거나 다름없는데, 왜 우리가 공적을 나눠 가져야 해? 형문산에 같이 간 것 말고는 나랑 팽 오라버니는 진짜 한 일도 없는데 말이야.”
“왜 한 일이 없어. 누나랑 팽 형이 아니었으면 내가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지도 못했을 거야. 그 역할도 셈해야지.”
“그래도 인정할 수 없어.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한테 우리는 별로 한 일이 없다고, 사실대로 말할 거야.”
소화는 하현의 말에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두 남매를 보고 진유강이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운 형. 지금 둘이 서로 공적을 안 가지겠다고 싸우고 있는 것이오?”
“네 눈에는 싸우는 걸로 보이나? 양보하고 있는 거지.”
“양보라고 하기에는 조금 말투가 과격해 보이기는 한데…….”
“나도 처음에는 둘이 항상 싸우는 줄 알았는데, 평온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거니 걱정 안에도 되네. 옆에 있는 헌홍 선배를 보면 알 수 있네.”
팽헌홍을 보니, 그는 태연자약하게 음식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구려…… 또 하나 배워가오.”
진유강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또 화주를 한 잔 들이켰다.
하현과 소화의 대화(?)가 일단락되고 말없이 식사를 진행 중이던 그들의 뒤에 있던 탁자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귀주성의 소식을 들었는가?”
“귀주성이라면 마교와 정파의 싸움이 있는 곳 아닌가? 거의 마무리되어간다고 들었는데, 무슨 특별한 소식이라도 있는가?”
그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하현은 청력을 그쪽에 집중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남궁세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귀주성으로 내려갈까도 생각했던 하현이었다.
제갈세가가 있는 호북의 융준산에서 남궁세가가 있는 합비보다 귀주성이 훨씬 가까웠으니 말이다.
“으이구. 이 사람아. 전쟁이 끝났는데 그 소식도 모르고 사는가?”
“전쟁이 끝났다고?”
“그래. 이번 전쟁을 이끌고 계시는 검존께서 끝까지 틀어박혀 있던 이번 전쟁의 원흉을 제거하셨다고 하네.”
하현은 할아버지의 별호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사내들은 하현이 보고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흉수가 도대체 누구였다고 하는가? 설마 교주가 여기서 잡히지는 않았겠지?”
“아쉽게도 교주는 아니었다는구먼.”
“그러면?”
“자네, 팔선나찰 정륭괴를 기억하는가?”
“허엇……! 팔선나찰이라니. 그 노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말인가?”
하현은 처음 들어보는 별호였기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때 그에게 전음이 들려왔다.
- 팔선나찰은 마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장로 중 하나야. 저번 정마대전에서 교주와 함께 가장 많은 정파 고수를 죽인 인물이기도 하고.
팽헌홍의 목소리였다.
하현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사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파 무인들의 피해는 어느 정도라는가? 팔선나찰이 직접 나섰다면 쉬운 싸움은 아니었을 텐데.”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내가 들은 건 이 정도라서 말이야. 자네도 계속 장사꾼으로 살고 싶으면 이런 소문을 누구보다 빠르게 입수해야 하네.”
“고맙네. 그런데 자네는 이 소문을 어찌 알았는가?”
그가 이제야 주변을 살피려는지 고개를 돌렸다.
하현은 그 순간 번개 같은 속도로 고개를 돌려 다시 등을 돌렸고,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정보를 얻을 곳이 어디 있겠는가? 개방은 우리를 상대해 주지 않으니 하오문뿐이지. 방금 자네에게 말해 준 정보도 다 내가 동전을 서른 문이나 주고 알아 온 정보라네.”
“그랬구만. 고맙네. 여기 술은 내가 사겠네.”
“당연히 그래야지. 그 소리를 들으려고 정보를 말해 준 거니 말이야.”
사내들은 껄껄 웃고는 이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게 어떨까요? 집으로 빨리 가는 게 나을 듯한데.”
“그래. 나도 동감이야. 전쟁이 끝났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중원이 시끄러워질 게 뻔해. 괜히 거기에 휘말릴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다.”
“운후 아저씨는요?”
“저야 언제든 도련님의 뜻에 따를 겁니다.”
하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말했다.
“그러면 모두가 동의했으니, 그렇게 할게요.”
“잠, 잠깐. 대장 왜 내 의견은 물어보지 않는 것이오?”
“저는 다 먹어서 이만 방으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다들 알아서 시간 보내시다가 내일 묘시 초에 이곳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죠.”
“내 말이 안 들리시오?”
하현은 이제야 진유강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알아서 하세요. 늦게 오면 놓고 갈 거니까.”
“오! 놓고 가주신다는 말이오?”
“혹시 원하세요?”
“하하. 원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뭐……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남궁세가에서 탈주한 죄인 신분으로 추적대를 보낼 테지만요. 그 추적대의 대장은 제가 할 거고요.”
“남궁세가에 빨리 돌아가고 싶소이다. 묘시 초부터 나와서 아예 기다리고 있겠소. 어서 올라가서 쉬시오. 대장.”
순식간에 태세를 바꾸는 그를 보며 하현이 쿡쿡 웃고는 방으로 올라갔다.
“에잇 망할. 술도 더 먹으면 안 되겠군.”
좋아하는 술까지 한쪽으로 치워두고서 배를 채우는 진유강이었다.
하지만 진유강의 표정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만약 진심으로 하현이 떠나도 된다고 해도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 * *
그 후로 이틀이 지나고, 그들은 드디어 남궁세가에 돌아왔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돌아가는 것 같군.”
진유강의 말대로였다.
겨우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세가를 비운 것이건만, 일 년은 족히 된 것 같았다.
“임무를 갔다 올 때는 항상 그래요. 세가 밖을 나가면 단 하루도 편하게 쉬기 힘든 일정들의 연속이잖아요. 잠을 잘 때도 사실은 임무 수행 중인 거니까.”
“그러게 말이야. 이번에 돌아가면 조금 쉬어야겠어.”
“누나. 정예대원이 되려면 쉴 틈이 없을 텐데?”
“에이씨.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쉬냐!”
하현과 소화가 또 티격태격하는 사이 그들은 하인들에게 말을 맡기고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하현은 일단 가주 대리를 수행 중인 남궁기철에게 먼저 향했다.
굳이 모두가 임무를 보고하러 갈 필요는 없기에, 나머지는 각자 숙소를 향해 흩어지고 하현 혼자서만 갔다.
남궁기철의 집무실이 있는 창천각.
하현은 이상하게 창천각 앞에만 서만 압도되는 기분을 느꼈다.
가장 처음 할아버지를 만난 곳이 이곳이라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집무실에서 업무에 열중하던 남궁기철은 하현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늘쯤 돌아올 것 같더라니. 고생이 정말 많았다.”
“아니에요.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나서 다행이에요. 시간은 예상보다 더 오래 걸렸지만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렇게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다니, 대단하구나. 옥룡이라고?”
“네. 부끄럽지만 그렇게 불러주시더군요.”
“잘 어울린다. 멋진 별호야.”
남궁기철은 자랑스럽다는 듯 하현의 등을 쓸어주었다.
하현은 그 손길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제갈세가에서 보내온 서신에 너와 우리 세가 무인들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하더구나. 우리 가문의 위상을 제대로 높였어. 장하다.”
“운이 따라줬습니다.”
하현이 겸양을 떨었지만, 운도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그는 매사에 항상 노력하고 있기에 운을 잡을 수 있었으리라.
“귀주전쟁이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우리 세가 사람들은 돌아오고 계실까요?”
“그래. 무림맹으로 가지 않으시고 곧장 세가로 돌아오신다고 했다.”
“그렇군요.”
하현이 빙긋 웃었다.
얼마 있지 않으면 할아버지와 남궁민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녀석. 가주님이 그렇게 좋으냐?”
“네. 정말 좋습니다.”
“하하. 그렇지 않아도 가주님께서 보내온 서신에 하현이 네가 제갈세가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시더구나. 나는 제갈세가에서 직접 연락을 보내왔기에 내가 더 잘 알고 있을 터인데.”
“할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그래. 너한테는 티를 많이 안 내시나 보지만, 항상 네 얘기를 하신단다.”
하현의 얼굴이 조금 헤벌쭉해졌다.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듯했다.
“흠…… 그러면 지금 당장 돌아온 너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가주님을 맞이하러 사람을 보낼 건데 거기에 다녀오겠느냐?”
“마중을 나간다고요?”
“그래. 우리 무인들은 호남, 강서를 통해 안휘로 올라갈 생각인데, 그쪽엔 말이 한 필도 없어서 말이야. 마차를 호남과 강서의 경계까지는 보내는 것이 목표란다.”
하현은 길게 생각도 하지 않고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고 싶어요. 보내주세요.”
“하하.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무리하는 건 아니지?”
“절대 아니에요. 돌아오는 길에 말에서 잘 쉬어서 체력은 완벽합니다.”
말을 타고 오며 체력을 회복한다는 말이 조금은 걸리긴 하지만, 하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의 창궁대연신공은 어느 자세에서든 하현을 회복시켜 주니까.
“현이 네가 마차를 몰 줄 알던가?”
“아직 몰아본 적은 없지만 한 시진만 주시면 제가 완벽하게 배워 볼게요.”
남궁기철은 하현의 저 자신감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한 시진도 겸손을 많이 섞어 말했을 것이다.
한 번만 보고 연습해 보면 몇 년은 마차를 몰아본 기수처럼 능숙하게 할 것이 눈에 선했다.
“그래. 알겠다. 내일 점심을 먹을 때까지는 마차와 말을 준비하고, 그 후에 출발할 예정이니 내일까지는 꼭 휴식을 취하거라. 말 배우는 건…… 장칠한테 배우면 되겠다.”
“장칠 아저씨한테요?”
“그래. 장칠은 말도 곧장 몰고, 너와도 친분이 있으니 잘 가르쳐 줄 게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하현과 남궁기철은 이번 제갈세가 행에서의 공적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하현은 그가 말했던 대로 공적과 보상은 공평하게 나눠달라 이야기했다.
창천각에서 나온 하현은 숙소로 가지 않고, 곧장 장칠을 찾아 마구간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선풍에게 마차를 씌우고 마차 모는 법을 익히고 싶었다.
하현의 마음은 이미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