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하현은 집으로 돌아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마차를 이끌고 다시 세가를 나섰다.
그의 옆에는 계속 구시렁거리고, 투덜대면서도 하현이 모는 마차에 올라탄 진유강과, 하현의 옆을 지키고 있는 운후가 함께였다.
총 열 대의 마차였다.
하현이 모는 마차가 제일 선두를 지키고, 그 뒤를 마부들이 이끄는 마차들이 줄줄이 이었다.
세가 밖으로 나가는 마차의 행렬을 보고 있던 남궁기철이 하현에게 마차 모는 법을 가르쳐 준 장칠에게 물었다.
“이보게. 장칠.”
“네. 도련님. 아차…… 이제는 아니군요. 가주 대리님.”
남궁기철은 장칠의 말실수에 미소 지었다.
“언제적 도련님인가? 내가 나이가 몇인데.”
“하하. 조금 전까지 하현 도련님과 계속 같이 있다 보니 입에 붙었나 봅니다.”
장칠과 남궁기철은 동년배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말이다.
훨씬 더 예전에는 장칠이 남궁기철에게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하현이의 마차 모는 실력은 좀 어떤가? 하루밖에 시간이 없었다고는 해도 분명히 잘 해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건만.”
“하현 도련님 말입니까?”
장칠의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어난다.
하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절로 미소를 지을 정도로 그는 하현을 아꼈다.
“실력이라…… 아마 실력으로만 본다면 하오문 마문의 기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일 겁니다. 저는 도련님이 말이랑 대화가 통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 정도란 말인가?”
남궁기철은 장칠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소 장칠이 호들갑을 떠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오문 마문은 마차를 몰 줄 안다고 해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모든 마부들의 꿈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십 중 여덟, 아홉은 하오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그 기준이 까다롭다.
“제가 빈말하는 것 보셨습니까? 아마 도련님께서 무인이 아니라 마부였다면 온 중원에서 마성(馬星)이 태어났다고 난리였을 겁니다.”
“허허. 자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니.”
남궁기철은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의 조카가 재능이 넘치는 줄은 알았지만, 이런 것에서까지 재능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
그들은 마차 무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린 다음 등을 돌려 세가로 돌아갔다.
“하현 도련님이 가주님을 잘 모시고 오시겠죠?”
“그럼. 자네가 가끔 잊나 본데, 하현이는 이미 어엿한 우리 가문의 정예대원이니까.”
“하하하. 얼굴만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할 텐데 말입니다.”
그들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 흩어졌다.
전쟁을 끝내고 모두가 돌아오면 환영식부터 시작해서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 * *
마교의 삼대 가문 중의 하나인 신강양가(新疆楊家)의 가주전.
신강양가주 양귀진은 그의 수하들에게 무언가를 보고 받고 있었다.
“그래. 귀주에서의 싸움이 종결되고, 정파 무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이번 전쟁의 결과로 대산천가(大山陳家)는 정예들을 대부분 잃어버렸고, 평교도들 역시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대산천가는 한동안은 재기 불능이겠군.”
“그렇습니다.”
무림에서 흔히 귀주전쟁이라 불리운 이번 전쟁은 마교내에서의 이권 다툼이 그 발단이었다.
현재 마교는 세 가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천마유가, 신강양가, 대산천가.
솔직히 말해 마교의 현재 상황은 그다지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세 가문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이 시기에 서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하여 격렬하게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천마유가의 그 여우들은 혹시라도 나섰느냐?”
“아닙니다. 저희 정보망에 따르면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양귀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 귀주전쟁에서 원래는 천마유가와 신강양가에서 지원군을 보내기로 했었다.
하지만, 두 가문에서는 어떠한 지원군도 보내지 않았고, 그 결과는 대산천가의 궤멸로 이어졌다.
“교주님께서는 뭐라 하시더냐?”
“다행히도 아무 반응이 없으셨습니다. 이 상황을 전부 알고 계시는지도 미지수입니다.”
“흐흐.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분께서는 대법의 완성이 대산천가보다 더 중요하신 것이다.”
그는 뭐가 그리도 만족스러운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났는지 수하에게 물었다.
“남궁무룡의 손자에 대해서는 알아보았는가?”
“네. 최근 호북성 쪽에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옥룡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의 과거는?”
“아직 알아보는 중입니다. 허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말해보거라.”
“남궁무룡의 손자를 조사하던 인원 몇 명이 살해당했습니다.”
양귀진의 놀랐는지 눈이 조금 커졌다.
하지만 조금 놀랐을 뿐, 살해당했다는 수하들에 대한 연민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에게?”
“짐작가는 흉수는 있습니다.”
양귀진은 수하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그가 입을 열었다.
“죽은 사체에서 천마유가 특유의 마기가 느껴졌습니다.”
“뭣이라……?!”
그는 이번에는 진심으로 놀랐다.
남궁무룡의 손자가 그의 뒷조사하는 것을 눈치채고 그의 수하들을 죽였다고 한다면 오히려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천마유가……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군.”
그는 직감적으로 하현과 천마유가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금 소교주는 천마유가에서 데려온 아이다. 소교주와 비슷한 체질을 가진 남궁무룡의 손자는 또 천마유가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있고.’
조금씩 실마리가 모여가고 있다.
교주가 천마유가에서 데려온 아이를 덜컥 소교주로 앉힘으로써 그동안 두 가문 사이에 팽팽하게 유지되던 균형의 추가 천마유가 쪽으로 많이 기운 것은 사실이다.
그는 하현을 잘만 활용한다면 다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남궁무룡의 손자는 지금 어디 있지?”
“마차를 몰고 강서성을 지나쳐 호남성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마차를? 어째서?”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머릿속에 지도를 떠올린 그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제 할아버지를 데리러 가는 것이군.”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만약 남궁무룡과 그 손자가 만나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절대 그를 빼낼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사람을 보내야겠다.”
“사람이라면 누구를 보내야겠습니까?”
“양화, 양규, 양형을 보낼 것이다.”
“가주님 그들은……!”
수하는 제 귀를 의심했다.
조금 전 양귀진이 말한 세 명은 보통 무인들이 아니었다.
신창양가에서 소교주로 만들기 위하여 어릴 적부터 공들여 키운 어린 무인들이었다.
아직 세상에 내보인 적이 없었기에 그가 그토록 놀라는 것이었다.
“내가 당부할 말이 있으니, 당장 셋을 여기로 올라오라 전해라.”
“조, 존명.”
수하는 고개를 숙이며 말하고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해서든 하현은 데리고 오겠다는 그의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 * *
말에 채찍질을 하는 소리, 말이 땅을 박차는 소리,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마차 안에 앉아 있던 진유강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대장. 나 너무 힘들어서 못 해먹겠소. 호북에 갔다가 도착한 게 바로 어제요. 그런데 계속 마차에만 올라타 있으려니 힘들어 죽겠소. 세상도 돌고 나도 도는 것 같단 말이오.”
“참아.”
“이익! 대장은 참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게 힘들단 말이오!”
그는 어린아이가 보채듯 하현의 곁으로 바짝 붙어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했다.
처음에는 가만히 듣고 있던 하현이 참을 수 없었는지 진유강에게 말했다.
“어휴. 제 공적을 쌓아주려 해도 저렇게 불만이 많으니. 자꾸 그럴 거면 말을 한 마리 내어줄 테니 세가로 돌아가.”
“공적을 쌓아준다니 무슨 말이오?”
공적이라는 말에 진유강의 두 눈이 반짝였다.
“말 그대로야. 지금 우리가 호남성에는 왜 가는지 잊었어?”
“그야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는 세가 무인들을 데리러…….”
“그래.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데 당연히 공적을 계산해 주지 않겠어? 물론 모두가 무사히 돌아온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하현은 눈만 끔뻑이는 진유강을 보며 설명을 이어 했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데리러 가는 게 누구지?”
“검존…… 그러니까, 가주님?”
“그래. 만약 당신이 우리 할아버지를 아주 잘 모시고 세가로 잘 모셔드린다면 우리 할아버지가 당신의 이름과 등급을 기억 못 할까?”
“기억…… 하겠지?”
“그래. 그런데 그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하하! 대장의 말이 맞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지!”
조금 전까지 짜증이 가득했던 진유강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하는 일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공적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일이었으니 신이 난 것이다.
“참 단순해.”
하현은 진유강을 보며 씨익 웃고는 다시 마차를 몰았다.
분명히 나쁜 사람은 아니다.
산적 두목이었다는 것이 전혀 연상이 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진유강이 저리도 공적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공적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생명을 구해줄 수단이니까.
“워워-. 다들 여기서 멈춥시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마차를 몰고서 말을 세웠다.
선풍은 더 달리고 싶다는 듯 콧김을 쉭쉭 뿜었다.
하현은 선풍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착하지. 조금만 쉬었다가 가자. 너 혼자라면 계속 달려도 되지만, 다른 말들은 너처럼 달리면 쓰러진다고. 알았지?”
당연히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선풍은 다 알아들었는지 얌전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사실 휴식을 주는 이유에는 꼭 말을 쉬게 하려는 것뿐만이 아니다.
하현을 따라온 마부들은 모두 무공을 익히지 않은 보통 사람이다.
그들도 휴식이 필요하다.
하현을 따라오느라 저 사람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다.
말도, 사람도 가만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하현이 홀연히 일어났다.
“도련님.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뭐가 느껴지는 듯해서요.”
“느껴지신다고요?”
사실 하현이 하필 이곳에서 말과 마부를 쉬어가게 한 까닭은 다른 게 아니었다.
몇 명의 무인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현은 눈을 감고 기감에 온 정신을 집중하더니 곧 눈을 뜨고 말했다.
“아저씨. 잠깐 쉬고 계세요.”
“어딜 가시는 겁니까?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금방 가서 확인만 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세요. 어차피 제 신법을 따라오시지도 못하잖아요.”
아무런 대답도 못 하는 운후를 보며 하현은 씨익 웃어 주었다.
“그러니까 빨리 수련해서 저를 따라오세요.”
“알겠습니다.”
하현은 고개를 숙여 대답하는 운후를 두고 땅을 박찼다.
몸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볍고 부드러운 신법이었다.
‘하나, 둘…… 모두 세 명이야.’
모두 세 명의 남녀였다.
그것도 무인이다.
‘아직 제 기운을 온전히 갈무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야.’
아주 조금은 긴장이 늦추어졌다.
혹시라도 저 세 명이 마차를 노리고 왔다고 하더라도, 하현 혼자서 감당해낼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절대 방심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하현의 발소리는 점점 더 작아지고, 점점 더 은밀해졌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이 이야기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하현은 청력을 집중시켜 대화를 들었다.
“사형. 이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마차 행렬이 있어요. 일단 그들한테 도움을 청해야 한다니까요?”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냐?”
“그걸 모르니까 지금 가서 물어보자는 것 아니에요! 사저, 사저는 어떻게 생각해요?”
“나도 동감이야. 일단은 대사형을 살리고 봐야지.”
하현은 소리 없이 움직이면서 하현은 그들을 볼 수 있는 위치에까지 왔고, 곧 그의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셋인 줄 알았는데, 넷이군.’
그들은 같은 문파 출신인지 비슷게 푸른색 계열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한 명은 기절했는지 사형이라 불린 무인의 등에 업혀 있었다.
완전히 정신을 놓았기에 하현이 기척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넷 중에 셋은 남자, 하나는 여자였다.
하현은 눈을 감고 가만히 그들의 기운을 관조했다.
‘가진 기운 자체는 정순한데.’
그들의 기운에서는 사이한 기운이나 마기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하현은 결국, 그들의 앞에 나서기로 했다.
‘여차하면 도망치면 되니까.’
휘리릭-!
하현은 신법을 전개해 몸을 회전시키며 그들에게 날아갔다.
“뭐, 뭐야!”
“무인?”
“누구냐!”
그들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하늘에서 바람이 몰아치더니 사람이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그들이었다.
하현은 일부러 조금 더 과장되게 신법을 전개했다.
일종의 기선제압이었다.
풍신처럼 나타난 하현은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 질문은 내가 해야겠는데? 당신들은 누구지? 어째서 우리 마차 쪽으로 오고 있는 거지?”
다들 나이가 하현보다 대여섯은 많아 보였건만, 하현의 하대가 묘하게 자연스러웠다.
사형이라 불린 사내가 반사적으로 하현을 향해 검을 뽑아 들려 했다.
그런데 여인이 그의 팔꿈치를 잡아, 검을 뽑는 것을 막았다.
“사매 왜 그러는 거야?”
여인은 동료의 말도 무시한 채, 하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순간 하현의 눈에 이채가 뜨였다.
여인의 눈치가 보통이 아닌 것이 느껴졌다.
“소협. 저희는 해남도 해남검파의 제자들입니다. 중원에 일이 있어 나왔다가 일행 중 한 명이 쓰러져 위독합니다. 혹여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요?”
“도움?”
“혹여 일행에 의원이 있으시면 한 번 봐주셔도 좋고, 그게 아니라 가는 방향이 맞으시다면 태워 주시기를 청하려 했습니다.”
하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말에서 거짓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디를 가는 거지?”
“광동성 양강(陽江)항에 해남도로 향하는 배편이 있습니다. 꼭 거기까지 데려가 달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가는 길까지만 부탁드립니다.”
하현은 팔짱 낀 손가락으로 팔을 두드리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단 따라와. 검에서는 손을 떼고.”
“감사합니다. 소협.”
뒤돌아선 하현은 그들에게 쫓아오라는 듯 그들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신법을 전개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