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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41화 (241/304)

241화

“사형. 괜찮은 거겠죠?”

“……이영 사제가 괜찮다고 하니 잠자코 기다려 보자꾸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영진은 몹시도 초조한 얼굴이었다.

“너무 섣불리 사람을 믿은 것은 아닌가 싶네요.”

“그러게 말이다. 남궁세가라는 말에 너무 쉽게 이영과 사형을 맡긴 게 아닌가 싶군…….”

“아직 어린 것 같은데, 혹시나 편자(騙子:사기꾼)는 아니겠죠?”

“그러니 똑바로 보고 있어야지.”

영진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마차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무력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거기 두 분 지금 뭐라 그랬소?”

그때 그들 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껄렁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진유강이었다.

“당신은……?”

영진과 단청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아직 진유강과는 통성명하지도 않았기에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들이었다.

다만, 하현과 비슷한 무복을 입고 있었기에 남궁세가의 사람이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나? 나는 남궁세가의 무명제자요. 그런데, 조금 전에 우리 대장한테 뭐라 한 거요?”

“뭐라고 했다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네만.”

“발뺌하는 것이오? 내가 다 듣고 온 건데.”

진유강이 콧김을 뿜었다.

무엇 때문인지 화가 난 것 같았다.

“우리가 무슨 말을…….”

“지금 우리 대장을 사기꾼 취급하지 않았소? 그러고도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것이오?”

“아……! 그 말은 남궁소협이 사기꾼이라는 말이 아니고…….”

“듣기 싫소이다! 지금 갈 길이 바쁜 와중에 죽어가는 사람 좋은 마음으로 도와줬다니, 사기꾼 소리나 듣고 이게 어디서 배운 예의란 말이오?”

다짜고짜 쏘아붙이는 진유강에게 영진과 단청이 당황하여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이봐. 진유강. 그쯤 하지.”

“운 형. 못 들었소? 우리 대장보고 사기꾼이라고 하지 않소?”

“자네가 우리 도련님 일에 이렇게까지 흥분할 줄은 몰랐는데.”

평소에는 사사건건 툴툴거리고, 하현에게 불만도 서슴지 않고 이야기하던 진유강이다.

그런데 진유강은 마치 자기 욕을 한 것처럼 굴었다.

“아니, 내가 정말 그러고 있네?”

진유강은 자신이 그렇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을 이었다.

“운 형. 내가 왜 이러는 것이오?”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나?”

“허어……! 분명 도련님이 나한테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하오. 저 자들 이야기하는 데 껴서 같이 욕을 해도 모자랄 판에, 내가 분개하고 있었다고?”

진유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마차에서 멀어졌다.

그 충격에 지금껏 영진, 단청에게 뭐라 쏘아붙이고 있었다는 것도 잊은 듯했다.

“나 참. 제가 대신 사죄드리겠습니다. 원래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는 친구라.”

운후가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했다.

너무나도 공손한 그 표정과 말투에 영진은 그에게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시비를 건 건 운후가 아니라, 진유강이었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아닙니다. 제가 답답하여 실언했나 봅니다.”

단청이 재빨리 마주 인사했다.

해남파 일행 중에서 가장 막내라 그런지 눈치가 빨랐다.

“운후 아저씨. 저기 진유강은 또 왜 저러는 거에요? 시끄러워서 집중할 수가 없네.”

“도련님!”

그때 하현이 마차에서 나오며 말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나온 탓에 운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혹시 진유강 때문에 소란스러워 집중하지 못하신 겁니까? 제가 진작 조용히 시켰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도련님.”

“그걸 왜 아저씨가 사과하세요. 아저씨가 진유강의 보호자도 아닌데요.”

“그래도…….”

죄스러운 표정을 하는 운후를 보며 하현이 피식 웃었다.

운후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운후도 진유강처럼 왈패일 적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듯 시끄럽고 껄렁거리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성격이 바뀌었다.

안정된 상황과 하현에 대한 충심이 사람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다행히 할 일은 다 끝났어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헛! 그러면 대사형이 깨어났다는 말이에요?”

“아니요.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는데, 분명 시간이 지나면 일어날 거에요. 다행히 제가 주입한 내공이 단전에 자리 잡고 조금씩 덩치를 키워가고 있거든요. 아마 어느 정도 회복하고, 다시 온몸 기혈에 내공이 들어서면 깨어나겠죠.”

단청은 하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소협.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무뚝뚝하게 서 있던 영진도 하현에게 다가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일단은 같이 가죠? 두 분도 이 마차에 타세요. 가는 길까지는 태워다 드릴 테니까요. 류 소저에게는 이야기해 놓았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뭘요. 출발할 거니까 빨리 타세요.”

둘은 서둘러 마차에 올라탔다.

하현은 운후에게 말했다.

“아저씨. 그러면 다시 출발할까요? 일단은 우리가 가기로 예정되어있는 강서성 의춘까지는 저들과 같이 가도 될 것 같아요. 강서성이랑 광동성은 붙어 있으니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부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출발하도록 하겠으니, 도련님은 먼저 마차에 가 계시지요.”

“네.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오면 출발할 테니 천천히 이야기를 전하고 와 주세요.”

하현은 그의 마차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멍한 표정의 진유강이 타고 있었다.

“또 왜 그러는 거야?”

“뭐, 뭘 말이오?”

“뭐 때문에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는 거냐는 말이야.”

모두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하현이었지만, 이상하게 진유강에게 하는 하대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하현은 진심으로 그를 하인 혹은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 알 것 없소! 앞으로 나한테 말 시키지 마시오. 난 생각 좀 할 게 있으니까.”

진유강은 마차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하현은 그를 보고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젓고는 선풍에게로 다가갔다.

“선풍. 이제 또 달릴 거야. 아까처럼 뒤에 따라오는 말들이랑 속도를 맞추면서 가는 거야. 알았지?”

“히히히힝!”

“하하. 알아들었어? 아무리 봐도 네가 저기 진유강보다도 말을 잘 듣는 거 같다니까.”

“아니! 대장, 내가 말만도 못하단 말이오?”

“그래도 귀는 좋네.”

마차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하현은 피식 웃었다.

잠시 후에 뒤따라올 마부와 마차를 준비시킨 운후가 마차에 올라타자, 하현은 마차를 이끌었다.

잠시 멈추어 섰던 하현과 그 일행은 호남과 강서의 경계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 * *

이윽고 하현은 강서성에 진입하였다.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만나기로 한 곳은 호남성과 맞붙어 있는 의춘(宜春)이라는 도시로, 현재 하현이 있는 응담(鷹潭)에서는 마차로 하루거리였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야겠군.”

“네. 마부들은 잠을 자야 하니까요. 말들도 마찬가지고.”

운후가 남궁기철에게서 받은 종이와 지도를 펼쳐보더니 하현에게 말했다.

“가주 대리님께서 미리 이곳에서 가장 큰 객잔에 기별을 넣어두시기로 했습니다. 여기 말고는 이 마차를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요.”

“어느 객잔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좋군요. 그쪽으로 가죠.”

그들은 곧 ‘금와객잔’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지금 하현의 일행은 마차만 십수 대고, 마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객잔은 이곳밖에 없었다.

“아니, 이렇게 호화로운 곳에서 잔단 말이오? 오늘은 술맛이 좋겠군!”

어느새 기분이 풀어진 진유강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호화롭거나, 아니거나 똑같은 숙소야. 회복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돼.”

“에헤이. 우리 대장은 아직 풍류를 모르는군. 술도 술이지만, 이렇게 고급 객잔에는 기루가 함께 있기 마련이오. 그리고, 기루에는 기생이 있지. 기생과 함께하는 술 한잔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오?”

하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알 리가 없었다.

애초에 태어나서 술을 입에 데 본 적도 없는 하현이었다.

“저런 저런. 나는 모처럼이니 즐겨야겠소. 내일 언제 출발할 거요? 그때까지는 돌아오리다.”

“내일은 아침까지 충분히 휴식하고 출발할 거긴 한데…… 돈은 있고 하는 소리야?”

“응? 돈 말이오?”

“그래. 술이든 기생이든 공짜는 아닐 것 같은데, 무슨 돈으로 하려나 몰라?”

“아차……!”

진유강은 새삼 자신이 돈 한 푼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현의 하인이 되기 전 모아놓았던 재물은 용호채에 전부 가져다 놓았고, 하인이 되고 나서는 변변찮은 보수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지금껏 객잔에 들러 먹고 자고 술 마신 돈들은 하현이 임무를 시작하기 전 세가에서 받아온 돈으로 모두 결제해 주었기에 돈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객잔에서 조용히 한잔하는 거라면 내가 내줄 수 있어.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세가에서. 그런데 기루까지는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끄응…….”

하현이 시시콜콜 맞는 말만 하는 통에 진유강은 결국 풀 죽은 강아지마냥 하현의 뒤를 따라 객잔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객잔으로 들어서자, 해남파의 무인들이 그들을 따라 들어왔다.

평경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기에 영진의 등에 업힌 채였다.

쭈뼛대는 그들 사이로 류이영이 앞으로 걸어 나와 하현에게 말했다.

“저희를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재워주시기까지 하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오늘 저희 세가에서 이 객잔 전체를 대절했어요.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이 분이 깨어나시는 것도 보고 싶기도 하고요.”

하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하현의 속마음은 조금 달랐다.

‘마음의 검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곤란했는데, 그 실마리를 찾아냈으니 이 정도는 해줘도 전혀 아깝지 않지.’

그는 빨리 숙소로 올라가 아까 깨달은 것들을 정리하고픈 마음으로 가슴이 가득했다.

“각자 식사하실 분들은 식사하시고, 쉬실 분들은 쉬세요. 저는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해남파 분들도 편하게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요. 부담가지지 마시고요. 혹시 저분이 깨어나시면 저한테도 가르쳐 주세요.”

뒤를 돌아서려는 하현에게 류이영이 재빨리 말했다.

“소협께서는 식사는 안 하시는 겁니까?”

“이따가 하긴 할 건데, 지금은 별생각이 없네요. 조금 쉬다가 배고프면 먹으려고요.”

“아…… 그렇군요.”

“그럼 다들 좋은 시간 보내세요.”

하현이 이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진유강은 울적한 얼굴로 운후에게 말했다.

“운 형. 나랑 한 잔 안 하겠소?”

“술은 끊었다. 저번에도 말했지 않느냐.”

“거참 정 없게! 이럴 때 동료끼리 술도 한잔하면서 정을 나누고 하는 것이지.”

“정은 무슨. 나도 밥은 나중에. 휴식부터 해야겠다.”

운후 역시 방으로 올라가 버리고, 혼자 남은 진유강은 해남파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들 혹시 술 한잔할 줄 아시오?”

* * *

방에 올라간 하현은 당연히 휴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원양신공(元陽神功)이라 했었지.’

하현은 류이영이 말해주었던 해남파의 내공심법의 이름을 상기했다.

사실 무공의 이름 따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껏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지?’

해남도가 중원과는 떨어진 섬이기에 독자적인 무공체계를 가지게 된 까닭일까? 그가 지금껏 배워왔던 일반적인 무학과는 그 상리가 어긋났다.

일반적인 중원의 무학은 단전을 일종의 저장고로 사용한다.

내공을 그곳에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쓰는 느낌이다.

하지만 해남파의 심법은 그 궤가 달랐다.

‘단전은 시작점이야. 단전에서 백회까지 기운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어. 필요할 때 꺼내쓰는 게 아니라, 이미 흐르고 있는 내공의 물길을 틀어내면 될 뿐이야.’

그 덕에 해남파는 분명 엄청나게 빠른 쾌검을 펼칠 적이라고 예상했다.

‘이 방식을 마음의 검과 결합하면…….’

하현은 진심으로 맑게 웃었다.

그는 두 방법의 결합으로, 지금도 빠름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그의 검이 한층 더 빨라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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