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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42화 (242/304)

242화

단순히 내공을 운용하는 법만 정리하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한 시진이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두 시진 가까이가 걸렸다.

하지만 하현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걸려 있다.

‘이제 남은 건 몸으로 익히는 것뿐이야. 저들에게 친절을 베풀기를 잘했어.’

하현은 이 방법은 남궁민에게 가르쳐 주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궁민은 그와 함께 마음의 검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형의 발전이 곧 가문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하현이기에 흔쾌히 그의 심득을 가르쳐줄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진짜로 검을 휘두르는 건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하고, 일단은 밥을 먹으러 가볼까?”

하현이 몸을 일으켰다.

사실 그는 방에 올라오기 전부터 허기진 상태였다.

그런데 무공에 대한 욕심에 식사를 건너뛴 것이다.

“여기가 금와객잔이라 했었지? 금와상단이란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건가?”

하현은 금와(금두꺼비)는 예로부터 부의 상징이었으니, 아무 상관 없이 복이 들어오는 이름을 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

‘장소유 소저와, 유 형은 잘 지내려나?’

금와상단은 생각하자 문득 고시현에서 만났던 장소유와 유정협이 생각났다.

둘이 혼인하여 잘 산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는데, 그 후로는 세가 밖을 돌아다니느라 연락할 틈이 없었다.

“조만간에 한 번 들러봐야겠어. 장 노야도 건강하신가 궁금하네.”

하현은 장 노야도 함께 떠올리며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그때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방문이 열리며 류이영이 나왔다.

“이제 식사하시러 가시는 겁니까?”

“네. 조금 늦었네요. 소저께서는 식사하셨어요?”

“아뇨. 저도 아직 못 먹었습니다.”

“왜요?”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어쩐지 그 표정이 평소에 하현이 진유강을 떠올리면 하는 표정과 비슷했다.

“하하하! 형님 한 잔 받으시오!”

“그래. 아우! 아우가 주는 술 한잔 받아 봐야지!”

그때 일 층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목소리 중 하나는 진유강의 목소리가 분명했고, 또 한 명의 목소리는…….

“영진 소협의 목소리인 것 같은데……?”

류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술판이 벌어져 저도 그냥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파악도 못 하고 저러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저도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네요.”

동병상련을 잠깐 느낀 둘은 일 층으로 내려왔다.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현을 진유강이 알아보고는 말했다.

“대장! 이제 내려오는 것이오? 얼른 이리 와 앉으시오.”

이미 그는 불콰하게 취한 듯 보였다.

그 옆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만취한 영진, 단청이 함께였다.

하현도 하현이지만, 둘을 보는 류이영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사형…… 사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 무표정이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저런 모습을 하현에게 보이려니 괜스레 부끄러운 것이다.

헌데 그 감정은 하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유강……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친구들이 알고 보니 아주 진국이오. 오늘 의형제를 맺기로 했소이다. 자. 아우 또 한 잔 받으시게!”

“형님이 주시는 술을 마다할 수 없죠. 감사합니다. 으하하!”

영진은 첫인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처음에는 까칠하지만 진중한 성격인 것 같았는데, 뒷골목 왈패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이래서 기운이 그토록 정순하지 못했구나.’

아까 하현이 영진에게 술과 고기를 줄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사형! 이제 그만 마시고 방으로 올라가서 주무세요!”

“사매. 딱 한 잔만 더 할게. 어차피 술도 마지막이었다고.”

“그래요. 소저. 딱 두 잔씩만 나눠 마시면 끝인데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둘의 넉살에 하현은 한숨을 푹 쉬고는 옆 탁자에 앉았다.

“류 소저. 그렇게 말한다고 들을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우리도 식사나 하죠.”

“하아…… 사문에서도 그렇게 몰래 술을 먹고 다녀서 사부님께 많이 혼났는데, 중원을 나와서도 저럴 줄은 몰랐어요. 여태까지는 잘 참아왔다 싶었는데…….”

암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쉬는 그녀에게 하현이 빙긋 웃어주며 말했다.

“저희를 만나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겠죠. 괜히 그렇게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저 사람이랑 계속 붙어 다녀봐서 아는데, 굳이 화내고 짜증을 내면 내가 손해더라고요. 심력 아까워요.”

“풋. 심력이 아까워요?”

“네. 그냥 저런 생물이라고 인정하면 됩니다.”

청산유수 같은 하현의 말에 류이영은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느끼지 못했지만, 중원에 나와서 처음으로 웃음 지은 그녀였다.

어느 새부터인가 그녀의 말투도 부드러워져 있었다.

방 앞에서 하현을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딱딱한 말투였던 그녀 역시 진유강과 사형이 난리를 피운 덕에 긴장이 풀렸는지 하현에게 편하게 말하고 있었다.

“어떤 음식을 내올까요?”

그때 점소이가 눈치를 보다가 하현에게 슬쩍 물어왔다.

하현과 류이영은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켰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진유강과 영진이 계속 안주를 시키고 있던 통에 주방장이 대기를 하고 있었는지 음식은 금방 나왔다.

하현은 식사하며 류이영에게 말했다.

“신물을 찾지 못해서 어떡해요?”

“어쩔 수 없죠. 솔직히 말해서 사문에서도 저희가 정말 투귀를 잡을 것이라 생각하고서 보낸 건 아니에요.”

“그래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향과도 같은 사문이건만, 그녀는 해남파를 생각하자 미미하게 표정이 찡그려졌다.

“사문에 사정이 있나 보군요. 그 사정이 해남파의 초고수들이 신물을 찾으러 나오지 못한 이유일 테고요. 말씀하시기 애매하면 말씀 안 하셔도 돼요.”

“배려 감사합니다.”

“신물이 금으로 된 조각상이라고 했는데, 세가에 돌아가면 표국을 통해서 장물로 나온 조각상이 없나 찾아봐달라고 할게요. 어떻게 생긴 조각상이에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문의 비밀일 수도 있지만, 하현이라면 말 해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을 들고 있는 사람의 형상입니다. 저희 해남파에서는 특별한 전설이 내려오는 신물이죠.”

“해남파의 개파조사께서 남기셨다고 하셨죠? 특별한 전설이라니, 궁금하네요.”

“별 건 아니에요. 어느 문파나, 어디에나 있는 흔한 전설이죠. 개파조사께서 해남검파의 진수를 모두 담아 금을 깎아 조각했고, 준비된 자가 그 조각상을 보면 해남검파 검술의 극의를 깨우친다…… 이런 전설이에요.”

전설을 듣는 하현의 표정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해남파는 해남검파라고도 불릴 정도로 검법에 정평한 문파다.

세상의 모든 검법에 관심이 있는 하현이기에 그 흥미는 더해 보였다.

“오…… 심결과 무공의 형태를 담아 조각하신 건가요? 재미있는 전설이네요.”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이에요. 저도 몇 번이나 보고, 저희 사문의 어른들도 그 조각상을 보았지만, 별다른 걸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렇게 특별한 조각상이라면 분명히 소문이 돌 거에요.”

하현은 순간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 모두는 긴장을 푼 채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음?’

그러던 도중 하현은 이 층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꼈다.

현재 이 층에는 운후 한 명의 기운만 느껴져야 할 텐데, 또 다른 사람의 기운이었다.

하현이 천장을 바라보자, 류이영이 하현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기척이 느껴져서요.”

하현은 말을 하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류이영 역시 엉겁결에 하현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달려간 하현이 멈춰 선 곳은 해남파의 대사형인 평경을 뉘어놓은 방 앞이었다.

“소협 혹시……?!”

놀라는 류이영에게 하현은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평경이 몸을 반쯤 일으키고 앉아 있었다.

그는 문이 열리자 깜짝 놀라면서도, 익숙한 얼굴에 입을 열었다.

“류 사제?”

“사형!”

류이영이 급히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평경을 와락 끌어안았다.

“사제. 그만, 그만! 날 죽일 셈이야?”

류이영이 순간 너무 세게 끌어안았는지, 그는 류이영을 밀어내고는 연신 기침해댔다.

그는 겨우 기침을 가라앉혔다.

“여기는 어디야? 이 분은 또 누구시고.”

“강서성에 있는 객잔이에요. 이 분은 사형을 살려주신 은인이고요.”

“나를 살려주었다고?”

“사형 정신을 잃었던 건 기억 나세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같이 산길을 걷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다음에는 기억이 없네.”

“그래요? 기운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던데.”

“내 기운이 사라져?”

그는 류이영의 말에 반사적으로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려보았다.

평소 그가 가지고 있던 기운에 비하면 미약하기 그지없는 내공만이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단전이 메말라버려 원천진기를 끌어다 쓸까 싶어 제 기운을 우선 넣어 놨습니다. 제가 해석한다고는 했는데, 완벽하게 해남검파의 기운과 일치하진 않을 거라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실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점차 옅어질 겁니다.”

“그쪽이 누구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일단 저를 구해주신 건 감사드립니다.”

“남궁세가의 남궁하현입니다.”

“해남파 이대 제자 평경입니다.”

하현은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었지만, 빙긋 미소를 지으며 그와 통성명했다.

“혹시 왜 쓰러지셨는지 짐작 가는 게 있으신가요?”

“흠…….”

그는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조금 더 쉬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류 소저는 하던 식사를 마저 하고 오세요. 그때까지 제가 여기 있을게요.”

“아, 그러지 않으셔도…….”

“그렇다고 밑에 있는 두 분한테 맡길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다녀오세요.”

하현은 생긋 웃어주었다.

그 웃음에 안심이 되었는지 류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대사형을 부탁하겠습니다.”

“부탁하고 말고가 어딨어요. 그냥 앉아 있는 건데요. 뭐.”

류이영은 서둘러 방을 나가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완전히 내려가기를 확인한 하현은 평경의 앞에 털썩 앉았다.

“우리 사매가 소협을 많이 신뢰하나 봅니다. 저랑 둘만 놔두고 저렇게 내려가는 것을 보면.”

“그런가 보네요.”

“저는 혼자 있어도 괜찮습니다만…….”

하지만 하현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평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기 소협…….”

“흠……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야.”

평경이 뭐라고 말을 내뱉으려 할 때, 하현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무엇을 모르겠다는 겁니까?”

“어떻게 한 거지? 도무지 방법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니면 다 같이 한패인 건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지만 하현은 그의 말은 무시하고 계속해서 혼잣말하듯 말을 이었다.

애초에 평경에게 대답을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닌듯했다.

“흠…… 아무리 봐도 한패는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에는 연기인 줄 알았지. 그래서 일부러 같이 시간을 보냈단 말이야? 밥도 같이 먹고. 그런데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진 않았어. 그리고 무엇보다 류 소저와 영진, 단청 이렇게 세 명은 분명히 같은 심법과 보법을 공유하고 있단 말이지?”

“…….”

하현의 말이 계속 이어지자, 평경은 입을 꾹 닫고 하현을 노려보았다.

“그러니 분명히 모종의 방법을 써서 아래의 세 명에게 오래전부터 같이 했다는 대사형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방법이 있다는 건데…… 하긴, 얼마 전에 요황이 제갈정규 소협한테 했던 걸 보면 정신조작이라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닐 것 같긴 해. 최면이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소협……!”

“잠깐! 생각하고 있잖아. 거의 다 정리되어 가니까 기다려.”

하현이 으르렁거리듯 소리쳤다.

평경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보인 하현의 박력에 압도당하는 것을 느꼈다.

“내공을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버리는 수를 쓰다니. 하하. 내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뻔했지.”

하현은 이제야 평경의 눈을 마주쳐왔다.

“당신의 의도가 뭐지?”

“의도라니……?”

“발뺌하지 마. 지금 당장 당신을 죽이지 않는 이유는 당신을 죽여도 저 세뇌가 풀리지 않을지도 몰라서니까.”

평경은 하현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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