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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43화 (243/304)

243화

평경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에는 그가 쓰던 것으로 보이는 검이 기대어 서 있었다.

그가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한 순간.

턱-

눈 깜짝할 새 그의 코앞까지 다가온 하현이 그의 어깨를 잡아눌러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

“검을 뽑으면 그대로 죽는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일 수는 없거든.”

평경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하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신의 의도가 뭐지? 혹시 나를 노리는 건가?”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나지 않았습니까? 제가 왜 당신을 노린다는 겁니까?”

“그러면 혹시 해남파의 신물을 노리고?”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스으으으-

하현의 몸에서 천천히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지금 절대 나를 못 이겨. 내공을 모두 버리면 신원을 파악하지 못할 줄 알았겠지만, 그건 당신의 패착이었어.”

“그 말뜻은……?!”

“사제들이랑 전혀 다른 결의 내공심법을 익힌 대사형이라고? 어이가 없군. 당신의 내공 운용 방식은…… 얼마 전에 싸웠던 마통검의 내공심법과 비슷하더군. 당신, 마교의 사람이지?”

“……?!”

평경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하현이 하는 말은 그만큼 충격의 연속이었다.

하현의 기감은 내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몸에서도 그가 익힌 심법을 구별해낼 수준까지 발전했다.

하물며 하현의 몸에 내공을 주입해 그의 기혈과 단전을 샅샅이 살펴본 하현이다.

그가 익힌 심법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

그 순간 하현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탄성을 흘렸다.

“그래. 왜 이렇게 어렵게 생각했지?”

그는 자신을 자책하는 듯 표정을 찡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없던 대사형을 만든 게 아니야. 원래도 해남파 일행은 네 명이었고, 네가 대사형을 사칭하고 있는 거구나?”

“너, 너는 도대체……?!”

“맞구나.”

하현은 빙긋 웃었다.

평경…… 아니, 평경의 얼굴을 하고 있는 누군가는 하현의 웃는 모습에서 공포심을 느꼈다.

‘제길. 지금 나는 내공 한 톨 없단 말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지를 생각하는지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그런 그를 보며, 하현은 한 손으로 그의 가슴을 눌러 다시 눕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단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원천진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구오오-

스산하게 말하는 하현의 몸 주변으로 기운이 폭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은 고스란히 사내의 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흐윽!”

그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하현의 엄청난 힘과 기운에 반항할 수 없었다.

팔과 다리를 열심히 버둥거려 봤지만, 하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츠츠츠-

“……!”

하현이 조금 놀란 눈을 하였다.

사내의 얼굴이 점차 변하고 있던 것이다.

“역용술?!”

그는 놀라면서도 기운을 주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뿌득- 뿌득-

뼈가 다시 맞춰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사내의 키가 자라고, 어깨가 넓어지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내는 평경의 외모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의 얼굴과 몸을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그는 고통이 상당한지 온통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콰앙!

그때 문이 거칠게 열렸다.

식당으로 내려갔던 류이영이었다.

“소협! 지금 무슨 짓을!”

“류 소저. 이 자는 해남파의 대사형이 아닙니다.”

“뭐라고요?!”

그녀는 깜짝 놀라 아직도 하현의 밑에 깔린 사내를 보았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분명 해남파의 무복이었지만, 그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 이자는 누구……?”

“역용술을 펼쳐 소저의 사형을 사칭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사칭이라고요? 그러면 저희 대사형은……!”

그녀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분명히 살아있지 못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으니까.

“진짜 평경은 어디 있지? 죽였나?”

“그는…….”

그는 말을 하다 잠시 뜸을 들였다.

하현도, 류이영도 숨죽여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그가 씨익 웃었다. 본색을 드러낸 듯한 웃음이었다.

“지금쯤은 죽었겠지? 몽혼약을 그만큼 먹여 내 동생들에게 넘겼으니 말이야.”

“뭐라고?!”

류이영이 신법을 전개해 순식간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실로 바람 같은 신법이었다.

하현이 그 부지불식간에도 류이영의 신법에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쒜에엑-!

류이영의 손이 사내의 머리를 터뜨릴 것 같은 속도로 날아갔다.

이 역시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검이 아닌 손이지만, 해남파는 하현의 예상대로 엄청난 쾌검술을 사용했다.

스으윽!

그러나 그녀의 손은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온 하현의 팔에 의해 방향이 바뀌었고, 사내의 귀를 스치었다.

“아악!”

사내는 귀를 부여잡았다.

손이 스친 정도지만, 그의 귀는 반으로 잘려버렸다.

‘조법인가?’

하현은 순간 류이영이 조법을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조법이 아니라 단순히 손톱에 내공을 담아 뻗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몹시도 빠른 속도와 정확성이 그녀의 손톱을 아주 작은 검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소저! 진정하세요. 지금 이 자를 죽이면 안 됩니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못 들었어요?”

“대사형이 죽었다고……!”

“잘 생각해봐요. 죽었을 거라고 했지, 죽었다고는 안 했어요. 이 자는 평경 소협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한 겁니다.”

“……!”

류이영은 하현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급속도로 평정을 되찾았다.

하현의 말대로였다.

죽음을 확인하지 않았으니, 아직은 희망을 놓으면 안 된다.

“이 자를 죽이면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어요. 죽이는 것보단 그게 먼저입니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할 것 같으냐?”

“아니?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돼. 양화.”

“……?!”

양화라 불린 사내는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껏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조금 전에 받은 충격은 너무나도 컸다.

“어, 어떻게?!”

“정말 어이가 없군. 신창양가의 계략이 이리도 얕다고? 너무 얕아서 도리어 함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야.”

“……!”

양화는 뜨악한 표정을 짓고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현의 입에서 신창양가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는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는 신창양가주 양귀진이 하현을 데려오라며 보내온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 정보가 어떻게 유출된 거지?’

그는 머리를 아무리 굴려보아도, 어디서 자신의 이름과 신창양가의 계략이 흘러나왔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하현이 상대의 의념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기에, 중간에 배신자가 있거나 간자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현은 답답한 마음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명확하게 알아낼 수가 없어. 요황은 자백제를 먹였기에 수월했었던 거야.’

하현은 의념을 읽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실상은 촌각에도 수 가지, 수십 가지의 생각이 교차하고 있다.

그 생각을 모두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알 수 있는 건 신창양가에서 보냈고, 그 목표는 나라는 것. 나머지는 잘 모르겠어.’

하현은 문득 전투 중에 상대의 다음 수를 미리 아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숨이 걸린 싸움 중에 상대는 온통 자신의 병기와 다음 수에 집중한다.

머릿속에 그 생각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하현에게 그 의념이 명확하게 다가온 것이다.

마치 미래가 보이는 것처럼.

“평경 소협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양규가 데려간 건가?”

“양규까지?! 도, 도대체 네가 어떻게 그 이름을 아는 거지?”

“그건 네가 알아서 생각하고, 지금 나는 해남파 대제자의 행방이 궁금할 뿐이야.”

“내 질문에 답해라! 정보들…… 어디서 알아낸 것이냐?”

양화의 얼굴은 진중했다.

지금 그에게는 그의 목숨보다,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듯했다.

하현은 인상을 한 번 쓰고는 다시 한번 그의 의념에 집중했다.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으니, 생각을 읽어버리려 한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보다 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첩자가 있다. 첩자가!’

그의 뇌리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하현은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도 만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이 안 통하는군. 일단은 더 자고 있어라.”

푹-

그는 거칠게 양화의 혼혈을 짚어버렸고, 그는 다시 혼절하고 말았다.

하현은 기절한 그의 단전 쪽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기운을 가득 모아 그의 단전을 때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양화의 몸이 들썩인다.

하현은 그의 몸 몇 군데를 더 어루만지더니 쓰레기를 버리듯 그를 땅에 툭 내려놨다.

“지금 무엇을 하신 거예요?”

“단전을 파괴하고 어깨와 골반 관절을 빼놨어요. 이제 이 자는 무공을 쓰지도, 팔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할 겁니다.”

류이영은 하현의 자비 없는 손속에 깜짝 놀랐다.

저렇게 순진해 보이는 얼굴로 가차 없이 저런 잔인한 수를 쓰는 것이 이질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소저! 무슨 생각 하세요?”

“아…… 아니에요.”

“객잔. 객잔에 빨리 돌아가 봐야 해요. 강서성 안복(安福)이라고 했죠?”

“맞아요.”

하현의 물음에 그녀는 겨우겨우 대답만 해냈다.

지금 일어난 일이 너무나도 복잡했기에 무슨 일인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안복이라면 여기서 한 시진 정도밖에 안 걸릴 거리네요. 빨리 가봐야겠어요. 거기서 잔 것이 바로 어제면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났으니까요.”

“맞아요. 이제 딱 하루가 지났어요. 어젯밤에 그 객잔에서 잤으니까요. 그런데 한 시진도 안 걸린다니 안복의 위치를 착각하신 것 아니에요?”

그녀는 급히 말을 이었다.

하현이 혹시라도 이상한 곳으로 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위치를 착각하다뇨. 포양호(我陽湖) 남쪽에 있는 도시 아니에요?”

“맞아요! 그런데 거기는 말을 타고도 두 시진은 족히 걸릴 거리인데요?”

“말을 타니 두 시진이죠. 원래 뛰어가는 게 더 빠르잖아요.”

“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은 급하니까 그 객잔 이름부터 가르쳐주세요.”

“칠석. 칠석객잔이에요.”

“알겠어요. 기다리고 있어요.”

하현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리고는 말했다.

“별일 없을 거예요. 태해검(太海劍)이라고 불리실 정도로 내공이 뛰어나셨다면서요?”

“맞아요. 다른 우리 배분의 제자들보다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사숙들과도 내공이 비슷하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면 몽혼약이 제대로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요. 내공이 많다는 건 그만큼 약을 이겨낼 힘도 있다는 거니까요. 그리고, 이 자가 했던 말 중에 ‘동생들’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지금 이 지경이 돼도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다는 거겠죠.”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 큰 눈에 희망이라는 빛이 아주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혹시……?”

“장담할 순 없지만, 제가 가서 확인은 해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소협…….”

하현이 빙긋 웃었다.

“괜찮아요. 일단은 일 층의 취객들을 때려서라도 정리하시고, 이 자의 상태를 보며 기다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현은 방문으로 나갈까 하다가 등을 돌려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으로 뛰어나가는 하현에게 류이영이 말했다.

“조심하세요.”

“적들이 조심해야 할 거예요.”

하현은 자신 있게 말하고서는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넉살에 류이영은 이 심각한 와중에도 살짝 웃고 말았다.

그녀는 하현이 조금 전에 손을 올려놓았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어쩐지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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