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새까만 숲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달빛도 잘 들지 않아 어두운 숲이기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숨을 헐떡이며 나무 사이를 달리는 사내의 옷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어둠의 숲을 전속력으로 달리느라 얼굴에 수많은 생채기가 만들어졌음은 물론이거니와, 몸 군데군데에도 크고 작은 자상이 많았다.
‘이 상처만 아니었어도.’
하지만 가장 큰 상처는 복부에 난 상처다.
검으로 깊게 찔린 상처를 제대로 처치하지도 못해 배에 난 구멍에서는 피가 계속해서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내일 해를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이 상황이 그리 희망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를 쫓고 있는 자는 두 명이었는데, 그들은 상당한 고수였다.
기습적으로 그중에 한 명에게 검을 날려 어깨에 자상을 내긴 했지만, 그 대가는 처참했다.
어깨를 찌른 검을 회수하기도 전에 다른 한 명이 그에게 검을 내질렀기에, 검을 회수하지도 못하고 배에 구멍만 얻은 것이다.
‘그래도 그 덕에 곧바로 나를 추적하지 못했지.’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배에 구멍이 뚫리면서도 어떻게든 신법을 펼쳐 도망쳤다.
두 명의 고수는 다친 하나의 어깨의 상처를 꿰매고 그를 쫓기 시작했는지 그 시작이 매우 느렸다.
하지만 그나마도 이제는 끝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이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제들은 무사한 건가……?’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상황에도 사제들을 걱정하는 그는 해남파 이대 제자 중 대제자인 평경이었다.
평경은 더는 달릴 수가 없어 걸음을 멈추고 아름드리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눈도 침침하고, 정신도 가물가물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도망쳐야 하는데…….’
그는 어떻게든 꺼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했지만, 눈꺼풀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하기는, 그가 도망치기 시작한 지 꼬박 하루가 지나갔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붙잡히지 않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만했다.
파바박!
그는 점점 가까워져 오는 발소리를 들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잠시 후, 결국 나무에 등을 기대다 못해 그대로 앞에 털썩 주저앉은 평경의 앞으로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이런 미꾸라지 같은 놈! 네놈 때문에 온종일 이게 무슨 고생이냐?!”
“제길!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고 형님의 면박을 받아줄 생각 하니 벌써 골이 당깁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별일은 없겠지?”
“아무렴요. 양화 형님의 역용술을 간파한 사람은 지금껏 한 명도 없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가주님까지도요.”
그들은 죽어가는 평경의 앞에 여유롭게 섰다.
“제법 우리를 애먹였건만, 이제 끝이구나. 해남파의 대제자라고? 구파일방에 들지도 못한 문파치고는 제법 제자를 잘 키웠어.”
“양규 형님! 저놈의 검이 조금만 더 깊었으면 난 평생 팔 병신으로 살 수도 있었는데 내 앞에서 저놈을 칭찬하는 겁니까?”
“쯧쯧, 양형아 이게 칭찬이냐? 조롱이다. 조롱. 그렇게 잘 키워도 결국 우리 최후를 맞이하지 않느냐. 저 해남파인지 뭔지보다는 우리 신창양가가 더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신창양가의 두 사내, 양형과 양규는 서로 만담하듯 여유롭게 평경에게 다가갔다.
다 잡은 고기를 두고 그들은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조금 더 무리했다면 진작 평경을 잡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경이 생각보다도 훨씬 강했고, 그들의 주목적은 해남파의 제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남궁무룡의 손자를 가문으로 잡아가는 것이기에 안전한 길을 택했다.
“아까 내 어깨를 꿰뚫은 쾌검술은 정말 위협적이었다. 어깨가 아니라 목이 뚫렸다면 난 죽은 목숨이었겠지.”
그는 검을 꼬나들고 평경의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자기 어깨를 다치게 한 대가를 목숨으로 받아 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끝인가…….’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에 들기 시작했다.
추위에 떨면서도 그는 점차 정신을 잃어갔다.
서걱- 툭!
그는 정신을 잃어가는 도중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에 아주 힘겹게 실눈을 떴다.
조금 전과 똑같이 양형이 서 있다. 그런데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는 목 없이 몸만 서 있었다.
그의 목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양형!!”
커다란 양규의 비명이 들리고, 평경은 소리를 지르고 있는 양규에게 한 사람의 인영이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아……! 해남의 검?’
그는 마지막으로 기절하기 전, 한 사내가 펼치는 검술을 보고서는 속으로 그의 사문을 외쳤다.
형식도, 형태도 해남파의 검법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쾌검이 묘리는 분명 해남파의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해남파의 대제자인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카앙-!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깰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 * *
조금 전, 금와객잔에서 신법을 전개하기 시작한 하현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신법을 전개했다.
투웅-!
하현이 땅을 박찰 때마다, 땅이 옴폭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용천혈에서 내뱉었다.
그 덕에 하현은 말이 달리는 속도보다도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생각해보자, 류 소저와 처음 만난 곳에서부터 칠석객잔으로 곧장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거야.’
하현은 머릿속에서 지도를 떠올렸다.
그러자 마치 하늘에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강서성이 전경이 눈에 보이는듯했다.
물론 하현은 강서성에 와본 것이 태어나 처음이다.
하지만, 남궁세가와 개방에서 만든 지도를 작은 길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외워버린 그다.
그 덕에 몇 번이고 와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관도는 아닐 거야. 쫓기는 사람이 관도로 달릴 리는 없으니까.’
관도가 아니라면 남는 것은 산과 들 뿐이다.
거기서 하현은 또 한 번의 유추를 했다.
‘류 소저의 신법으로 보아 직선으로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는 신속한 방향 전환에 유리한 신법을 익혔을 거야. 같은 문파니까 같은 신법을 익혔을 거고…… 그러면 나무가 빽빽한 숲이다.’
생각을 마친 하현은 한층 더 강한 힘으로 땅을 박찼다.
안복과 이곳 사이에 있는 숲 중에서 어깨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나무가 빽빽하게 심겨 있는 숲은 단 한 곳뿐이었다.
그 후로 한 시진쯤 달렸을까.
하현은 목표로 했던 숲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다.
‘기감을 계속 집중하면서 달리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네.’
하현은 당연한 일을 전혀 당연하지 않게 말했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여 기감을 펼치면 하현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범위는 오십 장(약 150m)에 달한다.
그렇게까지 기감을 펼치려면 정신을 온통 한 점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는 신법을 최대한으로 펼치면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한 시진이나 유지한 것이다.
실로 무서울 정도의 정신력이었다.
파앗-!
하현은 가장 높아 보이는 나무 위로 뛰어 올라가 그 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망망대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시야 한가득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숲이다.
그곳에서 하현은 안력을 집중했다.
눈에 내공을 잔뜩 담아 숲을 돌아보자, 달이 밝지 않은 밤임에도 사방이 환하게 보였다.
반짝-
그때 하현의 눈에 아주 작게 달빛이 반사되는 것이 보였다.
대략 삼백 장 이상은 되는 것 같은 먼 거리지만, 하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꾸우욱-
순간 하현이 만근추의 수법을 활용하자, 그가 서 있던 나뭇가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휘어졌다.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기 직전까지 휘어진 순간, 하현은 만근추의 수법을 거둬들였다.
피슝-!
하현은 나무의 반동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빛이 반짝였던 곳으로 쏘아졌다.
마치 화살이 쏘아진 듯한 속도였다.
이렇게 빠르게 쏘아지는 와중에도 하현의 눈은 반짝임이 있었던 곳을 집중해서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하현의 눈에 확신이 깃들었다.
‘찾았다.’
온몸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한 사내와 그의 앞에 있는 두 남자.
하현은 순간적으로 나무 앞에 주저앉아 있는 저 사내가 해남파의 대제자 평경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살아있었어.’
그 와중에도 하현은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
태해검이라는 거창한 별호를 가졌다더니, 어떻게든 버텨냈는지 정말로 지금까지 살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결코 좋지 못했다.
남자가 들고 있는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평경의 목이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
처억-
하현은 공중에서 오른손으로 흑룡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툭- 툭- 툭-
하현은 나무 위를 가볍게 발로 박차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나무를 밟는 게 얼마나 가벼운지, 저들은 하현이 접근하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이윽고 마지막 걸음.
하현은 자신의 검격에 들어섰다고 확신하고는 평경에게 검을 휘두르려 하는 자에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는 마음의 검으로 검을 뽑으며 그대로 베어나갔다.
류이영 덕분에 진일보한 그이 마음의 검은 초극쾌의 발검술을 이룩해내었다.
샤악-!
하현의 검은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야말로 빛이 지나가는 것 같은 속도에 그는 변변찮은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그는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르는 듯, 떨어진 목은 그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양형!!”
그의 바로 눈앞에서 동생의 목이 떨어지자 양규가 크게 소리쳤다.
하현은 그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물 흐르듯 보법을 밟아 그대로 양규에게 검을 내질렀다.
까앙!
엄청난 쾌검이었다.
양규는 그 검을 부지불식간에 막아내기는 했지만, 염라대왕의 코앞까지 갔다 온 것 같이 간담이 서늘했다.
“누구냐!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냐?!”
하현이 미미하게 인상을 썼다.
“누구냐고? 날 그렇게 데려가고 싶어 했으면서 정작 눈앞에 나타나니 알아보지도 못하다니.”
“뭐라고? 그러면 설마…… 남궁하현……?”
“그래. 내가 남궁하현이다.”
“……!”
양규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현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도 물론이지만, 양형을 단칼에 베어버린 검법은 그가 생각하던 하현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이 정도라고? 극마의 경지에 겨우 올랐다고 들었는데……!’
당연히 집안의 어른인 마통검에게 하현의 실력과 수준을 듣고 온 그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하현의 수준은 그가 들었던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그도 이미 극마의 초입에 오른 무인이다.
마통검이 말해준 수준이라면 하현과 그는 대등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절대로 하현과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오금이 저리고 손이 덜덜 떨린다는 것을 느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공포라는 감정이었다.
“시간이 없어. 해남파의 대제자를 치료해줘야 하거든.”
하현은 쓰러진 평경을 흘긋 보고는 말했다.
정말이지 무심한 말투였다.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듯이 간단한 일처럼 느껴졌다.
“양화 형님은 어떻게 되고 네가 여기 있는 것이지?”
“역용술로 저 자의 얼굴과 몸을 따라 한 얼간이를 말하는 것인가?”
“얼간이라니……?!”
하현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나 하나를 속이려 자신의 기운까지 모두 내버리고, 그것도 들켜서 나에게 단전이 폐해진 자가 얼간이가 아니라면 누가 얼간이란 말이지?”
“뭐라고?!”
“너에게 물어볼 것은 없어. 신창양가의 수는 너무나도 낮구나. 천마유가에게 밀린다더니 그 이유를 알겠어.”
하현은 머리를 톡톡 두드리고는 말을 이었다.
“머리를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것 같아. 신창양가는 무력을 키우기보다는 재주 좋은 군사를 구하는 게 가세에 더 도움이 될 것이야. 그런데 정말 아쉽군.”
“무엇이……?!”
“그 말을 전해줄 네가 여기서 죽게 될 거니까. 살려줄 수가 없어서 미안해.”
하현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양규는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건만,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스슥!
그가 멍하니 하현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현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이동이라고 할 만큼 재빠른 신법.
‘어엇……?’
그는 갑자기 땅이 그에게 다가온다고 느꼈다.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아무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의 목이 잘려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툭- 데구르르
신창양가에서 보낸 두 명의 무인은 이토록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