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양규와 양형을 순식간에 처리한 하현은 서둘러 평경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에 손을 대 보았다.
맥박은 실시간으로 약해지고 있었다.
피로 물든 그의 상의를 급히 풀어헤치니, 복부에 있는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다.
급히 지혈하려 한 것 같긴 했지만, 상처가 너무 깊고 계속해서 전속력으로 달려 제대로 처치하지 못한 까닭이다.
‘일단은 이 상처부터 어떻게 해야겠어. 다른 곳은…… 비교적 나쁘지는 않아.’
배의 상처와 비교해서 나쁘지 않다는 것이지, 크고 작은 상처가 즐비했다.
하현은 그 상처들 역시 피가 흐르는 곳의 주변을 눌러 지혈해 주고는 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꾸욱-
왼손으로는 상처를 강하게 압박하며 기운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상처 쪽으로 향하는 혈관을 살핀 후에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아플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크으윽…….”
어찌나 고통이 심한지, 그는 혼절한 와중에도 신음을 흘릴 정도였다.
하현의 처치는 잠시 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자연의 기운을 계속 주입하면서도 주변 혈도를 빈틈없이 막아 겨우 피를 지혈했다.
“일단 지혈은 했고.”
하현은 한숨을 돌리고 다시 그의 몸을 살폈다.
손이 온통 피로 물들었지만, 하현은 개의치 않았다.
‘상처도 상처인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내공도 거의 바닥났고…… 하긴, 지금까지 버틴 것이 용해.’
일단 응급처치는 했지만, 하현은 그에게서 손을 뗄 수 없었다.
평경의 부족한 피를 그의 내공으로 인위적으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계속 이렇게 있을 생각이었다.
‘일단은 의원한테 가야겠어.’
배에 난 큰 상처는 생긴 지도 꽤 되었지만, 무엇보다 하현이 지혈해 놓은 것은 임시로 혈관에 내공을 주입해 피가 흐르는 것을 차단한 것에 불과하다.
이대로 오래 두면 상처 부위부터 괴사(愧死)가 일어날 것이다.
“읏차-.”
하현은 소심스럽게 그를 업었다.
상처 부위에서 손을 뗐지만, 계속해서 기운은 주입되고 있었다.
그의 배와 맞닿아 있는 등에서 기운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이제 내공 수발은 신체 어떤 곳으로든 자유자재로 해낼 수 있는 하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 흔들릴 때마다 아프긴 할 건데, 참으셔야 해요. 빨리 가는 게 더 급하니까요.”
“으으음…….”
하현은 기절한 사람한테 통보하듯이 말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휘이익-!
순간 바람이 몰아치는가 싶더니, 하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곳에는 목과 몸이 분리된 시체 두 구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 * *
평경을 업고 돌아온 하현 덕에 금와객잔은 새벽부터 시끌벅적했다.
“소협!”
하현을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류이영이었다.
그녀는 대문보다도 더 앞에 나와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하현이 객잔을 떠났을 때부터 이곳에서 기다린 모양이었다.
“류 소저! 빨리 들어가서 의원을 불러달라고 하세요. 아니, 가까운 곳에 사는 의원이 있는지 물어보시고 업어서라도 데리고 오세요. 한시가 급합니다.”
“뒤에 업힌 건……?!”
“평경 소협이에요. 지금 위중한 상태입니다. 빨리요!”
“아! 네네!”
그녀는 하현의 단호한 말투에 기다려 마지않던 평경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곧장 객잔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를 업은 하현은 객잔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훌쩍 뛰어올라 곧장 이 층 창문으로 들어갔다.
신창양가의 양화가 혼절해 있던 그 방이었다.
하현이 방을 나선 지 몇 시진은 족히 지났건만, 양화는 구석에서 깨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혼혈을 너무 세게 눌렀나?’
미약하게 들려오는 숨소리로 보아 죽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방을 나선 하현은 그가 쓰던 방으로 들어가 평경을 뉘었다.
그의 배에서 손을 떼지 않으며 하현은 이제야 깊은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렇게 건장한 사내를, 그것도 완전히 의식을 잃어 축 늘어진 사내를 업고 한 시진이나 달리는 것은 무공을 배웠다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하현이 달린 속도는 보통 잘 달린다고 하는 무인들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였다.
아마 중원에 이렇게까지 잘 달릴 수 있는 무인은 흔치 않을 것이다.
“사부님은 지금쯤 뭐 하고 계시려나.”
하현은 정말 오랜만에 취월걸개를 떠올렸다.
그가 이토록 잘 달릴 수 있게 된 것은 취월걸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날 그의 신법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하현이 그 달리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면 결코 없을 성취였다.
콰앙-
그때 문이 거칠게 열렸다.
류이영이었다. 그는 노인 한 명을 이끌고 왔다.
노인은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온통 얼굴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아……! 죄송해요. 소협. 마음이 급해서.”
“아니에요. 일단 여기부터.”
하현은 의원에게 평경을 내보였다.
“헛……?!”
의원은 평경의 상태를 보자 졸음이 싹 달아났는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경의 복부는 잘 보면 내장까지 보일 정도로 상처가 깊었기 때문이다.
하현이 지혈해 놓았기에 피가 멈추어 더욱 기괴했다.
“이런 꼴을 하고서 살아있을 수 있는 거요? 의원 생활이 이십 년째지만, 이렇게 깊은 상처는 처음 보오.”
“살 운명이신가 봅니다. 아직도 숨을 쉬시는 건 원활한 것 같으니까요.”
“그러게 말이오. 허 참…… 정말 하늘이 도왔군, 이렇게 상처가 크고 깊은데 내장은 빗겨나갔소. 그 덕에 지금껏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오. 쉽게 죽지는 않겠는걸?”
“아……!”
하현과 의원의 대화를 듣고 있던 류이영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자신을 자책했다.
“이게 다 저 때문이에요. 사형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형이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렸어요. 십수 년을 같이 지낸 대사형을 구별하지도 못했다니…….”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옆 방에 있는 저자의 역용술은 저도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였어요. 아마 세상 그 누가 와도 못 알아봤을 거예요.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거잖아요.”
“아…… 그렇죠.”
의원이 가져온 봇짐을 풀었다.
그 안에는 바늘과 여러 가지 약재 따위가 한 짐 가득 들어 있었다.
“자. 이제는 이 상처를 꿰매고, 모자란 피를 보충하기 위해 기력을 북돋아 줘야 하오. 여기에 있으면 다들 방해되니, 나가서 기다리시오.”
“아…… 알겠습니다. 사형을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죽을 팔자는 아니라니까? 안심하고 가서 기다리시오. 응급처치를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니, 여기 소협이 했겠군. 하여튼 응급처치가 완벽해서 살았다고 할 수 있소. 그러니 거기 소저는 여기 소협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시오.”
하현과 류이영은 의원의 축객령에 방을 나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일 층으로 내려갔는데,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술 마시던 사람들은 다들 방으로 들어갔나 보죠?”
“네. 제가 다들 돌려보냈어요. 지금은…… 이런 상황인지도 모르고 코를 골고 자고 있지만요.”
“죄송해요. 진유강이 술이라면 사족을 못 써서…….”
“거기에 동조한 건 제 사형과 사제인걸요. 제가 죄송하죠.”
하현과 류이영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 문득 류이영은 이제야 하현의 옷과 손을 보았다.
그녀가 피가 엉겨 붙은 하현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아……! 피가 그렇게 많이! 어디 다치시지는 않았어요?”
하현도 그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온통 피로 물들어 엉망이었다.
“다행히 전부 제 피가 아니에요. 대부분 평경 소협의 피일 거예요.”
“아……! 다행이에요. 아니, 다행이 아닌가…….”
그녀는 어색하게 말하며 하현의 손을 놓았다.
하현은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주었다.
“일단은 좀 씻고 와야겠어요. 이 손도 그렇고요. 그런데 옷이 없는데 난감하네요.”
“제가 나가서 얼른 사 올게요.”
“이 시간에요? 문을 연 포목점이나 의복점이 있을까요?”
“없으면 문을 두드려 깨워서라도 사 올게요. 어차피 저기 의원님도 그렇게 깨워 온 거라…….”
그녀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분명히 류이영이 하현보다 서너 살은 더 많을 것이지만, 하현은 어쩐지 그녀가 동생처럼 느껴졌다.
“도련님 옷은 저한테 있습니다. 얼른 씻으시죠.”
그때 이 층 계단 초입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 저곳에 있었을지 모를 운후였다.
“아저씨. 일어나셨어요? 제가 너무 시끄럽게 했나 봐요.”
“아뇨. 원래 항상 일어나는 시간이라 일어났는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군요.”
“무슨 일이 있었긴 했죠. 나중에 설명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 옷을 가지고 계신다고요?”
운후가 멋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몰라 제가 몇 벌 챙겼습니다.”
“하하. 그래요? 제 치수는 어떻게 아시고.”
“장칠 선배님께 물어봤습니다. 항상 입으시는 무복으로 준비했습니다.”
운후는 장칠에게 항상 선배님이라 불렀다.
장칠은 하인에 불과하고, 운후는 이제 청룡각에 정식으로 입관한 무인이건만, 그는 하현의 하인을 자처했기에 장칠의 후배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저 잠시 다녀올 테니, 소저는 올라가서 좀 쉬시겠어요.”
“아니에요. 저는 잠시 기다릴게요. 혹시나 의원님이 그 안에 나오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잠시만요.”
하현은 운후와 함께 이 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탁자에 홀로 앉아 있던 류이영은 멍하니 하현이 올라간 이 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순간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룻밤 새에 너무나도 많은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실감이 나지 않는 일은 그 모든 일들이 너무 쉽게 보일 정도로 원활하게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옥룡 남궁하현…….’
그녀는 속으로 하현의 별호와 이름을 읊조렸다.
짧은 시간에 너무나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의 머릿속은 하현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 * *
“후…… 다 되었소.”
의원이 땀을 닦으며 평경이 있던 방에서 나온 것은 아침 해가 다 차오르고 나서였다.
그 사이에 하현은 말끔히 옷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괜찮은 겁니까?”
“피를 조금만 더 흘렸어도 꼼짝없이 죽은 목숨인데, 응급처치가 아주 절묘했소. 끊임없이 기운을 넣어 생명을 유지해 준 것도 주효했고.”
의원은 하현을 칭찬해 주었다.
하현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대금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품 안에서 꺼낸 것은 은자 하나였다.
그것을 본 의원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자 하나는 평범한 가정이 몇 달은 족히 생활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런 돈은 하현은 선뜻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큰돈을 준단 말이오?”
“생명을 살리셨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죠.”
“허 참. 내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역시 무림인들이 돈을 잘 쓰는군.”
하현은 대답 대신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사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해남파 제자들이 이번 일을 겪은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니까.’
상황이 정리되고, 이제야 한 숨돌릴 여유가 생기자 하현은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신창양가는 하현을 어떻게든 데려가려 이런 수작을 부렸다.
하현의 뛰어난 기감과 오성 덕분에 뭔가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긴 했지만, 하현이 아니었다면 해남파의 제자들은 아무 일 없이 해남도로 돌아갔을 것이다.
“한 사나흘 정도만 안정을 취하면 살이 붙기 시작할 것이오. 그동안에는 내가 매일 탕약을 내려서 가져올 테니, 그걸 먹이면 되고.”
“류 소저. 들으셨죠? 제가 객잔에 얘기해 놓을 테니, 아예 여기서 며칠 더 쉬었다 가세요. 저도 같이 있고 싶지만, 갈 길이 바빠서요.”
의원의 설명을 같이 듣고 있던 류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은혜라뇨.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이 모든 일은 다 저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요.”
류이영이 고개를 저었다.
하현은 그녀에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이 더 강했다면, 그래서 평경을 빼돌리는 것을 눈치챘더라면, 그 후에도 그가 가짜라는 것을 알아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맞다. 류 소저. 한 가지 더 도와주실 게 있어요.”
“무엇이죠? 무엇이든 제가 가능한 거라면 도울게요.”
“저랑 대화만 나누시면 돼요.”
“대화요?”
하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소저. 연기 좀 하세요? 이 층에 잠자고 있는 놈을 좀 속일까 봐서요.”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