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으음…….”
신창양가의 기대받는 후기지수인 양화는 복부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몸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실로 끔찍한 고통이었다.
“어…… 어?!”
겨우 몸을 일으킨 그는 새된 소리를 내뱉었다.
자기 복부를 더듬더듬하던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 내공이……!!”
어떠한 내공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단전 자체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느끼던 끔찍한 고통은 파괴된 단전에서 오는 고통이었다.
동시에 몰려오는 엄청난 분노와 더불어 절망감이 따라왔다.
“돌아가야 해!”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다행히도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도망쳐야 하지?’
그는 다시 한번 절망에 부딪혔다.
새삼 그가 내공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기 때문이다.
내공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신법을 펼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공을 쓸 줄 아는 삼류 무사만 만나더라도 개죽음당할 가능성이 컸다.
저벅- 저벅-
그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문 앞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크게 당황했지만, 재빨리 다시 자리에 누워 아직 깨어나지 않은 척했다.
끼익-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발소리로 보아 두 명이었다.
“아직 안 일어난 것 같네요.”
“그러게요. 슬슬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은데.”
“확인해볼까요?”
류이영이 말하고는 기절한 척하는 양화에게 다가왔다.
양화는 필사적으로 그가 깨어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내가 깨어난 것이 발각되면 분명 경계가 심해질 것이다.’
어떻게든 도망칠 계획을 하는 그였기에 상대의 방심은 필수였다.
게다가 내공마저 쓸 수 없기에 더욱 그랬다.
“아니에요. 그냥 두세요. 만약 깨어났다면 단전이 파괴된 고통 때문에 어지간한 정신력이 아니면 가만히 있지 못할 거에요.”
그때 하현이 류이영을 제지했고, 양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이 바로 하현이 방금 말한 정신력의 소유자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쥐 죽은 듯 있었다.
“알겠어요.…… 빨리 일어나야 이자에게 대사형의 행방에 대해 물어볼 텐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제가 받은 정보에 따르면 평경 소협을 죽이고 나면 이 자와 합류하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아직 소식도 없으니 말이에요.”
양화는 조금 전 하현이 말한 내용에 하마터면 헛숨을 들이킬 뻔했다.
‘역시 정보가 유출된 거였어……!’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계략은 애초부터 성공할 수 없었던 계획인 것이다.
기만 작전은 말 그대로 상대를 기만해야 만이 성공할 수 있는데, 이쪽의 속셈을 미리 알고 있으니 성공할 리 만무했다.
‘그나저나, 아우들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니,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신의 처지가 알려졌거나, 중간에 무언가 일이 틀어졌다는 소리다. 그런데 과연 그의 동생들이 나타난다고 해서 하현을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도대체 우리의 정보는 어디서 유출된 거지? 이 작전은 가주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지시하신 작전이다. 이 정보가 유출되려면 수뇌부에서 유출이 있었다는 건데…….’
그는 또 한 가지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수뇌부에서 이 정보를 빼돌린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떻게 정확하게 남궁하현에게 정보를 넘겨주었냐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혹시 평경 소협의 소재에 관련해서 아는 게 있는지 한 번 더 접촉해 봐야겠습니다.”
“접촉이라니…… 또 ‘그들’에게 물어보신다는 겁니까?”
“그래야죠.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까요. 언제까지고 여기서 기다릴 수도 없고.”
양화는 하현과 류이영이 하는 말 하나, 하나를 빠짐없이 기억하려 노력했다.
‘그들이라는 게 도대체 누구지?’
남궁하현이 정보를 입수하는 경로가 따로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이지는 않다.
천마신교의 가장 첫 번째 철칙이 정체를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다.
삼십사 년 전의 정마대전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고서 지하로 숨어들었던 그들이다.
특히나 신창양가 같은 핵심 가문의 경우에는 경계가 더욱 삼엄하다.
그래서 무림에 존재하는 그 어떤 정보단체도 아직까지 신창양가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온 무림에서 정보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개방마저 찾지 못했다.
‘그러면 도대체……?’
그런데, 그의 의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풀렸다.
“소협 그러면 유가에…….”
“쉿!”
“아……!”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 해요. 그 가문의 이름은 비단 적뿐만 아니라, 우리 일행에게도 절대 조심해야 하는 이름입니다.”
“죄송해요. 제가 경솔했어요.”
하현은 괜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누워 있는 양화를 몇 번 본 후에 입을 열었다.
“그냥 나가서 이야기할까요? 혹시 모르니.”
“네. 좋아요.”
“한 시진 뒤쯤에 다시 와보죠? 그때쯤이면 분명히 깨어났을 테니까요.”
“좋아요. 그동안 저는 사형을 좀 더 찾아봐야겠어요.”
“네. 저희 무인들도 객잔 밖으로 찾아보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뭘요. 일단은 나가죠.”
하현은 류이영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
양화는 두 눈을 부릅뜨고 숨을 아예 참아버렸다.
지금 숨을 쉬었다 가는 소리가 새어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숨을 참다가 정신을 잃겠다고 생각될 무렵, 하현과 류이영이 충분히 멀어졌으리라 생각한 그는 겨우 숨을 내쉬었다.
“허억, 허억…….”
오랫동안 숨을 참은 까닭인지, 그는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었다.
내공이 없어서인지, 숨을 고르기도 힘들었다.
한참을 노력해 겨우 평온을 찾은 그는 으르렁거리듯 분노를 가득 담아 말을 내뱉었다.
“유가……? 천마유가……?!”
천마유가라는 단 한 단어만으로 모든 단서가 들어맞기 시작한다.
‘유가라면 충분히 우리 가문의 정보를 빼낼 수도 있다.’
실제로 신창양가에는 천마유가의 무인들도 여럿 기거하고 있었다.
두 가문이 패권을 두고 다투고 있는 가문이라고 할지라도, 일단은 천마신교라는 울타리 내에서 교주를 보필하는 주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마 유가가 정파와 내통하고 있다……. 그것도 남궁세가와……! 이 소식을 어떻게든 가주님께 전달해야 한다!’
양화는 입술을 물어뜯으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이 상황에 분노에 휩싸여 탈출에 실패한다면 이 중요한 정보를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으윽…….’
그는 분노와 함께 복부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도 함께 삭여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반 시진 여가 지났다.
“객잔에는 아무도 없는 것인가?”
그는 바닥에 귀를 붙이고 가만히 소리를 들었다.
사람이 걸어 다니면 소리는 들리지 않더라도 미묘한 진동은 느껴질 터인데,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내공이 있으면 더욱 확실하겠지만.’
하지만 이미 없는 내공을 어쩌겠는가.
그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던져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여기서 죽치고 앉아 있어 봤자 심문이나 받다가 죽임을 당할 게 뻔하다.
심하면 무림맹으로 보내져 고문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시도는 한 번 해봐야 한다.’
그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아래층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까 남궁하현이 말한 것처럼 모든 무인이 해남파의 대사형을 찾으러 갔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 기회다.’
그는 창문으로 다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하현은 아까 한 시진 후에나 돌아와 봐야겠다고 했으니, 반 시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는 반 시진 안에 잡히지 않을 만큼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했다.
“흐읍…….”
창문에서 뛰어내리려던 그가 쉽사리 뛰어내리지 못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내공이 있을 때야 이 층 창문에서 뛰는 것쯤은 눈 감고도 했겠지만, 지금 그는 내공 한 톨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전해져 오는 이 엄청난 고통은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는 슬쩍 눈을 감았다.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겨우 이 정도 높이에 공포를 느끼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토록 나약한 무인이었단 말인가?’
눈물이라도 흘릴 듯 울상을 짓던 그는 결국 마음을 먹고 이 층에서 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
‘마교천하……!’
“윽!”
바닥에 쿵 하고 떨어져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떨어질 때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발바닥과 무릎, 허리, 심지어는 어깨까지 그 고통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아 신음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았다.
“읍읍……!”
잠시 비명을 삼키며 고통을 이겨낸 그는 제 의복을 털어낼 생각도 못 하고, 몸을 일으켜 재빨리 객잔을 빠져나왔다.
무성한 풀숲에 몸을 던진 그는 고통을 삭이면서 몸을 점검해 보았다.
다행히 몸이 더 상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좋아. 탈출이다. 이대로 조심히 도망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조심히 숲속으로 사라졌다.
어떻게든 살아서 가문으로 돌아간다.
현재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것 하나뿐이었다.
* * *
“나 참. 이렇게까지 해줬으면 빨리 도망가야 하는 것 아니오? 사람이 뭐 저리 신중해?”
“진유강. 조용히 해. 혹시나 목소리가 들리면 어떡해.”
“내공도 없다면서 저기서 목소리를 어떻게 듣는다는 말이오?”
“한 마디만 더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끝까지 한 마디를 안 지면서도, 입술을 삐죽거리는 진유강을 향해 한숨을 쉬어준 하현은 그를 무시하고 류이영에게 몸을 돌려버렸다.
“그나저나 류 소저. 연기를 꽤 잘하시던데요?”
“놀리지 마세요…….”
“하하. 아니에요. 하마터면 저도 속을 뻔했다니까요?”
하현은 익살스럽게 웃었다.
신창양가의 양화가 그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기분 좋은지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류이영은 어쩐지 그 미소에서 빛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녀는 제멋대로 벌어지려는 입을 꽉 다물고 나서는 태연한 척 말했다.
“그러면 이대로 도망치게 두는 거예요?”
“네. 도망치게 해야죠.”
“아…… 그렇군요.”
그녀는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평경이 살아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사형제를 해하려 한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해도 무방한 그다.
이대로 그를 놓아준다는 것이 살짝 아쉬운 것이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그, 그게…….”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이 너무 티가 났나 싶어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이 계책은 저 자가 자신의 가문에까지 잘 돌아가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보내주긴 해야 해요. 하지만, 그 전에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어야겠죠.”
“얻을 수 있는 거요?”
“쫓을 수 있을 때까지 그를 쫓을 거예요. 잘하면 신창양가의 위치를 알 수도 있겠죠.”
“아……! 지금은 내공도 사용하지 못하기에 추적자가 있는지도 알아채기 힘들겠군요.”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회전도 상당히 빠른 그녀였다.
“그런데 누가 저 자의 뒤를 쫓죠? 소협이 쫓으시나요?”
“제가 하면 좋겠지만, 저는 지금 중요한 임무 중이어서요.”
“아…… 그러면 제가 하겠습니다.”
하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소저는 평경 소협의 간호를 해주셔야죠. 치료는 잘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옆에서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아직 의식도 돌아오지 않았고요.”
“그러면 생각하고 계신 분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있죠.”
하현은 스윽 고개를 돌려 진유강을 바라보았다.
“진유강. 네가 저 자를 쫓아줘야겠어.”
“나 말이오? 왜 나란 말이오?”
“저 자를 쫓을 사람은 무공도 상당해야 하고, 신법도 뛰어나야 하며 무엇보다 임기응변이 뛰어나야 해.”
진유강이 도대체 웬일이냐는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지금 나를 칭찬하는 것이오?”
“아니. 있는 그대로를 말한 거야.”
“허. 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 나는 당신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보는데.”
“내가 저 자를 쫓는 척하다 그대로 도망가버리면 어떡하려고?”
하현이 진유강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 쫓지 않을 테니까.”
“무, 무슨 소리요?”
“정말이야. 당신이 남궁세가가 그렇게 싫다면 놓아줘야지.”
진유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하현을 보았다.
하현의 말이 진심인지를 파악하려 열심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만, 나는 이미 당신도 우리 세가에 녹아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말이오?”
“응. 지금 배우는 무공들도 분명 재밌지만, 앞으로 배울 세가의 무공들은 더욱 재밌을 거야. 강해지는 속도도 더욱 빠르겠지. 지금은 관아로 끌려가기 싫어 정식 대원이 되고 싶겠지만…… 정식 대원이 되면 배우는 무공의 폭 자체가 달라지니까.”
“…….”
진유강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유심히 하현의 눈치를 살피던 그는 하현이 진심으로 그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
진유강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하현에게 말했다.
“말이라도 못하면. 여기서 이렇게 열심히 할 바에는 진작 공동에서 열심히 할 것을.”
그는 자신이 말하고도 웃겼는지 허탈하게 웃고는 갑자기 이 층으로 터덜터덜 걸어 올라갔다.
“어디 가는 거야?”
“검 챙기러 가오. 검은 가지고 쫓든 해야 할 것 아니오?”
그의 표정은 어딘가 홀가분해 보였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