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진유강이 양화를 뒤쫓기 시작한 지도 사흘이 흘렀다.
양화는 내공은 하나도 없건만, 거의 쉬지도 않고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적이지만 대단한 놈이긴 해. 머리는 안 돌아가지만.’
진유강은 양화를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엄청난 끈기와 의지였다.
고통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도 쉬는 일 없이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방향이 이상했다.
‘이대로 가면 안휘성이 나오는데……?’
북쪽으로 갈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는데, 양화는 안휘성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안휘성의 성도인 합비에는 남궁세가가 있다.
안휘성 전체가 남궁세가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곳이라는 소리다.
‘설마…… 신창양가가 안휘성에 자리를 잡았나?’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원래 마교는 신강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교의 삼대 가문 역시 신강 지역에 위치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삼십사 년 전 정마대전이 끝나고 나서, 그들 가문은 중원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중원인들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만약 사실이라면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군.’
물론 안휘성 전체가 작은 면적은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소국(小國)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면적이며, 실제로도 중원 바깥의 나라들과 비교해 봐도 결코 작지 않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으니, 남궁세가라는 한 가문이 안휘성 전체를 살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야.’
진유강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조금 전까지 치렀던 귀주성 전쟁의 경우에도, 대산천가의 본거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숫자의 마교인이 숨어있을 수 있었다.
귀주성에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 들어갈 만한 문파나 가문은 없지만, 구파일방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사천성에 접해있는 것이 귀주성이다.
하지만 정파무림의 그 누구도 대산천가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일단은 끝까지 쫓아가 보자.’
진유강은 계속해서 양화를 미행했다.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를 울리는 것보다도 쉬운 미행에 지루해하고 있던 그였으나,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신창양가가 정말로 안휘성에 있다면…….’
그는 그 뒤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안휘성에 얼마 전의 귀주성처럼 전화의 불길이 치솟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야 하나……?’
그렇게 한참을 걸은 후, 그들은 결국 안휘성에 진입했다.
양화는 강서성에서 안휘성에서 진입하자마자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말 당연한 일이겠지만, 합비가 안휘성의 중앙에 위치해서인지, 그 방향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여기로 가면 어디가 나오지? 이 방향이라면…….’
그는 머릿속에서 지도를 떠올렸다.
‘제길. 평소에 지도를 좀 외워둘 것을. 지명들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은 덕에 속으로 자신을 자책하고는 계속에서 그의 뒤를 쫓던 순간이었다.
휘익-
진유강은 돌연 그와 양화의 중간쯤에 있는 골짜기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보통 바람이 아니다.’
진유강은 지금껏 유유자적하던 표정을 버리고,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공 실력을 떠나서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그다.
그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저 바람이 무엇인지, 앞으로 양화가 어디로 향할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위험하다고 계속 신호를 보내오는 그의 본능을 따르기로 했다.
팟-!
순식간에 다리에 기운을 모으더니, 용천혈에 기운을 뽑아내며 지금까지 천천히 걸어오던 방향의 반대로 뛰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움직임에 산새들이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가 원래 있었던 그곳에 대략 열 명의 신형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흑색 장포를 입고 있었고,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대주. 어떻게 합니까?”
“둘은 양화를 가문으로 데리고 가라.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으니 조심히 옮겨라. 그리고 나머지는 저 자를 쫓아라. 즉결처분해도 된다.”
“존명.”
대장으로 보이는 그의 말대로 둘은 양화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고, 나머지 다섯은 진유강을 쫓기 시작했다.
“역시. 꼼짝없이 죽을 뻔했네!”
진유강은 자신의 직감을 따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공동파에 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도망칠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공동파는 목숨보다 임무를 중요시하라는 풍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무 혹은 전투하다 사망하는 것은 명예로운 죽음이라도 치켜세워주고, 만약 목숨을 구걸하거나 도망을 치면 비겁하고 정정당당치 못하다며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이것은 진강이 공동파를 도망친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남궁세가에서의 첫 번째 철칙은 살아 돌아오는 거라니.’
그는 남궁세가에서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임무는 실패하면 어쩔 수 없고, 표물을 잃어버리면 돈으로 갚으면 그만이나, 사람은 죽어버리면 절대 돌아올 수 없다고 가르치는 곳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청룡각에서뿐만 아니라, 하현이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도 수없이 얘기했던 것 중의 하나였다.
그 덕에 이번에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몸을 빼냈고, 일단은 살아있을 수 있었다.
‘마교 놈들이겠지? 이런 개같은! 뭐 이리 빨라?’
그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그의 뒤를 뒤쫓는 마교 무리의 속도가 생각보다도 너무 빨랐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잡혀버릴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는 달리는 방법을 바꾸려 마음먹었다.
빠르게 달리는 방법을 하현에게 이미 배워왔던 그다.
슬쩍 듣기로는 경공으로는 무림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취월걸개가 달리는 방식이라고 했다.
‘진작 연습해놨어야 했는데.’
그는 자책하면서도 바닥을 박차며, 용천혈로 내뿜었던 기운을 회수하려 노력했다.
쿵- 쿵- 쿵-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다.
기운을 회수한다는 생각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렸고, 땅이 움푹 패이며 발이 쑥 들어가버렸다.
그 덕에 달리던 속도가 급감해버렸고, 그 사이 마교의 무리는 그의 등 뒤까지 바짝 쫓아 왔다.
‘다섯 명.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그는 냉정하게 판단하여 이기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경공 수준으로만 봐도 대강 파악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공이 빠르다고 해서 무조건 무공이 강하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이가 자신보다 훨씬 약할 확률은 거의 없다.
좋게 봐야 그와 비슷한 실력일 텐데, 그는 비슷한 실력의 다섯에게 달려드는 바보는 절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하현의 가르침을 떠올리려 애썼다.
둥- 둥- 둥-
그리고, 그의 노력은 곧바로 보답받기 시작했다.
그가 달리는 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진유강 역시 보통 재능은 아니었다.
연습도 제대로 안 해보고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달리기 방법을 곧바로 구현해내기 시작했다.
샤약-!
“이크!”
진유강은 목덜미에 예기가 느껴져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그 위로 검이 지나갔다.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마교의 무리가 진유강을 향해 검을 휘두른 것이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고 해도 얕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을 거리이긴 하지만, 다쳐서 피를 흘리는 것과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다.
사람은 아주 조금이라도 피를 흘리고, 피를 눈으로 보게 되면 급격하게 정신적으로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그는 바로 등 뒤에 적들이 있는 이 순간에도, 한층 더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집중력의 끝에서 그는 작은 깨달음을 얻고는 그 깨달음 그대로 발을 내디뎠다.
통-
실제로 들리지는 않았건만, 그의 귀에 너무나도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급가속하여 앞으로 튕겨 나가듯 쏘아졌다.
‘됐다……!’
샤악-!
그 순간, 진유강의 머리 뒤로 검이 스치며 그의 머리카락을 뭉텅 썰어내었다.
그는 뒷머리가 시원해짐을 느꼈지만, 만져볼 새도 없이 발을 놀렸다.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뒤의 무리와의 거리는 점점 떨어졌다.
양화를 쫓는 일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었기에 내공과 체력은 모두 완벽하다.
그는 이대로 도망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푸욱-
“크윽!”
그때 그의 옆구리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뒤에서 날아온 검이 그의 옆구리를 관통한 것이다.
진유강은 크게 몸을 휘청했지만, 급히 옆구리에 꽂힌 검을 뽑아내고 다시 균형을 잡았다.
“이 개자식들……!”
그는 입으로는 분노를 터뜨려내면서도, 손으로는 옆구리를 꾹 눌러 최대한 지혈했다.
다행히 장기는 모두 빗겨 갔는지, 각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으아아! 하현 대장이 나를 사지로 보냈어. 이대로 죽으면 귀신이 돼서 괴롭힐 것이다!’
그는 속으로 하현을 욕하며 열심히 발을 놀렸다.
지금 그가 살 방법은 도망가는 것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 * *
진유강이 한창 신창양가의 무인들에게 쫓기고 있는 그 시점.
하현은 할아버지와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데리고 금와객잔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할아버지. 여기서 하루 쉬어가요.”
“그래. 여기가 기철이가 얘기했던 그 객잔이로구나.”
“미리 서신을 받으셨군요?”
“그럼. 얼마나 꼼꼼하게 가주로서의 업무를 잘하는지, 그 덕분에 내가 맘 놓고 이렇게 중원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남궁무룡은 결국 자신이 방금 한 말이 자식 자랑이라는 것을 깨달아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하현은 할아버지를 위해 대화 주제를 돌릴 겸 서둘러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 해남파 무인들이 이 객잔에 있다고 했던 말 기억하시죠?”
“그럼. 기억하고 말고.”
“해남파 대제자가 깨어났는지 정말 궁금한데, 제가 먼저 올라가 봐도 될까요?”
“하하. 그러려무나. 방 안내는 객잔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안내받는 게 더 정확하겠지.”
하현은 남궁무룡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평경을 뉘어놨던 전각으로 갔다.
그가 깨어났는지 내심 궁금했던 하현이었기에, 그 발걸음은 재빨랐다.
일 층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이 층으로 곧장 올라간 하현은 문을 두드렸다.
“평경 소협. 혹시 계세요?”
“엇?”
그러자 곧장 안에서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현은 이 목소리가 평경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시지요.”
하현은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에는 평경이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누워서 요양을 취하다 하현이 들어오자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였다.
“괜찮아요. 누워 계세요.”
“그래도 제가 어찌…… 하현 소협 맞으시죠?”
“맞습니다. 바로 알아보시네요?”
하현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따지고 보면 평경은 하현을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현이 그를 구하러 나타난 순간 그는 혼절해버렸고, 그 후로는 깨어나지 못했었다.
“하하…… 류 사제가 소협 이야기를 얼마나 하던지…… 정말로 옥룡이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외모시군요.”
“류 소저가 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럼요. 그냥 많이 한 정도가 아닙니다. 저를 간호한다고는 옆에 앉아서 하루 종일 하현 공자님이 어떻고 저렇고…… 하도 멋지다고 이야기를 하기에 얼마나 멋진분인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하하…… 으윽.”
그는 크게 웃다가 상처에 통증이 느껴졌는지 인상을 쓰며 복부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그는 말을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말입니다. 또 사제가 뭐라고 했냐면…….”
“사형!!”
그는 말하는 도중 문에서 큰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랐다.
그곳에는 평경에게 줄 물을 한 바가지 들고 서 있는 류이영이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아……!”
그때 류이영이 하현을 바라보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순간적으로 화를 내긴 했으나,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소저. 그간 별일 없었어요?”
“아, 네……. 다행히…….”
하현은 그녀가 민망할까 봐 아무렇지도 않게 질문했고, 류이영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 덕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은 평경이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