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그나저나, 투귀를 찾고 있다고?”
“네. 투귀가 저희 해남파의 신물을 훔쳐 가서 그를 찾으러 중원으로 나온 거예요.”
“신물이라면, 혹시 그 금상을 말하는 것이냐?”
“네. 어르신께서는 모르는 게 없으시군요.”
남궁무룡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다 오래 살다 보니 주워들은 게 많은 것이지. 투귀를 찾기 위해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가?”
“그게…….”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하기 싫은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몇 달 동안 중원에서 그를 쫓았는데, 아무 성과가 없어 이제 해남도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일이 생겨 하현 소협을 만나게 된 거예요.”
“허어…… 그랬구나. 투귀를 어떤 방법으로 쫓은 것이야?”
“사람들을 수소문해보기도 하고, 하오문에 의뢰해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중원은 너무나도 넓고, 저희는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남궁무룡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해남파는 그리 작은 문파가 아니다.
아까 얘기했던 그 일로 문파의 고수들이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그래도 꽤 많은 무인들을 파견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기 잘못도 아니건만, 저렇게 풀 죽어 하는 모습이 그는 몹시도 안타까웠다.
“언제까지 돌아가겠노라고 약속이라도 해둔 게 있느냐?”
“아마 대사형이 정확하게 알 건데, 그런 건 따로 없는 거로 알고 있어요. 서신만 잘 보내면 오래 있어도 될 거예요.”
“그래?”
남궁무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떠냐. 다 같이 우리 남궁세가로 가는 거야.”
“네?”
“우리라고 해서 여유가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세가에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들은 도와주도록 하마.”
“투귀를 잡는 걸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맞다. 그렇지 않아도 한명이에게 갚아야 할 빚도 있고, 투귀라는 작자가 무림을 혼란케 하는 걸 알았는데 우리가 가만히 두고 보면 안 되지. 그렇지 않으냐? 현아.”
“맞아요. 그게 항상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셨던 ‘협’이잖아요.”
남궁무룡은 하현에게 눈을 찡긋해주고는 다시 류이영에게 말했다.
“우리 남궁세가의 정보력도 꽤 괜찮은 편이란다. 그리고, 여차하면 개방에 의뢰해도 될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맞네요. 제가 사부님한테 부탁해 볼게요.”
류이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개방의 사부님이라뇨?”
“제가 말씀은 굳이 안 드렸는데, 제가 개방의 속가제자거든요. 사부님은 취월걸개시고요.”
“속가제자요? 그리고 취월걸개 어르신의 제자……?”
그녀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도대체 언제부터 개방에 속가제자가 있었다는 말인가?
하현은 거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말끔한 옷과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알아챘는지, 하현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개방의 속가제자라고 해서 제가 거지는 아니고요. 일단은 저는 남궁세가의 사람이니까…….”
그 뒤로도 하현의 말이 이어졌지만, 류이영은 그냥 이해하기를 포기해 버렸다.
“뭐. 하여튼. 개방과도 연이 깊다는 거죠.”
“그렇군요. 호의는 정말 감사하나, 제가 이 자리에서 결정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대사형과 상의를 해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부담을 주려 한 것은 아니니 편히 생각하시게나.”
“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류이영은 남궁무룡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은 인사였다.
그런데, 고개를 숙인 류이영은 어째서인지 입가에 미소가 나오려고 했다.
겨우 그 미소를 억누른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래. 나중에 또 보세나.”
류이영이 공손하게 문을 닫고 나갔다.
그때 그녀를 따라 나가려는 하현을 남궁무룡이 붙잡았다.
“하현아. 잠깐만 기다리거라.”
“왜 그러세요?”
“아니…… 표정이 뭔가 개운치 않아 보여서 말이야. 뭐 걱정되는 거라도 있는 게냐?”
“할아버지는 정말 못 속이겠네요.”
하현은 헤헤 웃으며 아예 몸을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네요.”
“무엇이냐?”
“제가 신강양가의 무인에게 진유강을 붙여놓았다고 말씀드렸죠?”
“그랬지.”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아무 연락도 없어서요. 조금 불안하네요. 제가 너무 위험한 일을 시킨 게 아닌가 싶어서요.”
남궁무룡은 그런 하현을 보고서 빙긋 웃었다.
“현이는 벌써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마음을 느끼고 있구나.”
그는 하현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불안감은 임무나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나도 우리 가문의 무인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나면 항상 마음 한편이 불안하단다. 내가 저 소중한 목숨을 사지로 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고 말이야.”
남궁무룡은 회한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수십 년간 남궁세가의 가주로 살며 수많은 무인을 임무에 보냈고, 수많은 무인을 하늘로 보내야만 했다.
죽은 남궁세가의 무인이 직계든, 그렇지 않든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남궁무룡이 가주라는 직책을 그만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그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
“기다려야지.”
“아…….”
남궁무룡은 이번에도 한 번에 알아듣는 하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누군가에게 임무를 맡길 때는 그 사람이 충분히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 돌아올 수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이지 않으냐?”
“맞아요. 심지어는 임무는 완수하지 못하더라도, 살아서만 돌아오라고 했었어요.”
“그래. 그러면 너의 판단을 믿고, 조금 더 기다려 주는 게 사람을 성장시키는 방법일지도 모르니 말이야.”
하현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무룡이 하고 싶은 말을 백분 이해한 듯한 얼굴이었다.
“감사해요. 할아버지. 언제나 할아버지 덕분에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어요.”
“하하. 내가 한 게 뭐가 있겠느냐?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것도 능력이란다.”
“그러면 이만 나가볼게요. 쉬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해요.”
“방해는 무슨. 언제는 오고 싶을 때 오거라.”
“네. 할아버지.”
하현이 류이영을 따라 방을 나가고.
홀로 남은 남궁무룡은 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하현이 류이영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허허…… 가주의 재목이라는 것은 알았건만…….”
그가 생각하는 가주의 첫 번째 덕목은 바로 ‘가족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가족의 범위는 단순하게 피가 섞인 가족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가를 이루고 있는 그 구성원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무공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나더라도,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가주가 된다면 그 가문은 발전할지라도, 그 구성원은 고통받게 된다.
생명을 도외시하고, 무리한 임무를 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라도 가문이 발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궁무룡은 그렇지 않았다.
가주라면 언제나 가문을 품어줄 수 있는 인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민이가 긴장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는 손주들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물론, 그 손주들이 각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남궁무룡이었다.
* * *
또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류이영은 평경, 영진과 상의하여 함께 남궁세가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포기하기보다는 염치가 없더라도 최대한 문파의 신물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남궁무룡은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 만큼 먼저 신경 써서 가문에 그 물건에 대한 정보가 없는지를 찾아보라며 서신부터 보냈다.
당연하게도 류이영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데, 그 기쁨이 가문의 신물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건지, 그게 아니면 하현과 더 같이 있을 수 있어서인지는 그녀밖에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하현은 금와객잔의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하현 소협은 또 저기 올라가 계시는 거예요?”
“어제부터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올라가 계십니다.”
류이영과 운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하현이 저기에 조금 올라가 있겠다고 해서 몸이 상하고 그러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둘 다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다.
자신이 걱정하는 사람이 계속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고 있으면 가슴이 아픈 것이다.
“진유강 소협을 기다린다고 하신 거 같은데요.”
“네. 저는 곧 돌아올 테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도련님 마음이 편하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현 소협은…… 정이 참 깊네요.”
“네. 저희 도련님이 좀 속도 깊으시고 정도 깊으신 분이시죠.”
류이영은 하현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운후를 흥미로운 눈으로 보았다.
항상 꼬박꼬박 도련님이라고 말하는 그지만, 종종 그가 하현을 보는 눈빛은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어떻게 저런 관계가 있을 수 있지?’
언뜻 듣기로는 하현이 운후를 굴복시키고 하인으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운후에게서는 전혀 억울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하현에게 너무나도 감사하고 있을 뿐.
“일어나셨습니다.”
생각 중이던 류이영이 운후의 말을 듣고서 하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말대로 시종일관 가부좌를 틀고 무언가 집중하고 있던 하현이 자리에 벌떡 일어난 것이다.
“아저씨! 저 금방 다녀올게요. 진유강이에요.”
“그렇습니까?!”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파악!
하현은 온 힘을 다해 지붕을 발로 박차 경공을 밟으며 저 멀리 숲속으로 사라졌다.
류이영은 사문에서도 본 적이 없던 엄청난 경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현은 곧장 앞으로 뛰쳐나갔다.
성가시다고만 생각했던 진유강이었데, 막상 이렇게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그와 함께 전투하다 다치거나 부상을 당했으면 모를 일인데, 생사도 모르니 더욱 그랬다.
파바박!
그는 진유강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분명히 풀과 나무로 빽빽하게 우거진 곳이건만, 그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그는 약 삼백 장이나 달하는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했다.
곧 하현은 혼비백산하여 숲을 헤치고 도망가는 진유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유강!”
이윽고 그가 진유강의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몹시도 놀란 얼굴로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
“대장?!”
“진유강. 살아있었구나.”
“죽을 뻔했소! 정말로 죽을 뻔했단 말이오!”
그는 하현을 보자 지금까지 고생했던 것들이 밀려오는지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괜찮아? 다친 곳은…… 많아 보이긴 하네.”
진유강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도망치며 여기저기 생긴 생채기와 찢어진 옷, 그리고 혈전을 벌이는 통에 잘 묶어두었던 상처가 벌어졌는지 다시금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으며, 왼손 손가락은 모두 부러졌는지, 방향이 제멋대로였다.
그 와중에도 여기까지 잘 돌아온 것이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빨리 객잔으로 가자. 실력 좋은 의원을 알아놨어.”
“이대로 가면 안 되오. 아직 나를 쫓는 자가 있소!”
“누가?”
그 순간, 하현의 기감에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교의 고수요. 무슨 수를 썼는지, 갑자기 감당할 수 없게 강해지더니, 아무리 찌르고 베어도 죽지를 않소. 괴물이오. 괴물!”
순간 하현은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갑자기 강해진 게 언제야?”
“한 시진 전쯤이오! 맘 놓고 도망가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인제 보니 손이 다친 지는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더 움직이지 말고.”
“알겠소. 대장.”
파앗-!
하현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의 기운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하현이 그를 늦게 알아챈 이유는 기운이 너무나도 미약했기 때문이다.
“끄어어…… 어어…….”
“역시나.”
그의 앞에 당도했을 때, 그는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는 검은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천마강림…….”
하현은 안타까운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는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져가며 마교를 위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곧바로 검을 들어 그의 목을 내려치려던 하현의 손이 멈칫했다.
이대로 가만히 놔둬도 죽을 것 같아서였다.
툭-
그런데, 그의 목에 붉은 선이 하나 생기는가 싶더니, 목이 둥실 떠올랐다.
어느새 하현의 옆에는 남궁무룡이 와 있었다.
그는 검에 피도 묻히지 않고, 검기만을 이용해 그의 목을 떨어뜨렸다.
“할아버지…….”
“비록 적이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무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남궁무룡도 천마강림에 대해 익히 알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잡아먹으며 장렬히 태우는 생명의 검을 불꽃을.
“현아. 일단 진유강을 데리고 들어가자. 많이 다친 것으로 보이니.”
“알겠어요.”
하현은 진유강과 만났던 자리로 가 그를 들쳐업었다.
“하하하. 우리 대장 등에도 업혀보고, 목숨을 바칠 만했던 것 같소.”
“농담이 나오는 걸 보니, 아직 덜 다쳤구나.”
“그건 아니긴 한데. 내가 워낙 낙천적이어서 말이오.”
그는 킬킬대며 웃었다.
하현은 뭐라고 한마디 더 하려다가, 그냥 그가 웃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쨌든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야. 고생했어.”
“맞소. 내가 고생을 좀 했지.”
진유강은 끝까지 하현의 말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