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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52화 (252/304)

252화

진유강이 금와객잔으로 돌아오고서 이틀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진유강은 의원에게 치료를 잘 받았고, 뒤틀린 왼손의 손가락도 잘 맞추었다.

예의 평경을 치료해 주었던 의원은 평경이 반나절만 더 늦게 왔어도 평생 불구로 살아야 했을 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지. 네 이놈 마교의 주구야. 네 느린 발로는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요?”

“그랬더니 그놈이 콧방귀를 뀌는 것 아니오? 아마 놈도 마교에서는 꽤 지위가 있는 것 같았는데, 일대일의 싸움에서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보지.”

기운을 차린 진유강은 식당에서 영진과 단청을 앉혀 놓고, 그의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소? 진 형이 그자를 농락한 것이오?”

“잘 아시는군. 그다음은 뻔한 이야기요. 그자가 이상한 수를 쓰기 전까지는 나는 그자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의 몸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지. 시간이 꽤 지났을 때, 그자는 온몸이 낭자 당해 혈인이 되어 있었소.”

진유강은 비장하게 말하고는 잔에 있는 내용물을 입 안에 탁- 털어 넣었다.

정말 애석하게도 그 잔에는 술이 아닌 차가 담겨 있었다.

의원이 한동안은 절대 금주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있거니와, 절대 술을 마시지 말라는 하현의 명령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진과 단청 역시 앞에 차를 따라놓고 있었다.

하현이 평경을 구해오던 날 취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 그들 둘에게 류이영은 해남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절대 술을 마시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유리하던 싸움이 왜 갑자기 급변하게 된 것이오?”

“그렇게 한참을 싸우던 도중이었지. 그런데 놈의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폭발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엄청나게 강해지는 게 아니오?”

“갑자기 강해졌다고?!”

하현은 이 층에서 진유강이 떠드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천마강림이라던지, 마교와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게 할까 하다가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도록 놔두었다.

‘어차피 온 무림이 알아야 할 일이야.’

하현은 이 일들이 자연스럽게 무림에 퍼져나가길 원했다.

무림맹에서 공표하는 방식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모든 이들이 또 안휘과 마교에 관심을 집중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은근한 소문으로 그들을 압박하여 행동에 제약을 주는 것.

그것이 하현과 남궁무룡이 의도하는 바였다.

“와……. 그런데도 살아 돌아왔단 말이오? 역시 대단합니다.”

“그리고 우리 대장이 얼마나 멋있던 줄 아나? 내 이름을 부르며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나는 하늘에서 옥공자가 내려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네.”

하현은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진유강을 보며 ‘저런 것까지 원하는 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평경의 방이었다.

원래 곧바로 출발하려 했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금와객잔에서 며칠 더 머무르게 된 이유가 진유강과 평경의 회복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에서부터 가져온 마차가 아무리 고급 마차라고 하더라도, 환자가 타고 있으면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회복하고서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하현 소협. 오셨습니까?”

“네. 간밤에 별일 없으셨죠?”

“하하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소협의 도움 덕분에 상처도 빠르게 아물고 있습니다.”

하현은 하루에 한 번씩 평경의 상처를 봐주고 있었다.

의학지식이나 의료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하현의 특별한 내공을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상처의 회복이 눈에 띄게 빨라졌으니까.

“다행이네요. 내일쯤에는 남궁세가로 출발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 세가의 의원들이 더 잘 봐줄 테니까요.”

“저는 지금 출발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진유강 소협은 좀 어떻습니까?”

“진유강은…… 처음 왔을 때부터 괜찮았어요. 지금도 일 층에서 소협 사제들을 데리고 떠벌떠벌 하는 중이에요.”

하현은 그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데, 평경에게서는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진 소협을 굉장히 아끼시는군요.”

“네? 아낀다고요?”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를 말하는 목소리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애정이라니. 애증이겠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의 말대로 점차 진유강이 마음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빠른 무공 습득력과 넉살스러운 성격, 그리고 재빠른 눈치가 마음에 들었다.

‘운후 아저씨랑도 잘 어울리고.’

그리고 진유강은 운후와 제법 잘 어울렸다.

우직하고 차분한 성격의 운후와 가볍지만 자유로운 진유강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성장하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아무래도 그를 남궁세가로 데리고 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오늘도 제가 기운을 넣어 드릴게요. 그리고 상황을 보고 내일 출발하던가 해요.”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평경은 거리낌 없이 하현에게 등을 내주었다.

하현은 그의 명문혈에 손을 대고 기운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 * *

그날 밤.

하현은 남궁무룡이 머무는 방에 와 있었다.

그곳에는 그뿐만 아니라, 남궁기현과 남궁민이 함께였다.

지금 세가 밖에 있는 직계들이 모인 것이다.

“그래서…… 진유강의 말로는 안휘성 황산(黃山)에까지는 갔었다는 말이지?”

“네. 거기에서 마교의 무인들을 만났고, 정신없이 도망쳐서 강서성의 최북단까지는 도망쳤다고 해요.”

남궁무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진유강이 그 와중에도 끝끝내 챙겨가지고 온 마교인의 검이었다.

그는 왼손이 부서지기 직전, 자신의 검을 땅에 버리고 대신 이 검을 검집에 욱여넣고서는 가져왔다.

“현철이 섞여 있는 검이구나. 검에 그려져 있는 문양이나, 주조하는 방식으로 보았을 때 신강양가의 검이 확실하다.”

무림에서 오래 활약한 만큼 검에도 일가견이 있는 남궁무룡이었기에, 대번에 이 검이 신강양가의 검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면 정말로 신강양가는 우리 안휘성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안휘에 자리를 잡고 있을 줄이야.”

남궁무룡은 씁쓸하게 말했다.

삼십사 년 전 신강에서 쫓겨난 마교의 무리들이 각기 다른 곳으로 흩어졌을 수도 있으리라고도 추측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물증이 없었기에 확신하고 있지는 못했는데 이번 일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한 것이다.

“대산천가는 귀주성에, 신강양가는 안휘성에…… 이제 천마유가와 마교 본산의 위치가 어디인지만 알면 되겠군요.”

남궁기현이 지도를 보며 말했다.

그 역시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그의 형인 남궁기철이 남궁세가의 내정을 담당하고 있다면 남궁기현은 주로 임무를 수행하며 세가 바깥에 자주 있었다.

무림맹에도 오래 있으며 사파의 잔당이나 마교의 무리를 항상 탐사하고, 지부를 격파해왔던 그다.

그런데 막상 마교의 큰 무리 중의 하나가 안휘성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으니,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마교의 잔당이 중원 전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 이해되는구나.”

“생겨난 것이 아니라, 원래 그곳에 있었던 거죠.”

“그래. 세가로 돌아가면 황산 지역을 수색할 수색대를 꾸려봐야겠구나.”

그때 조용히 자리에만 앉아 있던 남궁민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님. 제가 가고 싶습니다.”

“그래?”

“혹시나 오해하실까 싶어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우나…….”

“더 많은 싸움을 원한다고 말하려고?”

“……!”

남궁민이 깜짝 놀란 듯 남궁무룡을 바라보았다.

남궁무룡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옆에 앉은 그의 아버지 남궁기현 역시 비슷한 표정이었다.

“귀주성에서의 전투를 거듭하며 심득을 얻은 것 같더구나.”

“알고 계셨군요.”

“그래. 날이면 날마다 강해지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느냐?”

남궁민은 부끄러운 듯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할아버지한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지 그는 남궁무룡에게 대답했다.

“조금만 더 해보면 완전히 깨달을 것 같은데, 제가 둔재라 그 깨달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계속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전을 더 해보며 생각을 정리하면 무엇인가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저를 보내달라 말씀드린 겁니다.”

“그래. 그걸 고려해서 결정하마.”

“감사합니다.”

하현은 셋의 대화를 말똥말똥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형님이 발전했다 싶었어.’

내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거나, 근골이 더 좋아졌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깨달음에 따른 내공 운용법이나, 초식을 전개하는 과정이 더 빠르고, 부드러워졌을 것이다.

‘이따가 형님께도 해남파의 검결을 가르쳐 드려야지.’

하현은 남궁민에게 따로 시간을 내라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는 남궁민이 해남파의 검결로 마음의 검까지 발전시킨다면 얼마나 빠르게 강해질지, 생각만 해도 괜히 벅차오르는 하현이었다.

“일단…… 이번 일은 무림맹에 알리기는 하되, 많은 무인을 동원하지는 말아 달라고 할 것이다.”

“아버님. 말씀 중에 죄송하나, 이번 귀주성에서의 일처럼 무인들을 동원하여 신강양가도 쓸어버리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마교를 지탱하는 세 가문 중에 벌써 두 군데가 사라지게 되는 것인데, 마교의 전력을 약화시킬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남궁기현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남궁무룡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된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미 온 무림의 무인들이 귀주성에 모였다가 이제야 막 자신들의 고향으로 흩어졌다.”

남궁기현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잠자코 아버지의 말을 경청했다.

남궁무룡의 말을 들어서 나빠진 일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지역을 지켜야 한다. 각 지역을 수호하는 무인들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산적, 비적떼가 곳곳에서 출몰하는 중이고, 심지어는 왈패들이 시장을 장악한 지역도 있다고 하는구나.”

“흠…… 그렇군요.”

남궁기현은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인들은 서로 칼싸움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남궁무룡이 생각하는 무림인의 가장 큰 존재 의의 중의 하나는 바로 민초들의 치안유지다.

그런데, 그런 무인들이 몇 달 동안 자리를 비워버렸으니 치안이 유지될 리 없는 것이다.

“관아에서 할 일을 우리 무림인들이 하고 있군요.”

“그만큼 우리는 관군들은 받지 못하는 존경과 애정을 민초들에게 받고 있지 않으냐? 그 보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 세가에서만 자체적으로 조사하실 예정입니까? 우리 세가가 정파제일가라고는 하나, 양가와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출혈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궁기현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속물적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남궁기현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싸움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완벽하게 준비하여 전투와 임무에 임하는 것이 그의 성격이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생각이 있단다.”

“그게 무엇입니까?”

“이번 귀주성에서 깨달은 것이다. 고수는 역시 양보다는 질이라는 것을.”

남궁무룡은 씨익 웃고서는 말을 이었다.

“어떤 문파나 가문에는 뒷방 늙은이가 있기 마련이지. 그리고, 나 같은 뒷방 늙은이들은 사실 문파나 가문의 일에 그만 관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그 말뜻은……?”

“나와 배분이 비슷한 고수들을 우리 세가에 불러 모을 생각이야. 그리고 신강양가의 위치를 알게 되면…… 우리끼리만 가도 문제없지 않겠는가?”

남궁무룡은 허허 웃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리 편하게 웃을 수는 없었다.

검존의 배분이라면 무림 최강의 전력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난 쓸데없는 피를 흘리고 싶지 않네. 만약 피를 흘리더라도 무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무인들의 피보다는 살 만큼 산 우리가 흘려야 하지 않겠나?”

그는 나머지의 표정은 신경 쓰지도 않는지 비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하현은 할아버지가 말한 ‘우리’ 중에 피를 흘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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