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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59화 (259/304)

259화

스윽- 사악! 파악! 퍼억!

연무장 위에서는 온통 요란한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 손이 옷자락을 스치는 소리, 내뻗는 손바닥을 팔로 막아내는 소리…….

“진유강의 실력이 저 정도라니……. 입관 시험은 사실 의미 없는 게 아니었나?”

“저 보법은 하현이의 보법과 굉장히 닮았지 않은가? 하현이 진작부터 진유강과 운후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은 익히 알고 있긴 했지만…….”

더 이상 관중들은 감탄성을 내뱉지 않았다.

지금 시험을 보고 있는 대부분은 남궁세가의 무인이다.

그들은 정말 자연스럽게 진유강과 하현의 무공을 분석하고 또, 자신과 비교하고 있었다.

‘모든 게 하현이가 의도했던 대로군.’

다른 이들과 함께 관객석에서 시험을 지켜보던 남궁무룡이 생각했다.

그는 이제 하현을 나이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하현의 심계는 어지간한 정예 대원보다 더 깊은 수준에 이르렀으니.

“그나저나, 하현 도련님의 실력도 정말 대단하지 않아?”

“맞아. 무공을 잘 모르는 우리 눈에도 하현 도련님이 한 수 위의 실력으로 진유강을 잘 이끌어 주는 게 보일 정도니 말이야.”

게다가 이번 시험은 오로지 진유강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가문의 모두는 하현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하현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또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모르는 자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는 하현이 당당한 가문의 정예 대원의 하나로 인정받을 수도 있는 자리이다.

콰앙!

남궁무룡은 주변을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보다가, 연무장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져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소리의 근원지는 진유강의 발이었다.

그는 결정타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하현에게 쏘아지듯 나아갔다.

하지만, 하현의 표정은 여유롭다.

타다다- 휘리릭!

그는 보법을 밟으며 몸을 회전시켜 진유강의 팔을 너무나도 쉽게 피해버렸다.

어느새 두 발로 땅에 선 하현이 해맑게 말했다.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것 같아. 여기까지 하자.”

“망할. 기권할 수도 없고.”

“최선을 다해서 피해 봐.”

둥-

하현의 발이 바닥을 박찼는데, 어째서인지 북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건?!”

남궁무룡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하현의 보법을 보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휘잉-

지금 이곳에 있는 관중 모두는 하현의 신형을 시야에서 놓쳐버렸다.

다만, 그들은 연무장 위에 한 줄기 바람이 분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심지어는 하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진유강마저 하현의 신형을 놓쳐버렸다.

‘이형환위……?’

진유강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전설 속의 신법이라는 이형환위가 떠올랐다.

실제로도 그는 하현의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신법을 몇 번 직접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

후웅!

그때, 그는 머리 위에서 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무언가를 막아내려 했다.

퍼억!

“어……?”

하지만, 그는 바로 정면에서 날아오는 손에 가슴을 맞고, 연무장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치열했던 양상과는 달리 다소 허무한 결과였다.

“…….”

관객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도 소리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움직인 거야?”

“나도 제대로 못 봤어!”

관중들과 함께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던 남궁연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승자는 남궁하현입니다! 시험 결과는 잠시 후에 발표하겠습니다.”

하현은 진유강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주었다.

진유강은 억울한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보다는 감탄하는 마음이 더 컸다.

“아니, 도대체 그 신법은 무엇이란 말이오?”

“최근에 창안하고 있는 신법이야. 아직 이름은 붙이지 못했어.”

“신법을 창안한다니, 도대체…….”

진유강은 고개를 절레절레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런 새로운 무공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서 선보이면 안 되는 것 아니오?”

“어째서?”

“혹시나 사람들이 대장의 무공을 보고 따라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소? 스스로 창안한 무공이면 잘 숨겨야 하는 게 아닌지…….”

하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라고 일부러 여기서 한 건데?”

“무슨 말이오?”

하현이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여기 있는 모두는 남궁세가 사람이잖아. 외부인은 거의 없어. 있다고 해도 해남파의 무인들 정도?”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가족들이 나 덕분에 신법이 한 단계 발전하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또 없지.”

“정말……. 대단하시오.”

“고마워. 얼른 내려가자.”

하현은 싱긋 웃고는 연무장에서 내려갔다.

진유강도 무언가를 크게 느낀 듯한 표정으로 그를 따라 내려갔다.

* * *

결과는 잠시 후에 발표되었다.

남궁기철이 연무장에 올라가서 발표했는데 정말 당연하게도 시험은 합격.

진유강은 이제 정식으로 청룡각 수련생이 되었다.

정식 대원으로의 승급 시험은 곧바로 오후에 펼쳐질 예정이지만, 아쉽게도 승급 시험은 비공개 시험이기에 입관 시험을 지켜보던 무인들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진유강, 오후에도 시험 볼 수 있지?”

“끄떡없소. 뭐, 얼마나 움직였다고.”

허세 가득하게 말했지만, 진유강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젖 먹던 힘까지 끌어와 하현과 신법 대결을 펼쳤으니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오후 시험은 그렇게까지 체력이 있어야 하는 시험은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도대체 무슨 시험이길래 그렇게 꽁꽁 숨기는 것이오?”

“하하. 가 보면 알아. 생각보다 정말 쉬울 수도 있고, 어쩌면 어려울 수도 있어. 아직 말해주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 정도는 말해줘도 되겠지.”

진유강과 대화 중인 하현의 뒤로 사람 그림자가 하나 드리워졌다.

하현은 익숙한 기운에 방긋 웃으며 뒤로 돌았다.

“할아버지!”

“하현아. 그리고 진유강과 멋진 대련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아니에요.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는걸요.”

“그게 제대로 움직인 게 아니라니…… 그렇게 됐습니다. 가주님.”

진유강은 어색하게 가주님이라고 말끝에 붙였다.

지금까지는 본인이 남궁세가의 사람이라는 자각이 없던 탓에 가주님이 아닌 검존 어르신이라고 부르던 그였다.

그런데, 시험에 합격하고 청룡각의 일원이 되며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가주님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축하하네. 청룡각의 일원이 되었군.”

“감사합니다. 저 하나 때문에 이런 번거로운 일을 만드셔서…….”

“하하! 신경 쓰지 말게나. 앞으로 우리 세가는 엄청나게 바빠질 걸세.”

“신강양가의 수색에 대부분의 무인이 참가한다는 건 들었습니다.”

“그래. 그런 큰 임무 전에 다 같이 얼굴을 보고, 합동심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필요했네. 그 기회를 자네가 만들어 준 거라 생각하면 되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현은 제 할아버지에게 쩔쩔매는 진유강을 보며 키득거렸다.

진유강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도 은근히 어른들에게는 깍듯했다.

눈에 띄게 불편해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하현아. 아까 보인 그 보법은 새로 창안한 것이냐?”

“네. 최근 들어서 보법과 신법을 조금 더 연구하고 있었거든요. 최근에 깨달은 거에요.”

“허허. 네 성장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이 가지 않는구나.”

남궁무룡은 하현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할아버지.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배가 너무 고파요. 식사하러 같이 가실래요?”

“그래. 좋다. 그렇지 않아도 나도 배가 고프던 참이었단다. 유강. 자네도 함께 가지 않겠나?”

“저, 저 말입니까? 괜찮습니다. 저는 따로…….”

“사양하지 말게.”

“그래. 같이 가자.”

“알겠……습니다.”

결국 진유강은 결국 하현과 남궁무룡의 뒤를 따라가 불편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후가 되었다.

진유강의 승급 시험에는 몇 명만이 참관하기로 했다.

시험을 주관하는 남궁규현과 남궁기철, 그리고 남궁무룡과 하현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쓰든 검 한 자루로 저 철탑을 무너뜨리면 된다는 말이오?”

“그래. 검이 부러지면 실격이다.”

진유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어려울 것이라고 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도 쉬워 보이는 시험이었다.

‘검에 기운을 불어넣어 부러지지 않게 하고, 힘으로 밀어버리면 되는 문제 아닌가?’

그는 철탑에 다가가 그 철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제련도 굉장히 잘했고, 견고해 보이기는 하다만 특별할 건 없어 보이는데?’

이번에는 하현을 흘긋 돌아본다.

‘도대체 뭐지?’

하현은 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대체 그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진유강. 시간이 없다. 시험 안 치를 거냐?”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지금 고민하고 있지 않소?”

그를 재촉하는 남궁규현에게 대답한 진유강은 결국 뒤로 물러나 검을 잡고 기수식을 취했다.

‘일단 무너뜨리기만 하면 실격은 아니겠지.’

그는 속으로 생각하고서는 검 손잡이를 잡은 손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후우욱-

그의 주변으로 남궁세가의 심법과는 다소 이질적인 기운이 피어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파의 심법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공동파의 심법은 파마의 기운이 진한 심법이다.

무공을 꽤 익힌 사람이라면 그 특유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심법.

그렇기에 진유강은 그 기운을 숨기기 위해서 자신만의 심법으로 개량했다.

그 덕에 내공의 순환이나 폭발에서 손해를 보기는 하지만, 그는 나름 만족했다.

처억!

진유강이 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검을 뽑아내었다.

검집에서 뽑힌 그의 검은 새하얗게 빛을 반사하며 철탑에 부딪쳐 갔다.

“아…….”

“흠…….”

그런데, 그 짧은 찰나에 몇 명의 아쉬운 탄식이 스쳐 간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기대했던 것은 하현이 승급 시험을 통과했던 방식이다.

철탑의 사이에 정확하게 검을 찔러 넣어 기운을 집어넣고, 그 기운으로 무너뜨리는 그 방법을.

하지만, 진유강은 보통의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을 택했다.

쾅-!! 와르르-

철탑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며 철탑이 맥없이 무너졌다.

진유강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검집에 검을 납검했다.

피어오른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쯤.

“축하하네. 나는 먼저 일어나보겠네.”

“네. 들어가십시오. 가주님.”

남궁무룡이 규현에게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훌쩍 떠나버렸다.

진유강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장, 내가 뭐 잘못 한 거요?”

“하하, 아니야. 고생했어. 하루 만에 정식대원이 되었네.”

“고, 고맙소. 그런데 왜 이렇게 찜찜하지?”

하현이 피식 웃었다.

“할아버지께서 두 번째 제자를 받고 싶으셨나 보지.”

“제자?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 게 있어. 그냥 넌 승급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렀다고만 알고 있으면 돼.”

“아무래도 이상한데…….”

남궁기철과 남궁규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들 역시 그저 잘했다고만 말해 줄 뿐이었다.

“진유강. 이제 정식대원이 되었으니, 그만큼 훈련량을 늘릴 거야.”

“여기서 더 늘린단 말이오?”

“우리 지금은 수련을 거의 안 하고 있잖아?”

“하루에 네 시진이나 하는데, 그게 안 하는 거요?”

“여덟 시진쯤은 해야지. 남는 시간에 뭐 할 거야?”

진유강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여덟 시진? 그러면 잠자고, 밥 먹고 남는 시간에는 다 수련만 한단 말이오?”

“당연한 거 아니야? 그거 말고 할 게 더 뭐가 있어.”

“내가 남궁세가에 들어온 게 잘한 건지…….”

진유강이 입을 삐죽거렸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 건데, 그렇게 볼멘소리하지 마.”

“오늘은 그래도 뭔가 잔치까지는 아니어도, 회포를 푼다거나 해야 하는 것 아니오?”

“그래? 네가 정 그렇다면 나가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오던가.”

“오! 정말 그래도 된단 말이오?”

하현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사실 네가 정식 대원이 되면 가르쳐 주려고 심법을 하나 만들어 놨긴 한데…….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심법?”

“오늘이 아니면 내가 가르쳐 줄 기분이 안 날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있겠어? 네가 그렇게 놀러 나가고 싶다는데.”

“아니 잠깐……. 그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그렇지 않아도 상승의 심법에 대한 갈증에 허덕이던 진유강이다.

공동파의 심법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실정이었으니.

“어떡할래. 오늘부터 수련할 거야? 아니면 놀러 나가던지.”

진유강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하현이 가끔 이럴 때는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후……. 수련하러 갑시다.”

“그래. 좋은 선택이야.”

하현은 해맑게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하고 즐거워 보이는 웃음이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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