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그나저나, 남궁하현이라 하셨습니까? 혹시 옥룡 남궁하현?”
“아, 맞습니다. 제가 별호를 말하는 게 익숙지 않아 말씀드리는 걸 잊었네요.”
“하하! 아닙니다. 제 생각보다…… 훨씬 어리시군요?”
하현 일행을 데리고 무당산을 오르는 도사는 생각보다 성격이 좋은 사람이었다.
조금 전에 진유강을 제압했을 때는 굉장히 무서워 보였는데, 지금은 사람 좋은 아저씨로 보였다.
“빈도는 청정이라 합니다. 무당의 일대 제자이지요.”
“현무와 현암 도장의 사숙이 되시겠군요.”
“맞습니다. 현암이 제갈세가에 다녀와 소협의 이야기를 어찌나 많이 하던지……. 그래서 소협의 별호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무당파는 일대 제자부터 사대 제자까지. 청, 현, 유, 운자 배로 돌아간다.
일대 제자는 장문인과 같은 배분이기에 공식적으로는 무당에서 가장 높은 배분이고, 이십 년이 지나면 청자 배는 원로원으로 들어가고 새로운 청자 배를 받으며 이대 제자가 일대 제자가 된다.
즉 운정은 최소한 사십 년 이상을 무당에서 수학한 무인이라는 소리다.
‘나이와 무공을 수련한 시간으로만 따지만, 우리 숙부님들 정도의 배분이야. 초고수라는 소리지.’
최근 무공 실력이 상당히 좋아진 진유강을 단 두 명으로 제압한 것만 보아도 그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쉬이 알 수 있었다.
“여기 옆은 청미. 제 사제입니다.”
“소란을 일으켜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괜찮소.”
사근사근히 이야기하는 청정과는 달리 청미는 굉장히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들 뒤를 묵묵히 따르던 운후가 갑자기 떠오른 궁금증에 나지막이 혼잣말했다.
“현암 도장과 한 배분 차이라고 하기에는 연세가 굉장히 많아 보이시는데…….”
“운 형. 그건 검성님이 현재 무당의 일대 제자이기 때문이오. 보통의 대방파에서는 제자를 받으면 그 제자를 스승의 바로 아래 배분으로 취급한다오. 그런 걸 따지지 않는 남궁세가가 특이한 편이지.”
“그렇구나. 그러면 현암 도장이 현자 배에서는 어린 편이겠군.”
“검성님의 제자들이 다 그러지 않을까 싶소.”
진유강이 그 혼잣말을 놓치지 않고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따지고 보면 운후는 큰 문파에 있던 경험이 남궁세가가 유일했지만, 진유강은 공동파에도 있었고, 세상을 유랑하며 여러 무인을 만났기에 오히려 경험은 풍부했다.
“하하. 무당의 사정을 정확히 아시는군요. 청명 사형이 너무 늦은 나이에 제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그렇게 되었지요.”
“검성님의 도호가 청명이셨군요.”
“그렇습니다.”
하현은 항상 검성 혹은 호북제일검이라는 별호만 들었지, 그의 도호는 처음 듣는다고 생각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이제 저 언덕만 지나면 무당이 보일 겁니다.”
“굉장히 높은 곳에 지어져 있네요. 그러면 아래에 있던 그 입구는 뭐에요?”
“원래는 그곳이 해검지(解劍地)였습니다. 그곳에서부터 무장을 모두 해제해야 했지요.”
“그런데 왜 지금은 운용하지 않는 거예요?”
“현 장문인의 뜻입니다. 병기를 생명처럼 다루는 무인들도 있으니, 무공을 쓰는 자만 벌하자는 취지이지요.”
“굉장히 합리적이신 분인가 보군요.”
하현의 말에 청정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장문인을 그렇게 말하는 것은 처음 들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면이 있긴 합니다.”
그 뒤로 어째서인지 청정도장은 말을 아꼈다.
그의 뒤를 따라 조금 더 가자, 드디어 눈앞에 무당파가 나타났다.
“와……!”
“멋지네요.”
“역시 무당파네요.”
무당파의 모습을 처음 본 그들은 감탄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보통 산속에 거대한 전각들이 늘어서 있으면 이질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인공적인 건축물이 자연경관을 망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당파는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세상이 아니라 신선들의 세상 같아요.”
“그러게요. 검룡 소협이 무당의 경관이 아름답다고 몇 번이고 자랑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류이영의 감상대로 선계가 이렇게 생겼을까 싶은 분위기였다.
오래된 건물들은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을 정도니까.
“따라오시지요. 저 전각이 장문인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청미. 장문인께 손님을 모셔도 되는지 여쭤봐 주겠나?”
“알겠습니다. 사형.”
청미 도장이 표홀한 신법으로 전각으로 들어갔다가 금방 다시 나왔다.
“들어오라십니다.”
“그러면 저희는 여기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오늘 머물고 가실 예정이십니까?”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들러야 할 문파가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안내할 다른 제자를 대기시켜 놓을 테니, 편하게 대화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청정과 청미는 그들을 두고서 어디론가 이동했다.
“나 혼자 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릴래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네. 저기서 기다릴게요.”
류이영이 큰 나무 밑 그늘을 가리켰다.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각으로 들어섰다.
장문인이 사용하는 전각이라고 하여 특별히 더 커다랗다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목조건물이지만,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끼이익-
낡은 문이 열리자, 안에는 특별한 장식도 없는 고즈넉한 방이 나타났다.
하현은 예전에 가보았던 소림 방장의 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욕을 초월한 사람의 방은 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방 중앙에 있는 탁자에 앉아 있는 한 초로의 노인.
‘굉장한…… 고수다.’
하현은 겨우 방에 한 발자국을 들여 넣었을 뿐인데, 그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에 다음 발을 쉬이 넣지 못했다.
노인이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곳에 가만히 있을 뿐인데도, 그 존재감은 엄청났다.
‘하지만…….’
저벅-
하현은 그 힘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걸음을 걸었다.
대단한 기운이기는 하나, 하현은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무당의 장문인이 대단하고는 하지만, 할아버지나 사부님보다는 아니야.’
강함은 상대적이다.
검존, 취월걸개, 도제, 주원대사 등등……. 무림의 초고수들에 비하면 무당의 장문인은 한 수 아래라고 할 수 있다.
“호오……?”
장문인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하현이 정말 담담하게 그의 기백을 담당하는 모습에 흥미가 인 것 같았다.
척-
하현은 정중하게 포권하며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남궁세가에서 온 남궁하현입니다. 가주님께서 전해드리는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야기는 대강 들었네. 검존 어르신의 서신을 직접 가지고 왔다면……. 자네가 그 검존 어르신의 외손자인가?”
“맞습니다. 저를 알고 계시는군요.”
“사질들이 자네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 특히 현암이 말이야. 내가 저 먹으라고 준 미청단까지 뺏겼다면서.”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하현은 순간 곤란한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검룡 소협은 어디에까지 이야기한 거야.’
무당에 와서 많은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자신을 알고 있었다.
상대는 나를 알지만, 나는 모른다는 것이 은근히 부담을 주었다.
‘민이 형님은 얼마나 부담감이 클까?’
하현은 문득 남궁민이 떠올랐다.
청룡신검이라는 별호는 무림인들뿐만 아니라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도 모두 알고 있는 별호다.
어딜 가든지 사람들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울지 상상도 잘 가지 않았다.
하현은 남궁민과 비슷한 성격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존 어르신께서 보내셨다는 서신을 볼 수 있을까?”
“아!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여기 있습니다.”
하현은 서신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금방 서신을 읽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만……. 내 생각에 이 서신은 결국 유엽 사숙과 청명 사형에게 와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맞는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많은 고수분들을 요청하신 게 아니라, 한두 분 정도의 초고수를 요청하셨습니다.”
“흠, 그러면 곤란하겠는데?”
“아, 그렇습니까?”
하현은 이렇게 단박에 거절당하리라는 것을 생각 못했기에 조금은 당황했다.
장문인은 그런 하현이 귀여웠는지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히려 사숙은 쉬운데, 사형이 문제지.”
“검성님 말입니까?”
“그래. 사형은 원체 사문 밖으로 나가는 걸 싫어하셔서 말이야. 아! 자네가 혹시 직접 설득해 보겠나?”
“제가요?”
“그래. 내가 가라고 하면 절대 들어먹질 않을 사람이야. 하지만 자네가 가면 또 다를 수도 있지.”
하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문파의 장문인께서 말해도 듣지 않는 것을 외부인인 제가 말하면 들으실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렇네. 사형은……. 조금 특이하신 분이거든.”
“어떤 점이 특이한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장문인의 표정이 조금 딱딱해졌다.
얼굴에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뜨려고 하여 겨우 참아내는 것으로 보였다.
“흠흠. 그러니까. 사형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면 결코 움직이지 않으시려 한다네. 사실 우리같은 도문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이시지.”
“재미……. 말입니까?”
“그래. 그래서 그런지 사형의 제자들도 다 성향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
하현은 순간적으로 현무도장이 떠올랐다.
객잔에서 도관을 쓰고서 당당하게 고기와 술을 요구하던 그 모습이.
그리고, 검룡 현암도장도 사실은 그렇게 전형적인 도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 만나 보겠나?”
“좋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분께서 흥미를 느끼실까요?”
하현은 진지하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서신만 전달하라 했지만, 최대한 검성이 할아버지의 제안을 수락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장문인은 갑자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 자체가 바로 흥미 덩어리일 터이니.”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곧바로 방문으로 향했다.
하현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 장문 사숙. 벌써 나오신 겁니까? 하현. 오랜만이다.”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검룡 소협. 오랜만입니다.”
“무당에 올 거면 나한테 먼저 연락을 줬어야지. 이것 참 서운하네.”
그는 얼마 전까지 제갈세가에서 함께했던 검룡 현암도장이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전혀 서운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일면식이 있던 운후, 진유강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현암. 손님 앞에서 체통을 지키라 몇 번을 말하였느냐.”
“장문 사숙.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는 이미 제 본모습을 들켰습니다. 오늘만 봐주시죠.”
장문인은 골이 아픈 듯 고개를 젓더니 하현에게 말했다.
“사형에게는 내가 직접 가려 했는데 마침 요 녀석이 나왔으니, 현암을 따라가서 직접 설명하시는 게 나을 것 같네.”
“그래도 장문인께서 직접 가주시는 게 조금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했지 않나? 사형은 자기 재미만을 위해서 움직인다고. 내 말뿐만 아니라, 사형의 스승이신 유엽 사숙의 말도 그대로 듣지 않는 게 바로 청명 사형이네. 내가 가든 안 가든 중요한 건 자네가 그분을 얼마나 재밌게 해주냐일 것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얘기를 잘해 보겠습니다.”
“그래. 나는 다시 저기에 들어가 있을 터이니, 무당을 떠날 때 한 번 더 들러 주게나.”
“네. 장문인.”
장문인은 검룡에게 하현의 일행을 검성에게까지 잘 모시라며 사정을 설명하고는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그 모습을 보던 검룡이 하현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장문 사숙에게는 우리 사형제가 골칫덩어리일 것이야. 저리 행동하시는 것을 이해해 주게.”
“어째서 골칫덩어리라고 하시는 거예요?”
“뭐. 뻔하지. 말도 잘 안 듣고, 규율은 잘 지키지도 않고……. 말하자면 길지만, 일단은 따라오게. 내 사부님께 데려다주지.”
그는 하현을 데리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현은 그 와중에도 은근히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검성이라니. 얼마나 검을 잘 써야 그런 별호를 얻을 수 있는 걸까?’
그의 제자도 후기지수 중에서 검을 제일 잘 다룬다는 검룡이다.
그러니 검성이 얼마나 대단할지에 대한 궁금증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커졌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