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하현 일행이 양손에 미청단을 하나씩 받아들고 나서 장문인에게 인사하고 무당산을 떠났다.
그들이 돌아가는 것을 몸소 배웅해 준 검성은 곧바로 그의 거처로 돌아가지 않고 장문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장문인.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사형.”
얼핏 봤을 때, 둘의 모습은 굉장히 어색했다.
무당파 장문인의 외견은 초로의 노인이고, 검성은 이제 갓 중년이 된 듯한 얼굴이다.
하지만 검성은 장문인보다 항렬도 더 높고, 나이도 많았다.
웅혼한 내력이 노화를 막은 것이다.
“사형도 남궁세가에 가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장문인. 하현이에게 너무나도 큰 은혜를 입었기에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군요.”
검성은 저보다 항렬이 낮은 사제에게 장문인의 예를 다했다.
조금 전 검룡과 투닥거리던 것과는 새삼 달라 보이는 점잖은 모습이었다.
“그 아이에게 흥미가 돋으셨나 봅니다?”
“흥미. 흥미라……. 그렇군요. 결국 또 저는 저 재밌는 걸 좇나 봅니다. 허허허.”
검성은 기분 좋게 웃었다.
장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평생을 저리 살아온 그의 사형이다.
“그나저나 운명이란 게 참 얄궂군요. 사형이 태극혜검을 복원하려는 그 이유가 검존 어르신 때문인데, 그분의 손자에게 이런 도움을 받다니요.”
“하하……. 그리되는군요.”
검성 청명진인.
그는 별호대로 검의 별이 떴다고 할 정도로 불세출의 기재로 불렸었다.
정마대전에서 크게 이름을 떨치며 호북제일검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던 그였지만, 정마대전 직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일이 생기게 된다.
‘그때 사형께서 검존 어르신과 대동하지 마셨어야 했어.’
정마대전이 끝나고 그 잔당을 처리할 때, 그는 검존 남궁무룡과 동행하며 그의 옆에서 검존의 무공과 내력을 엿보았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벽을 마주했다.
결코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검존이라는 거대한 벽을.
검성이 실전된 무당파 최강의 검법인 태극혜검에 집착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태극혜검만 익힐 수 있다면 그도 검존만큼…… 아니, 검존보다 더 강한 검객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아니라 사형께서 장문인이 되셨을 것을…….’
그는 안타까운 눈으로 검성을 바라보았다.
물론, 구파일방에서도 수장 격인 무당파의 장문인인 그가 약하다는 것을 결코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사형보다는 아니었다.
가장 강한 자가 장문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한 무당을 위해서는 강한 지도자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형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태극혜검의 복원은 계속 진행하셔도 좋으니, 이제 무당파 장문인의 자리는 사형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장문인.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검성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이전까지는 따스한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 어우러져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것 같다.
“사형…….”
“저는 이미 무당을 한 번 저버린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어찌 무당의 얼굴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버리셨다니요. 사형은 무당을 저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제가 산에서 두문불출한 근 삼십 년. 그 시간 동안 저는 문파의 일, 무림의 일은 등한시하며 살았습니다. 오직 그 태극혜검 하나에 매달려서.”
그는 잠시 깊은숨을 내쉬며 감정을 추스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당에서 무력이 필요할 때마다 제가 아니라 사부님이 나서셨죠. 진작 은거하셔서 자연을 즐기셔야 할 분이 말입니다.”
“유엽 사숙께서 전부 이해하신 일이 아닙니까?”
“그렇죠. 사부님은 이런 못난 제자를 왜 이해해 주셔서…….”
장문인은 잠자코 검성의 감정이 숨죽기를 기다렸다.
세상 그 누구도 모르고, 오로지 그만이 알고 있는 검성의 심정이었다.
최근에는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감정을 내비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의 그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남궁하현을 잠깐 만난 그 영향이다. 보통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늘.’
장문인은 냉정하게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짐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하현과 검성의 만남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장문인은 검성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장문인. 내 막상 그 실마리를 찾고 나니, 내가 왜 그렇게까지 집착해야 했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집착을 조금 내려놓으려 합니다.”
“사형. 그 말씀은……?!”
“태극혜검의 복원은 제 평생의 숙원이지만, 이렇게 무당파 안에만 갇혀서 무언가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나이를 먹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다시 강호출도를 해볼까 합니다.”
“사형!”
장문인은 자리에서 그만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남궁세가 행은 나, 검성이 다시 무림에 나서는 그 시작점이 될 겁니다.”
검성은 담담한 어조로 그의 복귀를 선언했다.
하현과의 만남은 생각지도 못한 큰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무당파의 중요한 재능이기도 했지만, 무림 전체의 관점으로 봐도 존재감이 큰 무인이다.
그의 나이가 예순이 갓 넘었다고는 하지만, 무인으로서 그 나이는 아직 한창이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검존 어르신의 말대로 신강양가와 큰 싸움을 앞두고서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제 마지막 싸움도 마교였는데, 그 복귀도 마교로군요.”
그는 말하고서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무량수불…….”
장문인은 복잡한 마음에 도호를 외었다.
사형이 다시 무림에 나서는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진득한 혈향이 풍겨오는 것 같았다.
* * *
“그런데, 검룡 소협은 어째서 따라오신 거예요?”
“따라간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나? 배웅해주는 것이지.”
“배웅이라기엔 너무 멀리 나오시지 않았어요?”
“뭐……. 이 정도는 우리 무당파에서는 앞마당으로 친다네.”
검룡의 너스레에 하현은 결국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말을 몰고서 호북성과 섬서성의 경계까지 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섬서에 가게 되면 화산부터 갈 생각인가? 아니면 종남부터?”
“아마도 종남부터 가게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지도상 거리가 그곳이 더 가까우니까요.”
“종남에 간다면 운명학이라는 자를 찾아가게.”
“운명학? 그게 누구입니까?”
“종남 최고의 재능이라 일컬어지는 후기지수지. 용봉지회에 단골손님이기도 하고. 명학도 검을 쓰는데, 나에게 밀려 검룡이라는 별호는 얻지 못했지만, 내 무공 실력에 버금가는 자이니 만나봐도 좋을 거야.”
검룡은 하현에게 친우를 소개해 주는듯한 말투로 말했다.
“어쩐지 그분을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하하! 역시 눈치가 빠르군.”
그는 은근한 눈빛으로 하현을 본 뒤에 말을 이었다.
“자네는 여러 무공에 관심이 많지 않나? 특히나 검에.”
“그렇죠.”
“운명학은 아주 특이하게도 검수이기는 하나, 중검(重劍)을 쓰는 자일세. 그러니 한 번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거지. 지금까지 중검을 쓰는 검수를 본 적이 있는가?”
“저희 작은 숙부님께서 중검을 쓰시긴 합니다만…….”
하지만 하현은 고개를 저었다.
남궁기현이 중검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중검이 아니었다.
보통의 남궁세가 무인들이 사용하는 검법을 단지 엄청난 근력과 내력을 사용해 크고 무거운 검을 사용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대단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의 중검은 아니다.
“중검법은 모르실 겁니다. 저희 가문에는 중검을 다루는 검법이 없거든요.”
“아하! 태백검 남궁기현님을 말하는 것이군.”
“저희 숙부님을 아십니까?”
“그럼. 알다마다! 무림맹에서 가장 많은 임무를 수행하신 분이기도 하고, 그분의 형님이신 뇌전검 남궁기철님과 함께 검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 어지간한 문파의 수장들에게도 힘이 밀리지 않을 정도라는데……. 왜 내가 자네한테 설명을 하고 있는 거지? 자네 숙부님들 아닌가?”
“아……. 그렇죠.”
하현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무림의 사정에 그리 밝지 못해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족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으면 안 되지.”
“이번에 집에 돌아가면 꼭 물어봐야겠네요.”
“꼭 그러도록 하게.”
검룡은 하현이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그 뒤로도 한참을 말을 몰아 나아가던 와중 검룡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난 여기까지만 가야 할 것 같군. 여기보다 더 가면 돌아가기 전에 해가 져버릴 것 같아서 말이야.”
“여기까지 와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자네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랬던 것을.”
그는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하현에게 건넸다.
“소협. 이게 뭐에……헛?”
검룡이 내민 것을 확인한 하현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동그랗고 작으며 상쾌한 향을 풍기는 이것은…….
“미청단 아니에요?”
“쉿! 혹시 모르니 큰 소리 내지 말게.”
“여기서 누가 듣는다고 그러세요?”
“우리 사부님이 아주 혹시라도 쫓아왔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이건 미청단이 아니네.”
“미청단이 아니라고요?”
하현은 손바닥 위의 단약을 유심히 살피다가 그의 품에서 아까 받은 미청단을 꺼내 같이 올려보았다.
두 개를 바로 옆에 두고 비교해 보자 조금은 차이점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미청단보다 크기도 조금 더 크고, 색깔도 더 거무튀튀한 것 같은데요?”
“그래. 이건 중청단(中淸團)이라고 하는 것이네.”
“중청단이요? 그런 건 처음 들어보는데.”
“그럴 만도 하지. 중청단은 미청단을 만들어내기 전에 시범적으로 만들어 본 것이니.”
하현은 중청단을 유심히 보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아하. 미청단이 태청단을 많이는 만들 수 없기에 소림사의 소환단같은 개념으로 만든 거라고 들었어요. 지금의 미청단이 완성되기 전에 원래는 중청단 크기로 만들려다가 이것마저도 만들기가 너무 힘들어서 더 축소화시킨 게 미청단인가요?”
“하하하! 역시. 더는 설명이 필요 없군.”
“그러면 혹시 이렇게 멀리까지 나오신 이유도……?”
“뻔하지 않은가. 아무리 사부님이라고 해도, 고이 숨겨둔 중청단까지 내가 빼돌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혼쭐이 날 걸세.”
하현은 의기양양한 현암도장의 표정을 보며 어이가 없었지만, 재빠르게 중청단을 챙겨넣었다.
“어쨌든, 일단 주신 것이니 잘 받겠습니다. 감사해요.”
“그래. 잘 받아주어 고맙네. 이제 정말로 가 봐야겠네.”
그는 이제 하고자 했던 일을 다 했는지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나중에 또 놀러 오시게나!”
“네. 다음번에는 정말 놀러 갈게요.”
하현의 대답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말을 몰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현은 그가 준 중청단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째서인지 그 단약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 이제 우리도 움직이죠. 조금만 더 가면 섬서성입니다. 성의 경계를 넘어 그곳에서 쉬어가도록 하죠.”
“네. 도련님.”
“그래요.”
“대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소.”
그때 진유강이 하현에게 궁금한 게 있는지 입을 열었다.
“뭔데?”
“우리도 미청단을 하나씩 받았는데, 언제 먹으면 되는 건지 궁금해서 말이오.”
그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묻어나왔다.
하현은 흘긋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운후와 류이영마저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다들 평생 영약이라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기에 미청단의 효능이 얼마나 좋을지 궁금한 것이다.
“오늘 밤. 객잔에서 먹으면 될 거 같아.”
“어차피 오늘 밤에 먹을 거면 지금 먹으면 안 되오?”
“기운을 온전히 흡수하려면 가부좌를 틀고 흡수하면서 미청단의 기운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도와주는 편이 좋거든.”
하현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청단의 기운을 정말 잘 알고 있지.”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