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성서성에 진입한 하현 일행은 종남산으로 가기 전 적당한 객잔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객잔에서 가장 커다란 방을 빌린 하현은 운후와 진유강을 나란히 앉혔다.
“이영 소저는 조금 이따가 따로 봐 드릴게요. 제가 손이 두 개라.”
하현이 농담조로 말하자, 류이영이 대답했다.
“제가 이걸 정말 받아도 될까요? 저는 무당에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럼요. 당연히 받아도 되죠. 검룡 소협께서 소저께 드린 거잖아요.”
“그러면 제가 먹는 게 아니라 대사형을 가져다주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영단이니 상처 회복에 정말 좋을 것 같은데…….”
하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이건 소저의 것이에요. 미청단이 회복에도 좋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평경 소협은 지금도 회복을 잘하고 있잖아요. 자기 생각부터 하시면 좋겠어요.”
“아……. 알겠어요.”
단호한 말투에 류이영은 그냥 수긍해 버리고 말았다.
하현은 류이영의 어깨를 툭 두드려 준 후에 운후와 진유강에게 말했다.
“두 분 동시에 입으로 넣으시는 거예요. 저번에 제가 먹어봤을 때는 물처럼 흩어져서 바로 몸으로 흡수되었거든요. 그러니까 고개를 똑바로 숙이시고요.”
운후는 빨리 연단을 흡수하고 싶었는지, 하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으로 미청단을 가져다 넣었다.
하현의 말대로 스르륵 단약이 녹으며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갔다.
‘상쾌하다.’
미청단은 어제까지만 해도 실컷 보았던 무당산에서 느껴지는 그 상쾌함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비록 태청단에는 미치지도 못할 미청단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꿀꺽-
이에 질세라 진유강도 영단을 삼키자, 하현이 양손으로 그들의 명문혈에 손을 대면서 말했다.
“자. 이제 천천히 기운을 돌리세요. 일단은 특별히 무언가를 하실 필요는 없어요. 평소에 일주천 하듯이 기운을 돌리시면 됩니다. 대답하실 필요는 없어요. 입을 열면 안 됩니다.”
우우웅-
그들 둘은 하현의 말처럼 대답 대신에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평안한 표정이었다.
애초에 미청단의 기운이 정순한 것도 있지만, 하현이 일주천에 맞추어 미청단의 기운을 적절히 움직여주었기 때문이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데?’
하지만 자신 있게 앉았던 하현은 고전하고 있었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하현의 등허리에서는 땀이 주륵 흐를 정도였다.
‘둘이 기운을 돌리는 속도를 같게 맞추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각자 기운의 양이 다르고, 일주천하는 시간이 모두 다르다.
하현이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인위적으로 자신의 통제할 수 있는 속도로 맞추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현이 유도하는 기운 정도로는 일주천 속도를 막아낼 수 없었다.
콸콸 흐르는 강물을 겨우 시냇물로 흐르는 속도를 통제하려 한 격이었다.
‘내 속도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두 명의 속도를 각자 맞춰야 해.’
하현은 진땀을 빼면서도 집중력을 최고조로 올렸다.
한 사람의 기운의 속도에 맞춰 그 흐름을 보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두 명이 되니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예를 들어서 사람에게 왼쪽을 보면서 오른쪽을 같이 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위이잉-
그때 하현은 백회혈이 점점 뜨거워지며 무언가 회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가 뜨거워지면 뜨거워질수록 양쪽의 기운을 통제하는 것에 점점 수월해짐을 느꼈다.
‘좋아. 이대로라면 할 수 있어.’
하현은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기운에 힘을 실었다.
운후와 진유강은 하현에게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기고 무아의 지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여기서 하현이 조금이라도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내부가 진탕되어 즉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건만, 그들은 생명을 하현에게 내건 듯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운후 아저씨는 이럴 줄 알았지만, 진유강은 조금 의외네.’
하현은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기운을 움직였다.
우우우웅-
운후와 진유강 주변을 맴돌던 기운들은 조금 더 커다란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미청단의 기운을 제대로 흡수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생각보다 잘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더 그들의 기운을 돌리는 것을 도와주었을까? 하현은 슬그머니 손을 떼며 뒤로 빠져나왔다.
감았던 눈을 뜬 하현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그의 머리를 만져보는 것이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불이 붙어 고통까지 느껴졌었건만, 그의 머리는 평온한 것을 넘어서 차갑기까지 했다.
“후우-.”
하현은 깊게 심호흡하며 운후와 진유강을 보았다.
그들은 이미 흐름을 탔는지 무아의 지경에 빠져 열심히 일주천하며 미청단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류이영을 돌아보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 소협 지금 두 분을 동시에……?”
“네. 생각보다 너무 힘드네요. 큰일 날 뻔했어요.”
하현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게 가능한 거예요?”
“될 것 같아서 해봤는데 되더라고요.”
류이영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하는 하현이 어이없었는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고, 무림에 경험이 많지도 않지만, 이런 게 가능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아! 무당의 양의신공(兩儀神功)을 익히면 두 가지 심법을 동시에 배울 수 있고, 또 동시에 펼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럼요. 제가 무당의 심법을 어떻게 알고 있겠어요.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전혀 아니에요. 인제 그만 말씀하시고 소저도 빨리 여기 앉으세요.”
“하……. 알겠어요.”
류이영은 이내 이해를 포기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하고는 하현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하현이 자기 입으로 그냥 했다는데 거기서 무엇을 더 물어보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하긴 검흔만 보고서 태극혜검의 구결을 만들어낸 사람한테 겨우 이정도 가지고…….’
류이영은 그냥 이렇게 스스로 납득 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그녀의 사고 흐름이, 평소 하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현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은 모르는 채로 말이다.
‘양의신공을 익히면 두 가지 심법을 동시에 배운다고? 내가 지금 익히고 있는 심법이 몇 개지?’
하현은 가만히 속으로 헤아리다가 그냥 생각하기를 그만둬버렸다.
어차피 얼마 전에 창궁대연신공 하나로 통일해 버린 뒤로는 하나의 심법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여기 두 명 하는 거 보셨죠? 똑같이 하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미청단을 흡수했다.
하현은 이번에도 그녀의 명문혈에 손을 대고서 기운의 흐름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아에 빠져 스스로 일주천을 하며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무렵, 하현은 슬그머니 손을 떼고 방을 나왔다.
* * *
그들이 미청단을 흡수하고 나서 이틀 후.
하현 일행은 비로소 종남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종남산 역시 무당산처럼 어느 구간부터는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없었기에, 그들은 마지막에 머물렀던 객잔에 말을 메어놓고 신법을 펼쳐 종남산으로 왔다.
“후후. 대장. 영약이란 게 원래 이렇게 좋은 거였소?”
“왜. 몸이 막 가벼워?”
“대장도 드셔 보셨다면서 아실 것 아니오? 내공이 이렇게 쌓기가 쉬운 거였나 싶은 마음도 들 정도요.”
하현은 혀를 차며 진유강의 옆에 있던 운후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도 진유강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하현과 눈이 마주치자 조금 몸을 움찔했다.
그 모습에 하현은 조금은 냉정한 어투로 진유강에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약에 의존하는 건 좋지 않아. 일단 영약이라는 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기도 하고,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미청단 정도로는 내공의 증진이 느껴지지도 않거든.”
“그렇단 말이오?”
“그래. 내가 직접 느껴봤으니 확실해.”
하현은 일전에 검룡과 대련해서 얻은 미청단을 섭취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하현의 내상이 심각해서 미청단으로 내상을 치유하려는 목적에 섭취하기는 했지만, 내공의 증진은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만, 상단전의 기운이 쌓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야기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아직 상단전을 느끼지도 못한 이들에게 상단전의 존재 자체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
“이런. 결국은 내가 노력해서 내공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군.”
“그렇지. 시간과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애늙은이 같은 하현의 말에 진유강이 예이- 하며 대답했다.
종남산은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 엄청나게 넓은 산이었다.
산길을 걸어 올라가던 도중, 운후가 산 아랫마을에서 사 온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종남산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넓군요. 종남산이 아니라, 종남산맥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요? 얼마나 큰데요?”
“관중, 한중 사이로 오백 리에 달합니다. 동쪽 끝은 하남성에 있을 정도입니다.”
“와. 그래요? 어쩌면……. 잠시만요.”
하현은 그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에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고 위로 순식간에 올라갔다.
그 위에서 산을 훑어보던 하현은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도련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저희 집, 그러니까 신가장이 멸문했을 때, 사람들을 마주치는 게 두려워 산길을 통해서 하남성까지 넘어갔거든요. 이제 보니까 그 산길이 종남산이었던 것 같아서요.”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현이 싱긋 웃었다.
“그러게요. 인연이라 하면 인연일 수 있겠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 하현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얼굴 표정에 생채기 같은 것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방향으로 똑바로 올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운후를 따라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자, 조금씩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구조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올라가고, 종남파의 현판이 걸린 대문이 나타났다.
다행히 무당파와는 다르게 대문을 지키는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현을 발견하자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종남파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남궁세가의 남궁하현입니다. 종남파의 장문인께 검존 어르신의 서신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하현은 말하며 남궁세가 정예대원의 표식을 그들에게 보였다.
표식을 한눈에 알아본 그들은 하현을 안으로 들이며 말했다.
“지금 당장은 장문인을 만나 뵙기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소. 많이 기다리셔야 할 거요.”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오늘은 이대 제자 중에서 으뜸을 가려 장문인의 제자가 될 자를 뽑는 날이라오. 아마 며칠은 더 걸릴 것이오.”
“그렇군요. 그래도 사안이 급한 일이니, 장문인께 전갈을 넣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말은 해보겠지만……. 장문제자를 뽑는 일은 문파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라 어떻게 나오실지는 모르겠소.”
“말씀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현이 공손하게 포권했다.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문을 지키던 무사는 하현과 그 일행을 손님들이 머무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장문제자를 뽑는 행사는 이 주변에서는 꽤 큰 행사이기에 관람을 온 손님들이 꽤 있소. 다들 주변 문파에서 온 사람들이라오. 일단 나는 다시 문으로 돌아가야 하니, 이 전각에서 잠시 기다리시오. 사람을 불러 줄 터이니.”
“감사합니다.”
하현의 인사를 받은 그가 다시 문으로 돌아가고, 하현 일행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행사를 할 때만 개방한다는 종남파의 문중은 마치 저잣거리 같았다.
주변에 몰려 있는 많은 인파를 보며, 진유강이 투덜거렸다.
“화산파부터 갔어야 했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미 올라온 걸 어쩌겠어. 지금까지 쉬지 않고 움직인 덕분에 며칠 여유가 생겼으니, 그 여유를 여기서 즐기는 건 어때?”
하현의 대답에 진유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니, 지금 대장 입에서 여유를 즐기자는 말이 나온 것이오? 내가 잘못 들었나?”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그거야 임무광에 무공광…….”
“진유강…….”
“크흠흠.”
진유강이 모르는 척 하현의 눈을 피하는 걸 보자 피식 웃음이 난 하현은 그들에게 말했다.
“일단은 저쪽으로 가 볼까? 아마도 비무로 장문 제자를 결정하는 것 같은데, 그런 좋은 구경을 안 할 순 없잖아?”
안도의 한숨을 쉰 진유강은 잠자코 하현의 뒤를 따라갔다.
‘대장은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종남파의 무공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라는 게 있는 진유강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