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파캉-!
두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튄다.
이대 제자라고는 했지만, 이미 종남파에 몸을 담고 열다섯 해 이상은 수련한 자들이다.
구파일방에서 이 정도를 수련한 무인은 이미 초인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와아-! 주청천 힘내라! 네가 장문인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이 사람아. 주청천도 뛰어나지만, 단연코 이대 제자 중에서 가장 강한 건 유학림이라네. 장문 제자는 유학림의 차지라네.”
“뭘 모르는 소리! 주청천이 최고라네!”
그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비무를 보며 응원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까 문을 지키던 무인에게 이야기 들었던 것처럼 주변 문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종남파의 무복을 입고 있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와, 구경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네요. 아까 그분께서 종남파의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라고 하셨던 게 이해가 가요.”
“남궁세가에 청룡관 입관 시험이 있다면, 종남에는 장문제자 선별전이다 이 말이로군.”
류이영이 동그래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진유강이 대답했다.
운후가 진유강을 보며 물었다.
“유강. 공동파에는 이런 행사가 없는가?”
“왜 없겠소? 공동파에도 이렇게 큰 행사가 있다오.”
비무에 집중하려던 하현도 흥미가 가는지 진유강에게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무슨 행사인데?”
“십응검객(十鷹劍客)을 뽑는 행사요. 이렇게 공개비무를 통해서 뽑지는 않고, 선별을 위한 특별한 기관진식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십응검객?”
“공동파에서는 당대에 가장 강한 열 명을 꼽아 십응검객이라고 한다오. 십응검객 중 한 명이 만약 죽거나, 나이가 많아 은거에 들어가면 새로 한 명을 뽑아 다시 열 명을 채우고 하는 식으로 유지되고 있소.”
운후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계속 공동파에 있었다면 그 십응검객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하하! 나한테는 어림도 없소. 십응검객이 되기 위해서는 유사(柳思)라는 장인이 만든 기관진식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기관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공이 엄청나게 강해야 한다오. 나 정도로는 도전 자격도 못 가질 것이오.”
“자네가 그리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 보는군.”
“겸손이라기보다는 사실 직시라고 생각해 주시오. 크크.”
진유강의 말이 끝나고,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비무장 쪽으로 향했다.
빠악-!
그때 비무를 하고 있던 한 명의 다리가 상대의 어깨를 강하게 강타했고, 몸이 휘청이는 사이 검을 휘둘렀다.
카앙!
어깨를 맞은 자는 겨우 검을 가져다 대기는 했지만, 그만 검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척-
그의 목에 검이 닿았고, 결국 그는 항복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졌습니다.”
“와아아-!”
“거봐. 내가 뭐라 그랬나? 주청천이 이길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하하!”
“이번에는 운이 없었네. 다음에도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네!”
“그게 중요한가? 이번 비무에서는 이겼다는 게 중요하지.”
장내의 사람들은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하현은 이런 분위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종남파는 본디 도가로 시작한 문파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속가로 돌아선 문파다.
그래서 곳곳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는 이번 비무 결과에 돈을 걸었는지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다음 비무는 운명학 차례이지 않나?”
“내가 듣기로는 그렇게 들었네.”
“에잉! 이번에는 안 걸겠네. 어차피 운명학이 이길 거라 돈을 걸어도 얼마 따지도 못할 건데 안 걸고 말지.”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운명학. 분명히 검룡 소협이 만나보라고 한 사람이었지.’
중검을 쓰는 자라는 것까지 상기한 하현은 비무를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하현 일행은 앞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이 막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쯤 사회를 보는 종남파의 무인이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다음 비무는 운명학과 석지승의 차례요. 둘은 위로 올라오시오!”
그의 목소리에 맞춰 두 명의 무인이 비무장 위로 올라섰다.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두 명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한 명은 하현의 숙부인 남궁기현을 절로 떠오르게 할 정도로 키도 크고 근육도 우락부락한 사내였고, 또 한 명은 얼핏 보면 여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가냘픈 몸을 가진 사내였다.
특히나 그는 긴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기까지 하였기에, 더욱 그렇게 보였다.
‘저쪽이 운명학인가?’
하현은 자연스럽게 덩치가 큰 쪽이 운명학이 아닌가 생각했다.
대검을 쓴다고 들었기에 하북팽가의 무인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을 몸집과 근육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
그런데 덩치가 큰 사내가 들고 있는 검은 대검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통 검보다도 조금 얇은 것 같은 세검 두 자루를 들고 올라갔다.
고개를 홱 돌려 반대쪽을 바라보니, 가냘픈 사내가 자신의 몸집만큼 거대한 검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그는 올라가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현은 순간적으로 귀에 내공을 담아 그곳에 청력을 집중했다.
“후……. 중검을 쓰질 말든가 해야지. 어디 다닐 때마다 무거워서 쓰겠나. 난 장문제자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지고 싶지는 않고.”
드르륵- 드르륵-
“이번 비무도 빨리 끝내야지. 들어가서 잘 거야.”
그 혼잣말을 똑똑히 들은 하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야기만 들어서는 전혀 무인다운 기백이나 정신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무인이 자신의 애인이나 다름없는 병기를 저토록 땅에 질질 끄는 모습에서도 하현은 실망감마저 들려 했다.
‘아니야. 검룡 소협이 그저 그런 무인한테 그런 호의를 보낼 리 없어. 주변의 사람들도 당연히 운명학이 이길 것으로 예상하고……. 잠자코 지켜보자.’
하현은 속으로 생각하며 비무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사형. 오늘에야말로 내가 이겨 드리겠습니다.”
“응. 제발 좀. 네가 날 이겨야 자꾸 어르신들이 나한테 기대를 안 하지.”
“그러면 나한테 져주면 될 일 아닙니까?”
“그건 싫어. 그러니까 빨리 끝낼 거야.”
사회를 보는 무인이 시작을 외치고, 둘은 각자 병기를 들고 서로를 마주했다.
처억-!
운명학은 그의 사제 석지승을 향해 대검을 드리웠다.
‘재미있네.’
하현은 그 커다란 검을 너무나도 가볍게 들어 올리는 운명학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 그의 몸에서는 거대한 기파가 휘몰아치고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런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공을 끌어올리는 그것조차 귀찮은 것인지, 혹은 무공을 사용할 때만 기운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제약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파악-!
둘 중에 먼저 들어간 것은 운명학이었다.
그 커다란 대검이 혹시나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 정도로 가벼운 검법이다.
중검이라하면 묵직하고 파괴력이 높은 검법을 생각했건만, 그의 검법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중검을 무겁지 않게 다루는 기술이 있는거야. 사량발천근과는 또 다르다. 저게 종남의 무학인가?’
하현은 그 검법 자체에 흥미가 크게 일었다.
그의 흑룡검은 저런 대검에 비하면 결코 무겁지는 않을 것이나, 현철이 많이 섞여 있기에 보통의 검보다는 무겁다.
저 중검법의 비밀을 알 수 있다면 흑룡검을 더욱 수족처럼 다룰 수 있으리라.
까앙!
석지승은 두 개의 검을 앞으로 내밀며 운명학의 대검을 튕겨냈다.
발경의 묘리가 적절하게 사용된 방어법이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튕겨낸 힘을 이용하듯 그대로 빙글 돈 그는 운명학을 향해 검 하나를 내뻗었다.
쒜에엑-!
“엇?!”
그의 사제가 이렇게 나올 줄 생각지 못한 까닭일까? 운명학의 얼굴에 일순 당혹이 물든다.
휙-! 휙- 화악!
그런 와중에도 그는 검을 잘도 피해냈다.
찔러오는 검의 궤적을 따라 정확하게 몸을 움직인 그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 버렸다.
“아니, 사제.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어?”
“사형이 매일 서까래에 올라가 수련 시간에 몰래 잘 때입니다.”
“하긴, 사제는 언제나 성실하니까.”
운명학이 빙긋 미소 지었다.
그는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는 듯, 대검을 위로 치켜들면서 다시 석지승에게 달려들었다.
머리 뒤로 젖혀진 검과 그의 몸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콰앙-!
석지승은 결코 무리하는 바가 없었다.
이번에는 두 개의 검을 교차하여 운명학의 검을 막아섰다.
둘의 검이 부딪힐 때마다 비무장이 들썩이는 듯했다.
“…….”
그 말 많고 시끄럽던 무인들이 몇 번의 경합만에 모든 시선을 빼앗겨 장내가 조용해졌다.
조용한 와중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만 연거푸 울렸다.
‘어째서 종남이 도가에서 속가로 전향했는지 알 것 같아.’
하현은 그들의 무공이 굉장히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속속들이 느껴졌다.
‘무공의 근간은 상단전을 이용하는 무공으로 시작한 것 같은데, 지금 운용방식을 보면 중후한 내공을 바탕으로 무공을 이용해.’
대검을 쓰는 운명학, 세검을 쓰는 석지승.
둘 다 쓰는 병기도 다르고, 검법도 달랐지만, 그 근간은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하현이었다.
쿠웅- 콰앙-!
하현이 생각하고 있는 사이, 비무장 위의 싸움은 점점 절정으로 치달았다.
“둘이 원래 저렇게 호각이었나?”
“석지승이 이를 갈고 나왔어. 자나 깨나 항상 연무장에 있더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지!”
일반 무인들뿐만 아니라, 종남파의 수뇌부 역시 이 비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특히나 가장 상석에 앉은 사내는 가슴께까지 내려온 수염을 쓰다듬으며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장문인, 이번 이대 제자들은 출중한 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모두 자네들이 잘 가르친 덕분이지.”
“아닙니다. 운명학의 자질이 뛰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석지승은 의외로군요.”
종남파 장문인 종남일검(終南日劍) 설수황은 그의 수하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비무에 집중했다.
이 뒤로도 많은 비무가 남아있긴 하지만, 둘 중의 한 명이 그의 제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슈하악!
비무장 위의 운명학의 검에서 엄청난 경파가 쏟아진다.
그의 대검을 타고 내려오는 검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힘이었다.
운명학은 중검의 묘리를 제대로 이해한 무인이었다.
중검의 무게와 그에 맞는 검법을 제대로 사용하며 석지승을 휘몰아쳤다.
까앙-! 까앙-! 카가가각!
하지만, 석지승도 그에 굴하지 않았다.
쌍검으로 방어술을 펼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는 철저한 검술로 왼손과 오른손의 무게 배분을 정확하게 해내며 운명학의 검을 계속 막아내었다.
쿠웅- 쿠웅- 콰앙!!
그러면 그럴수록 운명학의 검에 담긴 힘은 점점 강해져 갔다.
“음……?”
종남파 장문인이 이상함을 느낀 것도 그때쯤이다.
그는 운명학의 공격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불안한 마음이 스쳐 갔다.
‘만약 저러다 검이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석지승의 방어검술은 정말 수준이 높다.
하지만, 두 자루의 얇은 검으로 저런 무거운 검을 막아내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대 제자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후기지수라고 할 수 있는 수준.
석지승이 언제까지 저런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쩌어억-!
순간, 그의 귀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운명학의 검을 받아내던 석지승의 검에 금이 가는 소리.
“헛?!”
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에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는 듯, 장로들마저 미동도 없다.
부웅-!
무엇보다 운명학의 검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 검이 휘둘러진다면 석지승의 검이 부러짐과 동시에 그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릴 것이다.
후욱- 쾅!!
설수황은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진기를 끌어올려 바닥을 박차고 비무장으로 쇄도했다.
그가 직접 운명학의 검을 막아설 생각이었다.
‘안돼. 늦었다!’
하지만, 그는 일순 낭패감을 맛보았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가 비무장과 너무 멀었던 까닭에 운명학의 검보다 그가 당도하는 것이 늦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운명학의 무공이 뛰어난 게 이럴 때는 또 엄청난 문제였다.
“그만-!!”
목소리에 내공을 잔뜩 담아 소리를 지르는 그때.
스팟- 까아앙!!
누군가 운명학과 석지승의 사이에 나타나 운명학의 검을 막아섰다.
그는 석지승처럼 쌍검을 들고 있었는데, 거무튀튀한 묵검은 운명학의 중검을 너무나도 가볍게 막아냈고, 붉은색의 검은 석지승의 쌍검을 둘 다 절묘하게 막아내었다.
“?!”
장내의 모두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갑자기 누군가 무대 위에 나타나 비무를 중지시켰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설수황 역시 엄청나게 놀랐으면서도 속으로는 안도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비무를 방해하여 죄송합니다.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하현입니다.”
“남궁세가?”
운명학과 석지승의 검이 완전히 멈춰 선 것을 확인한 하현이 태연하게 검 두 개를 하나는 등에, 하나는 허리에 다시 꽂아 넣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