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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69화 (269/304)

269화

비무 중에 갑자기 난입한 하현이었지만, 그 누구도 하현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현장에 있는 자 중 대부분이 무공을 익힌 무인이다.

운명학과 석지승이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종남파 장문인이 저토록 다급하게 소리까지 쳤는데 위험한 상황인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큰 사고가 날 뻔했는데, 자네가 막아주었군.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런데 남궁세가의 무인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지?”

종남파 장문인 설수황은 하현에게 ‘무인’이라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조금 전 하현의 움직임과 운명학의 검을 막아선 그 검술은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직 장문인께는 연락이 들어가지 않았나 보군요. 가주님의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검존 어르신의 서신을?”

그는 잠시 놀란 얼굴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은 잠시만 기다려 주겠나? 여기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물론입니다. 저쪽에 저희 일행이 있으니, 저기 가 있겠습니다.”

“알겠네.”

하현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그는 자신도 몹시나 놀랐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운명학에게 말했다.

“위험할 뻔했다. 너도 알지?”

“……알고 있습니다.”

운명학은 겨우 입을 뗐다.

자신이 사제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비무는 제가 졌습니다.”

“아닙니다! 이 비무에 승패를 가려야 한다면 진 것은 저입니다.”

석지승이었다.

그는 운명학과 설수황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비무 도중에 죽거나 다치는 일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 제가 죽었다 하더라도 그건 사형보다 제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겼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자리는 누가 더 강하다, 약하다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장문 제자에 어울리냐를 선별하는 자리야. 나는 솔직히 장문제자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이대 제자에서 가장 자질이 뛰어난 사형이 장문 제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웃긴 일 아닙니까?”

장문인을 사이에 두고도 두 젊은 무인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무인이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도 둘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둘 다 맞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작 장문인이 둘의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

원로원이라도 되지 않는 한 이 상황에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둘 다 그만해라.”

“…….”

결국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설수황이 그들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번 비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할 것이다. 다음 비무가 있으니 둘 다 장내를 정리하고 내려가거라.”

“알겠습니다.”

운명학과 석지승이 비무대를 내려가고 설수황 역시 내빈석으로 이동하고 나서 비무대회는 재개되었다.

장내의 사람들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금방 잊고, 다음 비무에 집중했다.

그들은 조금 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 일도 없긴 했다.

‘얼굴을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 이미 그 수준은 운명학을 아득히 뛰어넘은 정도다. 어쩌면 이미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비무를 지켜보는 설수황은 도무지 비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큰일을 치를 뻔한 문중의 제자들이 아니라, 그들 사이를 가로막은 하현에 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는 가만히 자신이 있는 곳과 하현이 있는 곳에서 비무장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어림짐작해 보았다.

분명히 하현이 있는 곳이 더 가깝기는 하지만,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그 말뜻은 둘 중의 하나다.

‘나보다 빠른 신법을 가졌거나, 나보다 눈썰미가 좋아서 일찍 출발한 것이야.’

솔직히 말해서 둘 중에 그 어떤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당당히 구파일방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종남파의 장문인.

그리고 하현은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너머를 생각했다.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르지.’

그는 호기심을 참아내기를 포기했다.

바로 옆자리에 있는 총관부의 유우승를 툭툭 치고는 말했다.

“나는 잠시 갈 곳이 있으니, 비무 대회는 자네가 잘 마무리 지어주게.”

“장문인?! 어디를 가신다는 겁니까?”

“중요한 일이 생겼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문인의 제자 될 아이를 뽑는 자리입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비무장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훌륭하게 자란 이대 제자들의 비무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어느새 비무장이 아닌 객석 어딘가로 향한다.

하현이 저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했던 바로 그곳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네. 그러니 이렇게 부탁하는 게 아니겠는가?”

“장문인…….”

결국 유우승은 알겠노라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저런 식으로 하는 말은 절대로 말릴 수 없다는 것은 그와 함께 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수도 없이 경험했다.

“다녀오십시오. 제가 누가 뛰어난지 확실히 봐 놓겠습니다.”

“고맙네.”

설수황은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하현이 앉아 있는 객석 주변으로 향해 하현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 지금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 네. 괜찮습니다.

- 이 뒤쪽으로 나오게.

- 알겠습니다.

하현은 곧바로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설수황의 앞에 도달했다.

“내 위치를 어떻게 알고 곧바로 전음으로 대답한 것이지? 그리고 여기에는 어떻게 곧바로 왔고?”

“장문인의 위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계시는 분 중에서 가장 강한 기파를 내뿜으시는 분을 찾으면 되니까요.”

“기감이 그토록 뛰어나다는 말인가?”

“남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입니다.”

하현은 겸손을 담아 이야기했지만, 설수황은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단하군. 따라오게.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 대화하기가 힘드니.”

“알겠습니다.”

그는 하현을 데리고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잠자코 그의 뒤를 따라가던 도중 설수황이 하현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보니까 일행이 있는 것 같던데, 말하지도 않고 이렇게 나를 따라와도 되는가?”

“혹시 몰라서 비무가 다 끝나도록 제가 오지 않으면 하인에게 부탁해 숙소를 알아놓으라 이야기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은 방법이군. 길이 엇갈려도 손님 숙소에서는 무조건 만나게 될 테니.”

사실은 종남파 정도의 크기라면 그 어느 곳에 있던지 찾아낼 자신이 있어서였다.

진유강과 운후의 기운은 이제 자다가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고, 류이영의 기운도 꽤나 익숙해졌다.

종남파가 생각보다는 넓은 면적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하현이 집중하여 기파를 느낀다면 그들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네. 그러니 편하게 시간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솔직히 며칠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먼저 저를 찾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현은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예의 바르고 공손한 태도로 설수황을 대했다.

설수황은 이런 하현의 속도 모르고, 속으로 명문가의 자제라 예의범절이 제대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로 가세나. 저 전각에는 내 응접실이 있는데 평소에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네.”

그를 따라서 응접실로 들어간 하현은 설수황이 앉으라고 내어준 의자에 앉았다.

“남궁세가에서는 무슨 일로 온 건가? 검존 어르신께서 보내신 서신이 있다고?”

“네. 여기 있습니다.”

하현은 품에서 서신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설수황은 그 서신을 금세 읽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검존님의 말씀은 사부님을 보내달라는 말이군.”

하현은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을 떠올렸다.

종남파의 전대 고수 중에 검에 특출난 고수가 있다고 하셨다.

그의 별호는 종남귀검(綜南鬼劍)이라 하셨던 것도 함께 말해 주셨었다.

“종남귀검 말씀이시군요.”

“맞네. 그런데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사부님이 은거에 들어가신 이후로 여기에 한 번도 들르시질 않아서 말이야. 종남산 어딘가에 은거하신 것은 확실한데, 종남산이 워낙 넓어야지.”

“무조건 모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여의찮으시면 어쩔 수 없죠.”

하현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고수가 한 명이라도 더 모이면 당연히 신강양가와의 싸움이 수월해질 것은 사실이나, 할아버지께서는 이 서신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오래 지체하면 화산파와 공동파에 가는 것도 그만큼 늦어지니까.’

장문인에게 서신을 건넨 순간 임무는 완수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하현이 종남파에 계속 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 내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려는 겐가?”

“네. 조금 전에 보신 서신을 전해야 할 문파가 아직도 여럿 남아있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면 잠시 나에게 시간을 줄 수 있겠나?”

하현은 물끄러미 설수황을 보았다.

자신의 제자를 뽑는 비무 대회를 끝까지 보지도 않고 하현을 따로 부른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였다.

“잠깐 대화라면 괜찮습니다.”

“나도 잠깐의 대화면 충분하다네.”

그는 하현에게 빙긋 웃어주고는 문밖의 하인을 불러 차를 두 잔 내오라 시켰다.

“자네의 무공은 남궁세가에서 배운 것인가?”

“그렇습니다.”

“스승을 여쭈어도 되겠는가? 내가 남궁세가에 아는 얼굴이 꽤 있거든.”

“저희 할아버지가 제 사부님이십니다.”

“그래? 검존 어르신께서 제자를 들이셨다는 소문은 몇 년 전에 들었는데, 그게 자네였군.”

그는 차가 나오기 전까지 하현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다.

도대체 왜 물어보는 건지 짐작이 가지는 않았지만, 알려줄 수 없는 내용들도 아니기에 하현은 모두 대답해 주었다.

“자네의 인성이나 예의범절 같은 것은 부모님께 배운 것인가?”

“제 양친은 수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 미안하네.”

때로는 너무나도 개인적인 것들을 물어오기도 하며 그들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슬슬 본론이 나올 때가 됐는데.’

차가 나오고, 하현이 잔을 반쯤 비웠을 때까지 의미 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고 있던 때, 설수황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예컨대, 지금 자네가 수련한 모든 것의 시발점이 모두 청룡각이라는 말이군?”

“네. 청룡각은 단순히 기초 무공만 수련하는 곳이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나 무도의 길 등 정신적인 가르침까지 내리는 곳입니다.”

“고맙네. 그 정도면 충분히 대답이 되었어.”

그는 기분 좋은 듯 빙긋 웃고는 하현에게 말했다.

“내 어떻게든 사부님을 남궁세가로 보내드리겠네. 그런데 나도 원하는 게 있어서 말이야.”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나는 종남파에도 청룡각과 비슷한 교육기관을 만들고 싶네. 자네가 곧바로 남궁세가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말인데…… 그 체계를 우리가 배울 수는 없는지 검존 어르신께 서신 한 통만 써줄 수 있겠나? 보내는 건 우리가 알아서 보냄세.”

설수황의 얼굴에는 간절함도 조금 깃들어 있었다.

“서신 하나면 되는 겁니까?”

“그렇지. 그 이후에 허락받고 못 받고는 우리 역량이라고 생각하겠네.”

하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먹과 종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현은 그가 바라는 대로 종남파에서 청룡각의 체계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서신을 적었다.

그가 서신을 다 써가고 있을 때쯤, 설수황이 은근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네.”

“무엇입니까?”

“자네가 보기에는 운명학과 석지승의 일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가?”

조금 전 둘의 비무는 제대로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 후처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보였다.

“저는 외부인일 뿐입니다.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만 들어볼 생각이니, 부담 없이 말해 주게.”

하현은 조금 생각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냉정하게 승, 패를 말하자면 대검을 쓰던 운명학 소협의 승리로 봐야겠죠. 망자는 절대 승자가 될 수 없으니까요.”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군.”

“다만, 저도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인가?”

“장문인은 꼭 무공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해야 하는 겁니까?”

“……?!”

설수황은 자신보다도 한참 어린 무인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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