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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70화 (270/304)

270화

하현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종남파에 오기 바로 직전 그가 거쳐 왔던 문파는 무당파다.

그가 만났던 무당파의 장문인과 검성이 준 인상은 너무나도 강했다.

‘무당의 장문인은 고강한 무공을 가지기는 했지만, 검성님보다는 약했어.’

무당파의 장문인에게 약하다는 수식어는 결코 어울리는 말이 아니지만, 강하고 약함은 상대적인 것이다.

검성에 비교한다면 그는 분명히 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강한 자가 문파를 이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설수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살아온 인생 자체가 하현보다 몇 배는 더 길다.

무림에 출도하여 무인으로 살아온 세월도 비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무시하고 넘어가도 되는 말이건만, 그는 이상하게 하현의 말이 신경 쓰였다.

“저는 문파를 잘 이끄는 재능과 무공을 익히는 재능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공을 익히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다른 일도 잘할 가능성이 크지만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제가 장문인 앞에서 잘난 듯 말하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하현은 저 스스로 부끄럽다고 말했지만, 설수황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무공에 관련해서라면 더더욱.

‘이 아이는 충분히 무공을 논할 수준이다.’

그는 하현의 무공을 아주 높게 치고 있었고, 실제로도 하현의 무공은 굉장히 뛰어난 수준이다.

지금 당장 맞붙으라면 하현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약관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다.

“무공을 익힌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엄청난 오성과 재능이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거기에 인내심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죠.”

“그래. 자네 말대로 그런 능력을 제일로 갖춘 자이기에 장문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무공을 익히는 재능만 있는 자는 장문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부족합니다.”

“장문인의 덕목……?”

그는 이쯤에서는 하현의 말을 끊으려다 참았다.

종남의 장문인이 된 지 열 해가 가까이 되어가는 그다.

그런 그도 아직 장문인이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는데, 새파랗게 어린 하현이 알은 채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희 조부님께서 언제나 해주시는 말이 있었습니다. 가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라고요.”

“흠, 흠. 검존 어르신의 말씀이었나?”

그는 하현의 말을 가로막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하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주란 모두를 사랑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요. 물론 장문인과 가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지고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이해……? 허허허…….”

설수황은 하현의 말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정말이지 무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였으니까.

그는 평생을 종남에서 살아오며, 종남의 장문인까지 지내고 있지만 저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 그게 맞지. 무공만 강하게 익힌 자는 그것을 익힐 수가 없겠지.”

“혹시 무당파의 장문인을 만나 보셨습니까?”

“무당파가 바로 그런 경우군. 저번 달에도 뵈었었는데, 생각도 하지 못했네.”

무당파의 장문인과, 그보다 더 유명한 그의 사형에 관한 이야기는 설수황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에, 하현은 따로 부연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제 생각입니다. 미천한 경험으로나마 여기저기서 느낀 점을 토대로 드린 말씀이니, 너무 중하게 듣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 아닐세.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는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오히려 아이의 순수함 덕분일까?

사랑이니, 이해니, 얼핏 들으면 낯간지러울 수도 있는 단어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들렸다.

“한 가지만 물어보지. 그러면 나는 종남을 사랑하는 것 같은가?”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 어떤 점에서?”

하현이 살풋 웃음지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 같은 어린애한테까지 종남의 미래를 의논하실 리가 없으니까요. 만약 장문인께서 종남파에, 종남파의 제자들에게 관심이 없으신 분이었다면 애초에 비무에 난입한 저를 힐난하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문중 제자의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내가 어찌 자네를 질책하겠는가?”

“이런 점이 장문인께서 종남을 사랑하고 계신 증거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하하하하!”

설수황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그는 대문파의 장문인으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그를 칭찬하는 말을 해왔고, 듣기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분 좋은 말은 또 처음이었다.

진심을 담은 웃음을 그친 그가 하현에게 말했다.

“고맙네. 그렇게 봐주어서.”

“저는 본 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하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고, 그 태도가 더더욱 하현이 예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네. 그럼 자네가 보기에는 석지승과 운명학 중에 누가 더 종남을 사랑하는 것 같던가?”

“이 질문이야말로 지금까지 제게 여쭤보신 질문 중에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째서?”

“저는 그들을 잘 모르니까요. 함께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고, 함께 생활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들의 마음을 알 수는 없는 법이지 않습니까?”

설수황은 속으로 감탄했다.

지금 말하는 하현에게서 수십 년은 수련한 도사나 승려 같은 고고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의 순수함과 절대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면모였지만, 하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남궁세가에서 인물이 났군.’

그는 속으로 앞으로도 계속 남궁세가와 잘 지내야겠다고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이것도 그냥 부담 없이 느낌만 말해 줄 수 있겠나? 대답하기 힘들면 안 해도 좋네.”

“느낌만이라면…….”

하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도 역시 운명학 소협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냉정하게 말해서 명학이는 지승이를 죽일 뻔하지 않았나?”

“그건 사고였습니다. 비무에 너무나도 몰입한 운명학 소협과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한 석지승 소협에게 일어난 불운한 사고. 제가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그런데 그 사고가 일어난 다음에 그 둘의 반응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둘 다 몹시도 놀랐던 게 아닌가?”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음에 할 말을 정리했다.

그 순간 하현은 둘의 의념을 읽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강한 감정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그에게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설수황에게 사람의 마음이 읽혔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 그 와중에 석지승 소협에게서는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이번에도 운명학 소협에게 졌다는 아쉬움, 이로써 장문인에는 한 발 더 멀어졌다는 아쉬움.”

“무인으로서 너무 당연하게 느끼는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운명학 소협은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명학이는 어땠기에?”

“미안함, 괴로움, 자책감이었습니다.”

“명학이가?”

설수황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평소에 무슨 일이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항상 귀찮아하던 운명학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사제를 끔찍이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신 때문에 종남파의 모든 이의 행사를 뺏을 뻔했다는 자책도 함께요.”

“허어…….”

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운명학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현의 말대로라면 그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 전 문파와 종남파의 무인을 사랑하는 자를 말할 때 석지승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자네는 그 짧은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았는가?”

“아, 그, 제가 그러니까, 원래 눈치가 조금 빠릅니다. 그리고 제가 앞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냥 제 느낌이라 말입니다.”

“그랬군. 어찌 됐든 고맙네.”

하현은 어째서인지 삐질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었다.

“자네 덕분에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네. 무언가 보답하고 싶은데.”

“제가 해드린 건 몇 마디 말씀을 드린 것밖에 없습니다.”

“그 말 몇 마디가, 앞으로 종남파가 나아갈 길에 큰 영향을 주었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하현에게 말했다.

“종남에 사흘만 더 머물러 주게. 내 사부님을 꼭 찾아낼 테니.”

“종남귀검님 말입니까?”

“그래. 자네도 어차피 사부님의 대답을 듣고 가는 것이 속 편하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죠?”

“그게 내가 주는 보답이네. 이 정도로 보답이 될지는 모르지만.”

하현이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일어나야겠네. 종남파 내에 어느 숙소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게. 찾아가는 것은 내가 찾아갈 터이니.”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보세나.”

하현은 설수황의 응접실에서 빠져나와 아직도 비무 대회가 한창인 비무장으로 향했다.

운후와 진유강의 기운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에 그들과 합류하여 비무를 마저 관람하고 하인에게 물어 적당한 전각에 자리를 잡았다.

* * *

설수황은 아주 화끈한 사내였다.

하현을 돌려보낸 즉시, 그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무인을 모았다.

“사부님을 찾는 것이다. 종남산 밖으로는 절대 나가시지 않을 양반이니, 종남산 안을 샅샅이 뒤져라.”

“존명!”

종남귀검을 찾으러 보낸 무인은 도합 오백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절정 고수라 할 수 있을 만한 무인이 백여 명에 달하였으니, 정마대전 이후로 가장 많은 병력을 동원한 임무였다.

하현은 숙소에서 수백의 인원이 종남파를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결국 자신을 도와주려 하는 것이니 잠자코 있었다.

“종남파 사람들이 원래 그런다오. 이 일대에서 가장 화끈한 사람들이지. 은원이 확실한 데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그때 바로 풀어버리는 사람들이오.”

진유강이 원래 몸담았던 공동파가 있는 감숙성이 섬서성에 바로 붙어 있기에 종남파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름만 들어서는 화산파가 그럴 것 같은데 말이야.”

“화산은 오히려 냉정한 사람들이라오. 그들도 은원이 확실하긴 하지만, 쉽사리 풀어내거나 하지는 않지. 종남은 마음에 담아두는 일이 있더라도 비무 한 번에 시원하게 풀어내곤 한다오.”

“비무를 한다고?”

“어찌 보면 굉장히 깔끔한 방법이오. 더 강한 사람의 말을 따르겠다는 생각인지, 아니면 한 번 시원하게 붙고 나면 마음이 정리된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오.”

“하기는 그런 곳이니 장문 제자도 비무 대회로 뽑는 것이겠지?”

쿵-

하현이 대답한 그 순간, 그들이 대화하고 있던 전각 바깥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들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창문을 열고 다닥다닥 붙어 바깥 상황을 보았다.

그리고 전각 앞마당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운명학……?”

진유강의 말대로 그는 운명학이었다.

조금 전 쿵 하는 소리는 그가 들고 온 대검을 바닥에 꽂아 넣는 소리였다.

“남궁세가의 남궁하현이라는 무인이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 어서 나와라!!”

그는 전각을 향해 소리쳤다.

내공을 담아서 소리쳤는지, 전각이 쩌렁쩌렁 울렸다.

“대장, 대장을 찾는 것 같소만?”

“그러게, 왜 나를 찾는 거지?”

하현은 머리를 굴려봤지만, 운명학이 찾아올만한 일은 없었다.

그것도 저렇게 적의를 풀풀 풍기면서는 더더욱.

“나가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게요. 안 그러면 계속 소리 지를 거 같은데.”

하현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휘이익- 툭.

정말이지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한 하현은 운명학을 보았다.

“구면……이라고 해야 하나요? 운명학 소협.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거죠?”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잘못 봤나 했는데, 이렇게 어린아이였다니.”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어. 사부님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부님께서 갑자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나를 장문제자로 앉히시겠다고 했어.”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그래서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리셨냐 생각해 봤더니, 비무 대회 중에 너와 사라지셨던 그 이후부터였어. ”

“그 와중에 그건 잘 보셨네요. 정신이 많이 없어 보이시던데. ”

운명학은 그 무거워 보이는 대검을 가볍게 들어 하현에게 겨누었다.

“장문인께서 너에게 큰 도움을 받으셨다고 하던데 나도 그 도움을 받아보고 싶다.”

“도움이요?”

“장문인께서 인정한 무인에게 가르침을 청하러 왔다. 나와 한 번 붙어보자!”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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