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73화 (273/304)

273화

“뭐……? 장문인?”

“그래. 종남파의 장문인.”

“그게 무슨 명령이야? 그리고 몇 해가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어찌나 당황했는지, 하현에게 말하는 운명학의 말투는 어느새 반말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명령이지. 몇 해가 걸리든 상관없어. 너는 최선을 다해서 네 수련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장문인이 되어 있을 테니까.”

“도대체 왜 우리 종남파의 일에 그렇게까지 관여하는 거지?”

“엄밀히 말하면 종남파에 관여하려는 건 아니야.”

“그러면?”

“너한테 관여하려는 거지. 너처럼 간절하게 종남의 성공을 바라고 있는 네가 왜 네 마음을 그토록 속이는 거지? ”

“뭐……?”

운명학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도대체 하현이 자신을 언제 보았다고, 자신의 마음을 안다는 듯 저렇게 말한단 말인가?

“검룡 소협에게 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그래서 굳이 너를 찾으러 온 거고.”

“현암?”

“그래. 검룡 소협이 꼭 너를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더군. 검룡 소협과 비슷한 길을 가려는 처지가 공감되었기 때문이겠지.”

“현암이…… 내 이야기를 너한테 했다니…… 믿을 수 없어.”

“그만큼 너를 걱정하기 때문이지. 너도 현암 도장의 그 진심을 알기에 그에게는 속마음을 터놓은 것 아니야?”

“흠……. 그렇긴 하지.”

하현은 대강 검룡을 구실삼아 이야기했는데, 운명학은 생각보다 쉽게 수긍했다.

하현이 그의 의념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기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리고 나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고.”

하현은 운명학이 깊게 생각하기 전에 재빨리 물었다.

“왜, 종남파를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좋아하지 않아?”

“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뭐가 문제야?”

“나는…… 후…….”

운명학은 말하다 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말할 마음을 먹었다.

오늘 처음 보는 하현이지만, 오랫동안 만나온 친우처럼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겁쟁이에 책임감 따위는 없어. 그런 내가 종남의 장문인이 될 수는 없는 법이야.”

“맞아. 넌 책임감이 정말 없지.”

“이런 상황에서는 좀 아니라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사실인 걸 어떡해? 책임감이 있었다면 벽에서 막혔다고 지금까지 그러고 있지는 않았겠지.”

하현의 말에 틀린 곳이 하나도 없었기에, 운명학은 그만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대화하는 동안 마음 어딘가가 치유되는 기분을 느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해 본 경험도 없었는데, 하현은 여러모로 신비로운 아이였다.

하현은 장난스럽게 미소 짓고는 입을 열었다.

“하여튼 책임감도 없고, 겁도 많은 너지만, 너만큼 종남파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종남파의 무인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무인은 없을 거야. 이건 종남파 장문인께서 말씀 해주신 거니까 아니라고 말할 생각 하지 마.”

“장문인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그러면 갑자기 왜 너를 장문 제자로 앉히셨겠어?”

운명학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부터 오늘 그에게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이제야 다 이해 가는 듯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또 왜?”

“이렇게 되면 내가 종남의 전통을 깨버리는 꼴이 되잖아. 대대로 장문 제자는 선별전을 통해서 뽑아왔어. 그런데 지금처럼 장문인이 임의로 나를 제자 삼아버리신다면 지금까지 선별전을 해왔던 다른 사형제들은 뭐가 돼?”

하현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운명학이 상당히 옳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종남파 자체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짚을 수 없는 문제점이기도 했다.

하현은 조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어떻게?”

“넌 오늘 종일 기절해있느라 장문인께서 선별전 자체를 중단시키지는 않았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말이지.”

“그게 뭐?”

“종남파의 전통을 지키고 싶다면 네 힘으로 지켜. 제대로 선별전을 치러서 우승을 차지하는 거야.”

“그런데 나는 이미 선별전에서…….”

“아니. 석지승과의 비무의 승자는 너야. 그건 장문인께서도 동의하신 내용이고.”

“아…….”

“잘 생각해봐. 내가 석지승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네가 이러고 있다는 걸 알면 그의 자존심이 더욱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운명학은 고개를 들어 하현의 눈을 마주쳤다.

깊고 선한 하현의 눈동자,

그는 하현의 눈이 기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혹시 반로환동한 전대의 고수인가……?’

그는 하현을 보며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앳되지만, 하현이 하는 말이나 그가 가진 분위기는 도무지 아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명령을 하나 더 추가할게. 장문제자 선별전에서 우승할 것.”

“무슨 명령이…….”

“자꾸 말대답하지 말고. 할 거야 말 거야?”

“할, 할게.”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말이 짧다?”

하현이 말하며 손에 힘을 우득 쥐었고, 그것을 본 운명학은 결국 울상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할게요…….”

* * *

하현과 운명학의 밀회(?)가 있고 이틀이 흘렀다.

그 이틀 동안 종남파의 큰 축제이기도 한 장문제자 선별전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운명학은 다음 회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출전했는데, 그것을 두고 딴지를 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는 석지승마저 그의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했다.

“최종 우승은 운명학입니다! 운명학은 장문제자가 되어 무공은 물론, 앞으로 장문인의 도리와 법도를 함께 배울 것입니다.”

“와아아! 난 네가 우승할 줄 알았다!”

“명학아 네 덕에 큰돈을 땄다. 나중에 사숙이 한 턱 내마!”

“그래! 운명학이 아니면 누가 장문 제자를 하겠어?!”

종남파 사람들은 모두 소리 높여 운명학을 칭찬했다.

하현 일행은 운명학이 우승하고, 종남파 무인들이 그의 이름을 외치는 것까지 보고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하하. 불쌍하게 되었소. 이렇게 되면 운명학이 내 후배인가?”

“후배라니?”

“대장을 대장이라고 부르는 유이(有二)한 사람이지 않소? 그러니 내 후배가 되는 것이지. 이렇게 남궁하현 일맥이 생기는 건 아닌지 몰라?”

“일맥이라니. 나는 남궁세가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진유강은 하현의 말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또 뭘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러시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잘 따지고 보면 운명학은 네 후배가 될 수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운명학은 내 부하잖아? 그리고 넌 내 하인이고. 부하가 어떻게 하인의 후배가 된다는 거야?”

하현의 말에 진유강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언젠가부터 대장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그의 말대로 정확히는 하인이 맞았다.

한참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하현이 그것을 정확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하하! 그래. 진유강. 너와 나는 하인이었지?”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운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진유강이 곤란한 것이 그는 즐거운 모양이었다.

“엇? 운후 아저씨께서 본인 입으로 하인이라고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은 있는데, 진유강 소협도 그랬었어요?”

“그게 뭐 숨기려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오만…….”

“결국은 맞다는 거죠?”

“……맞소.”

하현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류이영은 하현이 맑게 웃는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둘을 구제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하현은 옛 생각이 떠올랐다.

사파 출신인 운후와 산적 출신인 진유강.

그들 모두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완전히 하현에게 동화되어 완전히 정파의 인물이 되었다.

‘사람은 계기만 있으면 변할 수 있어.’

이 둘과의 시간은 하현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신가장에서 친삼촌처럼 따랐던 유지혁과의 신뢰가 깨진 이후로 사람을 믿는 것을 힘들어했던 하현이다.

하지만, 남궁세가에의 가족들 그리고 이런 동료들 덕분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는 하현이었다.

장문 제자 선발전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하현은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원래 아무 일도 없었다면 진작 종남파를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운명학과의 일도 있고, 종남파 장문인도 하현에게 대회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있어주면 안되냐고 부탁했기에, 하현은 며칠 더 머물렀다.

쿵-

하현이 얼마 되지 않는 짐을 거의 다 쌌을 때, 마당에서 무거운 것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며칠 전 운명학이 숙소로 쳐들어와 비무를 청했을 때 들리던 소리와 흡사했다.

아니, 똑같이 그 소리였다.

이미 기감으로 운명학이 다가오고 있었음을 알고 있던 하현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열었다.

“운명학? 한창 네 축하 연회 중일 텐데 여기는 왜 온 거야?”

“아니, 대장. 그렇게 정 없게 굴기에요? 연회장에 왜 얼굴이 안 보이나 했더니만,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떠나려고요?”

하현이 피식 웃으며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 역시 며칠 전에 창문에서 내려간 것과 완전히 똑같은 동작이었다.

“모든 비무를 끝까지 봤으니까. 앞으로는 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는 일밖에 안 남았잖아?”

“그렇긴 하죠.”

“그러니 뭐가 더 필요하겠어? 나중에 서신이나 보내려 했지.”

“나는 대장한테 정말 많은 걸 받아 가네요. 저는 준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하현이 주변을 살짝 둘러보더니, 운명학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없긴 왜 없어. 네 검법을 줬잖아.”

“그건 엄밀히 말하면 준 게 아니고 훔쳐간…….”

“그리고 얻은 게 왜 없어.”

“또 뭘 훔쳤어요?”

하현이 눈을 흘기자, 그는 헙! 하며 자신의 입을 막았다.

“훔쳤다니. 정당한 내기로 얻은 게 있는데.”

“내기? 여기 와서 또 무슨 내기를 하셨어요?”

“아니. 내가 얻은 거 여기 있잖아.”

곧게 뻗은 그의 손가락은 운명학을 가리키고 있었다.

“넌 내 부하니까. 따지고 보면 나는 미래의 종남파 장문인을 얻은 거지.”

“하하. 맞네요. 이건 뭐……. 말로도 이길 수가 없네요.”

그는 허탈한 듯 웃고는 하현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했다.

“가르침 감사했습니다. 대장.”

하현도 빙긋 웃으며 그를 마주 보며 포권해주었다.

반쯤 농담조로 말하기는 했지만, 하현은 종남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다.

이번에 그가 얻은 것은 바로 사람이다.

돈이나 무공보다 사람을 얻는 게 더욱 힘들다는 것은 하현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단순히 내기에서 이긴 것으로 운명학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의 매력과 인품, 그리고 정정당당한 무공실력으로 하현이라는 사람에게 빠져들게 만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종남산에 근처에 오게 된다면 꼭 다시 들를게.”

“그러면 안 올 생각이었어요? 정말 매정한 사람이네.”

하현과 얘기하는 운명학의 얼굴은 이전의 귀찮음에 빠져 살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생기가 돌고 있었다.

* * *

운명학과 연회를 뒤로하고 그들은 화산으로 향했다.

구파일방 중에서도 소림, 무당과 그 이름을 나란히 한다는 화산파를 향해서였다.

종남파와 화산파는 말을 타고 가면 이틀이면 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하현이 최대한의 속도로 신법을 전개한다면 하루 만에도 갈 수 있겠지만, 그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아, 아쉽다. 아쉬워. 그 수많은 음식과 술을 두고 이렇게 떠나야 한다니.”

“우리는 임무 중이잖아. 네가 술을 마시면 또 하루를 넘게 지체해야 한단 말이야.”

“누가 뭐 데려가 달라고 했소? 그냥 아쉽다는 거지. 투덜대지도 못하게 하시오.”

“요즘 들어서 말대답이 부쩍 늘었다……?”

“크흠. 말대답이라기보다는 의견이 는 것이 아니겠소? 허허.”

하현이 꽉 쥔 주먹을 들어 올리자, 진유강은 웃으며 운후의 뒤로 슬그머니 빠졌다.

“도련님. 그런데 곧바로 화산으로 가도 됩니까? 화산의 장문인은 만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맞아요. 저도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들었어요.”

“그러면 따로 서신이라도 보내 놓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화산 아랫마을에서 하루 이틀 머물면서요.”

운후의 걱정에 하현이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에 화산의 장문인이 새로 취임했다는 것 알고 계세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몰랐습니다.”

“저도 할아버지한테 들은 거긴 하거든요. 그런데 그 장문인이 할아버지와 아주 친해서 제가 가면 바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렇습니까? 장문인이 누구시기에.”

하현은 잠시 기억을 떠올리다 말했다.

“철매화 유민민이라는 분이라고 하셨어요. 전 무림맹주셨다고 해요.”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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