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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78화 (278/304)

278화

이십사수매화검법은 화산 검법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불리는 검법이다.

화산의 모든 검수는 이 검법을 배워야만 하고, 무림을 떠나는 그 날까지 다른 검법은 배우지 않고서 이 검법만 익히고 쓰기도 한다.

그만큼 입문은 쉽지만, 그 깊이가 너무나도 깊은 무공이다.

“하하... 처음으로 취월걸개 어르신의 말에 허풍이 들어있지 않았네.”

유민민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웃음마저 나왔다.

무림맹의 일을 자주 도와주며 개방에서보다 무림맹에서 머무는 날이 더 많은 취월걸개였기에 자연스럽게 전대 무림맹주였던 그녀와는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그녀는 취월걸개와 대화하는 것을 그렇게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굉장히 다혈질이며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취월걸개의 성격 때문에 꽤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성격이 변하시기 시작했지.’

그 시점을 생각해 보니, 하현을 만나고 그의 스승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취월걸개는 주변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시비를 걸지도 않았고, 온종일 하현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기 시작했다.

‘하현이가 얼마나 천고의 기재인 줄 알아? 이게... 참... 말하면 안 되는데... 너한테만 슬쩍 알려줄까?’

‘하현이한테 자소단이라도 챙겨주고 싶은데 체질에 잘 맞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너한테서 뺏어가려고 했는데 말이다. 응? 개방의 취구환이 있지 않느냐고? 우리 하현이한테 그걸 어떻게 먹여?!’

항상 하현, 하현, 하현...

거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름이었기에 하현을 처음 만났을 때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정말이지 말 그대로 저 정도의 재능이라니.

유민민도 나름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건만, 하현과 비슷한 재능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취월걸개가 했던 말은 과장은커녕 하현의 자질을 전부 담아내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휴우-.”

“하하하하!”

그때 하현과 단목성이 동시에 검을 멈추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모두 펼쳐낸 뒤였다.

단목성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민민은 그런 스승이 낯설었다.

평생을 함께하며 저런 모습은 지금까지 본 적도 없었다.

언제나 조용하고 큰 소리를 내지 않는 단목성이었다.

심지어는 꽤 왈가닥이었던 그녀가 여기저기서 사고를 쳐도 큰 소리를 내기는커녕 그럴 수도 있는 법이라며 다독여 주던 그였다.

“하현아.”

“네. 천하제일검 어르신.”

“그냥 할아버지라고 불러줄 수 있겠느냐? 무룡이의 손주라면 내 손주이기도 하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단목성이 빙긋 웃었다.

두 눈이 실눈으로 변할 정도로 깊은 웃음이었다.

“이틀 정도만 이곳에 더 머물러 줄 수 있겠느냐?”

“이틀이요?”

“남궁세가에 가면 분명히 오랜만에 싸움을 하게 될 터. 그런데 조금 전에 보았듯이 내 검은 녹슬어 있고, 움직임은 굼뜨구나. 이틀 동안 내가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대련 상대가 되어주면 곧바로 남궁세가로 가겠다.”

단목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민민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어휴... 사부님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왜 그러느냐? 그냥 대련만 하겠다는 건데.”

“그러니까 마음대로 하시라고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사부님이 대련에서 무슨 무공을 쓰시던, 무슨 깨달음을 받으시던.”

“하하하! 내 의도가 그리도 빤히 보이더냐?”

“그럼요. 이건 제가 사부님 제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부님 속이 너무 빤히 보이시는 거라고요.”

유민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자하신공에 이십사수매화검법이면 우리 화산 비기의 절반은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 뭘 더 알게 된다고 달라질 것은 없잖아요?”

하현은 둘의 대화에 끼지 않고 눈만 요리조리 굴리며 그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단목성과 유민민이 대화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살짝 주먹을 쥐고 흔들며 속으로 외쳤다.

‘아싸!’

***

그날 저녁.

하현은 유민민의 배려로 화산파의 손님방에서 가장 좋은 곳을 얻을 수 있었다.

운후와 진유강, 류이영도 하현이 늦는 것을 보고 어련히 방을 잡아 두었는데, 유민민은 하인을 시켜 그들도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아니, 대장. 화산파와도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이오? 이런 방은 어지간한 귀빈이 아니면 내어주지 않을 터인데.”

“그러게요. 이 정도 방이면 타 방파의 장문인 급은 와야 내어줄 정도의 방인 것 같아요.”

진유강과 류이영이 방으로 들어서며 감탄했다.

유민민은 애초에 전각 하나를 통째로 빌려주었는데, 도가 문파 중에서는 그래도 속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화산파라 그런지 방에 둔 가구나 문양 따위가 화려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여기서 이틀 정도는 더 머물다 갈 거예요.”“이틀이나요?”

“네. 어쩌다 보니 화산제일검님과 인연을 맺게 되어서요.”

“화산제일검 단목성 말씀이세요?!”

류이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검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은 그녀다.

그렇기에 무림의 이름 높은 검수들을 흠모하고 있는데, 화산제일검은 그중에서도 명망 높은 검수이기에 깜짝 놀란 것이다.

“네. 할아버지의 막역한 친우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검존 어르신의...”

그녀는 곧바로 납득하고 말았다.

얼마 전에 하현의 배려로 검존 남궁무룡과도 독대해보았던 그녀다.

그때는 못 이룰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기에, 더는 욕심 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제가 내일 물어볼까요? 한 번 만나보실 기회가 있을지를요.”

“아?! 감사해요!”

“뭘요. 물어보는 것뿐인데요.”

하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류이영은 그 순간 하현에게서 향기가 터져 나온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어...?’

그런데 정작 하현은 그것을 모르는 듯 행동했다.

‘무언가 달라졌는데... 뭔지는 모르겠어...’

하현에게서 터져 나온 향기는 매화 향기.

아직은 온전해진 자하신공을 완벽하게 갈무리하지 못했기에 살며시 흘러나오는 것이었지만, 평생 태어나서 매화 향기를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는 그저 좋은 향기일 뿐이었다.

“그러면 저는 먼저 올라갈게요. 운후 아저씨랑 진유강은 이틀 동안 남궁세가에서 하시던 것처럼 똑같이 수련하시고요. 류 소저는... 어떡하실래요?”

“어떡하다니요?”

“류 소저한테는 제가 수련해라, 쉬어라 할 처지는 아니니까요.”

류이영은 아주 조금이지만, 하현의 말에서 벽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운후와 진유강은 같은 세가의 사람. 그중에서도 그의 수하라고 할 수 있는 자이고, 자신은 철저히 외부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야. 하현 공자가 그런 의도로 저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잖아.’

똑똑한 그녀였기에 하현은 단지 그녀를 배려하느라 저렇게 말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때때로 판단력을 흐리기도 하는 것이다.

하현과 같이 다니며 그의 대단한 모습을 볼 때마다 류이영은 모순적인 감정을 함께 느꼈다.

그에 대한 마음이 커짐과 동시에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류 소저?”

그녀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져 하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저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속으로 조그마한 다짐을 했다.

‘어울리지 않는 게 어딨어. 더 노력하고,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어.’

그녀는 내리깔았던 눈동자를 움직여 하현을 바라보았다.

“저도 같이 수련할게요.”

“괜찮겠어요? 둘이 하는 수련은 꽤 힘들 텐데.”

“수련은 힘들게 해야 한다면서요. 저도 해볼게요.”

하현이 씨익 웃음 지었다.

조금 전의 그 꽃향기가 나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좋아요. 류 소저는 자질이 뛰어나시니까, 수련의 효과가 좋을 겁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현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화산파에서의 첫날 밤은 이렇게 흘러갔다.

***

안휘성 황산(黃山).

황산은 또 다른 이름으로는 송운(松雲)이라도 불린다.

말 그대로 소나무가 하늘의 구름처럼 빽빽하기에 그렇게 불리우는데, 혹자는 이곳의 소나무가 대부분 적송이기에 적송해(赤松海)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소나무의 바다 한가운데.

대략 열 명 정도의 사람이 그 바다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행색은 매우 특이했는데, 적색과 흑색이 교차로 섞인 위장복을 입고 있었다.

어느 지점까지 다다르자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각자 주변에 위장술을 써서 녹아들었다.

그들 중에서 가벼운 발걸음을 가진 한 명이 대열을 이탈해서 산 뒤쪽으로 갑자기 사라지는가 싶더니, 잠시 후에 되돌아왔다.

그는 숨어있는 무인중에서 가장 앞에 있던 무인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형님. 앞에 보이는 뒤쪽 봉우리 뒤에 대략 스물가량의 무인이 있어요.”

“스물? 수준은 어느 정도 되지?”

“거리가 멀어 정확히 가늠하지는 못했지만, 다들 일류 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순찰대라고 하기에는 수준이 높군.”

“그렇죠.”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찰을 갔다 왔던 자는 남궁휘연, 그에게 보고를 받은 사람은 남궁기현이었다.

남궁세가의 정예대원들로 구성된 수색대는 황산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분명히 이곳 어딘가에 신강양가의 본거지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형님. 이번에는 어떻게 해요? 피합니까? 부딪힙니까?”

“네가 볼 때는 어때? 우리측 손실이 전혀 없을 수 있을까?”

“그건 해봐야 아는 거지만,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오 할. 암습한다면 구할 정도는 될 거예요.”

“결정됐군. 암습으로 간다.”

“예. 그러죠.”

남궁기현의 말투에 거리낌은 전혀 없었다.

그는 애초부터 전투에 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가 이끄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털끝 하나라도 다치지 않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스슥-

십 수명의 남궁세가 고수가 은밀하게 움직였다.

빽빽한 숲은 대낮임에도 어둠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곧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 형님. 이번에는 누구를 살립니까?

- 가장 오른쪽 끝.

- 알겠습니다.

그들은 각자 약속된 목표를 정한 뒤에 계속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스슥- 스슥-

옷과 풀이 스치는 소리만이 미약하게 울려 퍼지며, 그들은 신강양가의 무인들의 지척까지 다다랐다.

휘익! 서걱-!

“누, 누구...큭!”

“적...?! 커억!”

한칼에 한 명, 혹은 두 명씩.

그들은 신강양가의 무인들은 너무나도 쉽게 쓰러졌다.

혹자는 명문정파인 남궁세가에서 이런 암습을 펼치는 것에 비판하는 자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검존 남궁무룡이 가주가 되고 나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겨우 명예 따위에 세가 무인들의 목숨을 걸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기습을 가하는 것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털썩-

단 한 명만을 남기고 모든 신강양가의 무인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모두 하나같이 급소를 베이거나 꿰뚫렸기에 확인 사살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서 있는 신강양가의 무인은 이런 상황에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어느새인가 그의 뒤에 나타난 남궁휘연이 그의 마혈을 짚었기 때문이다.

실로 바람 같은 신법이었다.

“이, 이런 잔악무도한...!”

무인은 경악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절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잔악무도?”

“어떻게 이렇게 암습을 할 수가 있단 말이냐?! 그리고 내가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이토록 우릴 못 잡아 죽여 안달이 난 것이야!”

“재미있는 말이네. 그러면 암습하지 않고 대놓고 나와서 너희와 힘겨루기를 했더라면 그건 잔악무도하지 않은 것인가?”

“그, 그건...!”

“그리고, 너희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마교가. 너희 양가가 죽인 무림인과 고혈을 빤 양민들의 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 숫자만 들으면 그런 말을 하진 못할 텐데.”

양가 무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그를 살려놓은 이유는 그를 고문하여 신강양가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함이리라.

“그리고 너희가 한 여러 가지 나쁜 짓 중에 가장 큰 죄는 따로 있지.”

“그, 그게 무엇이냐?”

항상 웃음 짓고 있을 것만 같은 남궁휘연의 눈에 작게 분노가 깃들었다.

“우리 막내를 납치하려 한 죄.”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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