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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83화 (283/304)

283화

“장문인! 그 기관진식은……!”

여지껏 조용히 있던 진유강이 소리쳤다.

하현은 십응검객과 기관진식이라는 말에서 얼마 전에 진유강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공동파에서 십응검객이 되기 위해서는 유사(柳思)라는 장인이 만든 기관진식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지.’

“장문인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공동파에서 십응검객이 아닌 나머지 무인 중 가장 강한 자만이 도전할 수 있는 게 그 기관진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 대장이……!”

“뭐라……? 네 대장?”

“네. 제 대장입니다. 지금 저는 남궁세가의 무인이니 말입니다!”

“고얀 놈! 부모를 잃고 갈 곳 없이 떠돌던 너를 거두어 준 것이 우리 공동이 아니더냐?”

“그건 맞습니다. 지금도 제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았습니다. 허나, 그 뒤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공 수련을 시작하며 저를 하루가 멀다 하고 때리면서 저를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너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하여튼 나는 더는 할 말 없다. 네가 따를 사람의 무공 수준이 최소한 십응검객 정도가 되지 않으면 나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송결자는 진유강과 하현을 번갈아서 노려보더니 다시 진유강을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공동으로 돌아와라. 도망친 죄는 없던 일로 해줄 터이니!”

“장문인……!”

진유강은 절절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는 하현의 마음은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솔직한 말로 하현은 그 기관진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라오던 중 산 입구에서 마주쳤던 그 무인.

‘회상도인이라고 했었지? 그 무인도 십응검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와 직접 손속을 주고받아 본 하현이다.

회상도인은 분명 뛰어난 무인이고, 고강한 무공을 가졌다.

하지만 그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회상도인과 싸울 때 진유강은 분명히 옆에 있었다.

그의 눈썰미라면 하현이 회상도인을 상회하는 무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터인데…….

‘응?’

그런데 하현은 진유강의 표정이 무언가 어색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최근 몇 날 며칠을 옆에 붙어 다녔기에 알 수 있는 아주 미세한 어색함.

진유강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 도대체 왜?’

하현은 아주 잠깐 머리를 굴렸다.

그러자 곧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역시 진유강은, 교활해.’

그는 속으로 웃음을 삼킨 후에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진유강이 저렇게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하현이 그 기관진식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아서 저러는 것이 아니라, 너무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러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선뜻 하겠다고 하면 공동파의 장문인이 조건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하현은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고는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장문인. 해 보겠습니다.”

“뭐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도전은 해보고 싶습니다. 장문인께서 진유강을 아끼시는 마음만큼 저도 진유강이 욕심나니까요.”

“원시천존……!”

그는 도호까지 내뱉더니, 이내 강한 어조로 하현에게 말했다.

“자네가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이 기관진식은 일단 그냥 해보고 싶다고 해서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기관에 도전하다가 죽은 이도 있다는 것은 알고 얘기하는 겐가?”

“솔직히 그건 몰랐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습니다. 본디 무인이란 죽을 자리를 찾아 돌아다닌다고 하지 않습니까? 진유강이 정식으로 제 것이 될 수 있는 기회인데, 목숨을 걸어볼 만합니다.”

하현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도리어 당황한 것은 송결자였다.

그는 하현이 지레 겁을 먹고 진유강을 포기하게 하려고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런데 하현이 정말로 이렇게 한다고 할 줄은 몰랐다.

‘이러다가 만약 검존의 손자가 죽기라도 하면……?’

그는 속으로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사이기 이전에 무림에서 칼밥을 먹는 무인인 그다.

그렇기에 더 잘 아는 것이지만, 그는 검존의 분노를 감내하고 싶지는 않았다.

“장문인.”

“왜 부르느냐?”

“혹시나 염려하실까 싶어 제가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염려……? 무슨 말을 하려고…….”

하현은 자세를 바로 하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제가 기관진식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고 하여도, 그것은 공동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저 혼자만의 도전과 죽음일 것입니다. 남궁세가는 절대 공동파에 보복한다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런데도 대답이 없자, 하현은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 말이 믿기지 않으신다면 제가 각서라도 적어 두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두가 증인이 되어줄 것입니다. 남궁세가. 특히나 제 조부님께서 공동에 책임을 묻는 일은 없을 겁니다.”

송결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알겠네. 내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이 도전은 철저히 자네와 나, 개인적인 관계의 도전으로 하는 게 어떻겠나?”

“좋습니다.”

하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송결자는 속으로 혀를 찼다.

‘송장 하나 치우겠군.’

공동파에서 이 기관진식으로 십응검객을 선발하기 시작한 것은 약 사십 년 전이다.

송결자가 아직은 젊은 무인이었을 그 시절.

그때까지만 해도 기관진식에 도전하는 무인은 굉장히 많았었다.

정사대전이 끝나고 겨우 십여 년이 지났을 시점이라 무공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을 때였고, 수많은 무인이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또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많이 도전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십응검객을 선발할 때가 아니면 장문인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기관진식에 도전할 수 없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기관에 도전하다 죽은 이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기관진식에 대한 인식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공동파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자신이 없으면 기관에 도전할 자격도 없다.’

그래서 기관은 공동파에서 열 손가락에 들 정도로 실력을 먼저 키우고 나서, 나중에 그 무예를 확인하는 용도로만 사용해온 것이다.

“따라오게. 기관이 무엇인지 보여줄 테니. 혹여 기관을 보고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니까.”

송결자는 하현에게 말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왕궁 밖으로 나갔다.

하현도 그의 뒤를 따라가려는데, 등 뒤에서 진유강의 전음이 들렸다.

- 어휴. 하마터면 장문인과 대련할뻔했소.

- 대련?

- 대장의 실력이 십응검객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면 장문인이 어떻게 나오겠소? 기관진식으로 승부를 보자고 하지 않고, 직접 검을 들었을 수도 있는 일이오.

- 그건 그거대로 흥미로울지도.

하현의 말에 진유강이 입을 틀어막았다.

구파의 장문인과의 대련을 겨우 흥미롭다고 말하는 하현의 신경이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정말 그랬으면 어떻게 할 뻔했소?

- 왜. 내가 질 것 같아?

- 그건 아니지만……. 다치지 않고 이기기는 힘들지 않겠소이까?

- 지금 나를 걱정해주는 거야?

- 흠흠. 걱정 안 하게 생겼소? 무사히 나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 주셔야 하는데.

진유강은 민망한지 괜스레 헛기침까지 하며 전음을 멈추었고, 하현도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사이에 송결자는 하현을 데리고 공동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꽤 빠른 속도로 움직였는데, 하현을 포함한 그 일행은 무리 없이 그의 속도를 따라갔다.

‘정말 며칠 만에 이렇게 진전이 있다니.’

그 중 류이영은 혼자서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그녀가 운후, 진유강과 함께 수련을 시작한 지 며칠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벌써 그 효과가 나타나는 느낌이다.

며칠간 말을 타고 이동하느라 신법을 제대로 펼쳐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몸이 훨씬 가볍고 내공의 수발이 원활했다.

‘하체의 근육이 발달하면서 근력이 향상되고, 기혈이 튼튼해진 거야.’

그녀는 아무리 내가 중수법이라도 명상만이 답이 아니라는 하현의 말을 몸으로 체감하며 그들을 따라갔다.

“흐음…….”

그런데 앞장서 신법을 전개해 산을 오르는 송결자는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였지만, 하현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기관진식이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군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네. 기관을 보면 놀랄 수도 있네. 그런데, 자네 별로 안 힘든가?”

“네. 괜찮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네. 그러면 다행이네.”

송결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산을 올랐다.

‘생각보다는 무공이 강한가 보군.’

잠시 후.

그들은 산 중턱에 있는 좁은 공터에 도착했다.

하현은 재빨리 눈을 돌려 주변을 파악했다.

하지만, 어디를 보아도 기관진식이 있을 만한 곳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 왔네.”

“이곳인가요?”

“그래. 여기가 바로 십응검객을 선발하는 기관진식이라네.”

송결자가 말했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사천당문에서도 그랬지만, 보통 기관진식은 전각 안에 짓는다.

그런데 이곳에는 전각은커녕 사람이 손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어디에……?”

“이곳이지.”

송결자는 공터 끝 절벽과 이어지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람만 한 바위가 하나 있었다.

그는 그 바위에 손을 대고 스르륵 밀었다.

스으윽-

“엇……?”

하현 일행은 바위가 너무나도 가볍게 밀리는 모습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바위는 공 굴러가듯 옆으로 밀어졌고, 바위에 가려져 있던 곳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이 나타났다.

진유강이 깜짝 놀라 말했다.

“장문인. 저 구멍은……?”

“진유강. 자네도 처음 보지? 이것이 기관진식에 들어가는 입구네. 십응검객을 선발하는 기관진식은 이 봉우리 속에 만들어져 있다네.”

“그,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수십 년 전부터 사용해왔겠지? 산 아래쪽에는 출구가 따로 나와 있다네. 이곳으로 들어가서 반대쪽 출구로 무사히 나오면 시험은 끝이 나는 것이지.”

하현은 기감을 뻗어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허나,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그 사이 송결자가 말을 이었다.

“안에는 각종 기관뿐만 아니라, 진법도 펼쳐져 있다네. 무공도 무공이지만, 강인한 정신력과 더불어 진법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만 하지. 이런데도 정말 도전하겠는가?”

하현은 천천히 눈을 돌려 송결자의 눈을 마주쳤다.

송결자는 ‘진유강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겠느냐?’라고 묻고 있는 듯했다.

“네. 도전해보겠습니다.”

“……알겠네. 기관을 동작하려면 하루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네. 오늘은 이만 내려가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다시 바위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은 뒤에 산을 내려갔다.

하현 일행은 그의 뒤를 말없이 따랐다.

어쩐지 송결자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 * *

그날 밤.

송결자는 하현 일행에게 손님방을 내어주었다.

그런데 보통 손님들이 아닌, 귀빈을 위한 방인 것 같았다.

송결자가 지금껏 그들에게 보여준 태도와 방의 수준이 맞지 않는 것 같았는지, 운후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생각보다 대접이 제대로입니다?”

“그러게. 나는 잠이라도 재워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유강이 피식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비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운 형. 과연 그게 우리를 위해서겠소?”

“그러면?”

“다 스스로를 위해서요. 우리 대장이 공동파에서 천대받다가 기관에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남궁세가에 뭐라 할 말이 없지 않소? 그러니 이렇게 명분을 만들어 두는 것이지. 우리는 기관에 도전한 남궁세가의 자제를 이렇게 잘 대접 해줬다고.”

“장문인이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진유강이 고개를 저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소. 장문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고한 도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소심한 사람이라오. 그래서 한 편으로는 비겁하기까지 하지.”

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진유강은 인상을 한 번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

“믿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공동파에서 도망친 것도 그런 이유가 가장 크지. 이곳에는 도무지 정을 붙일 수 없어서.”

그는 자신이 말하고서는 조금은 음울한 표정을 지으며 침상으로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그래도 한때는 자신의 꿈을 키우던 곳의 민낯에 실망해 풀이 죽은 듯한 모습이었다.

“진유강.”

“왜 부르시오?”

“한 가지만 물어보지.”

진유강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하현은 진중한 눈으로 그에게 말했다.

“공동파에 남고 싶어? 네가 원한다면 풀어줄 테니 공동파에 남아도 좋아.”

“대장……?”

진유강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현은 그가 풀이 죽은 이유가 아직 공동파를 자신의 사문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진유강은 지금껏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과거의 공동파와 지금의 남궁세가 사이에서.

물론, 그가 갈팡질팡한다고 하여 하현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는 조금 전 하현의 질문으로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어떻게 남궁세가 정식 대원에까지 올랐는데? 그게 아까워서라도 이곳에 남을 수는 없소. 난 잘 테니 대장도 빨리 주무시오. 아무리 대장이 무공 수준이 높아도 그 기관진식은 얕보면 안 되오.”

“그래. 고마워.”

진유강은 피식 웃으며 다시 침상에 누웠다.

조금 전 하현이 고맙다고 한 것이 그를 걱정 해줘서인지, 공동에 남지 않겠다고 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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