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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85화 (285/304)

285화

“어두워.”

기관 안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안에 들어오면 야명주라도 몇 개 박혀 있을 것으로 생각했건만, 그것은 욕심이었다.

그래서 하현은 눈을 감았다.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천천히 눈을 감고, 눈을 어둠에 적응시켰다.

충분히 암순응될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던 하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거기에 눈에 내공을 담아 안력을 돋우자, 주변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와……. 여기는 어떻게 만든 거지?”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이 기관진식이 있는 산봉우리 내부를 텅텅 비우고 안을 가득 채워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걸 인간의 힘으로 다 파냈다는 말이야?”

하현은 벽을 어루만져 보았다.

이 벽을 장인 유사가 특별한 방법을 파낸 것인지, 혹은 자연적으로 이렇게 거대한 동혈이 생겨난 곳에 기관진식을 설치한 것인지 알 방도는 없지만.

하현이 벽을 만져보는 와중에도 그는 점점 더 어둠에 적응해갔다.

회색빛으로 보이던 내부가 아주 조금은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하현은 간단하게 몸을 풀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지금 있는 공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만 보일 뿐이기에 그곳으로 내려갔다.

후웅- 후웅-!

계단을 반쯤 내려가는 그 순간, 아래층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무겁고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이 정도로 큰 소리라면 위층에서도 들렸어야 했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어. 심지어는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고. 진법으로 소리와 진동을 막은 건가?”

하현은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다행히 계단에는 어떠한 장치도 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바닥에 땅을 디딘 하현은 어두침침한 아래층에서 유심히 앞을 살폈다.

그리고는 이내 이 커다란 소리의 원인을 깨닫고는 조금 놀란 눈을 떴다.

“도끼……?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야.”

공기를 찢어내는 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거대한 도끼였다.

전설 속의 마고 거인이 와도 들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도끼가 척 봐도 튼튼해 보이는 쇠사슬에 묶여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총 열여덟 개.”

열여덟 개나 되는 도끼들은 한 개도 쉬지 않고, 공기를 가르며 움직이고 있었는데, 하현이 있는 반대편 벽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계단을 발견한 순간, 하현은 이번 층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도끼를 피해서 저쪽으로 가면 다음 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거구나.”

정말이지 단순하다.

그냥 아래로 지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보법을 시험하는 건가?”

허나, 단순한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열여덟 개의 거대한 도끼는 일제히 흔들리면서도 서로 부딪히는 일 하나 없다.

모든 도끼가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세기로 흔들리기에 빈틈을 전혀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언뜻 보면 결코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이 보이지만, 하현은 이미 도끼들이 움직이는 속도와 흔들리는 폭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열여덟 개. 마치 열여덟 명의 사람이 진법을 펼치고 있는 것 같아. 소림의 십팔나한진 같이.”

하현이 빠르게 머리를 굴려 도끼의 움직임을 순식간에 계산해냈다.

그런데 계산을 마친 하현의 미간은 도리어 찌푸려졌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열심히 계산하여 하현이 내린 결론은 ‘건너갈 수 없다.’였다.

어떻게 하더라도 가로막고 있는 도끼를 통과해 지나갈 수는 없기에, 그 사이에 위에 있던 도끼가 하현을 덮칠 것이 분명했다.

하현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동파에서만 배우는 특별한 보법을 써야만 이곳을 건널 수 있나? 아니면 정말로 이형환위를 펼칠 수 있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층은 통과하라고 만들어 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건 할아버지나 취월걸개 사부님이 오시더라도 보법으로는 절대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아!’

한참을 생각하던 하현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자기 머리를 자책하듯 약하게 때렸다.

“바보. 이건 보법을 시험하는 게 아니야. 바보같이 보법에 매몰되어서는.”

스르릉-!

그리고는 곧장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고는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후웅-! 와앙-!

흔들리는 도끼가 코앞을 지나가는 곳까지 다가오자, 새삼 보법으로 이곳을 지나가려 했다가는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기를 말 그대로 찢어발기며 흔들리는 이 도끼들은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처억-

하지만, 하현은 그 도끼가 겁이 나지도 않는 듯 흑룡검을 두 손으로 잡고 검에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우우웅-

오랜만에 하현의 기운을 품은 흑룡검이 기분이 좋은 듯 울음을 토해냈다.

하현은 종종 이럴 때면 검이 정말 살아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부웅- 부웅- 부웅- !

도끼는 여전히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하현은 그 도끼가 다가올 때마다 숫자를 헤아렸다.

하나, 둘, 셋……!

쉬익- 쩌엉!!

하현의 검이 갑자기 도끼를 후려쳤다.

도끼를 베어낼 목적으로 예리하게 기운을 담은 것이 아니라, 묵직한 내공을 담아 검면으로 강하게 후려쳐버렸다.

별안간 하현의 검에 얻어맞은 거대한 도끼는 원래 제가 가야 할 방향을 잃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쩌엉- 쩌엉- 쩌엉- 콰아앙- !!

열여덟 개의 도끼는 종이 한 장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고 미세하게 움직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것.

그것이 이번 층의 핵심이었다.

하현의 검은 이 완벽한 조화에 균열을 주었고, 검에 맞은 도끼는 다른 도끼와 부딪히고, 그 도끼는 또 다른 도끼와 부딪히고…… 연쇄작용이 일어나며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다닥-

하현은 내공으로 귀를 보호하며 도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시끄러운 소리도 소리지만, 혹여나 도끼가 떨어져 사고가 날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의 우려와는 달리 도끼들은 조금 더 굉음을 내며 부딪히는가 싶더니, 이내 제자리에 멈춰 섰다.

하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 층의 시험은 보법이 아닌, 저 도끼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는지 무력을 시험하는 층이었어.”

하현은 멈춰버린 도끼들 사이를 여유롭게 지나가 반대편 벽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은 위층보다 훨씬 넓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반대쪽 벽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하현은 이제 이 기관진식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를 파악했다.

각 층에서 주는 과제를 해결하고, 출구가 나올 때까지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첫 층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쉬운데?”

하현은 위층의 기관진식은 조금 쉬웠다는 생각에 빙긋 미소 지었다.

하지만, 하현은 잘 모르고 있었다.

원래 위층에서의 시험을 단 한 번의 검으로 통과한 사람은 여태껏 아무도 없음을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한 번이 아니라 돌아오면 한 번 더 때리고, 또 돌아오면 한 번 더 때리고 하며 점점 도끼의 움직임을 멈추는 방식으로 이번 층을 통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번에는 또 뭐지?”

다음 층으로 내려간 하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텅 빈 공터였다.

하현은 그냥 걸어갈까 하다가 이렇게 쉬울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유심히 바닥을 보았다.

그러자 하현의 눈에 아주 미세한 구멍들이 보였다.

이번 층은 하현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바닥이 전부 다 빽빽하게 작은 구멍으로 꽉 차 있었다.

“저건 혹시……?”

하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저기에 던져볼 만한 것이 없나 찾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주변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현은 분명히 산속으로 들어왔는데, 산이 아니라 거대한 전각에 있는 것 같다.

결국, 주변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하현은 입고 있는 상의의 한쪽 소매를 잡아당겼다.

부욱-!

소매는 하현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맥없이 떨어졌다.

하현은 옷자락을 꼬깃꼬깃 접어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구멍이 보이는 곳으로 내공을 실어 던졌다.

사람이 밟는 것 같은 무게가 느껴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휘익- 파악! 슈슈슈슈슉!

소맷자락이 땅에 닿는 그 순간, 구멍에서는 수십 발의 짧은 화살이 위로 솟구쳐 천장에 다닥다닥 박혔다.

“와. 이건 정말로 위험하겠는데?”

제아무리 경공에 자신 있는 하현이라 할지라도, 땅을 잘못 밟으면 꼬치가 되어버리기에 십상일 정도로 빠른 속도의 화살이었다.

저것을 피해내는 것은 취월걸개가 와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이러면 벽을 타고 가야 하나?”

곧바로 벽을 유심히 살펴보던 하현은 그것도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좌우 벽 역시 빽빽한 구멍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현은 바닥을 유심히 보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금세 또 무언가를 떠올린 것이다.

하현은 안력을 더 돋워 바닥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지. 역시 해결 방법은 이번에도 간단했어.”

하현은 바닥에 구멍이 나 있지 않은 곳을 찾아낸 것이다.

아주 작은 원 모양이었는데, 땅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런 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번에야말로 보법을 시험하는 거야.”

처음에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지, 그다음은 쉽다.

하현의 눈에는 그 원들이 한 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원들을 따라 가상의 선을 긋는다.

그러자 이 선은 쭉쭉 뻗어나가 반대편 벽까지 닿았다.

그것을 확인한 하현의 얼굴에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

타다다-

하현은 그 작은 원을 발가락 끝으로만 밟으며 앞으로 전진 해나갔다.

조금이라도 발을 삐끗하면 바닥에서 쏘아지는 화살에 꿰뚫릴 수도 있지만, 정말이지 거침없는 발놀림이었다.

결국, 하현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반대쪽 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휴우.”

하현은 깊게 숨을 내쉬며 그가 지나온 곳을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진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재밌어.”

하현은 진심으로 재밌어하고 있었다.

사실 송결자가 하현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있었다.

애초에 이 기관진식은 너무나도 위험하기에 십응검객에 도전하는 무인들은 긴 시간을 두고서 기관진식에 통과할 준비를 한다.

심지어 그 도전자들에게는 가장 위층부터 아래층까지 어떤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두 전달받는다.

오로지 기관진식을 통과하기 위한 수련을 또 따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현은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본신의 실력으로 차근차근 기관을 뚫어내고 있었다.

“조금 전에 건너온 이건 보법인 거 같은데? 혹시 공동파의 보법인가?”

하현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 그가 밟아왔던 보법이 재현된다.

“제법 괜찮은 보법이야. 기억 해둬야겠어.”

빙긋 웃은 하현은 또 한 층을 더 내려갔다.

앞으로 이런 게 몇 층이나 더 있을지 굉장히 기대되는 얼굴이었다.

***

하현이 기관에 들어가고서 한 시진 남짓이 지났을 무렵.

운후와 진유강은 송결자를 따라 천왕궁에 와 있었다.

초조한 모습으로 다리를 떨며 기다리고 있는 진유강과는 달리, 운후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가 송결자에게 말했다.

“장문인, 저는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벌써 가려고? 아직 겨우 한 시진밖에 지나지 않았네. 보통 대여섯 시진은 지나야 한다고 말했지 않은가?”

“그래도 지금부터 기다리고 싶습니다. 도련님이 고생하고 계시는데 저만 여기에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송결자는 운후를 보고서는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충성할 수 있지?’

아까 그에게 얼핏 듣기로는 운후 역시 태생부터 하현의 하인이 아니라, 하현이 그를 거두어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이도 차이가 크게 나고, 저런 아이를 저렇게 진심으로 충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공동파에도 운후 같은 자가 몇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후……. 사실 이 기관은 통과하기 힘들 것이라네.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무인도, 기관에 대한 정보 하나 없이 들어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 말을 들은 진유강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일어났다.

“뭐라고 하시었소? 그러면 지금 우리 도련님은 기관진식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하고 그냥 들어간 거란 말이오?”

“그렇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하거라. 너는 애초부터 우리 공동의 사람이었느니라.”

진유강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흥! 하고 뀌었다.

그의 말투는 장문인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 평소에 그가 쓰던 말투 그대로였다.

“장문인.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우리 도련님이 기관진식에서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공동에 남지 않을 것이외다.”

“뭐라고?”

“나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오. 나도 내 뜻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란 말이오.”

“뭣이라?! 나는 너를 위해…….”

똑똑-

“장문인. 안에 계십니까? 계시면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그들의 대화는 누군가 문을 두드려 잠시 중단되었다.

송결자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문을 바라보았다.

무슨 급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대화를 방해한 것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끼이익-

낡은 문이 열리고, 문에서는 사내라고 하기에는 어리고, 아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은 한 남자가 모습을 내비쳤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송결자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경악이 깃든 얼굴이 되었다.

“어, 어떻게?!”

심지어 그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려다 발을 헛디뎌 몸이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도련님!”

“대장!”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하현이었다.

기관진식에 대해 공부하고 들어간 무인도 대여섯 시진은 걸린다고 하는 기관진식을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단 한 시진 만에 주파했지만, 출구에 기다리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에 이곳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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