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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90화 (290/304)

290화

“노야.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간 변한 게 하나도 없으시군요.”

“하현 공자도 잘 지내셨소?”

하현은 류이영을 데리고 장씨세가에 갔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건만, 장 노야는 무척이나 반갑게 하현을 맞이했다.

“여기 이쪽은 누구시오?”

“저는 해남파의 류이영이라 합니다. 우연히 하현 공자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호. 반갑구려.”

장 노야의 얼굴은 이전보다도 훨씬 좋아 보였다.

지역에서 제일가는 부자이니 어련히 건강 관리를 잘 받았겠지만, 그보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기 때문으로 보였다.

“원래는 어제 노야께 신세 지려 했는데, 우연히 정협 형을 만나서요. 그래서 엄가상단에서 하룻밤을 자고 오는 길입니다.”

“하하! 상지가 공자를 그토록 보고 싶어 했는데, 소원을 이뤘겠구려. 왜 여태껏 서신 하나 보내지 않은 것이오?”

“음……. 임무 때문에 계속 밖으로 돌아다녀서 그랬습니다. 이제 세가로 돌아가는 길이고요.”

하현은 뜻밖의 물음에 잠시 당황할 뻔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취월걸개님께서 저희 상단에 조사를 부탁한 게 있소.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것을 남궁세가로 보내달라고 하셨는데, 따로 사람을 보낼 필요 없이 공자님 편에 보내드려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 개방이 아닌 남궁세가로 정보를 보내달라 하셨다고요?”

“그렇소. 개방에서 알아내야 하는 정보가 아니라, 검존 님의 부탁이라고 했소.”

“할아버지의 부탁……?”

피잉-

하현은 순간 머리에 빛이 스치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첫 번째.

개방은 명실상부 무림 최고의 정보조직이다.

그런데 장 노야에게 조사를 부탁했다는 것은 개방보다 장 노야가 더 잘 알아볼 수 있는 분야의 것이 분명하다.

그런 분야는 시장에 관련될 것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두 번째.

검존 남궁무룡이 취월걸개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고 했는데, 신강양가와 관련된 일이라면 그것을 무인이 아니라 상인이 장 노야에게 발설했다는 것이 어색하다.

즉 그와는 별개의 일이라는 소리다.

“혹시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음……. 뭐, 공자는 검존님의 손자이자 취월걸개님의 제자이니 말 해줘도 상관없겠지. 취월걸개님께서는 암시장이나 우리 상인들끼리만 암암리에 정보를 주고받는 시장에서 물건 하나를 수소문해볼 수는 없냐고 물었소.”

“그 물건이 무엇입니까?”

“황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조각상이라고 했소. 검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했는데…….”

“……!”

그의 말에 하현과 류이영은 눈이 동그래져서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공자. 혹시...?”

“아마도 맞는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약속을 지키신 것 같군요.”

“음? 무슨 물건인지 알고 있는 거요?”

“네. 아마도 여기 류 소저가 찾고 있는 물건인 것 같습니다. 그 물건의 소재지를 파악하신 겁니까?”

그가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조금 애매하오. 찾았다고 할 수도 있고, 찾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껏 조용히 있던 류이영이 간절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장 노야는 그녀에게 전부 말해줘도 되는지를 고민하다가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공자와 소저가 보고자 하면 내가 전해달라고 할 서찰을 뜯어서 볼 수도 있는 노릇이니, 그냥 말씀드리겠소. 대신 공자가 검존님께는 잘 말씀드려야 하오?”

“그럼요. 당연하죠.”

장 노야는 하현의 다짐을 듣고서 조금 마음이 편해졌는지 곧바로 말했다.

“그 황금 조각상을 팔고 싶어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자를 찾아내었소.”

“찾아내셨다는 그 사람이 직접 조각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군요.”

“맞소. 그래서 애매하다고 한 것이오.”

“그게 누구죠?”

“암주화(暗駐花)라고 불리는 중개인이오.”

“중개인?”

“뭐, 장물아비를 좋게 말하는 것이오. 그녀 앞에서 이렇게 말하면 자기는 한낱 장물아비가 아니라고 펄쩍 뛰지만.”

“그녀라면 여인이군요.”

“그렇소. 암주화는 어둠이 머무르는 꽃이라는 별호처럼 암시장에서는 꽤 유명한 여인이오.”

하현이 류이영을 한 번 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류이영과 장노야는 하현의 생각이 끝나기를 잠시 기다렸다.

잠시 후, 하현은 고민을 끝냈는지 류이영을 보며 말했다.

“류 소저.”

“네?”

“우리가 한 번 가봐도 괜찮을까요?”

“암주화라는 자에게 우리끼리만 가보자고요?”

“맞아요.”

그녀는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하현은 모든 일정을 거침없이 진행했다.

그런데 왜 그녀에게 의견을 물어보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걸 왜 저한테 여쭈시는 거죠?”

“해남파의 일이니까요. 소저의 사형제 분들은 남궁세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는데, 제가 그 사이에서 먼저 나서도 될까 싶어서 여쭤봤죠.”

류이영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하현은 그녀를 배려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의 마음이 느껴진 류이영은 아주 옅게 미소 짓고는 말했다.

“그럼요. 사형들한테는 서신을 보내면 돼요. 그런데 공자야말로 괜찮아요? 할아버님께서 맡기신 일을 이렇게 중간에 끼어들어도요?”

“저는 당연히 괜찮죠. 저는 남궁세가의 정예대원입니다. 스스로 임무라고 생각되면 그 임무를 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아……! 그랬었죠? 그런데 세가에 빨리 돌아가 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며칠 정도면 괜찮아요. 일을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떻게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조각상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물건을 팔고 싶다고 했다면서요? 그러면 우리는 장물아비……. 아니, 중개인을 통해서 사 버리면 되죠. 돈은 얼마를 지불하든 상관없으니까요.”

하현은 류이영에게 싱긋 웃어준 후에 장 노야에게 말했다.

“노야.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공자의 부탁이라면 장씨상단을 넘겨달라 해도 넘겨줄 수 있소.”

“하하.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남궁세가에 서신을 좀 보내주세요. 최대한 빨리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요.”

“얼마든지. 보아하니 굉장히 급한 일인 것 같은데 여기서 곧바로 서신을 써 보내시겠소? 내가 곧바로 보내드리겠소.”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장 노야는 싱긋 웃더니 구석으로 가서 먹과 붓, 그리고 종이를 가지고 왔다.

척 봐도 굉장히 고급의 먹과 종이로 보였지만, 그는 하현에게 내어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현은 능숙하게 먹을 갈고서는 붓에 먹였다.

“소저 서신도 제가 대신 써드릴게요. 신물의 소재를 파악하여 잠시 조사하다 간다고 평경 소협에게 보내면 되겠죠?”

“네. 부탁해요.”

하현은 소매를 걷고서는 종이에 붓으로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저 글을 적을 뿐이건만, 장 노야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굉장한 명필이다. 만약 문사가 되고자 했어도 글자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야.’

허나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오히려 명필이 아니었다면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장 노야였다.

잠시 후.

하현은 서신을 모두 썼고, 종이에 아주 엷게 내공을 불어넣어 먹에 젖은 종이를 말렸다.

이번에는 류이영이 놀라고 말았다.

하현의 무공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공으로 이런 것도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내공의 수발이 뛰어나기에…….’

하현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어쩐지 그녀는 하현과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류이영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하현은 종이를 빳빳하게 접어 장 노야에게 건넸다.

“그러면 남궁세가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만약 저에게 회신할 내용이 있으면 이곳으로 보내달라 하였으니, 엄가상단으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맡겨만 주시오.”

장 노야는 곧장 하인을 불러 서신을 건네주었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좋으니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남궁세가로 보내라며 신신당부했다.

“그러면 노야. 암주화를 만나러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오늘 바로 만나러 가볼 생각이시오?”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우리 상단에서 먼저 연락하여 시간을 잡아야 하니까. 적이 워낙 많기에 이런 식으로만 만날 수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연락이 오는 대로 사람을 보내드리겠소.”

하현은 장 노야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고는 류이영과 함께 나왔다.

“공자. 그 조각상이라는 것이 정말 우리 문파의 신물일까요? 만약 아니라면 저 때문에 헛수고만 하시는 건데…….”

“그건 아직 알 수 없죠. 하지만, 확인해 보지 않고 넘어가면 영 찜찜하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하현은 류이영을 향해 맑게 웃어주었다.

“소저. 이 일은 이제 소저만의 일이 아니에요. 제가 이 일에 관심이 생기고, 흥미가 생겼어요. 이제 제 일이기도 해요.”

“그래도 감사해요.”

“감사 인사는 신물을 찾고 나서 해요.”

“네……. 알겠어요.”

그들은 엄가상단으로 돌아갔다.

숙소에 들어가니 운후가 이제야 잠에서 깨어났는지 침상에 반쯤 몸을 일으킨 채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도련님.”

“이제 일어났어요?”

“네……. 머리가 아프네요. 어제 얼마나 마셨는지.”

그는 아직도 옆에 누워있는 진유강을 툭툭 쳐 그를 깨웠다.

“유강. 이만 일어나게. 해가 중천에 떴네.”

“으으음…….”

진유강도 겨우 몸을 일으켰다.

하현은 그들을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나가서 물을 한 통 가져와 그들에게 따라주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이렇게까지 마시려고 한 건 아닌데.”

“유 형은 잘 들어갔어요?”

“아마도 잘 들어갔을 겁니다. 어제 마지막까지 술을 마신 게 장씨세가의 별채에서였거든요.”

진유강이 겨우 몸을 일으키더니 하현에게 말했다.

“으……. 앞으로 최소한 한 달간은 술을 끊을 것이오. 대장.”

“참내. 평생 안 마신다는 말은 안 하네?”

“그럴 수는 없지. 지금 당장은 마시기 싫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오?”

“하여튼. 말이라도 못하면. 빨리 일어나서 씻고 취기를 좀 내보내. 조금 이따가 가야 할 곳이 있어.”

“오늘 세가에 바로 돌아가는 것이오?”

“아니. 세가로 가는 건 며칠 미루려고.”

하현은 해남파의 신물로 추측되는 물건의 소문을 들었다는 것을 진유강과 운후에게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다면 내가 빠질 수는 없지. 내 영진과 단청에게 신물을 꼭 찾아주겠다고 장담했거든.”

“또 언제 그런 이야기를 했어?”

“금와표국에서 다 같이 술을 먹은 적이 있지 않소? 그때 이야기했소. 하하.”

그는 멋쩍은 듯 웃고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그가 영진, 단청과 함께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신 날은 하현이 평경을 구한 날이었다.

류이영 앞에서 그녀의 대사형이 죽어갈 때 사형제를 데리고 술을 먹었다고 말하자니 영 민망했던 것이다.

“그럼 씻고 오겠소. 하하.”

“도련님.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둘은 후다닥 방을 나가 욕탕으로 향했다.

하현은 그들을 보고 피식 웃고서는 침상에 털썩 주저앉아 류이영과 대화하며 그들을 기다렸다.

최근 류이영은 무리(武理)에 푹 빠져 있다.

하현을 만나고 제대로 된 검법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검의 뜻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깨달음의 영역에 있어서 꽤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하기는 무리를 말과 구결로 푸는 것에 있어서는 단연 중원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하현이 곁에 있기에 발전이 빠른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현과 류이영이 한창 대화하고 있을 때, 운후와 진유강이 돌아왔다.

그런데 둘뿐이 아니었다.

방으로 들어서는 그들 옆에는 처음 보는 사내가 함께였다.

하현은 운후와 진유강을 방으로 들이고는 그 사내에게 물었다.

“누구시죠?”

“혹시 남궁하현 공자님 맞으십니까?”

“네가 남궁하현입니다.”

“저는 장씨세가의 하인입니다. 장 노야께서 말씀을 전하시라 하여 왔습니다.”

“그렇군요. 말씀하세요.”

“종무산(終畝山)에 있는 종무사(終畝寺)라는 절로 오늘 술시 말까지 가시면 된다고 합니다.”

“종무사, 오늘 술시. 잘 들었습니다. 노야께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세요.”

장씨세가의 하인은 꾸벅 인사하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하현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현은 그의 뒤에 서 있던 운후와 진유강을 빙글 돌아보며 말했다.

“들었죠? 준비하세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운기조식을 하셔서라도 취기를 모두 제거하시고, 최상의 몸 상태로 만드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알겠소. 대장.”

하현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말했다.

“저는 잠시 나갔다 올게요.”

“어디를 다녀오시려는 겁니까?”

“엄 상인에게요. 이번 일에는 돈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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