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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천재 외손자-294화 (294/304)

294화

‘해남파의 신물도 저기 있는 건가?’

투귀는 중원 전체에서도 유명한 도둑이다.

그것도 오랜 시간 활동해오면서 그 악명을 쌓아온 도둑.

그래서 그런지 햇빛에 반짝이는 동굴 속 금은보화가 언뜻 보아도 찬란하다.

얼마나 많은 금은보화가 쌓여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스슥- 슥-

하현은 배를 땅에 깔고서 빠르게 그쪽으로 기어갔다.

투귀가 그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얼마나 은밀하게 움직였는지, 겨우 뱀이 기어가는 소리조차도 내지 않으며 그는 동굴에 빠르게 접근했다.

‘기관이며 진이며……. 이걸 만드는 데에도 돈이 굉장히 많이 들었을 거야.’

하현은 감각적으로 이 주변에 흐르는 기운이 조금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투귀가 동굴 바깥으로 나왔다.

‘나온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저 동굴이 그가 창고로 사용하는 곳이 맞다는 소리.

투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금 전 움직인 바위에 손을 가져다 대고 무언가를 했다.

그러자 바위는 우르릉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시 동굴 입구를 막았다.

‘투귀를 쫓아야 하나? 아니면 동굴 확인이 먼저?’

하현은 잠시 고민하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게 있는지 내공을 살짝 끌어 올렸다.

만리향의 향을 쫓을 때의 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금을 맨손으로 만졌어.’

엄상지는 하현이 말한 대로 만리향 한 방울을 잘 떨어뜨려 주었고, 투귀는 아무 의심 없이 그 금덩어리를 맨손으로 만졌다.

그래서 금에 묻어 있던 만리향이 그의 손에 조금이나마 다시 묻은 것이다.

휘익!

주변을 한 번 더 점검하던 투귀는 어디론가 신형을 날렸다.

실로 경쾌한 신법이었다.

신법으로 무림을 농락하는 도둑다운 몸놀림이었다.

하현은 그대로 투귀가 사라질 때까지 숨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너무 오래 가지만 않는다면 그는 만리향으로 언제든지 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멀어져가는 투귀의 기운을 느끼다가, 어느새 그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게 되었을 때, 하현은 몸을 일으켜 바위로 향했다.

그리고 바위를 더듬더듬 만져 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바위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기관을 발동시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아무리 천재라고 불리는 하현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기관의 작동법까지 알아내라 하는 것은 무리였다.

보통, 이 정도로 중요한 물건을 숨겨놓는 곳이면 엄청나게 복잡한 기관을 설치 해두기 때문이다.

종무사에서 보았던 불상처럼 단순하게 한 가지의 동작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하현은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고는 바위에 양손과 어깨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그의 단전에서는 청명한 내공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공이 온몸에 고루 퍼졌다는 느낌이 들 때, 하현은 기합 소리를 내며 바위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흐으아압!”

어찌나 힘을 쓰는지, 평소에는 가냘파 보일 정도로 호리호리하던 하현의 팔뚝과 다리에 근육이 폭발할 것처럼 부풀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집채만 한 바위에 달라붙은 하현의 목과 얼굴의 힘줄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끄으읍!”

얼굴까지 시뻘게지며 하현이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자.

드드득-

움직인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던 바위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런 것은 처음 움직이기가 힘들지, 한 번 움직이고 나면 그때부터는 탄력을 받기 마련이다.

쿠구구구-

하현이 힘을 더하는 만큼 바위는 조금씩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의 틈을 벌리는 것에 성공했다.

“하억, 허억……. 엄청 무겁네.”

하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굵은 땀을 뻘뻘 흘렸다.

여태까지 하현이 밀어보았던 바위 중에서 가장 무거운 바위였다.

바닥을 보니, 기관진식의 장치로 보이는 철판이 하현이 바위를 민 방향 그대로 휘어 있다.

단순히 바위 때문에 무거운 게 아니라, 저 철판이 휘어지도록 힘을 써서 이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하현 때문에 기관이 완전히 고장이 나서 다시 닫아 놓는다고 하여도 기관이 작동할지는 미지수였지만, 하현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생각보다 깊네?”

동굴은 생각보다 깊었다.

바깥에서도 볼 수 있도록 입구 쪽에 쌓여 있는 금은보화 말고도 커다란 상자들이 안쪽에 즐비했다.

하현은 천장에서 은은하게 빛을 내는 야명주를 발견하고는 위로 뛰어올라 그 야명주를 뽑아냈다.

등불 대신 그것을 들고 다닐 요량이었다.

“일단 여기에는 일반적인 패물들이나 금붙이들이고.”

입구 쪽에 있는 금은보화에는 특이한 것은 없었다.

당장 화폐처럼 쓸 수 있는 금붙이들이 놓여 있을 뿐.

생각해보니 조금 전에 투귀가 엄가상단에서 받아온 금덩어리도 이쪽에 던졌었다.

“중요한 물건들은 저기 상자들에 나뉘어 들어가 있겠지?”

하현은 재빨리 상자들로 붙어 하나, 둘씩 열어가면서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확인했다.

상자를 하나 열 때마다, 하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런 게 여기에 다 들어 있었다고?”

투귀라는 이름이 붙어봤자 도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투귀는 보통 도둑이 아니었다.

“이 도자기, 검……. 한 눈으로 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들인데……?”

하현은 무림에서의 경험이 짧기에 이것들이 어떤 물건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이 물건들이 뿜어대는 분위기나 기묘한 느낌은 이것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이 물건들 모두 어디선가 누군가 애타게 찾고 있는 물건일 거야.”

그는 이 물건들의 외양과 특징을 하나하나 꼼꼼히 기억하며 계속해서 상자를 여닫고를 반복했다.

대략 이 다경(약 30분)쯤의 시간이 흘렀다.

“도대체 물건을 얼마나 훔친 거야? 그리고 해남파의 신물로 보이는 것은 여기에 없는 것 같은데…….”

하현은 동굴에 있는 모든 상자를 다 열어보고 닫았다.

여기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돈으로 환산한다면 충분히 황금 백관은 되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하현은 의구심이 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훔친 물건을 쌓아 두기만 하는 거지?”

솔직히 하현이 도둑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투귀의 행태는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조금 이상했다.

만약 자신이 그였다면 이 정도의 재물을 모았다면 이제는 도둑질을 그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황금 백 관, 아니 열 관만 있어도 어느 지방의 소도시에서는 대부호로 떵떵거리며 평생을 살 수도 있다.

도둑질은 보통 돈 때문에 하는 것이니, 그 돈은 차고 넘치도록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암주화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라면 이 물건들을 현금화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거고 말이야.”

하현은 머리로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아마도 해남파의 신물은 따로 빼놓은 것 같았다.

아니면 그가 금은보화를 숨겨두는 곳이 이곳 한 군데만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철컥- 철컥-

적막 속에서 하현이 상자를 여닫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기왕 상자 대부분을 다 열어본 것, 모든 상자를 확인하고 가자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잠시 후.

하현은 모든 상자를 열어보았지만, 수많은 보물만을 확인했을 뿐, 황금으로 된 조각상은 찾아낼 수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 보네. 정말 투귀를 잡아서 추궁해 봐야 하나…….”

하현은 실망한 목소리로 조금 전의 상자들을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투귀도 정말 성격이 특이하네. 꼭 상자를 이런 식으로 쌓아 두어야 했나? 보통 사람이라면 차곡차곡 쌓아두었을 텐데……. 이건 상자들로 무슨 문양을 만든 것도 아니고……. 어?”

혼잣말을 내뱉던 하현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시 한번 불규칙하게 세워져 있는 상자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거 설마……?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하현은 상자로 급히 달려가 상자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옮겨 다른 한쪽에 쌓기 시작했다.

무슨 규칙을 가지고 쌓는 것도 아니고, 안에 내용물을 신경 쓰는 것도 아닌 단순히 지금 있는 자리에서 치우기 위해서 옮기는 것이기에 그 속도는 엄청났다.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속도로 상자를 모두 치우자, 가장 아래에 있는 상자들만이 남게 되었다.

그 상자를 옮기려고 해봤지만, 역시나.

상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맨 아래에 있는 상자는 바닥에 붙어 있어. 위에 상자들을 이상하게 쌓아 둔 건 가장 밑에 있는 상자를 숨기기 위함이었던 거야.”

그리고 이 상자가 바닥에 붙어 있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를 의미한다.

진 아니면 기관.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그 답을 찾아내었다.

달칵!

상자가 덜걱거리기에 하현은 그 상자를 오른쪽으로 돌려보았고, 그러자 상자가 오른쪽으로 돌아가 태엽이 맞는 것처럼 철컥하고 무언가 연결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붙어 있는 상자는 모두 네 개.

그는 네 개의 상자를 모두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쿠구구-

천천히 상자 가장 가운데 부분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그 아래 공간에서 상자 하나가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상자는 돌기둥 위에 얹혀 있었는데, 상자가 아니라 돌기둥이 위로 솟아오르는 기관이었다.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거야? 어?”

하현은 돌기둥에 무언가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글귀는 아니었다.

그곳에 쓰여있는 글씨는 단 두 글자.

유사(柳思)

하현은 그 글씨를 보고서 깜짝 놀랐다.

만약 하현이 공동파에 갔다 오기 전이었다면 이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도 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십응검객이 되기 위해서는 유사(柳思)라는 장인이 만든 기관진식을 통과해야 하오.’

공동파에서 십응검객을 선발하기 위해 사용하는……. 아니, 이제는 회상도인의 지휘 아래 공동파 무인들이 수련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공동파의 기관진식을 만든 장인이 바로 유사였다.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장인이기에……?”

하현은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그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하현은 바닥에서 떠오른 돌기둥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 위에 얹혀 있는 상자를 향해서.

얼마나 중요한 물건이기에 이런 비밀 상자에까지 넣어 두는지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철컥-!

상자는 매끄럽게 열렸다.

최근에도 이 상자를 사용했다는 증거였다.

하현은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이 느껴졌다.

번쩍-

상자 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니, 정말로 빛이 난 것은 아니겠지만, 야명주의 불빛을 반사한 것만으로도 그렇게 찬란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 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자 안을 본 하현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찾았다.”

그 상자 안에는 다른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급스럽고 반짝거리는 물건들이 몇 개 들어 있었는데, 그 중에는 검을 쥔 사내를 본떠 만든 조각상도 있었다.

분명 이것이 해남파의 신물이 분명했다.

스윽-

하현은 천천히 신물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빛난다.

마치 누군가의 무공을 보고, 그 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의 그 눈빛.

하현의 상단전과 백회혈이 작열할 때 보이는 바로 그 눈빛이다.

‘어째서 이걸 신물이라고 불렀는지 알 것 같아……!’

하현은 머리끝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물을 바라보던 것을 멈출 수는 없다.

텁-!

결국 하현은 신물을 손에 쥐었고.

화아아악-!

이상한 기운이 그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조각상에서 내공이 뿜어져 나왔다는 것은 아니다.

하현은 이 내공을 파낸 사람의 의지와 얼이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일었다.

‘이것은……. 그냥 조각상이 아니다. 검흔이다.’

얼마 전 무당파에서 장삼봉 진인이 태극혜검으로 무당파의 봉우리를 깎아 낸 것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다.

이 조각상은 그냥 금으로 조각한 것이 아니다.

조각상이 만들어진 흔적, 검에 의한 상처, 굴곡……. 이 모든 것이 해남파의 검법을 품고 있었다.

‘이것이 해남파의 검!’

류이영과의 교류를 통해서 해남파의 검에 대해서 기본 지식이 있었기에, 더욱 잘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현은 지금 이 순간. 해남파 사조의 깨달음을 그의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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