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77)

제3장 아야츠지 아야세

잇키와 결전이 벌어지는 날 아침.

아야세는 9시쯤 나른한 기상을 맞이했다.

밤중에 잇키와 결별하고 나서 아야세는 자기 방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잇키와의 교섭도 그랬지만, 시합을 위한 사전 준비 등으로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비치된 2층 침대에서 기어나오니 테이블 위에는 룸메이트가 두고 간 편지가 있었다.

『어제, 오지 말라고 해서 오늘 시합은 보러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고민거리가 있으면 상담하도록 해.

최근에 어두운 얼굴을 한 아야세를 보고 있으면 정말 걱정돼.』

"……정말 변변치 않은 여자로구나, 나는."

은인을 배신하고 룸메이트에게 이렇게나 걱정을 끼쳤다.

『우리들의 긍지를 더럽히고, 자신의 긍지까지 던져버리고, 그 끝에 그 '무언가'를 되찾는다고 해서 선배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겠어?!』

"……윽."

잇키가 비통한 목소리로 내던진 물음이 지금도 귓속에 남아울려 퍼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오늘은 이겨야만 하는 시합인데도.

이것은 곧바로 시정해야만 한다.

기분을 전환하고, 몸을 다잡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아야세는 오전 중의 시간을 이용해 어떤 장소를 향하기로 했다.

하군 학원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전철로 15분 정도. 

아야세는 목적지인 시설에 도착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여름 하늘에 눈부시게 우뚝 선 하얀색의 병동.

이곳은 '시시도 종합병원'. 

하군 학원에서 가장 가까운 큰 병원이었다.

그 병원의 515호실이 아야세의 목적지였다.

아야세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막힘 없이 목적지에 다다라 슬라이드 도어를 열었다.

병실 안에는 덩그러니 놓인 침대가 하나뿐.

이곳은 1인실이었다.

그리고 침대 곁에는 파이프 의자에 걸터앉은 몸가짐이 단정한 중년 여성이 있었다.

중년 여성은 문을 연 아야세를 보더니 놀라움의 목소리를 냈다.

"어머, 아야세 아니니!"

"안녕하세요, 스즈카 고모."

"안녕. 이런 시간에 웬일이니. 학교는?"

"오늘은 자유출석이에요. 그날에 대표선발전을 앞둔 학생은 당일 수업을 면제받아요. 그래서 그 시간을 이용해 병문안을 하러 왔어요."

"헤에, 선발전도 그렇고 룸메이트도 그렇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구나, 새 이사장은."

쿠로노의 방침을 그대로 설명하자 고모는 납득해주었다.

고모는 파이프 의자에서 일어서서 침대로 향하더니, 

"오빠, 귀여운 딸이 만나러 와주었어."

침대에 누운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광대뼈 형태로 삐쩍 마른 볼. 

메마른 대지처럼 갈라진 피부. 

겨울의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

여위어서 미라처럼 변한 그 남자야말로, 아야세의 아버지 아야츠지 카이토였다.

"안녕, 아빠."

고모에 뒤이어서 아야세도 말을 걸었다.

그러나 카이토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계속 잠을 잤다.

그랬다……, 계속 잠든 것이었다. 

2년 동안이나.

"그럼 부녀 사이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기도 미안하니, 나는 밖에 있는 카페에 있을게. 아야세는 몇 시까지 있을 거야?"

"오후부터 시합이라 정오에는 여기를 나갈 거예요." 

"오케이. 그럼 그쯤 되면 돌아올게. 그럼."

바이바이 하고 손을 흔들고 나서 고모는 병실을 뒤로 했다.

언제 보아도 쾌활한 사람이었다. 

조금은 오빠에게도 그 쾌활함을 나눠주었으면 싶었다.

'……아니. 다르구나. 아빠도 예전엔──.'

그때였다.

"…………으, …………윽."

침대 위에 누운 카이토가 입술을 작게, 떨리는 듯이 가냘프게 움직였다.

"아빠……."

항상 있는 일이었다.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늘 하던 말을.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들릴 만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입술의 움직임을 아야세는 기억했다.

미안하다.

"……윽!"

아야세의 이가 빠드득 갈렸다.

고함치고 싶은 원통함과 괴로움을 이를 갈면서 참았다. 

그날부터 줄곧, 카이토는 아야세에게 계속해서 사과했다.

지킬 수 없었던 일을. 

맡길 수 없었던 일을. 

그저 홀로, 영원히 이어지는 그 장맛비 속에서…….

※※※

알겠니, 아야세. 

어떤 때라도 높은 긍지를 잊지 말거라. 

우리들의 검은 인간을 죽이는 힘이야. 

너회들의 이능은 인간을 뛰어넘은 힘이지.

그렇기에 높은 긍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마음을 잃으면 그 힘은 단순한 '폭력'이다.

항상 예절을 중히 여기고, 약자를 도우며 악을 미워해라. 

결코 힘에 취하지 말고 어떤 상대라도 정정당당하게 맞서라.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에게도, 부끄러움 없는 기사가 되어라.

그것이 아야세의 아버지 '라스트 사무라이' 아야츠지 카이토가 아야세에게 늘 들려주던 말이었다.

힘을 가진 자의 책임.

카이토는 그 점을 잘 이해했기에 블레이저로서 태어난 아야세에게도 검을 가르치며 무예의 도덕을 철저히 주입시켰다.

아야세가 힘에 취해 교만을 떨고 우쭐거리는 싸구려 인간이 되지 않게끔.

카이토의 교육은 빈말로라도 쉽다고는 할 수 없었다.

혹독. 

그렇게 말해도 좋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아야세는 카이토가 말하는 고상한 강인함이 좋았다.

검을 휘두르는 늠름한 아버지의 등이 좋았다.

자신이 한층 성장할 때마다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는 카이토의 커다랗고 까칠까칠한 손이 좋았다.

자그마한 도장과 열 명 정도의 문하생과 아버지와 자신.

결코 유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곳에는 따스한 시간이 흘렀다.

그것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줄곧 이런 시간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아야세는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그 바람은 무정하게도 산산이 부서졌다.

2년 전 비오는 날…….

아야세의 일상에 나타난 한 남자의 손에 의해.

※※※

아야세가 하군 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2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계절은 딱 장마 초.

하늘은 무거운 비구름으로 뒤덮이고 바람마저 눅눅한 찌고 더운 시기.

수업이 끝난 후 기숙사에 돌아가지 않고, 아야세는 빗속에서 우산을 쓰고 본가에 있는 도장으로 향했다.

물론 목적은 학원에서는 어찌해보아도 배울 수 없는 검술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아야세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카이토는 심장에 지금의 의료 기술로도 치유 불가능한 병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 무렵에는 검을 휘두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카이토가 마지막으로 검을 쥐었던 것은, 하군 학원에 입학이 정해진 아야세에게 자신이 고안해낸 '오의'를 맡겼을 때. 솔직히 말해 더 이상 검을 휘두를 만한 몸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장에는 카이토에게 '아야츠지 일도류'를 배우러 오는 문하생들이 있었다.

수는 적지만 아야세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라스트 사무라이' 밑에서 검을 배운 실력자들이.

그중에서도 준사범인 스가와라는 카이토에게는 미치지 않았지만 아야세보다 훨씬 강했다.

그래서 스가와라에게 지도를 받기 위해 아야세는 이 무렵 주에 3번 정도의 빈도로 본가에 다녀갔다.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가 맡긴 '오의'를 쓸 수 있게끔 강해지고 싶었기에.

그 때문에 이 길을 오가는 일은 아야세에게는 반쯤 일과가 되었다.

그러나 그날, 제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열어둔 문을 지나려는 참에.

──아야세는 그녀의 일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이형'과 맞닥뜨렸다.

"어?"

우연히 마주친 사람은 박쥐 우산을 쓴 키가 큰 소년.

머리카락을 밝은색으로 물들이고 입에 문 담배. 

눈빛은 굶주린 늑대처럼 날카롭고, 난잡하게 흐트러진 돈로 학원의 교복 사이에서는 해골 문신이 엿보였다. 

어딜 보아도 도장이나 무도 같은 예절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흉악하고도 흉포한 외견의 소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성이 껄끄러운 아야세는 그 위압적인 겉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핫."

그 모습을 소년──쿠라시키 쿠라우도는 놀리듯이 웃더니, 

"또 보자."

흐린 하늘로 뒤덮인 회색 마을로 모습을 감추었다.

'뭐지, 저 사람…….'

어째서 저렇게 너무나 불건강하고 불건전한 차림새를 한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도 돈로 학원의 교복. 

즉, 그는 블레이저였다.

어느 쪽을 보아도 검술 도장과는 인연이 멀었다. 

길이라도 물어보러 왔던 것일까.

그렇게 아야세는 의문을 띠우면서 집안 부지 안에 있는 도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제기라알! 저 녀석, 용서 못해!"

아야세와는 소꿉친구라고도 할 수 있는 문하생 중 한 사람. 

준사범 스가와라의 고함소리가 도장 안에서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아야세는 서둘러 도장 여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평상시처럼 활기 있는 검 싸움 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았다.

스가와라를 포함한 일곱 명 정도의 문하생들은 모두 분노에 이를 악무는 표정으로 서 있었고, 사범인 카이토도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정좌해 있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야세는 스가와라에게 물었다.

"아까 전, 이상한 차림을 한 양아치 같은 녀석이 갑자기 쳐들어왔어. '이 도장을 걸고 승부하자'라며."

"도장 격파, 인가요."

"응. 그렇지만 사범님은 몸이 상하셨고, 무엇보다 '아야츠지 일도류'는 그런 도박 같은 드잡이 시합은 금지하잖아."

그 사실은 아야세도 알고 있었다.

아야츠지의 검은 '지키기' 위한 검. 

항상 카이토가 했던 말이었다.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키기 위한 검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검도 아니었다.

그 이념 아래 공식 시합 이외의 사투를 아야츠지 일도류는 엄격히 금했다.

"그래서 사범님은 그 시합을 거절했어. 그랬더니……."

"그 녀석, 사범님을 한물갔네 겁쟁이네 얼간이네 실컷 바보 취급하고서 사범님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그저 양아치인 주제에, 능력을 쓸 수 있다고 잘난 체하긴……."

문하생들이 차례차례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어린 시절부터 도장에 뺀질나게 드나들던 그들은 카이토를 친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렇기에 카이토가 모욕당한 일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리라.

그에 대해서는 아야세도 마찬가지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사실 하나를 듣기만 해도 온도가 2도 정도 올라가는 감각을 느꼈다.

"제길, 녀석의 신발자국이 아직 남아 있어. 신성한 도장을 흙발로 밟다니……. 스승님의 몸이 만전이었다면 저런 꼬맹이는 단번에 해치울 텐데……."

"그 말은 틀렸다, 닛타."

문하생 중 한 명이 툭 흘린 말에 지금까지 줄곧 침묵을 지켰던 카이토가 날카로운 목소리를 찔러 넣었다.

"설령 몸이 만전이었다고 해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어. 아야츠지의 검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검이기 때문이지. 무익한 다툼을 위해 휘두르는 검이 아니야. 오늘날 이미 검으로 사람을 지키는 시대는 아니지만 마음가짐만은 잊어서는 안된다."

"예, 예! 죄송합니다! 반성합니다!"

나직한 음성이면서도 날카로운 카이토의 질책에 닛타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좋아. 다른 사람들도 손이 놀고 있다! 벌로써 검 휘두르기 천 번 추가다!"

카이토는 닛타에게 아야츠지 검도를 설교하고 나서 손 바닥을 짝 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문하생들도 "옙!" 하고 그에 이어 대답하자 도장에는 평소의 활기가 돌아왔다.

"좋아, 아야세. 빨리 도복으로 갈아입고 와. 아야세를 그런 힘에 취한 블레이저로 만들 수야 없지. 오늘은 엄하게 단련시켜주겠어."

"예! 잘 부탁드립니다!"

활기가 돌아온 도장의 광경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야세는 서둘러 탈의실로 향했다.

그러나 그 도중…… 도장에서는 맡은 적 없는 향기가 코를 솔솔 자극했다.

그 냄새는 쿠라우도가 남기고 간 담배연기의 남은 향.

그 남은 향이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아야세가 사랑하는 일상을 휘감았다.

마치 불길함을 나르는 뱀처럼.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예감은 들어맞았다.

※※※

다음 날. 그날도 아야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찌무룩한 빗속에서 도장까지 왔다.

"안녕하세요. …………어?"

인사하며 도장 문을 열었지만 안에는 방석에 정좌한 카이토만 있었다.

"아빠만 있어? 다들 나보다 늦다니 별일이네."

"그렇구나. 녀석들이 한꺼번에 지각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야."  

카이토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전원이 다 같이 지각하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늦게 오는 일은 간간이 있었다. 

우연히 그것이 한 번에 겹쳤을뿐이리라.

이때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해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뭐, 기다리면 곧 오겠지. 어디, 모처럼 두 사람뿐이니까 오랜만에 내가 직접 검을 봐주마."

"봐주는 건 기쁘지만, ……휘두르면 안 돼. 아빠는 병에 걸렸으니까."

"걱정도 팔자구나, 아야세는. 괜찮아, 보는 것뿐이야. 최근엔 비가 계속 와서 몸 상태도 그다지 좋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렇게 해서 아야세는 다른 문하생들을 기다리는 사이, 카이토에게 하군 진학 때 전수 받은 '오의'를 펼칠 때의 자세를 보여주기로 했다.

아야세는 목검을 정안 자세로 들고 양발을 약간 벌렸다.

허리를 살짝 숙이고 어깨에 힘을 뺐다.

그날 보았던, 자기 안의 기억에 남은 카이토의 움직임을 더듬었다.

한 과정 한 과정 신중하게. 

그러나──. 

"틀렸어."

곧바로 카이토에게서 지적이 날아들었다.

"어깨의 힘은 빼도 팔의 힘은 풀지 마. 좀 더 손목을 조여. 그러나 결코 힘을 주지 마. 자연체를 마음에 새겨라."

"우, 그건 어려워."

"그걸 할 수 있어야 '오의'를 다룰 수 있어.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여주마."

그렇게 말하고 카이토는 벽에 세워 놓은 목검에 손을 뻗었지만──. 

"뚫어져라."

"…………."

"뚫어져라아아아아아."

"……………………알았다, 알았어. 안 휘둘러. 안 쥐어. 그럼 되겠지."

뒤에서 비난의 시선을 뿜어대는 아야세의 기세에 꺾여서 양손을 들고 항복 자세를 취했다.

"정말이지. 그런 부분은 세상을 뜬 엄마를 많이 닮았구나. 엄마도 나를 비난할 때 입으로는 말하지 않고 그렇게 뚫어져라 하고 노려보곤 했지."

"당연하지. 엄마에게서 배웠으니까. 아빠가 바보 같은 일을 하려고 하면 이렇게 막으라고."

"모녀 2대에 걸쳐 꽉 잡혀 살다니 배겨낼 수 없구나." 

카이토는 한숨을 한 번 쉬고서 아야세의 뒤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아야세를 등 뒤에서 끌어안는 자세로, 자신의 양 손을 목검을 쥔 아야세의 양손에 겹쳤다.

"잘 들어. 손목의 각도는 이거야. 이 오의의 핵심은 칼을 공격 자세에서 무너뜨리지 않는 점에 있어."

자신이 하군으로 진학하는 딸에게 주는 선물로 맡겼던 오의의 요소를 설명하면서 카이토는 아야세의 자세를 손 보았다.

아야세의 손을 감싼 딱딱하게 굳은 손바닥의 감촉.

'……크구나. 아빠의 손.'

아야세는 그 결코 부드럽다고는 할 수 없는 그 감촉이 정말 좋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딱 달라붙어 배우는 것도 꽤 오랜만이야.'

"……후후."

그 점을 의식하자 어쩐지 괜스레 기뻐져서, 아야세는 새가 지저귀듯이 까르르 웃음을 흘렸다.

"왜 그래.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아빠와 이렇게 딱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배우는 건 오랜만이라고 생각해서. 그게, 어쩐지 기뻤어."

아야세는 카이토의 두터운 가슴통에 콩 기대어 어리광부리듯이 뺨을 가져다 대었다.

두근두근, 완만하게 새겨지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고동 소리를 들으면서──. 

"……줄곧 이런 온화한 시간이 이어지면 좋을 텐데."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

카이토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사실을 카이토는 알았다. 

물론 아야세도.

카이토의 생명은 이제 결코 길지는 않았다.

지금 들리는 이 고동이 멈추는 때는 착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이토는 아직 미숙한 아야세에게는 벅찬 오의를 전수했던 것이다.

'앞으로 몇 년, 아빠는 살 수 있을까.'

사별의 각오는 이미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아야세는 바라는 것이었다.

그 마지막 날이 이 순간처럼 온화한 날이 되기를.

──그리고 그 바람은 가장 잔혹한 형태로 배신당하게 된다.

순간, 도장의 여닫이문이 덜컥 열렸다.

드디어 문하생들이 왔나 하는 생각에 아야세와 카이토 두 사람은 입구로 눈을 향했다.

그곳에 있던 이는 확실히 문하생 중 한 사람, 준사범인 스가와라였다. 

그렇지만, 

"스, 스가와라 오빠──?!"

아야세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스가와라가 머리와 몸 여기저기에 붕대와 거즈를 붙인 딱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상처, 대체 어쩐 일이냐?!"

카이토의 안색을 바꾸며 스가와라에게 달려갔다.

달려온 사범을 보고 스가와라는 일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사범 님…………. 죄송합니아아아아!!"

그대로 도장 바닥에 머리를 찧듯이 엎드렸다.

얼굴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훌쩍이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범상치 않은 일이라는 사실은 곧바로 깨달았다.

"고개를 들어라. 이 상처는…… 넘어진 것은 아니구나. 대체 누구에게 당했느냐?"

"저, 저기, 어제 왔던 남자에게 당했습니다……."

"뭐라고……?!"

"어젯밤, 도장에서 돌아가는 길에 녀석이 우리들 일곱 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무토막으로 때리려고 덤벼들었다고요! 그 녀석, 제정신이 아니에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사람 머리를 깨부수려고 하다니, 맛이 갔어요……! 그래서 저희들, 어쩔 수 없이 전원이서 맞서려고 했지만…………."

일러

스가와라는 그 부분에서 크게 흐느끼더니,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능력을 사용하기는커녕, 마력으로 몸을 지키지도 않는 그 남자를 상대로 일곱 명이 달려들어도 건들 수조차 없었습니다!!"

"……윽!"  

그 말에 충격을 받아 아야세는 숨을 삼켰다.

스가와라는 물론이고, 다른 문하생들도 아야세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아야츠지의 검을 휘둘러온 자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니.

'그 녀석, 그렇게 강했던 건가…….'

"사범님께 몇 년이나 검을 배우고서도 ……그런 양아치 한 명에게 농락당하다니! 정말로 죄송합니다아아!!"

"더 이상 사과하지 마라! 그보다 다들 무사한가?!"

"……닛타는 도련님이라서 캡슐로 치료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입원했습니다."

캡슐은 건강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서 사용하려면 그 나름대로 비용이 들었다.

그래서 일곱 명 중 스가와라와 닛타를 뺀 다섯 명은 아직 병실에서 누워 있는 모양이었다.

심한 사람은 두 번 다시 팔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이도 있다고 했다.

그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나서 마지막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들더니,

"선생님……, 저희들은 선생님을 동경해서 지금까지 노력해왔습니다. 선생님 같은, 긍지 높은 남자가 되고 싶어서요. 그렇지만……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저희들이 몇 년이나 계속 해온 노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눈물을 흘리면서 카이토에게 질문했다.

"…………윽."

사형의 너무나도 무참한 그 모습에 아야세는 할 말을 잃었다.

준사범으로서 아야세에게 검을 지도해주던 스가와라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 눈동자는 절망과 공포로 흐려졌다.

스가와라의 마음은 더 이상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만큼 너덜너덜 부러진 것이었다.

아니, 스가와라뿐만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더 이상, 검을 쥘 수 없습니다……."

스가와라는 흐느끼면서 품 안에서 일곱 명 몫의 사퇴서를 꺼내 들었다.

그랬다. 

여기에 없는 여섯 명 또한 스가와라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부러진 것이다.

'너무해………….'

어째서 이런 짓을 할까.

어째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다들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똑바로 검의 길을 걸어왔는데.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어째서 장난치듯이 꺾어버릴 수 있나.

아야세는 이해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인 남자가, 

"하핫, 이건 재미있는 상황에 맞닥뜨렸구만."

""윽?!""

노린 듯한 타이밍으로 도장에 나타났다.

"설마 전원 관둬버리다니, 좀 지나치게 괴롭혔나."

"히, 히이이이이이이이이익!!"

그 모습을 본 순간, 스가와라는 여자처럼 비명을 지르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도장 안으로 도망쳤다.

"이거 봐, 그렇게 도망치지 마. 상처 받는다고."

낄낄, 품위 없는 목소리로 웃으면서 쿠라우도가 흙투성이발로 도장에 들어섰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힉, 히이이익!"

"그, 그만둬! 무서워하잖아!"

함께 줄곧 검의 길을 걸어 온 동료의 비참한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아야세는 스가와라를 보호하듯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 어깨를 딱딱한 손바닥이 붙들었다.

카이토였다.

카이토는 아야세의 어깨를 천천히 끌어당기더니, 교대하듯이 앞으로 나서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노려보았다.

"무슨 용건이냐."

"조건은 어제와 같아."

"거절했을 텐데."

"오늘 오면 다른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아서 말이지이. 하핫." 

"그런가. 너는 오로지 나를 끌어내기 위해서 내 제자에게 이런 짓을 했던 거냐."

"그래. 도저히 어제 하루로는 그쪽 여자에게는 손을 쓸 수 없었지만."

"…………어째서냐?"

"엉?"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너는 블레이저다. 학원이든 칠성검무제든, 날뛸 곳도 상대도 부족함이 없을 테지.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나에게 연연하나."

"또 영문 모를 소리를 묻지 마, 꼰대. 은거하더니 마음의 날도 녹슬었나?"

"……!"

그 말에 카이토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하핫…… 뭐 좋아. 이유 따위 간단하지. 나는 과시하고 싶다고. 내 강인함을. 내 힘을! 블레이저라든지 보통 사람이라든지 관계없어. 눈에 띄는 녀석 전부에게 말이야!" 

이를 드러낸 입으로 말히는 쿠라우도의 동기를 듣고 아야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런 시시한 일을 위해서…… 이런 심한 짓을…………!"

"시시해? ……핫, 뭐가 말이야. 강한 녀석과 싸우고 싶다. 강한 녀석을 짓뭉개고 싶다. 그런 건 당연한 감정이잖아."

"웃기지 마!"

이런 녀석이 좋을 대로 설치게 내버려 둘까보냐.

"몇 번을 와도 소용없어! 이곳은 너 같은 인간이 흙발로 들어와도 되는 곳이 아니고, 그저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만 휘두르는 싸구려 검술은 없어! 아빠, 지금 당장 경찰을 부르자!!"

그러나 카이토는──.

"아니.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어."

작게 중얼거리더니, 

"아야츠지 일도류 도장은 네 도전을 받아들이겠다. 규칙은 유효타 2점 선취로 승리. 목도 사용. 마력 사용은 없기로 해도 괜찮나."

터무니없게도 쿠라우도의 도장 격파를 받아들였다.

"무슨, 아, 아빠!"

"사, 사범님!"

카이토가 쿠라우도의 승부를 받아들인다는 뜻을 입에 담은 순간, 두 사람의 제자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카이토를 말렸다.

"그만두십시오, 사범님! 이런 녀석과 싸우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사범님께서는 심장이……!"

"그래, 아빠! 그런 몸으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한다면 내가 대신 싸울게!"

카이토의 딸인 아야세는 물론이거니와, 아까 전까지 쿠라우도에 대한 공포로 자지러져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스가와라 역시 자신의 공포를 억누르고 필사적인 모습으로 카이토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카이토는 표정에 작은 미소를 띠우더니,

"고맙구나, 두 사람 다. 그렇게 내 몸을 걱정해준 너희들의 다정함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기에──."

카이토의 뇌리에는 아까 전에 들었던 말이 새겨졌다.

『저희들이 몇 년이나 계속 해온 노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런 너희들을 상처 입힌 이 녀석을, 내가 용서할 수 있을 리 없잖나아아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이 남자만은 자신의 손으로 쓰러뜨리겠다.

귀기 어린 형상으로 쿠라우도를 노려보는 카이토의 눈동자에는 뚜렷한 각오와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아야세는 할 말을 잃었다.

깨닫고 만 것이었다. 

자신이 하는 말로는 더 이상 그를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아빠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 이상 막지 않을게. 내가 심판으로서 이 싸움을 끝까지 지켜보겠어."

"아아, 잘 부탁한다."

"꼭, 이겨…… 아빠." 

기도하듯이 바라는 아야세에게 옆에서 멋없는 웃음이 날아들었다.

"이봐. 결론이 났으면 얼른 시작하자고. 이제 슬슬 기다리기 지쳐버렸어."

"……알고 있어."

아야세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더니, 바닥에 발을 구르며 재촉하는 쿠라우도에게 무기가 될 목도를 내던졌다.

"하핫, 난폭한 여자구만."

"규칙은 아까 아빠가 말했던 대로, 유효타 2점 선취로 승리. 무기는 목도. 마력 사용은 금지야. 알고 있겠지."

"확인할 것까지도 없어. 대등한 승부여야 싸우는 의미가 있지."

쿠라우도의 웃음 속에 송곳니가 번쩍 빛났다.

그의 두 눈은 이미 단 한 곳, 카이토만을 응시했다.

한편 카이토도 정신을 집중하는 것인지 목검을 오른손에 쥐고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양쪽 모두 준비는 다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야세는 심판으로서, 

"그럼 양쪽 서로 마주 보고, …………시작!"

두 사람이 벌이는 싸움에 개시 신호를 내렸다.

※※※

"하핫! 간다!"

개시 선언이 나온 순간, 바람을 가르며 쿠라우도가 카이토를 목표로 달려갔다.

다리 힘에 맡기고 돌진해서 간격을 줄이더니 정수리를 노려 목검을 내리쳤다.

대기를 가르며 휘두르는 일격에 기술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리에서 나오는 힘의 전달도, 겨드랑이 조임을 통한 넓적등근의 활용도, 무엇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팔의 힘만으로 내젓는 거친 휘두르기.

명백하게 초심자의 검술. 

그런데도──. 

'빠르다!'

달인인 카이토의 눈으로 보아도 그 날카로움은 이상했다.

직접 받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카이토는 사뿐한 걸음걸이로 재빨리 베기 공격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순간, 쿠라우도의 목검은 카이토의 코끝을 스쳐 그대로 도장 바닥을──조각냈다.

"정말 무식한 힘……!"

심판인 이야세가 동요하는 목소리를 냈다.

바닥을 쪼개는 일격이 아버지의 안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서야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카이토는 달랐다.

지금 아슬아슬한 회피는 일부러 그랬다.

사뿐한 발걸음을 이용한 미세한 간격 조정은 검객의 기본 기술.

굳이 간발의 차이로 피한 이유는 카운터를 가늠하며 벌어진 간격을 최소한으로 억누르기 위해서.

바닥을 쪼갤 정도로 힘찬 휘두르기, 당연히 방어 태세로 돌아가는 동작은 늦어진다.

그 일순간의 틈이 달인을 상대로 하는 시합에서는 결정적인 기회가 된다!

그리고 '방어 후 선공'을 잡는 카운터는 '아야츠지 일도류'가 가장 자랑하는 분야였다.

카이토는 쿠라우도의 검 끝이 바닥을 헤집는 순간에, 이번에는 다리를 앞으로 미끄러뜨리며 간격을 반보 줄였다.

그곳은 카이토의 공격 범위──.

"──윽!"

작게 숨을 토하며 이번에는 카이토가 검을 되돌려주었다.

똑같은 내려치기.

그러나 카이토의 일격은 아까 전 쿠라우도의 야만스러운 일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빨랐다.

그 속도는 운요와 같았다. 

병들어 쇠약해졌다고는 해도 일찍이 '라스트 사무라이'라고까지 불리던 희대의 천재.

초심자의 검술에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첫 공격이 크게 빗나간 쿠라우도에게 이 일격을 피할 재간은 없다.

──그럴 터였다.

"핫하아!"

카이토의 손바닥에 저릿함이 찌릿 되돌아왔다.

쿠라우도의 정수리를 명중한 감각은 아니었다. 

쿠라우도의 목검이 내려친 카이토의 검을 쳐올려 자신의 검을 튕겨냈다. 

그 충격에 뼈가 삐걱거린 것이었다.

"의외라는 낯짝이구만, 꼰대. 지금 걸로 결판이 날 거라 생각했나?"

"……그래. 솔직히 되받아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그 대응은 정말로 놀라웠다. 

완전히 상정 외라도 해도 좋았다.

그러나 그 상황에 일일이 동요를 드러낼 만큼 카이토는 미숙한 검객이 아니었다.

'대단히 감이 좋군.'

아무래도 이쪽이 카운터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반응 속도는 있을 수 없었다. 

인간이 낼 속도가 아니었다.

그러나──한 번 막아낸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이토가 지닌 패는 아직 더 존재했다.

"으쌰! 보답이다아!!"

다시 기교도 없이 같은 궤도, 같은 속도로 내리치는 강한 검.

과연 분명히 그 위력에 있어서는 무시무시하리라.

제대로 맞으면 목도는 산산조각 날 것이 틀림 없었다.

그 공격을──카이토는 굳이 목검으로 받아내었다.

피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카이토의 책략이었다.

회피하고 나서의 공격이 읽힌다면 애초에 회피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카이토는 목도와 목도가 맞물린 순간, 자신의 목도가 부러지기 전에 빠르게 손목을 교묘히 조작해 방어하는 목검 검신의 각도를 틀더니 강렬한 충격을 바깥쪽으로 흘렸다.

충격을 흘려보내자 쿠라우도의 목도가 주르륵 바깥쪽으로 미끄러져 쿠라우도는 크게 자세가 무너졌다.

받고 피하는 것은 원시적인 방어에 지나지 않았다.

무예는 더욱 위의 영역에 존재하는 획기적인 방어술을 짜내었다.

바로 '받아넘기기'였다.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내어, 결코 받기만으로 끝내지 않고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넘긴다.

그에 따라 적의 몸은 비틀거리고 자세는 무너져서 결정적인 틈이 생긴다.

그리고 그 틈을, 이번에야말로 카이토는 잡았다.

"하아아!!"

엇갈리는 때 깊고 깊게 카이토의 목도가 쿠라우도의 몸통을 후려쳤다.

카이토가 주특기로 하는, 받아넘기기에서 이어지는 카운터는 트집 잡을 데가 없이 교과서 같은 유효타로 들어갔다.

"몸통! 한 점!"

"하아…… 하아…………."

심판인 아야세가 유효 판정을 내린 순간, 

'이, 감각………….'

손바닥에 묵직하게 되돌아온 유효타의 감촉에, 느닷없이 카이토는 자신의 마음이 술렁이는 감각을 느꼈다.

'……뭐냐, 이 느낌은.'

"과연 사범님! 도저히 병자의 움직임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빠, 굉장해……! 역시 아빠는 굉장하다고!"

자신의 선취점에 기쁨의 목소리를 내는 제자들에게, 카이토는 내심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들키지 않게끔 웃는 얼굴을 보인 뒤 다시 눈앞에 있는 적을 바라보았다.

마침 쿠라우도가 옆구리를 누르면서 무릎을 떼던 참이었다.

"하핫……, 과연 '라스트 사무라이'. 이렇게 날가로운 한 방을 먹기는 처음이야. 그렇지만…… 이게 전력이냐? ──그렇다면 죽는다고, 꼰대."

한 점 잃고서도 쿠라우도는 그 표정에서 투지가 사라지지 않았다.

눈동자는 아직 형형하게 굶주리고 목마른 빛으로 카이토를 찔렀다.

"그럴 리가 있나. 지금부터다, 꼬맹이."

"좋아. ……그럼 이쪽도 다음엔 진심으로 간다아아!"

다시 쿠라우도가 흉악한 웃음을 띠면서 다리 힘에 맡긴 돌진으로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 내리친 공격은 세 번이나 같은 억센 검.

'지치지도 않고……! 소질은 좋지만 역시 일반인인가!' 

확실히 이족의 카운터를 예측하고 막았던 일 합 때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격은 그저 감정과 근력에 맡겨 휘두를 뿐. 

그렇게 단순히 위력이 높기만 한 검은 탁월한 검객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것으로 끝낸다……!!'

카이토는 다시 받아넘기기 자세를 취했다.

내려친 일격을 밖으로 흘리고 나면 끝이다. 

카이토도, 옆에서 보고 있던 아야세와 스가와라도 그렇게 확신했다. 

그러나, 그때 내려친 쿠라우도의 목도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뭣?!' 

순간, 카이토의 늑골이 부러지는 소리가 도장에 울려 퍼졌다.

※※※

쿠라우도의 목검에 몸통을 얻어맞은 카이토가 그 자리에서 털썩 무너져 내렸다.

조악하고 난잡하지만 트집 잡을 데 없는 한 점.

그러나 아야세는 그 판정을 냉정하게 내릴 여유가 없었다.

무너져 내리는 카이토가 옆구리를 누르며 피를 토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범상치 않은 양이었다.

명백히 내장이 파열했다.

그 사실을 알아채고 아야세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카이토에게 달려갔다.

"아빠! 괜찮아?!"

"오지 마…………!"

그러나 다가 온 이야세에게 카이토는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그러나 강한 어조로 일갈했다.

"아직 시합은, 끝나지 않았어……! 공정한 판정을 내릴 수 없다면 물러서라!"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야세에에!!"

제지를 무시하고 다가오려 드는 아야세에게 피보라를 토해내며 카이토가 고함쳤다.

아야세는 지금껏 몇 번이고 아버지에게 호통을 들어왔지만, 이 목소리는 그것들과는 전혀 달랐다.

직접 심장을 때리는 것만 같은, 공포마저 느껴지는 맹수의 포효.

"내 결투다! 방해하지 마라아!!"

"아, 우………… 아, 빠?!"

여태까지 들어본 적 없는 카이토의 진심 어린 그 고함소리에 아야세는 기겁했다.

"괜찮아! ……나는, 이긴다…………!"

입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카이토는 일어섰다.

그의 핏발선 눈동자는 한 군데, 쿠라우도만을 응시했다. 

불타오르는 투기를 끓이며.

"간다! 꼬맹이────이이이이이!!!!"

카이토가 달려갔다.

"하핫! 몇 번을 덤벼도 마찬가지야!"

맞서 싸우는 쿠라우도.

세 번째 시작하는 두 사람의 검 싸움.

그러나 그 대결은 이미 일방적인 것이었다.

카이토는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

반년 동안 검을 쥐지 않았기 때문에 무뎌진 움직임 또한 공방의 하나하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밀렸다.

무자비하게 휘둘러대는, 기술도 아름다움도 없는 노골적인 폭력에 짓눌렸다.

간신히 마구잡이 공격을 목검으로 막고는 있지만 더 이상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신창이 상태인 카이토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이려고, 쿠라우도가 다시 아까 전 카이토에게서 한 점을 빼앗았던 '기술'을 펼쳤다.

아래에서 비스듬하게 올려치는 몸통 공격.

카이토는 그 동작에 재빨리 방어 태세를 취했다.

목검을 세우고 받는 자세. 

그러나 카이토의 목검에 부딪히기 직전, 쿠라우도의 목검이 안개처럼 사라지더니 다시 카이토의 몸을 때렸다.

이번에는 두개골로 내려치기.

영문을 몰랐다.

어째서 몸통을 올려치려던 검이 바로 위에서 내려칠 수 있는 것일까.

그 거동은 일반적인 인간의 성능을 뛰어넘었다.

무언가 속임수일까. 

진위는 알 수 없었다. 

아무도 간파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려친 목검은 확실히 카이토의 머리 위에 있었고, 무자비하게 카이토의 두개골을 깨부순다.

그럴 터였다.

"뭐야?!"

놀라움은 쿠라우도의 것.

결정타를 확신한 일격은, 그러나 두개골을 때리지 못하고 카이토의 목덜미로 낙하. 

쇄골을 부러뜨렸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유효타를 벗어나게끔 카이토가 회피한 것이었다.

"윽, 이건 유효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꼬맹이!"

"…………하핫, 다죽어가는 주제에!! 몸부림치지 말라고!!"

카이토의 배를 걷어차며 간격을 벌리더니, 쿠라우도는 다시 야만스러운 검을 휘두르며 덮쳐들었다.

쇄골을 향한 일격이 유효타가 되지 않았어도 카이토의 체력을 깎아낸 것이리라.

카이토의 음직임은 이미 맨 처음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무디고 흐릿해서 셀 수 없이 많은 타격을 맞았다.

날카로운 목검의 일격에 뼈가 부서지고 피부가 찢어져서 피보라가 도장을 적셨다.

그래도…… 그래도 카이토는 마지막 유효타만은 넘겨주지 않았다.

온몸이 피로 젖으면서도 두 다리로 서서 계속 싸웠다.

'……어째서!'

아야세는 카이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패배임은 이미 명백했다.

그런데 어째서 싸움을 그만두지 않는가. 

어째서 무릎을 꿇지 않는가.

"그만둬……. 이제…………그만둬…………."

퍽퍽, 살을 얻어맞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쿠라우도의 붉게 물든 목검이 핏방울을 흩뿌렸다.

"하하핫! 하핫핫하하하하핫!!!!"

피에 물든 쿠라우도의 높은 웃음이 울려 퍼졌다.

이미 카이토는 그저 맞는 것을 견딜 뿐이었다.

승부가 아니었다. 

시합이 아니었다.

눈물로 번진 아야세의 시야로는 더 이상 카이토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애당초 의식이 있는지조차 볼 수 없었다.

멈춰야 해.

멈춰야 해.

멈추지 않으면──아빠가 목숨을 잃는다!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아야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카이토가 흘린 피로 옷이 더러워져도, 부러진 카이토의 이가 볼에 달라붙어도.

아까 전 카이토의 포효로 힘이 빠진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만둬, 더 이상 싫어! 도장 같은 건 이제 상관없어! 더 이상 아빠를 때리지 마아!!"

아야세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야세의 외침은…… 사선 가운데 선 두 사람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다.

카이토는 무릎을 꿇지 않았고, 쿠라우도 역시 때려눕히는 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윽────."

순간, 온몸을 피로 물들인 카이토가 마지막 공격 자세를 보였다.

목도를 정안 자세로 겨누고, 똑바로 쿠라우도를 노리며 달려갔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윽!"

이미 유효타를 막기만 했던 빈사의 사냥감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것인지, 쿠라우도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그러나 쿠라우도는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목검을 힘껏 휘둘렸다.

표적은 이쪽으로 향해오는 카이토의 머리.

바람을 가르며 다가오는 목검에도 카이토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정안 자세로 겨눈 목검을 꿈쩍이지도 않고 떨어지는 낙뢰 같은 일격에 아무런 방어 태세도 취하지 않았다.

단순한 자포자기인가. 

얼핏 무모해 보이는 그 행동의 의미를,

'저, 자세는────!'

아야세는 알았다.

그것은 '라스트 사무라이' 야츠지 카이토가 인생 전부를 걸고 다다른 아야츠지 검의 오의.

이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을 유일하게 감춘 기술.

그러나 병들어 쇠약해진데다 상처를 입은 카이토가 그 기술을 쓸 수 있을 리도 없는지라──, 

"그만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무정한 일격이 카이토의 두개골과 의식을 산산이 부수었다.

"아…………." 

2점째 유효타.

그 공격이 들어간 순간에 카이토의 몸이 지면에 털썩 무너져 내렸다.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반쯤 광란 상태로 아야세는 쓰러진 카이토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불러보았지만 카이토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카이토의 입에서는 그저 줄줄 선혈이 흐를 뿐.

"싫어, 싫어어어어어어!"

"……흥, 시시해. 생각보다 싱겁구만."

덜그럭 소리를 내며, 아야세의 눈앞에 쿠라우도가 쓰던 목검을 내던졌다.

그 목검은 튄 피로 거무튀튀하게 더러워지고, 뼈를 너무 부서뜨려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다.

그 모양새를 보고 아야세는 시야가 붉게 물들 정도로 살의를 느꼈다.

그 딱딱한 목검이 이런 꼴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때린 것인가 하고.

"이, 짐스으으으으으으으응!!!!"

이성이 끊어져버린 아야세는 '히즈메'를 구현시켜 쿠라우도를 베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히즈메'를 내리치려고 했던 팔을 쿠라우도가 잡아들고서, 가볍게 아야세의 몸을 매달아 올렸다.

"그렇게 열 내지 말라고. 난 피라미에게는 흥미 없어."

"놔! 놓으라고오오오오오오오오!"

"무엇보다, 너는 지금 나와 싸울 때가 아니잖아?"

그렇게 고하며 쿠라우도는 아야세의 몸을 카이토 위로 던져버렸다.

"윽!"

그 행동에 아야세도 간신히 지금 가장 먼저 해야만 하는 일을 떠올렸다.

"스가와라 오빠! 구급차를! 구급차를 불러요! 빨리!"

"어, 어어!"

도장 구석에서 아연히 서 있던 스가와라에게 지시를 내리고 나서, 아야세는 필사적으로 카이토의 의식을 깨우려고 소리쳐 불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흥미 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흘낏 보고 나서 쿠라우도는 그 자리를 뒤로했다.

"내일까지 짐을 챙겨서 나가. 여기는 더 이상 네놈들 게 아니니까."

떠나갈 때 그 사실 하나를 고하며.

아야세는 분한 마음에 이를 삐걱거릴 정도로 악물었다. 

그때였다. 

가슴께에서 카이토가 신음하는 소리를 흘렸다.

"미……안…………하다…………." 

"아빠!"

시선을 떨구며 카이토를 보았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그저 나약하게 흘러나오는 숨결처럼, 그는 사죄의 말을 입에 담았다.

2년 전 그날, 아야세는 모든 것을 잃었다.

도장은 간판도 땅도 전부 쿠라우도에게 빼앗기고… … 문하생들과도 그 이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카이토 자신도…… 호되게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 잠은 지금까지도 깨지 않았다.

카이토는 지금까지도 그 악몽의 날 안에 갇혀서, 그리고…… 줄곧 쉼 없이 사죄하고 있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렇게.

지킬 수 없었던 제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아야세에게 맡길 예정이었던 '아야츠지 일도류'의 모든 것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아빠는 이제 올해 겨울까지는 못 버틸지도 몰라.'

그것은 의사가 고한 시한부 선고였다.

사별 자체는…… 병이 드러난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그 점은 이미 납득했다.

그러나 이대로 아버지가 악몽 속에 영원히 남겨지는 일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만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그래서 아야세는 요 2년간, 도장의 새 주인이 된 쿠라우도에게 몇 번이고 결투를 신청했다.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도장을 되찾기 위해.

그러나 카이토조차 당해낼 수 없었던 쿠라우도에게 아야세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마치 사자가 귀찮게 달라붙는 새끼 고양이를 다루듯이 아야세의 도전을 몇 번이고 물리쳤다.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덤벼드는 무모한 여자의 모습을 동료끼리 구경거리 삼아 즐기던 쿠라우도였지만, 그것도 질렸는지 이제 와서는 문전박대할 뿐 더 이상 상대해주지 않았다.

아야세가 다시 한 번 쿠라우도와 싸우려면 칠성검무제에 나가서 그 자리에 나타난 쿠라우도에게 이기는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아야세도 쿠라우도도 3학년이라서 카이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지금, 다음 칠성검무제가 마지막 기회.

그 기회를 놓치면 아버지의 혼은 영원히 실의의 어둠에 사로잡혀버린다. 

그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수를 써도 이겨야만 한다.

결과를 얻을 것. 

그 점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수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 방식이 올바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코 그릇되지 않았다.

약자가 강자에게 이겨야만 한다면 수단 따위는 가리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나는 반드시, 도장을 되찾을 거야. 설령 쿠로가네가 두 번 다시 용서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고 실의의 밑바닥에 잠긴 아버지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이제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시금 자신의 시작점을 돌이키며 아야세는 마음을 굳혔다.

아야세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다.

아야세는 이제 망설이지 않는다.

설령 누구에게 자랑할 수 없어도 상관없었다.

반드시 이겨서 도장을 되찾는다. 

그 목표가 아야츠지 아야세의 전부이기에.

『네에, 그러면 기다리셨습니다! 시간이 되었기에, 지금부터 오늘의 제6훈련장 제1시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합의 실황중계는 저, 방송부 3학년 이소가이가 해설은 1학년 1반 담임 오레키 유리 선생님이 담당하겠습니다! 오레키 선생님, 오늘은 안색이 좋으시군요!』

『아직 제1시합이잖아~. 세 번째 시합쯤 되면 다들 너무 좋아하는 평상시의 유리가 될거야~♪소 그렇지만 괜찮아. 혈액 비축 분량은 리터 단위로 준비했으니까~.』

『과연! 아무래도 오늘도 실황중계석에는 피로 된 비가 내릴 것 같네요! 그럼, 여러분이 고대하시던 선수 입장을 시작합니다!』

방송부 여학생의 중계로 그날 첫 시합 선수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우선 청 코너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10전 10승의 퍼펙트게임을 이어가는, 요즘 주목받는 F랭크 기사! 1학년 쿠로가네 잇키 선수입니다!』

잇키가 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절구 모양 관객석에서 새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워스트원'을 응원하러 온 여학생 팬들이었다.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환성으로 회장이 들끓습니다. 굉장한 인기네요!』

『쿠로가네는 여성 팬이 많구나.』

『저렇게나 강한데 F랭크라는 사실이 뭐랄까, 보답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응원해주고 싶어진다고요!』 

『선생님도 그 마음은 알 것 같네.』

『얼마 전까지 어느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했던 무명의 유급생이었습니다만 하군의 체제가 바뀌게 되자 타고난 높은 실전 능력을 무기로 두드러지게 두각을 나타내, 지금은 칠성검무제 대표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으로서도 손꼽을 수 있게 된 '워스트원'! 오늘은 어떤 싸움을 보여 줄까요! 그리고 지금, 오늘 그를 상대할 선수가 적 코너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찬가지로 10전 10승의 훌륭한 전적을 거두며 11회전 째에 임하는 사람은, D랭크 기사 3학년 아야츠지 아야세 선수입니다!』

잇키에 이어서 검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아야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이하게도 아야츠지 선수 또한 쿠로가네 선수와 마찬가지로 요즘 보기 드문 '검술가'인데, 지금까지 치른 시합을 모두 검기만으로 이겨왔습니다. 더욱이 대회 실황중계에 협력해주는 '하군 학원 벽신문부' 소속 쿠사카베 카가미 양에게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아야츠지 선수는 놀랍게도 쿠로가네 선수에게 검기 강의를 받는 제자이기도 하답니다! 즉, 오늘의 대결은 사제 대결이라는 말이로군요! 제자는 이 강한 스승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쿨럭. 아야츠지 양에게는 이번 싸움이 중요하겠구나.』

『네. 아야츠지 선수는 '사냥꾼'이나 '러너즈 하이' 같은 유력 선수를 물리쳐 온 쿠로가네 선수와는 다르게, 지금까지 아래 등급인 E랭크 기사와만 부딪쳐왔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엄청나게 뽑기 운이 좋았던 10연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야츠지 양은 어떤 블레이저야아?』

『그것이 아야츠지 선수에 관해서는 정보가 거의 없네요. 작년까지 공식전에는 한 번도 출전하지 않아서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고, 올해도 아까 전에 말씀드렸듯이 검기 하나로 이기고 올라와서 대체 어떤 능력을 숨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아야츠지 선수가 숨겼을 비장의 카드가 무엇 인지도 이 싸움의 우열에 크게 기여하겠지요! 자, 그리고 양 선수가 지금 개시선에 다다랐습니다!』

두 사람은 직경 약 100미터가 되는 링 중앙에서 20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섰다.

얼마 전까지는 아나운서가 설명한 대로 함께 검을 휘두르며 같은 시간을 지낸 동료 사이였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 사이에 그런 온화한 분위기는 없었다.

'……무서운 얼굴이야.'

아야세는 잇키의 표정을 보고 그런 감상을 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잇키의 표정은 여태껏 본 적 없을 만큼 딱딱하고 험악했다.

화내고 있었다.

반칙이라는 무인으로서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할 행위에 손을 댄 자신에게.

그러나 아야세는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이 길을 나아가겠다고 결심했기에.

'오히려……잘됐어.'

자신이 행한 사전 공작으로 잇키는 마력을 완전히 회복 하지 못했다.

'일도수라'를 쓸 수는 없을 터였다.

게다가 잇키는 명백하게 힘이 들어갔다. 

평상시의 자연체가 아니었다. 

그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분노는 냉정함을 빼앗고, 냉정함의 결여는 잠재력 저하로 이어진다.

자신과 잇키와의 사이에 있는 차이가 역력한 이상, 깎을 수 있는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전력을 줄여야만 한다. 

그러니 이 상황은 반가운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아야세에게는 '비장의 카드'라고 할 만한 덫이 있었다.

아야세는 새벽녘, 잇키와 대면하기 전에 그것을 짜놓았다.

'이 정도로 냉정함을 잃은 지금이라면 간단히 덫으로 뛰어들지도 몰라…….'

『그러면 여러분 따라 외쳐주세요. ──LET's GO AHEAD(시합개시)!!!!』

시합 개시를 알리는 부저가 울린 순간, 

"────!"

마치 스프린터(단거리 선수) 같은 반응 속도로 검은 칼을 든 검사는 아야세를 향해 달려왔다.

몸을 낮추어 다리 힘뿐만이 아닌 온몸의 탄력을 이용해서 질풍처럼 질주했다.

완전한 개막 기습.

아직 자신의 오른손에 든 붉은색 일본도 '히즈메'를 만족스럽게 들어 올리지 못한 아야세는 이 공격에 대응할 수 없다.

그러나────그것은 단순한 검객끼리 맞붙었을 때의 이야기!

두 사람은 '블레이저'였다!

"걸려들었다!!"

목소리와 동시에 아야세의 디바이스 '히즈메'가 그 검신에서 선혈을 연상시키는 붉은빛을 뿜었다. 

그 순간, 

──잇키의 온몸에서 피보라가 뿜어져나왔다.

"그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잇키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속도를 잃었다.

보아하니 잇키의 온몸에는 몇 가닥의 검상이 그어져 있었다.

『무, 뭐뭐뭐뭐죠, 지금 거어어어어언!!!! 나, 난데없이 쿠로가네 선수의 몸이 난도질당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오오오오오오?!?!』

"이, 잇키?!"

"뭐야?! 무슨 일이 일어 난 거야?! 갑자기 '워스트원'이 피를…………." 

관객들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술렁였다.

아무도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먼 간격에 있는 사람을 순식간에 회치는 터무니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은 당연히…… 노블 아츠뿐이었다.

그랬다, 이것이야말로 아야츠지 아야세의 디바이스 '히즈메'가 지닌 능력.

'내 능력은──「'히즈메'의 칼날에 베인 검상을 벌리는」것.' 

상대방에게 낸 검상을 자유자재로 벌림으로써 어떤 작은 상처라도 '중상화'시키는 힘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에게 썼을 경우의 이야기.

아야세의 능력은──공간에 대해서도 쓸 수 있었다.

'히즈메'가 쓸어 벤 대기의 상흔을 임의의 타이밍에 열어 순간적으로 진공의 날──카마이타치를 발생시킨다. 

그것이 노블 아츠 '바람의 손톱자국'.

아야세는 동트기 전 잇키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가기에 앞서, 시합의 무대가 될 이 제6훈련장에 찾아와 링의 곳곳에 '히즈메'로 손톱자국을 내어 베기 공격의 지뢰를 배치했던 것이었다.

'나는 이 손톱자국을 100개 이상이나 링 여기저기에 배치했어. 아무리 쿠로가네가 간파의 달인이라고 해도, 보이지 않는 베기 공격은 막을 턱이 없어! 실제로 이번에 쿠로가네는 손쉽게 내 덫에 걸렸지.' 

물론 이런 행위는 반칙이었다.

시합 도중에 손톱자국을 새긴다면 문제가 없지만, 시합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에 트랩을 설치하는 행위는 완전한 규칙 위반이었다.

그러나 카마이타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속임수를 눈치채기 어려웠다. 

정규 마도 기사인 감독 오레키라면 이것을 눈치챌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오레키도 반칙 사인은 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할 수 있어!' 

오레키를 속여 넘기고 아야세는 확실한 반응을 느꼈다.

'바람의 손톱자국'으로 만든 카마이타치는 '상처를 벌린다'는 개념계 마법의 부산물이었다.

솔직히 살상력은 높다고 말하기 힘들어 결정타가 부족했다.

그러나 '히즈메'가 낸 직접 베기 공격은 달랐다.

아야세가 지닌 능력의 성능상, '히즈메'의 검신으로 생채기라도 내면 그 시점에서 승리를 확정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상처를 벌린다'는 것을 이용해 뼈가 보일 때까지 살을 찢어서 중상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아야세의 목표는 '바람의 손톱자국'으로 잇키를 농락하면서 '히즈메'로 베기 공격을 한 방 때려 넣는 일.

'그것을 해내면 이 시합, 이길 수 있어!'

남은 문제는 그 상처를 입히기 위해 언제 수를 쓰느냐.

잇키는 어지간한 검객이 아니었다. 

그 사실은 잇키에게 지도를 받았던야세가 가장 잘 알았다.

섣불리 앞으로 나가면 도리어 당한다.

지금의 기습으로 타격을 주었지만, 전진을 멈추었을 뿐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상처를 입고서도 최저한 적을 맞받아칠 수 있는 몸자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니 아직 일러. 여기에서는 걸 수 없어. 그리고 여기에서 내가 걸지 않으면 쿠로가네가 취할 행동은 하나.'

돌진의 기세는 끊어졌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이 깊은 상처를 입는 결과를 얻었다.

심정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이쯤에서는 한 호흡 돌리고 싶은 상황. 

그렇다면, 

『이런 쿠로가네 선수, 뒤로 백스텝! 수수께끼의 베기 공격을 앞에 두고 이 상황에서는 다시 태세를 고쳐야겠다고 판단했을까요!』

'──그때를 노려 친다!!'

"컥?!"

『아아아?! 이게 웬일입니까! 쿠로가네 선수, 이번에는 뒤에서 베였습니다!! 도대체 링 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오!!』

아야세가 만들어낸 것은 이중 삼중 겹겹이 둘러친 베기 공격의 감옥.

도망칠 곳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을 베이자 마침내 잇키의 무릎이 땅으로 떨어졌다.

결정적인 틈. 

그리고 아야세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

여기에서 결판낸다! 

그 마음가짐을 품고 아야세는 잇키를 향해 진격했다.

『쿠로가네 선수가 무릎을 꿇은 순간, 아야츠지 선수가 공격해옵니다!! 이거 큰일이군요! 이런 자세로는 자랑하던 검술도 선보일 수 없다고요오오!!』

베기 공격의 감옥을 만들어낸 이상, 아야세에게는 장기전으로 끌고 가 철저하게 잇키를 소모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아야세는 승부를 걸었다. 

아야세는 두려웠던 것이었다.

'쿠로가네는, 그 '사냥꾼'에게 이긴 사내야.'

그것도 단순히 이겼을 뿐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대인최강의 노블 아츠로 이름 높은 '에어리어 인비저블'을 깨지 않고 모두 받아낸 채 '사냥꾼'을 쓰러뜨렸다는 사실.

그 시합에서 잇키에게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사냥꾼' 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스트원'은 보이지 않는 '사냥꾼'을 붙잡아 쓰러뜨렸다.

어쩐지 두려울 정도의 통찰력. 

그것을 통해서라면 아야세의 사고를 거꾸로 읽어서 '바람의 손톱자국'의 위치를 간파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염두에 두지도 않을 가능성이었지만, 쿠로가네 잇키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장기전으로 야금야금 체력을 깎아도 정신적으로 다시 일어서면 곤란했다.

'워스트원'의 무서운 점은 체력보다도 그 통찰을 지탱하는 정신력 쪽이기에.

'그렇기에──지금 간다! 생채기만이라도 좋아! 그것만으로도 승패는 갈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상황에 아야츠지 선수가 맹공!! 러시, 러시, 러시이이이이!! 붉은색 칼을 치켜들며 무릎을 꿇은 쿠로가네 선수를 향해 베기 공격의 비를 퍼붓습니다!! 쿠로가네 선수, 불안정한 자세로는 받아내는 것이 고작인가?! 이대로 베기 공격의 비를 새기게 될 것인가?! ……아니?! 이, 이런 쿠로가네 선수, 한쪽 무릎을 꿇은 불안정하고 불리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붉고 거센 비를 '음철'의 날로 막아냅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칼날을 일격도 놓치지 않습니다!』

'……크윽, ……!'

닿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스치면 이길 수 있는데 그 조금이 아득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자세이면서도, 리스트(손목) 놀림만으로 자신의 연이은 공격을 봉쇄하는 잇키에게 아야세는 혀를 내둘렸다.

과연…… 일부에서는 '어나더원'이라고까지 불리는 기사.

간단히는 결판나게 해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잇키는 쏟아지는 베기 공격을 받아내면서 땅에 닿았던 무릎을 일으키고, 

"핫!!"

『저 상태에서 상대의 칼 놀림을 견뎌낸 쿠로가네 선수, 드디어 자세를 바로 세우며 반격에 나섰습니다아!』

펼친 기술은 때려 넣으려는 듯이 크게 휘두르는 내려치기.

잇키치고는 거칠게 힘에 의존한 일격이었지만, 그러나 그 행동도 생각한 바가 있어서 한 일.

──이는 아나운서가 말하는 것 같은 '반격'이 아니었다.

자세를 바로 세워도 불리한 자세로 검 공격을 계속 받아내서 무너진 리듬은 간단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잇키로서는 이 시점에서 한 박자 여유를 두고 싶은 때. 

그렇기에 휘두르기를 행했다.

상대가 피하면 당연히 거리가 벌어지고, 받아내면 타격력으로 상대방을 사정권 밖으로 튕겨낼 수 있다.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도 잇키에게 유리했다. 

고심한 일격이었다. 

그러나──아야세는 이 수를 읽고 있었다!

'여기다!'

잇키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아야세는 이 순간이야말로 이길 기회라고 보았다.

아야세가 수련한 '아야츠지 일도류'는 받아넘기기를 통한 카운터를 장기로 하는 유파.

'진심으로 하는 쿠로가네의 베기 공격에 내 수준으로 카운터를 먹이는 건 보통이라면 불가능해.'

잇키의 검 솜씨는 너무 날카로웠다. 

섣불리 손을 대면 데이는 사람은 이쪽.

'그렇지만 이 내려치기는 달라!'

이것은 그저 밀착 상태를 꺼려 거리를 두려고 휘두를 뿐인 위협의 검.

거칠기는 해도 날카롭지는 않았다.

'이 검이라면 나도 받아넘길 수 있어!'

판단은 일순이었다. 

아야세는 '히즈메'를 비스듬하게 겨누고 철퇴처럼 내려치는 무거운 공격을 밖으로 미끄러뜨리며 흘렸다.

받아넘기기와 동시에 땅을 박차는 다리의 엄지에 힘을 실어 아야세는 몸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노리는 것은 카운터.

받아넘기기에 의해 상체가 기울어진 잇키의 텅 빈 몸통을 노려, 스쳐 지나갈 때 '히즈메'를 휘둘렀다.

'들어갔다!'

아야세는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돌아온 것은 뱃살을 가르는 감촉이 아니라 딱딱한 무언가를 때리는 감각.

'막았다! 어떻게!'

칼은 바깥쪽으로 흘려 넘겼는데, 그 타이밍에 어째서 방어를 취할 수 있나.

그 대답은 잇키의 손에 있었다.

잇키는 흘려 넘겼던 '음철'의 칼자루 끝으로 아야세의 카운터 몸통 베기를 막아낸 것이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 카운터를 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쿠로가네 선수, 칼자루로 막았습니다!! 이 무슨 트릭 플레이!』

『쿠로가네는 스텔라와의 모의전에서도 비슷한 방어를 했지. 검신으로 받을 수 없는 공격은 칼자루로 받는다. 칼과 칼자루의 이중 방어진. 여전히 크로스 레인지는 철벽이구나.』

'……큭! 그러고 보니 쿠로가네는 이런 변칙 방어도 능숙히 다룰 수 있었어…………!'

오레키의 해설에 아야세는 혀를 찼다.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이 정도의 집중을 유지할 수 있나? 

냉정함은 잃었을 터인데──. 

"──윽?!"

의문을 떠올리며 잇키의 표정을 들여다본 아야세는 경악에 빠졌다.

그 모습에는 아까 전까지 보였던 분노와 초조의 빛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잇키는 차분한, 파문 하나 일지 않는 샘을 연상시키는 고요함이 깃든 눈동자로 아야세를 내려다보았다.

'설마, 꼬임에 넘어간 건……?!'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오한에 아야세는 그 자리에서 반응했다.

발꿈치로 강하게 지면을 박차고 크게 잇키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추격해올 것인가 싶어 자세를 가다듬었지만 잇키는 아야세를 쫓지 않았다.

아야세를 추격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서 있었다.

지금 내린 판단은 자신의 착각인가, 지나치게 경계를 하고만 것인가.

'어쨌든 태세를 바로 잡았어.'

덫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장기전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지만, 무리하게 단기 결전을 노려서 물리면 본전도 못 건진다. 

역시 다음부터는 좀 더 신중하게──.

"……다행이다."

순간, 대치하던 검은 칼을 든 사무라이가 안도했다는 듯이 한숨을 흘렸다.

"뭐?"

다행이라니 무어가 말인가.

이쪽이 간격을 벌린 것을 말하나.

말하는 의미를 추측하려고 아야세는 사고를 회전시켰지만,

"역시 아야츠지 선배는,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사람이었어."

그녀의 사고는 잇키의 기뻐 보이는 미소 앞에 얼어붙었다.

잇키가 내뱉은 말에 한 사람, 다정한 미소를 띠우는 여성이 있었다.

잇키의 담임이자 이 시합의 해설 및 감독을 맡은 오레키 유리였다.

오레키가 오늘 아침, 담임교사로서 교사를 파손한 잇키에게 사정청취를 하던 때의 일이었다.

『선생님. 오늘 선생님께서 감독하실 제 시합, 제 대전 상대는 틀림없이 반칙을 쓸 겁니다.』

『푸우우우우우웃!!!!』

너무나 갑작스러운 말에 오레키는 커피와 함께 코피를 뿜고 말았다.

『잠, 어? 잠깐, 코피를 멈출 테니 그 사이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주겠어?!』

그 상황에서 오레키는 밤중에 잇키와 아야세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의 전말을 들었다.

아야세가 잇키를 불렀던 일.

불러낸 뒤 그 자리에서 잇키의 전력을 깎으려고 뛰어내린 일.

아야세를 구하려고 능력을 사용해서 교사를 부수었던 일.

『그,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말로 그렇다면 레드카드 한 장. 

비록 퇴학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시합의 추첨에서는 확실하게 빼야만 할 행위였다.

『그, 그렇지만 어째서 시합 중에 반칙을 쓸 거라고 아는 거야?』

『……펜스를 절단했을 때, 아야츠지 선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칼 소리는 확실히 그 순간 들렸어요. 그 점에서 살펴보면,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아야츠지 선배의 능력은 '베기 공격의 배치 및 임의 발동' 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아마도 이미 회장이 될 제6훈련장의 링에 트랩 설치를 마쳤으리라 생각해도 틀림없겠죠. 아무튼 제 비장의 카드를 제거하기 위해 자살 흉내까지 낼 정도니까요. 분명 시합 중에도 아마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확실히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시합에서 깨끗한 수단을 쓰리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우우우우, 그렇지만 자살 미수에 방해 행위라니……, 그게 사실이라면 큰 문제야, 이건.』

『그렇지만 제 증언만으로는 증거가 되지 않겠죠.』

『그렇겠지. 선생님은 쿠로가네를 믿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증언만으로는 좀 움직이기 힘들어. 그렇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선생님도 경계해둘게. 혹시 반칙을 쓰면 곧바로 시합을 멈출게. 그러니까 쿠로가네는 안심하고──.』 

『아뇨, 이 시합, 반칙 판정을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다시 오레키의 코에서 피가 뿜어져나왔다.

오레키는 빈혈로 심하게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코에 휴지를 쑤셔 넣고서 잇키에게 물었다.

『어? 뭐야, 뭐야, 어쩌자는 거야? 그런 말을 하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럼 어째서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이 일을 말한 거야?!』

『교사를 부순 이유를 물으시면 말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아마 오레키 선생님이시라면 저에게 아무 말도 듣지 않으셔도 아야츠지 선배의 반칙을 알아채시겠죠. 알아채시고 그 자리에서 시합을 멈춰버리실 겁니다. 그렇지만…… 그건 관두셨으면 합니다.』

『어째서?! 혹시 정말로 반칙이 일어나면 몰수시합으로 쿠로가네의 승리가 되잖아? 이 대표 선발전에서의 한 싸움 한 승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지?』

『예. 아마도 무패를 유지해야 대표로 남겠지요.』

『그래. 이제 툭 까놓고 말하는데, 현재의 진행 상황으로는 모두 이겨야 대표에 남을 수 있어. 그 사실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너는 이 시합의 반칙 판정을 내리지 말아달라고하는 거니?』

일러

『네.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오레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잇키는 누구보다 승리에 굶주려 있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오레키는 잇키를 수험생 시절부터 알았다. 

잇키의 입학 시험을 담당한 사람은 자신이었기에.

잇키 정도로 의욕과 목적의식을 강하게 품은 수험생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잇키가 어른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부당함에 1년을 헛되이 보낸 사실에는 오레키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체제가 바뀌고 간신히 평등한 기회를 얻은 올해. 

잇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고 싶을 터.

그런데도──어째서 자신에게 기사로서 삼가야 할 궁극의 터부를 범한 상대를 위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일까.

『…………이유를, 가르쳐주겠어?』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믿고 싶어?』

『예. ……밤중에 이야츠지 선배를 만나고 나서 저는 줄곧 생각했습니다. 친구가 말한 대로 여기에서 아야츠지 선배와의 인연을 싹둑 잘라버리면 이 일전은 확실하게 제 반칙승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정말로 그걸로 좋은가 싶어서요. 생각해보고 생각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저 한 가지 제가 알게 된 점이 있습니다.』

『그건 뭐야?』

『아야츠지 선배와의 인연을 끊고 싶지 않다는 제 자신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마지막의, 정말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믿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아야츠지 선배는 무언가에 쫓겨 궁지에 몰린 나머지 자신을 잃어버렸을 뿐이라고요.』

잇키는 알았다.

조금 더 아버지의 검에 다가갔다는 사실에 아이처럼 신이 나 들떠서 기뻐하던 아야세의 웃는 얼굴을.

자신의 굳은살로 엉망이 된 손바닥을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던 아야세의 말을.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어젯밤에 보았던 아야츠지 선배가 아니라, 평소의 아야츠지 선배를 믿자고.』

필사적인 상황이 되었을 때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맹목적이 된다.

그렇다, 자기 자신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잇키는 그 사실을 몸소 겪어 보아서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제삼자의 말이라는 사실도.

그래서 혹시 아야세가 그때의 자신처럼 너무 필사적이 된 나머지 마음의 비명이 들리지 않을 뿐이라면, 

『저는 아야츠지 선배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제게 아야츠지 선배의 진의를 확인할 마지막 기회를 허락해주십시오.』

'……정말이지. 그런 말을 하면 거절할 수 있는 기사가 어디 있겠어.'

항상 공정하라. 

적에게도 성실하라.

기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기 모습의 이상형이었다.

그것은 오레키도 마찬가지. 

그래서 오레키는 잇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물론 아야세의 반칙은 한눈에 눈치챘지만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이 시합을, 그리고 한 명의 소녀의 마음을 잇키에게 맡기기로 결심했기에.

객쩍은 일은 하지 않는다. 

오레키는 그저 조용히 잇키를 지켜보았다.

'도와주렴. 네 소중한 친구를──.'

간단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잇키의 손바닥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링에 트랩을 설치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장기전을 꺼리는 작전 방침을 간파했다.

그렇기에 단기 결전을 노리며 공격해오게끔, 잇키는 스스로 베기 공격에 발을 들였던 것이다.

모든 것은…… 아야세와 검으로 대화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잇키는 자기 자신의 얼빠진 행동에 쓴웃음이 번졌다.

아아, 그랬다, 자신 같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연인의 마음조차 1개월이나 알아채지 못한 남자가 말만으로 아야세를 이해하기는 무리였던 것이었다.

결국 자신에게는 검뿐이었다.

검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남의 본심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지금 분명히 잇키는 아야세의 본심을 알아차렸다.

"다행이야. ……역시 아야츠지 선배는,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의 사람이었어."

"……무슨 뜻이야?"

"아야츠지 선배는 잘못된 일을 하고서도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지."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아하핫. 그만큼 너덜너덜해지고도 잘도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사람이 좋은 거 아니야?"

밤중에 옥상에서 보였던, 그 비웃는 냉소로 아야세는 잇키를 흘겨보았다. 

그러나──.

"헛소리 같은 게 아니야."

잇키는 더 이상 그런 얄팍한 거짓 표정에는 속지 않았다.

검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검 놀림도, 발놀림도, 리듬도, 호흡도, 전부 엉망진창이야. 내가 가르쳐준 내용은커녕, 원래 할 수 있었던 것조차 제대로 하지를 못해. 주특기인 카운터도 동작이 삐걱삐걱. 그래서 그렇게 간단하게 막히는 거야. 아무리 머리로 악독한 자신을 만들어내도 혼은 속일 수 없어. 마음, 기술, 몸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그 검술이 나오지. 마음이 망설이는 검에 진정한 힘은 깃들지 않아. ……아야츠지 선배는, 아야츠지 선배 본인이 생각 하는 이상으로 긍지 높은 사람이야."

"그, 그렇지 않아!"

잇키의 지적에 아야세는 황급히 목소리의 크기를 높였다.

"내게 망설임 따위는 없어! 2년 전 뼈에 사무치게 깨달았지! 아무리 긍지 높게 싸워도 지면 전부 허사라는 사실을! 결과를 수반하지 않는 이상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어! 이겨야 지킬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길 거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겨서──되찾을 거야!"

그 외침은 잇키에게 하는 반론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되뇌이는 말이었다.

그 사실을 잇키는 알았다.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자신의 마음이 지르는 비명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자신이 그랬듯이.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야."

그 비명을 아야세의 귀에 들려주는 일.

지금 해야 할 일은 그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래서 잇키는 '음철'의 날 끝을 아야세에게 겨누며, 

"내 최약으로 네 긍지를 되찾겠다."

그렇게 선언했다.

『이이런, 여기에서 쿠로가네 선수의 상체가 가라앉습니다! 첫수와 마찬가지로 돌격의 자세입니다! 저 수수께끼의 베기 공격을 받아도 주눅이 든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워스트원'은 공격할 셈입니다! 설마 그 베기 공격의 원리를 간파했을까요?!』

아야세는 그 거동에 재빨리 대응했다. 

더욱 뒤로 후퇴해서 간격을 벌렸다.

그러나 대응은 냉정했지만 그 마음속은 크게 흐트러졌다.

'내가, 잘못되었어?! 마음의 비명?!'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도장을 되찾아서 아빠를 안심시켜드려야만 해!'

망설임은 없었다. 

속이지는 않았다.

자신을 현혹시키기 위해 잇키가 허튼소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야세는 그렇게 굳게 믿으며 깊게 생각하기를 꺼렸다.

'──그런 소리까지 한다면, 쿠로가네가 말하는 잘못으로 승부를 끝내주겠어!'

뒷걸음질로 벌어진 간격은 약 30미터.

그리고 그 간격은 베기 공격의 지뢰밭이었다.

잇키의 돌진 속도는 첫수로 완전히 기억했다.

다음은 좀 더 치명적인 타이밍에 '바람의 손톱자국'을 발동시킬 수 있다──!!

"간다, 아야츠지 선배."

순간, 가라앉았던 잇키의 몸이 들리더니──앞으로 튀어나왔다!

'──여기다!!'

그 거동에 반응해서 아야세는 잇키의 전방에 존재하는 '바람의 손톱자국'의 상처를 벌렸다.

홀연히 발생하는 대기의 단층은 닿는 것 전부를 베어내는 진공의 단두대.

건드리면 물론 몸성히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뭣────?!"

쿠로가네 잇키의 몸은 첫수와는 비교가 안 될 속도로 탄환처럼 앞으로 튀어가며, 진공이 벌어지기 전에 재빠르게 빠져나가 아야세의 칼을 제쳤다. 

──그 속도는 비장의 카드 '일도수라'와 완전히 같았다!

『놀라운 속도입니다아! 쿠로가네 선수, 드디어 비장의 카드 '일도수라'를 썼습니다아!!』

'어, 어떻게?! 그 비장의 카드는 봉인했을 터……!'

사고가 뒤엉킨 아야세에게 오레키의 목소리가 닿았다. 

『아니. 저건 '일도수라'가 아니야.』

『네? 그런가요, 오레키 선생님.』

『저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마력 방출로 가속을 붙였을 뿐이야.』

'마력 방출!'

그 말에 아야세는 자신이 범한 실책을 깨달았다.

마력 방출이란 자신의 마력을 방출함으로써 행동을 가속하는, 다른 수많은 블레이저가 거의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행동 강화술이었다. 

물론 아야세도 행했다.

『쿠로가네는 평균치보다 훨씬 마력이 적으니까, 이런 방식으로 쓰면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로 마력이 떨어져버려서 보통은 쓰지 않지. 그렇지만 '쓰지 않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은 달라. 아마도 이번에 쿠로가네는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일도수라'를 쓸 수 없어. 그래서 그 대용으로 썼을 거라 생각해.』

오레키의 말대로 '쓰지 않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은 달랐다. 

평소 잇키는 자신의 마력량에 여유가 없기에 '쓰지 않을' 뿐. 

그러나 '일도수라'를 행할 만큼 마력 회복을 기대 할 수 없는 지금, 마력 방출을 이용한 행동 강화를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썼다. 

현재 남은 마력을 끌어모아 방출함으로써, 딱 한 번뿐이지만 '일도수라'에 버금가는 속도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일도수라'에 너무 연연했어!'

너무나 치명적인 실수.

잇키는 이미 신속한 발놀림으로 검의 사정거리에 뛰어들었다.

이제 와서는 '바람의 손톱자국'을 써도 늦었다.

완전히 심리의 의표를 찔렸다.

'그렇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사정권에 뛰어 들어왔다.

칼을 맞부딪히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한 번이었다. 

이번 한 번의 칼싸움을 사력을 다해서 버텨내고 다시 한 번 거리를 벌린다!

그렇게 하면 이제 잇키에게 남은 마력은 바닥난다.

이번처럼 탄환 같은 스타트는 끊을 수 없다.

'내가 승기를 잡으려면 그것뿐이야! 이 한 합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낸다──!!'

새된 기합을 실으며 아야세는 '히즈메'를 휘둘러서 눈앞에 잇키를 베어내──. 

그 칼날은 텅 빈 허공을 갈랐다.

"────어……." 

분명히 눈앞에는 잇키가 있었을 터인데──.

아야세가 휘두른 혼신의 일격은 앞에서 달려오는 잇키의 코끝을 살짝 스쳤을 뿐 닿지 않았다.

간격을 잘못 재었나.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잇키는 검의 사정거리 안에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잇키는 신기루처럼 사라지더니, 그 뒤에서 또 한 명의 잇키가 달려왔다.

아야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제 무엇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도 아닌 혼란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쿠로가네 잇키가 지닌, '제7비검 뇌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리지널 기술 중 하나.

발놀림을 통해 급격하게 완급을 조절해서 '달리는 자신의 앞쪽에 잔상을 만들어내서 간격을 착각시키는' 기술.

"제4비검──신기루"

순간, 혼신의 일격을 헛맞힌 아야세의 몸을 '음철'의 베기 공격이 갈랐다.

『들어갔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쿠로가네 선수의 일격이 클린 히트!!!!』

성공을 확정짓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관중들 또한 동조하여 커다란 환성이 울렸다.

『아야츠지 선수의 양 무릎이 지면 위에 꺾였습니다! 그러나 피는 흘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콜록, 콜록, ……응, 베는 순간에 '환상 형태'로 바꾼 거겠지.』

『그 말씀은 피로가 쌓였을 뿐 치명상을 입은 게 아니라는 뜻인가요.』

『응.』

『그러나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한 걸까요? 여성은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요?』

『그건 아닐걸. 나도 쿠로가네에게 베인 적이 있고. 아마 처음부터 체력만 깎는 게 목적이었을 거야. ……이번에 쿠로가네의 목적은 단순히 이기는 것만이 아니었으니까.』

오레키는 특정 상대가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링을 내려다보았다.

때마침 아야세가 땅에 닿은 양손과 양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서려던 참이었다.

아야세는 몸을 떨면서 고개만을 들어 자신의 앞에 선 잇키를 노려보았다.

"…………어쩔, 셈……?"

"뭐가?"

"얼버무리지 마……, 어째서 베지 않았어……!"

"베지 않아도 아야츠지 선배는 더 이상 싸울 수 없는걸."

'얕보다니…….'

깔보았다.

그 말을 모욕이라 여기며 아야세는 양손과 양 무릎에 혼신의 힘을 실었다.

환상 형태의 디바이스에 베인다 해도 육체적인 타격은 받지 않는다.

체력이 직접 줄어들 뿐이었다.

아야세도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잇키와 스텔라의 매일 아침 러닝에도 여유 있게 따라갈 정도였다.

이 정도의 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

"…………어어."

그럴 터인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째서……."

지금 일어서지 않으면, 지금 싸움에 이기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데.

아버지를 구할 수 없는데. 

어째서, 무엇 때문에.

'내 마음은…… 이렇게도 싸늘하지?'

마음이 샘솟지 않았다.

몸 밑바닥에서 힘을 쥐어짜내서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기개가 샘솟지 않았다.

그 사실을 실감하고 아야세는 깨달았다.

자신의 혼이 이 긍지 없는 싸움을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가…………, 이것이 내 마음의 비명이구나…….'

사람은 궁지에 몰렸을 때, 자신의 가슴에 긍지가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아직 할 수 았다. 

다시 하자. 

포기하지 마. 

그렇게 자신을 북돋을 수 있다.

아야세도 지금까지 쭉 그래왔다.

아무리 수행이 괴로워도, 손에 생긴 물집이 터져서 아파도, '아야츠지의 검'을 휘두르는 자신에게 긍지를 품고 있었기에 힘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긍지를 스스로 부정한 아야세에게는…….

"……쿠로가네가 말한 대로구나."

더 이상 일어설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졌어."

『아아, 그러니까 여기에서 아야츠지 선수가 기권했습니다! 시합 종료오오오오!! 승리한 사람은 역시 '워스트원' 쿠로가네 잇키 선수!! 쿠로가네 선수는 이것으로 놀랍게도 11연승!! 그것도 '사냥꾼'에 '러너즈 하이'라는 유명한 면면을 쓰러뜨리고서 이룬 11연승입니다! 이제 칠성검무제 대표 선발은 확실하다고 해도 좋겠지요!』

승부의 결과에 끓어오르는 관중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아야세는 메마른 웃음을 띠웠다.

"한심하네……, 버리기는커녕, 관철할 수도 없다니……."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어느 한쪽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어설픈 자신에게 보내는 조소였다.

그러나 그 조소를, 

"한심하지 않아."

잇키는 강한 어조로 일축했다.

"어…………?"

"망설이고, 틀리고, 잃어버리고. 그래도 버리지는 않았어. 그것은 아야츠지 선배의 강인함이야."

그리고 잇키는 쓰러진 아야세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아야츠지 선배. 가르쳐줘. ……선배가 '소드 이터'에게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를. 무엇이 그렇게까지 선배를 몰아붙였는지를."

"그런 걸 들어서 어쩌려고…….' 

"내가 되찾을게."

망설임 없이 고하는 말에는 아주 조금의 주저함도 얼버무림도 없었다.

아야세가 부탁하면 잇키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아야세를 위해 싸우리라.

그 사실을 알았다. 

알아버렸기 때문에, 

"……가르쳐줄 수 없어. 쿠로가네에게는 관계없는 일이니까."

그런 괴물과 싸우게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다정한 남자아이를, 자신 같은 구제할 길 없는 반편이를 위해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건 이미………… 아빠만으로 충분해.'

그래서 아야세는 모든 것을 덮었다. 

그러자──. 

"그럼 조사할 거야."

"뭐?"

"아야츠지 선배에 대해서 캐묻고 파헤쳐서 모두 조사할 거야."

"무, 무슨 소리를 하는……."

"전부 조사해서, 전부 되찾겠어. 아야츠지 선배 역시 맨 처음 나를 스토킹했으니까 비긴 거야. 불평을 들을 이유는 없어. 그렇지?"

영문을 모르겠다.

무엇이 비기나. 

……비기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것은 빚만 잔뜩 느는 일이었다.

"……어째서."

아야세는 떨리는 목소리를, 번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쿠로가네를 배신했는데……, 그렇게나, 심한 짓을 했는데……, 그런데…… 흑, 어째서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아야세는 물었다. 

잇키의 대답은 매우 명쾌한 말이었다.

"친구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어."

순간, 아야세의 눈동자에 비치는 잇키의 모습이…… 과거에 보았던 카이토의 모습과 겹쳐졌다.

상처 입은 제자를 위해 싸움의 무대로 올랐던 아버지의 모습과.

잇키도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다.

침을 뱉고 부당하게 욕설을 퍼부어도 그런 사소한 일로 검을 뽑지 않는다.

그러나 소중한 동료가 상처를 입으면 검을 뽑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아…… 그래………….'

언제부터 잃어버렸던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그 도장에서 계속 지향하던 모습일 터였다.

아야세는 자신의 양손으로 눈을 떨구었다.

그 시선에 닿는 것은 몇 번이고 물집이 터져서 빈말로도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손바닥.

아버지나 잇키의 그것과 같은, 검사의 손바닥이었다.

'그래. 나는 그저 아빠처럼 멋진 검사가 되고 싶어서 검을 쥐었어.'

한때는 쿠라우도의 폭력적으로 강한 힘에 의욕을 잃고, 도장을 되찾아야만 한다는 초조함 속에 잃어 버렸던 자신의 긍지가 깃든 곳.

아야세는 간신히 그것을 떠올리며 자신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그 순간 아야세의 마음은 정해졌다.

"……쿠로가네………… 나를, 도와줘…………!"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등지고, 자신의 긍지를 배신하고, 비극의 헤로인처럼 자아도취에 빠지는 일이 아니었다.

이 다정하고 강한 소년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 

그리고 그의 승리를 믿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야세는 잇키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 한마디를 듣고 싶었어."

그 말에 잇키는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아야세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아 주었다.

벽신문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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